백금남 화두소설 돈오돈수 돈오 작가의 말 내 영혼의 길잡이황금염소 올해로서 보조스님이 입적한 지 773년이 된다 그러고보면 그분의 돈오점수설은 근 800년 동안이나 수행자의 귀감이 되 어 왔던 셈이다 금세기 최대의 선승 성철 스님이 선문정로 에서 종조인 그를 뜰 안의 독초라며 배척하지만 않았더라도 그의 돈오점수론이 한국 선종사의 법맥임을 감히 누구도 의심 치 않았으리라 명저 중에 명저인 I선문정로를 대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길이 없다 그때 나는 보았던 것이다 내 가슴 속에서 나와 함께 자라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나는 그때부터 그것을 원고지 위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물 론 쉽지 않았다 길은 두 갈래 길이었고 내가 찾고자 하는 것 은 그 두 갈래 길의 정점에서 찬연히 멎나고 있는 무엇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것을 세상 밖으로 내보낸다 어떠한 길을 가던 삶이 란 어차피 깨달음으로 검증되기 마련인 것 아직도 크낙한 화 해를 얻기엔 의심 많은 자의 칼날은 무디기만 하고 시비는 성 성하지만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이 소살 笑殺 한 몸이 된다는 뜻되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애써주신 도서출판 민족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백금남 차례 작가의 말 내 영흔의 길잡이황금염소 4 돈오돈수 돈오점수 11 해설 불교소설의 새 지평을 연 선禪소설 275 지난 밤 창금염소 한 마리가 용광로 블 속으로 들어간 뒤 지금까지 그 자취가 보이지 않는다 이 도리를 알겠느냐 내가 칼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예감이 아니 었다 그를 향해 칼을 들겠다고 일단 결심을 굳힌 이상 피할 이유는 없었다 결제날안거가 시작되는 날은 가까워 오고 있 었다조만간에 심검당尋劍호의 문은 열리고 대중은 보게 될 것이었다 심검당의 칼은 방장方丈의 방 깊숙이 걸려 있다 아무나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방이었다 을씨년스럽고 차가운 냉기 만이 감도는 그 방에 들어서면 결가부좌한 그의 민머리 위로 누더기 법복 한 벌이 달랑 걸려 있고 칼은 그 위에 걸려 있었 다 명증의 사건이 있은 후 나는 가끔 그 방에서 피냄새를 맡곤 하였다 방으로 돌아와 눈을 감으면 몸은 흔곤하게 식은땀으 로 젖어나고 허공을 그어가던 시퍼런 칼날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은 피를 물고 바닥으로 떨어져내리던 살덩어리 잘 려져 나간 자신의 손목이 방바닥 위에서 펄쩍펄쩍 뛰는 걸 내 려다보던 명증의 그 처참한 얼굴 칼을 거두면서도 여전히 웃 음기를 지우지 않던 방장의 비정스러운 얼굴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울려 꿈자리를 어지럽힐 때면 나는 새 벽 달빛에 일어나 앉아 아버지를 생각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 의 손에 의해 꿈틀꿈틀 검은 염소로 변해가던 횐 염소들을 떠 올리곤 하였다 그러면 나는 나도 모르게 일어나 밖으로 나와 야만 하였고 이른 겨울 바람은 썰렁하기만 한데 때로는 기다 렸다는 듯이 지대방에선 명증의 망령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 다 아니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떻지 그떻다고 법을 묻는 수 좌의 몸을 장검으로 내려치다니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그거야 광증이 아니라 자비가 아니겠소 자비이 무슨 소린가 그렇잖소선각자의 자비곧 법 그 자체의 자비 홍참으로 위대한 자비로군그래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닌 것을 그 일이 있은 후 병신이 된 명증이 왜 다시 이곳으로 돌아 왔겠는가 하는 것이오눈을 시퍼렇게 치뜨고 법을 위해 능히 목이라도 내놓으려던 게 그 작자인데두고 론 보시오 정말 앞으로 볼 만한 일이 벌어지고 말 테니 아 아니그럼 제깐 놈이 이제 와 큰스님에게 앙갚음이라도 하겠다는 거야뭐야 수좌가 법을 보려다가 실패하면 억하심 먹지 않고 다시 시 작하는 거야 상례겠지만 그러나 그럴까요어디 그러게그러고보면 그들도 법을 구하는 납자들이고 보면 그렇게 돌아온 명증에 대해 관심이 없을 리 없겠지만 그러나 그들의 그런 말을 듣다 돌아서면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선 나로서도 어쩔수없는 시퍼 런 칼바람이 일고 있었다 결제방結制澤 결제 기간에 각자가 맡은 소임을 적은 표이 짜 여진 것은 그런 결심을 한 지 꼭 열홀 만이었다조공朝供아 침공양이 끝나자 공사가 열렸고 결제방이 짜여졌다삼동결제 에 임한 대중은 모두 서른 세 명이었다 물론 정은수좌는 동참하고 있었지만 명증은 도끼눈을 치뜨 는 도반들의 눈길에도 아랑곳없이 제 방에서 술이나 마셔대고 있었다 산문의 총수격으로 선리W 강화와 참선 지도를 맡 은 방장을 위시하여 소지까지 모두 서른 세 명의 소임이 주어 졌다 방장方丈참선지도參禪指導 1인 주지住待사찰총밥寺刹總括 1인 입승立繼대중통솔大衆統率 1인 1인 원주阮主살림담당 유나維那포살담당布舊擔當 1인 병법秉法시식딩득卞施食擔當 1인 지전持殿불공담당佛供擔當 1인 1인 지객持客 손님 안내 다각茶角차담당茶 擔當 2인 명등明燈등화담I컷燈火擔當 1인 수두水식수관리食水管理 인 종두 타종담당打鐘擔當 1인 시자侍者방장시봉方丈侍奉 1인 주지시봉住持侍奉 1인 원두園頭채전담당菜舊擔當 3인 화대火찹화력관리火力管理 2인 욕탕관리浴湯管理 2인 욕두浴頭 환자간호십者퐁護 간병붙病 1인 별좌 理座 후원관리後園管理 공사供司 1인 채두菜頭 공양담당供養擔當 부목負木 2인 서기書記 2인 헌식獻食 부식담당副食擔當 소지掃地 화력담당火力擔當 3인 서류담당書類擔當 1인 귀객식물시여담당鬼흉食物施與擔當 청소담당淸掃擔當 대중일동 1인 서른 세 명 중에서 내가 맡은 소임은 식수를 관리하는 수두 였다 그 일은 나무를 해 나르거나 공양을 담당하거나 채소밭 을 담당하거나 하는 소임과는 달리 그리 힘든 소임은 아니었 다 모두가 좋고 나쁘고가 없이 자기가 맡은 소임에 충실하며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여 이번 삼동에는 견성해보겠다고 눈을 및내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결제불공에 이은 방장의 법문 을 들었다 작금에 학인學人들이 경줄 몇 줄 읽었다 하여 지식을 쁨 내고 그 지식을 과시하여 법法을 보지 못하는 아수라阿修羅 가 되고 있음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십이부경 二部經을 다 이해했다 해도 문자 속에서 정신의 자유를 구 하려 한다면 결코 법은 보지 못할 것이다 부처란 바로 마음의 청정함이며 법이란 어떠한 차별적인 이해나 편견도 사라진 깨달음의 멎이며 도란 질퍽질퍽한 흙 탕물 속에서도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청정한 광명의 비춤이 다 참된 부처는 형상이 없으며眞佛無形 참된 도는 그 실체 가 없으며眞遣無體 참된 진리는 꾸밈이 없다眞法無相 이 세 가지 법이 혼합융통混슴融通하며 한 곳에 화합하나 실체 가 없다이것을 알지 못하고 끝없이 망망한 업식業識의 바다 에서 표류하는 것을 일러 중생이라 한다 이번 삼동에는 우리 도 불성을 개발하여 조춘에는 기필코 이 바다에서 헤어나 견 성하도록 하자 언제나 법은 내 안에 있다 나는 방장의 법문을 들으면서 그 역시 어디서 많이 들어보 았던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은근히 학인을 비방하고 나서는 그의 분별심이 오히려 경멸스러웠다 정말 불신이란 이렇게도 무서운 것인가 법문이 끝나자 차담흄談 이 주어졌고 이내 입승 스님에 의 해 시간표가 짜여졌다 기침起寢 참선參禪 청소공양휴게淸掃 朝供 休憩 2시 30분 3시 6시 6시8시 8시 11시 참선參禪 11시13시 공양휴게午供 休憩 13시16시 참선參禪 16시19시 약석휴게藥石 休憩 19시22시 참선參禪 취침就寢 22시 단 망일 오전 포살但 望8 쑤前 布舊 드디어 동안거의 죽비가 큰 방에서 울렸다 모두가 벽을 향 해 결가부좌를 취했는데 눈을 감자 여느 때처럼 잡다한 생각 이 꼬리를 물었다 포만한 도반의 거친 숨소리가 우선 신경을 긁어오고 이내 본사 승방에서 지내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 는가 하면 칼을 든 방장이 반개半開한 망막 사이로 나타난 다 잊어버리려고 하면 그것은 더욱더 끈질기게 의식을 물어 뜯고 이래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으면 다잡을수록 다시 망 상은 꼬리를 물고 왔다 피 번진 명증의 얼굴 굴러떨어지던 핏덩이 피를 문 칼 웃음기가 돌던 방장의 얼굴 그럴 때면 다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바람을 잠재우려 도량을 거닐다 보면 명증의 방에선 무 엄하게도 술 냄새가 밴 염불소리가 홀러나오고 있었다 염불소리를 듣다 말고 어둠을 헤치면 마음 속에 일던 칼바 람은 더욱더 성성하게 일어나 눈을 빛내는데 다시 아버지의 얼굴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결심을 굳힐 때마다 떠오르는 얼 굴이지만 그렇기에 어젯밤에도 아버지의 꿈을 꾸었던 건 예외 가 아니었다 몇 마리의 염소를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아버지 그 아버지는 여전히 어둠 속 어디서인가 나를 부르고 서 있었고 흥하문紅舊門 너머에서 산새가 목이 터지게 울고 있었다 사실 아버지만 생각하면 나는 무엇을 넘기다 가슴에 꽉 걸 려버린 것같은 고통에 시달린다 분명히 그가 이 산 속 어딘가 에 있을 것이라는 건 내 느낌이지만 그러나 나는 아직 그가 어 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가 보려던 세계를 보았는지조차도 모른 다 그를 벌써 십 수 년 동안을 찾았어도 아버지도 그리고 내 너그리 가 보려 하던 세계도 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그렇게 나는 장다리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오늘날까지 오로지 내가 볼 수 있었던 의 울음 것은 못나게도 아버지가 내게 준 기억들 그리고 이곳으로 오 래어 버 지 않을 수 없었던 가슴 아픈 기억들과의 해후일 뿐 검게 일어L 그렇다면 진리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경작한다는 말은 증명 된다 저 유년의 세월에 있었던 그 모든 것 우리 모두가 겪었 을 것 같으면서도 두 번 다시 있어선 안 되는 그 모든 것 그러 나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들이 바로 그것들이었음을 부정할 길은 없다 우리집은 동촌에 자 었다 그는 청국이 일 던 해였다 당시 궁 든 예의를 로 추숭겹 신을 못 안개 린 유년의 강 거기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있 다 그리고 검게 변해가던 하이얀 염소가 있다 오매리 들녘의 장다리밭 그 언덕을 끼고 흐르던 긴긴 강줄기 그리고 갈새들 의 울음소리와 강바닥을 물들이던 낙조 그 낙조만큼이나 바 래어 버렸던 형의 피 번진 일기장과 아버지 그의 손에서 검게 검게 일어나던 희디흰 염소들 우리집은 월진에서 사오십 리 떨어진 낙동강 하류에 있는 동촌에 자리잡고 있었다 증조할아버지의 본디 고향은 평양이 었다 그는 청일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청국이 일본에게 패하여 조선의 독럽이 두 나라로부터 승인되 던 해였다 당시 궁정에서는 독럽국의 체면을 꾸미느라 황제식으로 모 든 예의를 고치고 있었다 목조檀祖에서 태조太祖까지 황제 로 추숭끄崇하기에 바빴고 그 틈을 탄 신하들은 매관매작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때였다 그떻기에 독럽은 왔지만 나라 의 살림살이는 더욱더 가난해져만 가고 민생은 도탄에 허덕이 고 있을 때였다 허울만 좋은 독럽이섰고 이름만 있는 독럽이 었다 전형적인 선비 집안에서 태어난 사상가였던 증조할아버지 는 미관말직이었으나마 혼연히 벼슬길을 버리고 이름없는 범 인이 되어 벽촌으로 내려왔다 그곳이 바로 내가 태어난 이수 였다 그는 그곳에 정착하자마자 스스로 서당을 세워 후학의 교육에 힘썼다 다시 강대국들의 노리개가 되지 않으려면 그 리고 허울 좋은 독팁국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면 오로지 이 나 라를 짊어지고 나갈 무지하고 몽매한 기등들을 계몽하고 올바 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그 것만이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힘이요 독럽의 기초이며 생 명이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무지하고 선량하기만한 사람들을 모아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는 데 매진했다 그것은 동포의 계몽을 위하여 그가 응 당 할 일이었고 그러한 뜻은 할아버지 대로 이어져 이웃 마을 에서도 안훈장집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언제나 서당 안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낭낭하게 흘러나왔 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그때 할아버지의 나이 마흔 둘 비교 그는 적 늦은 나이였지만 갑자기 훈장집 담 너머로 우렁찬 신생아 라도 이상한 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들었다 아버 사람들은 그 울음소릴 들으며 너나없이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11 울 밖 가득 만개한 벚꽃이 분분히 떨어져 내리던 화창한 봄날 물이 못 되어 이었다 몰려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신부의 뱃속에 1 갓난아이의 그것 같지 않다고 혀를 내둘렀다 어떤 이들은 이 리고 수년이 지 제야 안훈장집에 마을을 감싸고 있는 높은 메두봉 정기를 받 옷을 입닌 나타 은 큰인물이 났다고들 했다 붉은 옷을 입 을 놓았다가 소 그날 밤 할이 놋재떨이를 두 성이 가끔씩 흘 식자우환이 치지 않았어야 아버님 이 땅이 어 그 색깔이었느1 을 걸치고 살았 이놈아그것은 그렇다고 푸 그려 알긴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태몽부터가 할머니는 용이 치마폭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고 했으니 소 위 용꿈을 꾸고 아버지를 낳았다는 말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커니가면서 또래의 다른 애들하고는 달랐다 그는 네 살 때 이미 천자문을 떼어 신동이라고 소문이 날 정도였고 일곱 살 땐 사서삼경을 줄줄 읽어내려 주위를 놀 라게 했다 그는 무엇이나 그대로 스치고 지나치는 게 없었다조금이 라도 이상한 게 있거나 의문나는 게 있으면 눈을 멎내며 달려 들었다 아버지의 앎에 대한 집념은 참으로 집요한 것잇었나 그러나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비록 나이 스 물이 못 되어 부모들의 강권에 의해 결혼을 했지만 그가 어린 신부의 뱃속에 씨 하나 달랑 심어놓고 집을 나가버릴 줄은 그 리고 수년이 지난 뒤 나갈 때 입었던 횐 옷을 벗어던지고 붉은 옷을 입고 나타날 줄은 붉은 옷을 입고 나타난 아들을 보며 할아버지는 한동안 넋 을 놓았다가 소리 나게 문을 탁 닫아버렸다 그날 밤 할아버지의 방에는 오래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놋재떨이를 두드리는 곰방대 소리와 노기가 밴 할아버지의 음 성이 가끔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식자우환이로다 식자우환 내 너에게 일찍이 학문을 가르 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을 아버님 이 땅이 어떤 땅이더냐 네놈이 이 집을 나갈 때 입고 나간 그 색깔이었느니라 수천년을 이어져 왔어도 오로지 흰 옷만 을 걸치고 살았느니라 그런데 이제와 붉은 옷을 입고 나타나 근 이놈아 그것은 우리 것이 아닌 것이야 그렇다고 푸른 것도 우리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려 알긴 아는구나 우리들에게는 우리들의 것이 있는 것 니 라 이여 네놈의 법이 설령 모두를 구할 수 있다고 한들 허나 우 리들에게는 우리들의 것이 있는 법 우리들 사는 법이 설령 좀 도 틀렸다 한들 설령 좀 모자란다 한들 우리는 우리들 나름내로 법을 세우고 우리들 나름대로 주관을 세워 혁명이라면 혁명을 해야 하는 법 아버님 그래서 이렇게 돌아온 것이 아닙니까 시끄럽다 이놈 이내 혀 차는 소리가 믓믓 들려오고 놋재떨이를 때리는 소 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더니 참고 있던 아버지의 음성이 터져나 왔다 아버님 심려하지 마십시오 세계는 변하고 있습니다 고루 하게 썩어빠진 것만을 고집한다면 혁명이란 없을 것입니다 혁명은 바로 새롭게 태어나는 새 생명이며 그것은 오직 낡고 썩어가는 것에 대한 파괴의 정열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 은 새로운 세계를 위한 자주적인 세계는 될지언정 필요악은 아닐 것입니다 싱 할아버지의 대답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 아버지를 노 려보고만 있었거나 아니면 곰방대만 빨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 친 을 것이었다 싱 신 아버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집안의 변해버린 모습에 무척 놀 U 5 라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평소 청빈하기로 소문났었고 그 렇기에 훈장 노릇으로 벌어놓은 제산이 있을 리 없었다 서당 식으 에서 글을 배우려는 사람도 갈수록 줄어들어 아예 없다고 해 시8 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욱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쟁까지 나 八 자 그래도 존경의 뜻에서 쌀줌이라도 갖다주던 이웃들마저도 등을 돌렸다 그러니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이 할머니 나 어떠니가 남의 집 논일을 하며 집안을 꾸려나갈 수밖에 없 었다 물론 그때는 내가 태어나기 전이었지만 아무튼 붉은 옷 집 의 위력은 엄청났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그 길로 반동분자의 색출에 나섰고 조금이라도 검게 보이기만 하면 인민의 이름으 로 심판을 받아야만 하였다 사람들은 서서히 횐 옷에다 붉은 물을 들여 입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구도構圖 는 철저하고도 완벽했으며 무엄할 정도로 비정하고 가차없었다 할아버지가 말한 식자우환이란 어쩌면 그것을 두고 할 말일지 몰랐다 횐 것을 고집하든 검은 것을 고집하든 푸른 것을 고집하든 붉은 것을 고집하든 그 무엇을 고집하든 그것은 이상하게 물감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었 다 그것은 어디에든 한 점만 떨어져도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모르고 있었다 흰 무리 속에서 검게 보이 던 사람들이 푸른 옷이 다시 밀려내려옴으로써 그들과 하나가 되어 그를 감아올 줄은 푸른 옷이 다시 대대적으로 밀려내려 옴에 따라 미처 피할 사이가 없었던 아버지의 퇴로는 막혀버 렸고 아버지에게 검게 보여 피붙이들을 잃거나 상처받은 사 람들이 그들과 어울려 눈을 뒤집은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들에게 쫓겨 엉겁결에 집으로 뛰어든 아버지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다 산과 들과 마을 입구 심지어 강 언덕까지 길은 막혔고 짐승을 몰듯 아버지를 뒤쫓아 온 사람들은 집 안 을 닥치는 대로 뒤지며 부수었다 집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끌 내 아버지가 발견되지 않자 그들은 할아버지를 끌어내었다 할머니나 어머니도 개끌리듯 끌려나온 건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발길질과 주먹질로 이들을 닥달해보았지만 소득이 있 을 것 같지 않자 이번엔 어린 형을 끌어다 놓고 겁을 주었다 니 애비 숨은 델 알고 있제 어데고어데 있노 이늄 자슥 눈 치뜨는 거 좀 봐아니 이게 겁이 없어도 유 분수지 이놈아 니 애비 어디다 숨긴 거여 모릅니더 모른다고요놈 자석 차알참말로 겁난 맛을 봐야 알랑가 베 이봐라 이봐라 그란다고 아나 어른이나 불 것 같지 않다 달아 매라 달아 매 지 할애비 죽는 꼴을 봐야 조기 입을 열란 갑다 이늄으 영감탱이야 얼른 불락카이 수장시키기 전에 할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눈이 뒤집힐 대로 뒤집힌 사람들이 가시철조망을 걷어다 그를 짐승 묶듯이 묶고는 우물에 매달았다 그리고는 겁에 질린 어린 형을 그의 앞으로 데려갔다 니 애비 어데 숨겼노 말만 하면 니 할애비는 살 수가 있 1 다 I그 어린 형은 어버지가 숨은 곳을 알고 있었으나 입을 열지 않 았다 았다 어린 것을 회유하다 못한 그들은 철조망에 묶인 사람을 잔인하게 도르래에 매달았고 어린 형에게 그 철조망을 잡아 당기게 하였다 어린 것이 힘이 부쳐 철조망을 놓아버리기만 한다면 할아버지는 그대로 우물 속으로 떨어져 수장이 될 판 니 이었다 도르래에 매달린 할아버지와 형을 번갈아 보던 할머니는 그 만 혼절해버렸고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붙들려 고래고래 안 된 궈 다고 악을 써댔다 가시가 돋은 철조망을 잡고 어린 형은 겁먹 은 얼굴로 울었다 그런 와중에도 할아버지는 소리치고 있었다 안 된다은아니 애비 있는 델 가르쳐줘서는 안 돼 이내 손에 할아버지의 무게가 느껴져 왔다 도르래 위에 실 형 린 무게는 어린 힘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었다 그 였다 러나 형은 울면서 당겼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의 소재를 말해서도 안 되며 그렇다고 그 철조망을 놓아서도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철조망의 가시가 손을 파고 들었다 가시바퀴가 구르듯 쇳 가시가 파고든 어린 손아귀에서 피가 흘러떨어져 발등을 적셨 다 피와 살을 파먹은 쇳가시들이 수레바퀴처럼 돌면서 한뺍 한뺌 도르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 할아버지의 몸은 우물 밑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어린 형은 그때까지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든 책임은 자신 에게 있다는 듯이 이를 악물고 가시철조망을 당기고만 있었 다 그들은 어린 것의 극악스런 비명소리에 눈도 깜짝하지 않 았 다 이것아 아직도 늦지 않았닥카이 네 애비 어데 있냐 그러나 형은 말하지 않았다 형이 한순간 정신을 잃으며 철조망을 놓아버린 건 부어 아 궁이 속에 숨어 있던 아버지가 보다못해 밖으로 뛰쳐나온 뒤 였다 아버지는 나오기가 무섭게 그들에게 붙들려 어디론가 끌려갔고 우물로 떨어져 내린 할아버지는 이미 산 사람이 아 니었다 아버지는 그 후 몇 년 동안 소식이 없었다소문에 의하면 그를 끌어간 사람들에게 말못할 고초를 당하다가 죽기 직전 에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를 데려갔다는데 어디에 있는 지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 아버지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몇 해가 흐른 후였다 그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긴 했지만 그때 까지도 전향은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죽음 요에서도 대꼬챙 이처럼 꼿꼿하고 늠름하게 고통을 견뎌냈다는 것이었다 그런 데 모를 것은 그런 소식이 있고 얼마 후에 아버지는 무슨 생각 에선지 갑자기 전향을 해버렸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소달구지에 얹혀 돌아온 아버지는 거의 산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였다 그가 어떻게 해서 그런 몸으로나마 풀려 나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의 몸은 가누지 못할 정도 로 망가져 있었고 눈빛도 그 옛날의 눈빛이 아니었다 더욱이 어쩌다 정신이 들었다 싶으면 고문으로 일그러진 눈살을 찌푸 리고 미친 사람처럼 실실거리고 웃는다는 것이었다 감옥소 안에서도 어느 땐가부터 그떻게 넋이 나간 듯 실실거리고 있 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이구 산다는 게 뭔지 기어이 이제는 미쳐부릿는가베 을매나 다구쳤으믄 살아온 거이 다행이지지놈이 그러고도 살려고 했던가N 동리 사람들의 숙설거림 뒤편에서 할머니는 눈밑을 찍고 있 었다 어이구 이 무정한 사람들아 어디 이 목심이 산 목심인가 죽은 목심이지을매나 족쳤으믄어이구 직일 놈들 할머니는 오동나무 아래 정화수를 마련하고 손을 비벼대었 다 신령님 신령님 부디 제 아들을 살려 주시소 살려 주시이 소 그래서였을까 숨을 껄덕이면서도 실실거리며 죽을 날만 기 다리던 아버지가 기적적으로 사람을 알아보았다 그날 할머니 는 반딧불 날리는 오동나무 아래 정화수를 훨훨 뿌리며 소리 겼다 신령님 고맙십니더 고맙십니더 그러나 기적적으로 일어났어도 아버지는 이미 옛날의 아버 지는 아니었다 제 정신이 돌아오면서 까닭없이 실실거리는 것은 없어진 것 같았지만 여전히 웃음이 헤펐으며 반푼이 냄 새를 풍기고 있었다 말씨까지도 완전히 변해버린 사투리 그 대로였다 그는 그저 밥이나 축내다가 히죽히죽 웃으며 동리 를 돌아치기나 하였다 눈을 빛내던 예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며 그가 너무 험한 일을 당 해 돌아버렸다고 했고 미쳐버렸다고 했고 전쟁이 아까운 사 람 버려놨다고도 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는 언제나 헤실헤 실 옷음이나 헤프게 흘리며 어쩌다 돈푼이나 만지면 투전판 말찌에나 끼여 앉았다가 몽땅 털려서는 헤실헤실 웃으며 돌아 오곤 하였다 뜻 있는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며 애석해 혀를 찼지만 어느덧 그는 헤실이나 반푼이란 별명까지도 얻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무서웠던 것은 아버지로 인해 몹쓸 짓을 당한 형이었다 형은 그 일이 있은 후 아버지와는 반대로 완전 히 말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전쟁의 상 흔도 아물어가고 먹고 살기에 바쁜 사람들은 어느 새 미움도 증오도 점차 잊어가는데 형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입을 굳 게 다문 채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형이 안타까웠던 할머니나 어머니는 동분서주했지만 그는 나중 폐결핵까지 겹쳐 피를 토하며 죽는 순간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형은 내가 태어나고 그 이듬해 죽었는데 어머니 가 형을 낳았던 게 열여덟 살 때였다고 했으니까 어머니는 주 책스럽게도 서른 여덟의 나이에 나를 낳은 셈이었다 사람들 은 뒤늦게 이 무슨 경사냐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늙어가면서 주책스럽다고 흉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십년대가 저물고 육십년대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할머니에게 어설프게나마 들어 안 것이지만 형은 정말 죽는 순간까지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는 자 주 강가로 나가 말없이 갈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젖은 눈 빛으로 강줄기를 바라보곤 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이 미 죽음의 그림자가 완연하더라는 것이었다 어쩌다 할머니가 곁에라도 주춤주춤 다가가면 그는 말없이 돌아보다가 희미하게 웃었고 그러다 틈만 나면 책을 읽었고 글을 썼으며 그 위에다 붉은 피를 토해놓곤 했는데 피를 토한 지 꼭 육개월 만에 약 한 첩 제대로 써보지 못혔고 눈을 감았 다는 것이었다 죽는 순간까지도 그는 말 한마디 없었다고 하 였다 그저 아버지와 어머니 할떠니를 젖은 눈으로 번갈아 보 다가 눈을 감았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형은 그렇게 갔지만 변한 것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눈빛이 묽어지게 울던 어머니는 여전히 살기에 바빴을 것이고 아버지는 여전히 반푼이 모습에 반푼이 행동을 하고 다녔을 것이었다 내가 열 살이 될 때까지도 아버지는 심심하면 한번 씩 어머니의 속을 있는 대로 긁어놓는 못난 사람이었을 뿐이 었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을까그때 아버지의 그 무서운 음모를 오전 내내 눈이 내린다 밤새 풍경소리가 그치질 않더니 날이 밝기가 무섭게 내리기 시작한 눈이 좀처럼 그칠 생각을 않고 있다 먼젓번 폭설에 막혔던 수채는 다시 막혔고 누렇게 잎이 바래긴 했지만 그토록 힘차게 버티던 파초도 이 젠 꺾이다 못해 찢긴 모습으로 풀이 죽었다 새벽 참선을 끝낸 뒤 장명둥으로 가 밤새 몹쓸 바람으로 인 해 흘러내린 촛농을 긁고 닦아내었다 눈과 낙엽으로 범벅이 되어 막혔던 수채를 다시 뚫고 수각을 말끔히 청소하고 돌아 왔을 땐 이미 몸은 후즐근히 젖어 있었다 조공을 끝내고 잠깐의 휴게시간 동안 막연히선문에 기대어 밖을 내다 보았다 내리는 눈발 속으로 앞 산이 한 폭의 수묵 도처럼 장엄하기까지 하다 눈안개에 쌓인 저 능선과 계곡 스르르 눈을 돌리자 눈을 인 장명등이 보이고 적설을 못이 겨 휘늘어진 나뭇가지들과 줄기 찢긴 파초가 보인다 신문지로 맨머리를 가리고 해우소정랑 로 뛰어드는 스님네 들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나는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심검당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멀리 요사채로 지어진 심검당 주위를 누구인가 시자의 부축 을 받으며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거니는 사람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방장이었다 나는 눈이 부신 듯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해제解制날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가 만약에 깨쳤다면 분명히 내 마 음 속 깊은 곳까지 읽고 있을 것이었다 무시 이래로의 습기 習氣를 제거했다면 이미 나의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읽고 있을 것이었다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그럴 리는 없지 다시 선방으로 들어 겨우 휴게시간까지는 견뎌냈지만 뒤늦 게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껄껄거리며 웃던 명증의 얼굴까지 떠오르자 나는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나 자신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한심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 도 모르게 눈길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나 는 절망하며 경내를 천천히 거닐었다 염불소리도 없는 한낮의 도량엔 쌓인 눈을 녹이려는 듯 햇 빛이 줄기차게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뒷산으로 옮 겼다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뒷짐을 지고 걸었다 송림 사이 로 햇볕이 부서지고 있었다 한참을 올라가노라니 어젯밤 꿈 에 본 아버지의 얼굴이 또다시 떠올랐다 나는 의식적으로 머 리를 내저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선방으로 돌아와 다리를 감아 올리고 척 추를 꼿꼿하게 폈다 이게 무엇인가 화두를 당겨 안았지만 또 망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어 금니를 지그시 씹어 물었지만 이제 명상은 전쟁터가 되고 있 었다 오금이 저려오고 명치 끝이 탔다 휴게시간까지 어떻게 참았는지 몰랐다 잡다한 생각으로 시 간을 메꾸고 나오는데 눈앞으로 누군가의 얼굴이 펀듯 가로막 았다 어찔 현기증이 일었다 한번 일어난 영상은 눈앞에서 영 지워지지 않았다 어찔거리며 경쌔를 잠시 거닐다 명증의 방으로 가보니 명증 은 보이지 않고 그가 마시고 던져버린 듯한 소주병 몇 개만이 됨굴고 있었다 홍하문 쪽으로 나가 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여 전히 볼 수 없었다 어딜 간 것일까 흥하문을 나서 잠시 걸었다 햇살이 눈부셨다 눈부신 햇살 속으로 허청허청 걸었다 한참을 어딜 어떻게 걸었는지 몰랐 다 다시 경내로 돌아왔을 땐 어느 새 스님들이 선실로 들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 선실로 오르면서 나는 무심히 고개를 들 어 심검당을 올려다 보았다 문득 웃음기를 문 늙은이의 모습 이 눈앞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방장 의 모습이었다 분명히 환영이었지만 떠오른 그 모습 속에서 나는 또 하나의 얼굴을 보았다 생각해 보면 그것을 음모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 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음을 또한 어쩌랴 아버지 가 지향했던 세계 선각자로서 더 나은 세계를 추구했던 열정 그로 인한 좌절의 피멍울은 지금의 나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그때 그것이 아버지가 가질 수 있었던 진실의 전부 였다면 최소한 나는 형을 통해서 그의 아픔을 이해할 수도 있 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버지로 인하여 진실 앞에 마주 설 수밖에 없었던 형 그것 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그때 형의 진실은 영혼 이상 의 것이었을 터였다 진실은 눈앞인데 그는 결코 어린 영혼을 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실을 가르칠 수도 없었고 거짓의 줄 을 놓을 수도 없었던 상태 진실과 거짓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면 결국 형이 끝까지 자기화한 것은 무엇인가 침묵의 자기화 그런 것인가 그렇다 그럴른지도 모른다 그떻다면 침묵의 자기화란 정녕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끊임 없이 끓고 있는 의식의 방출을 스스로 삭일 만한 힘이 도대체 인간에게 있는 것인가 살아있는 생물이 그 의식의 통로를 봉 쇄하고 도대체 얼마를 견디어 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가끔 형이 지병이었던 폐결핵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침묵의 병으로 인하여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 가 있었다누가 그랬던가화가 쌓이면 한恨이 되고 한이 쌓 이면 바람이 된다고 그러나 바람마저도 될 수 없었던 형의 침 묵은 결국 자신을 죽이면서 침묵의 자기화로 남았을 뿐이었 다 아마 그는 그 침묵 속에서 잠재된 자기 존재의 가장 아픈 기억을 반추함으로써 자기 내부에 잠들어 있는 침묵의 원형을 일깨워보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 그 존재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지만 또 모르겠기에 여기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에 비해 아버지의 음모는 최소한 침묵과는 그 색깔이 달랐 다 아버지는 적어도 형처럼 자신의 진실을 침묵 속에 가두어 놓지는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땐가 나는 형과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진리는 깨겼으 나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는 수도승과 사자후를 터뜨려 자신 의 깨침을 구체화하는 수도승과의 차이를 떠올렸는데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은 형의 침묵과 아버지의 음모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분명히 그때의 그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 도 나는 호박꽃에다 반딧불을 집어넣어 호박불을 만들어서는 그것을 들고 저문 들녘을 뛰어다니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마당가에 모깃불을 피우고 할 머니와 함께 마루에 마주 앉아 다리미질을 하고 있었다 이늠 자식 배도 고프지 않는겨 사럽을 들어서는 나를 보며 할머니가 한 말이었다 부뚜막에 밥 차려났으니께 저녁 묵고 얼릉 아부지 좀 찾아 보그라 어머니가 쓱쓱 베바닥 위로 다리미질을 하며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궁글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발걸음을 멈 추고 그런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아부지가 어데 갔는디 어머니가 펀득 나를 돌아보았다 아늠아아 그걸 알면 내가 찾아오구로 아마도 노름판에나 갔을끼다 노름판은 푸슨 노름판 할머니가 그래도 가재는 게편이라고 벌컥 역정을 내며 아버 지를 두둔하고 나섰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역정에 놀라 찔끔 하면서도 그 화풀이를 내게라도 하는 양 얼굴을 돌려 나를 새 초롬히 노려보았다 얼릉 가서 저녁 묵고 찾아보라이 나는 그만 어머니의 역정에 질려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부엌 으로 걸음을 옮겨놓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실 아버지는 어 머니에게 돈 십만 원만 구해달라고 성화였는데 어디로 가신 것일까 밥을 먹고 나서 나는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그러나 아버지 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찾다가 지쳐 돌아와 얼마나 잤 는지 몰랐다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얼핏 선잠에서 깨어났는데 구들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실랑이를 하고 있는 게 보였 다 아버지는 여전히 돈 십만 웠을 어디다 싱려는 것인지 어머 니를 어린애처럼 달달 볶아대고 있었다 글씨 알고 허넌 소린데 뭘 그러쌌는가고쟁이 밑에 숨겨논 거 내놓으면 될 거 아니가 같으면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해가며 아버지는 어머니를 있었다 나나 어머니나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기가 예전 조르고 찼지만 언제나 어머니는 정말미쳐도 오지게 미쳐부릿는 갑다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도 그와 함께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이 양반이 나중에는 못허는 소리가 읍네 고쟁이 밑에 찰 돈이라도 언제 벌어다 주고 어거지 소리요소리가 노름 판에 들락거리다가 돌아도 분수가 있지 일 이만 원도 아니고 십만 원씩이나 차라리 날 장에 내다가 파소 팔믄 될 거 아이요 못주것다믄 곱기 못주것닥해라배 차는 소리 고만허고 허이고 배 차는 소리는 누가 허고 앉았는디 이것아배 차는 소릴 할래도 니 고쟁이에 숨긴 짜래기소금 녹을끼미 못 찬다 치우소고마 그래 치우꼬마 십만 원만 구해주믄 니가 치아라 안 케도 치운다그라이 십만 원만 구해도고 어쩐 일인지 몰랐지만 아버지는 여느 날보다도 끈질겼다 어머니 역시 다른 날과는 달리 아버지가 끈질겨 보인다고 생 각되었던지 한풀 꺾인 모습으로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번엔 애원조로 아버지를 달래기 시작했다 보소 이녁이 인자 수무나무 묵은 아요 때가 어느 땐디와 그라요 그리 멀쩡하던 양반이 그래 노름밑천 할라고 없는 돈 빌리오라는 기요기가 그기 아이라카이 그라네언제 내가 노름할라고 빚엾어 달 라는 기가 그람 뭐요뭐냔 말이요 아무튼 십만 원만 구해도고그것만 구해주믄 금방 오십만 원 맹글어서 갚아 줄 낀께 아이고 참말 큰일 났구마이 양반이 좀 나아지는가 했디만 또 돌아도 참말 오지게 돌아부릿는 갑네 시방 내한테 뭐락했 능교 뭐시라 십만 원이 오십만 원 어머니의 반응이 너무 엄청났던지 이때만은 아버지가 숙지 막하게 대꾸를 못하였다 보소 동이 아부지 내 좀 삽시더시집 오던 날부터 이때꺼 정 속 그마이 썩이믄 됐지 이년 복장을 아직도 끊어 놓을 끼 있다고 더 끊어 놓으락카요 십만 원이라이 십만 원이 뉘집 똥개 이름인 줄 아는교 십만 원 갖고 가 가지고 오십만 원이 아이라 오천만 원을 갖다 준닥케도 내사 하나도 안 반갑소 허허 이늄으 여팬네 차알로 큰일났네그라지 말고 십만 원 만 구해오라카이 말같잖은 소리 기속 할라거든 마 나가뿌소꼬라지도 배기 싫으이 좋다 니 지금 말 다했제 아버지가 고리눈을 치뜨고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가 발딱 일어나는 그를 올려다 보며 눈을 흘겼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참으로 어머니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버지 가 처음 돌아왔을 때만 해도 감히 눈이 시퍼런 아버지에게 그 렇게 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아니 그보다 아버지가 초죽 음이 되어 돌아왔을 때만 해도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제는 눈까지 홀기게 되었으니 역시 어머니도 예전의 어떠니 는 아니었다 그라요 다했소 우짤 끼요 이 썩을 놈으 여팬네가 오냐좋다그람 내가 집 나가 서 죽어도 좋다 이말이가 그 말에는 마음 약한 어머니가 찔끔하는 눈치였다 죽다이 돈 십만 원이 없어 내가 죽게 생겼는디 그래 내가 죽어도 좋다 이 말 아이가 보소 동이 아부지내 말 좀 들어 보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매달리듯이 엉겨붙더니 그를 방바닥 에다 도로 앉혔다 그라요 동이 아부지도 생각을 좀 해보소 우리 사정에 나 락씨 나는 논 한 평이 있는교 감자톨 나는 손바닥만한 밭쫴기 하나 있는교 이년 손이 거북이 등떼기 되도록 넘으집 밭쫴기 매주고 묵고 사는 살림살이 그래 그것도 부족해서 이년 속을 박박 긁다가 죽을랑교 나는 못하요 못하는 기 아이라 이년 재주로는 십 원짜리 동전닐 한 푼 나는 못 구하요 정말 사램이 변해도 우째 이래 변했부릿능교 아이구 하늘도 무심 하시지 허허 좋다 그래 좋다 그럼 내가 죽어주믄 될 기 아이가 그라요죽을라믄 죽으소 열 번 백 번 죽는닥해도 내사 인 자 노름 밑천은 못 혀다 바치것소 오냐 그락꾸마죽어주꾸마죽어주믄 될 기 아이가 정말 어머니와 아버지다운 싸움이었다 자신의 손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되는 것도 서러워할 틈도 없이 우리들을 먹여 살 리기 위해 돌아치는 어머니다운 말이요 사람만 실없이 좋았 지 속도 없고 그떻다고 남의 집 머슴살이도 못하는 헤실이다 운 아버지의 싸움이었다 그 길로 아버지는 정말 죽으려는 듯이 어머니의 눈치를 슬 슬 보다가 지게꼬리를 풀어 들고 어슬렁어슬렁 사립을 나갔 다 아버지는 사럽을 나가며 여전히 어떠니의 눈치를 어린애 투정하듯이 힐끗힐끗 보았고 그리고는 꼭 노래를 부르듯이 이 런 말을 흘렸다 나 죽으러 가안다아 나 죽으렁 가안다아 나 죽으면 잘들 살아라아 어머니가 보다못해 그만 마룻바닥에 펄썩 주저 앉으며 복장 을 쳤다 아이구 내가 미친년이지 저런 화상을 믿고 그래 확 죽으 삐려 죽어 삐려 어머니는 그떻게 고함쳤으면서도 아버지가 나간 사컵 밖으 로 자꾸 눈을 주는 눈치였다 밤이 깊어져도 아버지가 돌아오 지 않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저녁상을 방 안으로 들여놓고는 안절부절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아직도 잠이 덜 깬 눈을 비비고만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나를 에워싼 어둠이 여느 때보다는 더 어두운 느낌이었고 그래서인지 어서 빨리 새벽이 왔으면 좋겠 다는 생각을 하였다 1卞 그렇다 어둠 속에서 새벽을 기다릴 수 있다는 사 실 그것만큼이나 희망적인 게 어디 있으랴 더욱이 어두운 세 월 속에서 밝은 빛을 볼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희망적인 것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진리란 문득 깨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깨 달아 계속해서 닦아나간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오늘도 심검당의 문을 밀고 나와 신선한 공기 속에 발 돋움하고 서서 먼 데 하늘에 시선을 붙박은 방장의 위엄에 찬 조용한 몸가짐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를 향해 칼을 들어야 하는 것은 이제 자명한 사실로 굳어오고 있었지만 그날이 가 까워올수록 그의 그림자가 태산처럼 느껴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날 내가 아버지를 찾으러 밖으로 나왔을 땐 둥근 달이 이 제 막 소소리봉을 넘어와 있을 때였다 나는 달및에 물든 주위를 둘러보며 아버지를 찾았다 돌이 네 집 박꽃이 달빛에 젖어 어찌나 아름다운지 가끔씩 내 발길 을 멈추게 했지만 나는 열심히 아버지를 찾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없었다 평소 잘 가던 주막에도 가보았고 투전판에도 가보았고 영삼이네 아저씨 집에도 자잘한 돌껭이 가 박힌 우물가가 있는 설이네 집에도 가보았지만 달빛만 소 슬하게 내려 앉았을 뿐 아버지는 없었다 내가 아버지를 본 것은 흑시나 물레다리 건너 섭이네 아저 씨집에 갔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막 물레다리를 건너 산모롱 이를 돌아나가던 참이었다 물레다리 이쪽 바로 산등성이 언덕바지 기슭에서 나는 누군 가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게꼬리를 휘어진 소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쪼그리고 앉아 담배꽁초를 손 끝이 타도록 빨고 있는 사람 가까이 가보나마나 그는 아버지였다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그떻게 죽음을 생각할 만 큼 고민하고 있었던 게 무엇인가를 나중에야 안 것이지만 그때 아버지는 그렇게 죽음을 생각할 만큼 심각한 일을 벌여놓고 있었다 입에 거미줄이나 치지 않 는 게 다행일 정도의 가난 어머니의 말처럼 나락씨 나는 논 한 뺌이 있나 고구마라도 심을 밭 한 뺍이 있나 농사철이면 뻣골 빠지게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벌어오는 몇 푼의 수입에 제 비 새끼 어미 모이 기다리듯 기다리던 네 식구 정말 아버지는 그렇게 얼쩡없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 다 실없이 마음이 좋기만 해서 모질지 못한 것처럼 웃음이 혜 프고 게을러터져 부엌 바닥에 지푸라기 한 줌이 없어 불을 때 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마지못해 나믓짐이라도 해오는 사람 모 심을 집에서 댓 번 정도는 데리러 와서야 마지못해 어슬렁 거리며 따라나가는 모를 심다가도 슬그머니 산기슭으로 기어 올라가 밀짚 모자 뒤집어 쓰고 한숨 자다가 내려오는 무사태 평인 사람 앞 집 영실이 아버지처럼 비록 부쳐먹을 논밭돼기 는 없을 망정 남의 집일이라도 어머니와 함께 손맞춰 부지런 히만 하면 남 부러울 것 없이 그만그만은 살 수 있을 텐데도 아버지는 본시 그렇게 사는 것엔 관심이 없는 듯 헐렁헐렁 투 전판에나 기웃거리며 그렇게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때 아버지는 참으로 죽음을 생각할 만큼 심각한 일을 벌려놓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건 다름이 아니 라 투전이었다 아버지는 그즈음 투전판에 끼었다가 그만 집 문서를 뺏겨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석달 내로 그 집문서를 찾 지 않으면 우리 식구들은 쪽박 차고 그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어린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산 언덕바지에서 쪼그리고 앉아 담배꽁초를 태우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다가갔다 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몸을 좀 돌려 앉으며 헝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 다 나에게까지 어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딴전을 피우듯 투정 을 하듯하참달도 밝구먼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붕지 여서 뭐하노 아버지가 쌔 눈치를 흘끔 살피며 또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부지 여서 뭐하노 말다 뭐하기는 그제야 아버지가 달을 올려다 보고 앉은 채 운을 떼었다 뭐 하는데 여 앉아 있노 보믄 모르나 뭐 말이고 아부지 죽을락 안 하나 죽어 그래 나는 눈을 땡그라니 떴다 아부지가 와 죽노 아버지가 나를 힐끔 돌아보았다 니는 아부지가 살았으믄 좋겠나죽어부릿으믄 좋것나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란데 니 에미는 와 그런지 모르겠다 와 아 이 애비를 죽으락 안 하나 그기야 아부지가 자꾸 돈 내노락카이 그런 기지 아버지가 할 말이 없다는 얼굴로 담배꽁초를 빨았다 횐 연 기가 안개처럼 아버지의 주위를 감싸안고 흩어졌다 나는 아 버지를 향해 좀더 다가들었다 가자아부지 싫다 와 니 에미에게 가서 그라거라 아부지 죽었다고 싫다 싫다이 아부지가 죽지도 않았는데 우째 아부지가 죽었다 카노 다아 이유가 있어서 그라이 끼네 그래 말하믄 된다 싫다 어서 가서 그래락카이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을 땐 영문을 모르는 할머니는 마실을 나간 참이었고 어머니는 집을 나간 아버지 때문에 속 을 끓이다 못해 사립을 나서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모를 건 나 자신이었다 나를 발견한 어머니가 니 애비 찾았나 하고 물었을 때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응아부지가 죽었더라저쪽 산 언덕바지에 하고 말았던 것이다 뭐라고 정말 괜일인지 몰랐다 아버지는 저쪽 산 언덕바지에 죽으 려고 암아 있더라 해될 것을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 버렸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돌아설 때 보았던 아버지의 눈 멎 때문이 아니었을지 무슨 연유에선지 몰랐지만 아버지는 저러다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은연중에 하고 있 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니 애비가 죽었다이 어머니가 좀 망설이는 나를 향해 고함을 빽 질렀다 정말 목을 매고 죽었드락카이 나도 목을 빼고 지지 않겠다는 듯이 고함을 빽 질렀다 어머니가 눈을 허옇게 뒤집어 떴다 꿔시락고그기 정말이가 그떻닥카이 어데고 그기 저쪽 산 언덕바지에 가보자 어머니가 하얗게 질린 모습으로 뛰기 시작했다 참 어른들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들이었다 좀 전까지는 그 렇게 나가 죽어버리라고 고함치다가 정작 죽었다고 하니 저렇 게 질려버리다니 어머니는 뛰면서도 어머니답지 않게 여전히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구 울먹였다 아이구 동이 아부지 어느덧 어머니는 물레다리를 건너뛰고 있었다 어머니의 허 둥거리며 뛰는 그림자가 꼭 바라지에 비치는 그 그림자 같았 42 백금남 화두소설 다 밤이면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장난하던 그림자 놀이 속의 삿갓영감 어느 한 순간 뭉레다리를 건너서 산 언덕 쪽으로 뛰어가던 어머니가 멈칫 섰다 그 바람에 어머니를 따르던 나도 멈칫 섰 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뒤 이어 어머니의 울음 섞인 고함 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고 동이 아부지 이기 무신 일인페 나는 그때만큼 내 눈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분명히 내 눈 에 들어온 것은 언덕바지 그 소나무 앞에 아버지가 지게꼬리 에 목을 매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엎어지다시피 아 버지를 향해 뛰었다 나는 기어이 아버지가 죽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그만 겁에 질려 아부지 하고 울음 섞인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그것이 말소리가 되 어 나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농밀한 엿가락을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어쩔 줄 모르며 울먹거리고만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그 순간을 기다리기 라도 했던 것처럼 마침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던 것이다 그 것이 무슨 소린지는 확실치가 않지만 어머니의 반응소리만은 확실했다 아이고 동이 아부지 살았구마요 나는 그만 또 내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엉겁결에 아버지를 부둥켜 안은 어머니의 치마폭 사이로 아버지의 발은 허공에 대롱거리고 있기는커녕 수풀 속으로 솟아난 머리통만한 돌을 꽉 밟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어머니나 내가 그의 발이 공 중에 뜬 걸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그의 발이 지지한 잡풀 속에 가리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더욱 환장할 것은 바로 나를 보는 아버지의 얼굴이 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부둥켜 안은 어머니의 어깨에 턱을 늘 어뜨린 채 나를 향해 빙긋이 웃으며 한 쪽 눈을 쩡긋거리고 있 었다 그리고는 능청스럽게 눈을 감았다 뜨며 어머니를 향해 이떻게 느물거리는 것이었다 비키라 죽을란다 죽으락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 와 말리 노 어머니가 그제야 사태를 간파한 듯 역시 어머니다운 몸짓으 로 뻥하고 돌아섰다 흥 내가 미쳤지 이럴 줄 빤히 알면서도 그라요죽을 락 카믄 꽉 죽어뿌소죽어뿌리 그래 죽을란다죽을 끼라 그래 죽으소죽어뿌려 어머니가 첵 몸을 돌리더니 두어 발짝 걸음을 떼어놓았다 이내 아버지의 음성이 그 뒤를 따랐다 이봐라갈 땐 가더라도 이 똘빡이나 차고 가그라 어머니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그는 한참 아버지를 쏘아보다가 그만 그 자리에 퍼질러 앉으며 왈 라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아버지의 자살극은 그렇게 해서 끝이 났다 그리고 저러다 정말 아버지가 죽어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는지 어 머니가 건너 마을로 가 거금 오만 원이라는 돈을 아버지에게 꾸어다 주는 것으로 일단 그들의 싸움은 끝이 났다 아버지가 바라던 액수의 반밖에 안 되는 돈이었지만 어떠니는 그 돈을 빌리느라고 속 꽤나 탄 모양이었다 나는 다음 날 아버지가 그 돈을 가지고 집을 비운 사이 어머 니가 할머니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말도 마이소목을 맨 그 모습을 보이 그마 얼매나 가심이 44 백금남 화두소설 섬칫하게 내려 앉던지 뭔 일인지 모르겠구마그 큰 돈을 어디다 쓸라고 그 몹쓸 까지 어쩌면 완강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다 준 것은 정말 아버지가 죽을까 해서이기보다는 목 매는 그런 몹쓸 장 난을 다시 볼까봐 두려워 뒤로 물러난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집을 나간 아버지는 그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철 없는 나는 애타는 어머니의 심정도 모른 채 호박꽃에다 반디 를 잡아 넣어 강 언덕이나 들판에서 뛰놀다 돌아왔고 어머니 와 할머니는 마루에서 빨래를 다리다 말고 그런 나를 향해 아 버지를 또 찾아보라고 성화였던 것이다 어머니가 부엌에 차려놓은 밥을 먹으며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던 나는 부뚜막에 흘린 된장 묻은 밥티까지 주워 입에 넣고 는 그 길로 아버지를 찾아나셨다먼저 감나무집 상구집에 가 보았으나 아버지는 없었다 어머니가 갔으리라고 생각했던 투 전판에도 아버지가 목이 출출하시면 어슬렁거리며 잘 들리시 던 주막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물론 설이네 집에도 영구네 집 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이 양반이 어딜 간 것이기에 어떠니는 밤이 이슥하도록 사럽가에 서서 아버지를 기다리 는 것 같더니 방으로 들어온 후에도 바람에 사럽만 흔들려도 문밖을 내다보곤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온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기 다림 같은 건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싱글거리며 사럽을 들어 서고 있었는데 그날 밤 나는 어떠니와 아버지가 잠자리에서 나누는 말을 들었다 아니 무신 소리요갑자기 염소는 무신 염소고 말을 그리도 못 알아 듣나 전 구장네 비알 봉천답 위에 난 골미창 한 쪽을 내가 쓰기로 혔다니깬 혀선그람 거그서 염생이를 키우것다 이 말인교 그려 오늘 가서 터를 대강 딱아놓고 왔다카이 구장네 허 락도 받았고 참 살다 보이 벨 일도 다 있소 그 돈 가지고 노름판에나 들락거릴 줄 알았더이 그런 소리 말그라 이 안영섭이 그냥은 안 죽는다 내일부 턴 동이녀석헌테 때나 올리 보내그라 염생이 몇 마리 안 되는 거 때까지 나를 기 뭐 있능교 몰 고 나가갔고 저녁때 아 시키서 몰고 오믄 되지 어머니의 그 말에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무슨 큰 뜻이나 품은 사람처럼 들뜬 표정으로 꿍하고 돌아누웠을 뿐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참 그때만큼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최고 낫질 잘한다고 쁨내 는 나종이 아저씨보다 늠름해 보였고 쌍도래끼질이 능수라는 짐날푼 아저씨보다 더 늠름해 보였고 제 아들이 구장이라고 맨날 거드름이나 피우는 설이 할아버지보다도 더 믿음직해 보 였다 그날 저녁 나는 아버지가 마실 나간 틈을 타 할머니가 어머 니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동이 아배가 이제사 정신을 채릴랑 갑다 염생이라 도 키와서 어째 보겠다는 기지 제발 그래라도 해준다뜬 얼매나 좋겠습니꺼 지도 사람인데 생각이 안 있겄나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건 아니었다 염소라도 길러서 이제라 도 집안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할머니나 어머니의 바람같은 것은 한낱 보잘 것 없는 기대였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가슴에 불가사의하게 싹 트고 있었던 것은 문설주에 옆머리를 기대고 앉아 나는 장명등 너머 의 뜰을 쌔려다 보았다 대응전은 장명등 너머에 있었다 대응 전 앞 돌계단을 내려와 길을 사이 하고 만들어진 정원은 언제 나 스님네들에 의해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못나게도 그 정원을 내려다 보며 그 옛날 아버지가 데 리고 나간 흰 염소들의 환영을 떠올렸다 그들은 그 뜰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아버지의 모습은 어쩐 일인지 보 이지 않았다 저쪽 나뭇가지 위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을 뿐 나는 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어떤 불가사의한 침 묵을 경험하고 있었다 구름이 몇 점 낮게 떠 흘러가고 있었지 만 그것은 그 침묵 속을 흘러가고 있었고 새들이 날아 대응전 추녀 위를 맴돌다 사라져갔어도 그것 역시 어떤 불가사의한 침묵 속을 헤엄쳐가고 있었다 사고에 의하여 명상이 방해받 거나 기억에 의하여 새로움의 시작에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저러한 침묵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명상이란 건 환영을 보는 것도 아니요 환상을 보는 것 도 아니겠지만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침묵을 염원하기에 여기에 온 것일지도 몰랐다 아버지가 염소들을 끌고 침묵 속으로 사라져버린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면 그 존 재하지 않는 침묵 속에 법은 유영하고 있을 것이었다 선들바람이 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날씨는 눅눅한 우기를 띠기 시작했다 문을 열자 눅눅한 대지의 향기가 코 끝에 스멀 거렸다 나는 천천히 방을 나왔다장명등을 돌아 뜰 위를 거닐었다 어디선가 밤부엉이가 울고 있었다 초승달이 이제는 검은 구 름장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형언할 수 없는 침묵이 내 주위를 서성였다 나는 침묵 속에서 방장이 있는 심검당을 바라보았다 심검 당은 알 수 없는 요괴스러움으로 그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곳을 향하여 도전하듯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신의 침묵자연의 침묵인간의 침묵 내가 예를 갖추고 심검당의 문을 열었을 때 방장은 꼿꼿하 게 선정에 들어 있었다 나는 그의 앞으로 걸어들며 입술을 꽉 씹어 물었다 그날 명증과 그런 애기들을 나누고 산에서 돌아 온 후 벌써 두 번째의 심방이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명증스님처럼 팔이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침묵은 확인되 어야만 했고 그렇기에 이제는 물러설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절을 끝내고 그 앞에 무릎을 끓었다 매번 들릴 때마다 차리는 예는 더 차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단도직입적 으로 본론부터 밀고 나갔다 스님 일전에 찾아뵈었을 때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본사 에서 부지런히 경을 읽으며 선禪을 알았습니다스님께서는 보조 선사상의 요체를 담은 절요節要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 고 계신데 정녕 한순간 깨친다면 무시 이래의 습기를 모두 버 릴 수 있는 것인지요 그가 꼿꼿하게 척추를 편 채 입가에 그 음험한 웃음기를 담 고 나를 노려보았다 오랜 윤회로 인한 다생의 습기가 아무리 깊어도 진실로 깨 치면 깨치는 즉시 곧바로 부처가 된다 그렇다면 똑똑한 사람들이 그리 힘 안 들이고 약간 깨쳤다 고 문득 용이한 마음이 생겨 다시 수치하지 않으면 일구월심 에 전과 같이 유랑하여 윤회를 면치 못하나니 어찌 한때의 깨 친 바로서 대번에 수치를 저버릴 수 있겠느냐며 깨친 후의 교 만을 경계한 보조국사의 말씀은 틀렸다는 말입니까 틀렸다 그러면 종조의 견해를 그 근본 뿌리부터 부인하는 것이 됩 니다 여기 종조가 어디 있느냐 종조도 부처도 없다 있다는 부 처는 내 밑씻게요 종조는 변소 치는 범부일 뿐이다 최고의 깨 침이란 족쇄를 벗어난 평범한 인간성일 뿐이며 보리와 열반이 란 당나귀를 매어두는 나무 기등에 불과하다 십이부경二部經의 교학敎學이란 귀신의 장부에 지나지 않으며 종기에서 흐르는 고름을 닦아내기에 적당한 휴지일 뿐 이다사과삼현四果三賢 소승 증과의 4계위와 성위에 들기 위한 방편위과 초심십지初心十地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는 허물어 진 묘지에서 머뭇거리는 망령으로 자신조차도 구친라지 못하 고 있다 고로 나는 그대의 경전과 교리의 해설서에 대해서 능통한 것을 인정치 않는다설사 백 권의 경과 율을 잘 해석할 수 있 다 하여도 그것은 모두 헛된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거울 위의 때일 뿐이며 가면일 뿐이다 나가거라 맞는 말이었다 나는 일어나 그에게 예하고 물러나왔다 내 가 보려 했던 그의침묵은 무지의 소치일지 모르나 그 나름대 로 발톱을 내민 채 부서지고 있었다 그는 역시 법의 경지를 위장한 채 옛사람의 말을 가져다가 자기의 소견으로 적시 적소에 응용하고 있었다 일찍이 나는 그러한 말들이 누구의 입에서 맨 먼저 나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불신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 으면서 문득 임제의 말들을 떠올렸고 그는 그 말을 그대로 내 게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뭇나게도 임제록을 들쳐내 방장이 인용 한 부분을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그는 임제의 말을 거의 그대 로 흉내내고 있었다 한때 경줄이나 읽던 사람이었으므로 자 신도 모르게 옛 선사들의 말이 자기의 소견처럼 응용되고 있 다면 그것은 곧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 이고 자기를 높이는 교만한 자고병自高病에 걸려 있다는 말 이었다 그떻기에 좀 깨달았다 하여 부처와 조사를 꾸짖고 선 지식을 구하려는 아랫 사문에게 자시병自侍病의 병폐를 보이 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굳어지자 이제는 내 입가에 음험 한 미소가 떠돌았다 그래 그것은 정녕 무엇이었을까 아니 나의 눈에 처음으로 자랑스러웠던 그날 아버지의 행위 가 가져다준 의미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를 동네에서 최고 낫질 잘 한다는 나종이 아저씨보다 쌍도래끼 명수라는 짐날푼 아저씨보다 더 늠름하고 자랑스러워 보이게 했던 그 의미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다음날 내가 학교에 갔다 와서는 아버지의 점심을 들고 어 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동리 입구에 있는 산말랭이 골미창으로 갔을 때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아버지가 골미창 한 구석에 지 어놓은 움막만 덩그렇게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필기를 뽑아 먹기도 하고 무덤가에 난 달맞이 꽃을 꺾 어 화관을 만들기도 하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새참 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 는데 남의 집 놉을 갔던 어머니가 저녁에 돌아와서는 날더러 또 한 번 아버지에게 가보라고 하였다 이 양반이 필시 염소를 키운다더니 또 투전에나 미친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 나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투전판에 들렀다가 아버지가 지 어놓은 움막으로 가보았다 아버지는 거기 있었다 움막으로 다가가기가 무섭게 움막 안에서 느닷없이 염소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나는 옳구나 하며 거적을 들쳤다 생각대로 아버지는 거기 있었다 댓 마리의 흰 염소와 함께 아마 그는 그 염소들을 시장에서 사오느라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곤 이제사 풀을 베 다 그것을 염소들에게 먹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염소들을 둘러보며 신기한 듯이 다가갔다 햐 아부지 이거 우리 염소가 아버지는 니가 우짠 일고 하는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다가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끼다 이쁘나 그래 샀나 그래 나는 너무나 좋고 신기하기만 해서 염소에게 풀을 먹이고 있는 아버지 곁으로 가 쪼그리고 앉았다 얼른 풀 한 줌을 들 어 나도 아버지처럼 앞에 있는 염소에게 내밀어 보자 염소가 입을 오물거리며 다가들었다 염소는 모두가 지난 달에 새끼 를 낳은 인준이네 어미만 했는데 인준이네 염소보다는 더 살 이 찌고 윤기가 자르르 홀러 보였다 염소들은 배가 고팠던지 풀을 주면 주는 대로 잘도 받아 먹었다 어쩌다 염소가 풀을 뜯다 말고 혀로 손을 활아올라치면 나도 모르게 케르륵거리곤 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며 한참을 앉았더니 슬며시 일 어나며 입을 열었다 동이야 내가 염소에게 풀을 내민 채로 올려다 보자 니 여 염소 좀 보구 있그라 와 집에 좀 갔다 오구로뭐 좀 게져올 것도 있구 아부지 그람 여그서 잘기가 그래 인자 여서 잘기다 아부지 흔자서 그래 안 무십나 염생이가 있는데 꿔가 무십나 그람 나도 여서 잘란다 여서 잔다고 그래 대답을 하는 사이에도 염소가 또 내 손을 활았다 나는 그 바람에 또 께르륵거리며 돌아서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런 나 를 둔 채 거적을 들치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염소들에게 풀을 먹이며 놀았다 염소의 까만 눈도 마주 쳐다보고 콧등도 만져보고 목 밑에 난 하얀 방울도 만져보고 흰 터럭도 쓰다듬어보고 그러면서 나는 인준이나 우춘이네 젖 짜는 염소보다 우리집 염소가 천 배 만 배 더 좋다고 생각하였다 해 뜨기가 무섭게 산비알에 갖다 매 는 너댓 달 된 서근이네 검은 염소와는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하니 너무너무 좋아 입에서는 그냥 비싯비싯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가 돌아온 것은 내가 염소들에게 풀 먹이는 것도 시 들해져 움막 한 구석에 새우처럼 응크리고 졸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는 집으로 내려간 김에 저녁을 먹고 아마도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온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를 깨우더니 집으 로 내려가라는 말부터 했다 나는 하도 잠이 쏟아지는 터라 막 무가내로 안 가겠다고 떼를 썼다 아니 어쩌면 하늘엔 별들이 솟아 있었고 초승달이 할미의 눈썹처럼 희미하게 서산에 걸려 있는 밤이어서 공동묘지를 돌아 집에 갈 게 겁이 났었던 건지 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저녁도 안 먹었는데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저녁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사실은 고팠지만 내가 버 팅기자 아버지는 배가 고플 텐데 하면서 마지못한 듯 움막 반을 갈라 거적을 치고 북데기를 깔아 잠자리를 만들어 놓은 곳을 가리키며 거기 가서 자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침에 일어 나 염소들이 매어져 있는 거적을 들쳤을 때 나는 그만 기절할 듯이 놀라고 말았던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지난 밤 까지만 하더라도 분명히 하얗던 염소는 하얗던 그 염소가 이 니었다 흰 염소는 모두가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없고 꼭 크기 가 고만고만한 검은 염소들이 거기 옹기종기 모여 있었기 때 문이었다 어젯밤 아버지는 좀 잠을 설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염소들 을 끌고 나가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리고 검은 염소들을 빔 새 끌어오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는 놀라는 내게 시침을 뚝 떼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계속 이상해서 잠이 덜 깬 눈을 부비며 고개만 갸우뚱거 렸다 더 놀랄 일은 그 다음에 있었다 내가 눈을 연신 부비며 밖으로 나가자 마침 어머니가 아침밥을 이고 올라오고 있었 다 어머니는 밥을 이고 올라와 아버지가 저질러놓은 것들을 퍼뜩 둘러보며 역정부터 내었다 아니 아는 내라보내락 하이 보내지도 않고 우짠 일이요 아버지가 밥 양푼을 받아 내려놓으며 나를 힐끗 돌아보았 다 어지 밤엔 지 혼자 무서봐서 못가것닥 하고 아침에 일찍 내려가락 하이 저라고 섰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아가 무서봐서 몬오겠다믄 당신이라 도 데려오믄 될 기 아이요 저놈으 염생이가 뭐 그리 대수라고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젖혀진 거적 사이로 눈을 주다 말고 움막으로 다가갔고 이내 그 안을 들여다 보다가 아버지를 돌 아보았다 어제 사왔다는 기 이것들이요 그래 참 알다가도 모르겄네 젖 짜는 염소믄 젖이라도 짜서 판닥 하지만은 은제 이것들 새끼 내서 판단 말이요 그렇잖아도 달구메 장금이 서남 장금보다 좋다 카더라새 끼는 나중에 빼고 오늘 저것들 끌고 달구메로 가볼란다 우 좋다 해도 그렇지이라다 본전이나 안 까묵을지 장이 오일장이니끼네 이 장 저 장 돌아치믄 괜찮을 끼구 마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그때까지 염소를 보고 있던 어머니가 나를 힐끔 돌아 보았다 아 이놈아야 뭐하노 싸게 밥 묵을 생각 안 하고 배도 안 고프나 저녁도 안 묵고 그라고 핵교는 안 갈기가 어뜻 오이 라 그제야 아버지는 나를 돌아 보았다 나는 멈칫거리며 그들 에게 가까이 가면서도 입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분명 히 아버지는 어제 집으로 내려가 횐 염소들을 사왔다고 했을 텐데 아니 어떤 색깔의 염소라고 말 안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머니는 분명 검은 염소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고 그러면 어 제 내가 잘못 봤거나 아니면 밤 사이 아버지가 흰 염소들을 내 보내고 검은 염소를 끌어다 놓은 것이 틀림없는데 그러나 그 럴 리는 없었다 나는 수저를 들기는 했지만 미칠 지경이었다 내가 잘못 본 길까 아이지 와 내가 잘못 봐 분맹이 흰 염 생이었는데 생각이 또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입이 근질거려 더욱더 미 칠 지경이었다 그래 결국은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향해 고함 을 내지르고 말았다 아부지 어제는 분명히 횐 염소 아이였나 은제 검은 염소 하고 바깐노 어머니가 무슨 소릴 하느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니 지금 무신 소리 하고 있노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느낀 것이지만 언제 나 정기라곤 없이 풀어져 있던 아버지의 몽롱했던 두 눈이 그 순간 번쩍 멎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눈멎이 요즘의 아버 지 눈빛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 재 빠르게 다음 말을 내뱉았다 맞다어제는 흰 염생이었다 야가 시방 무신 소릴 하고 있노 검은 염생일 흰 염생이라 이 헛걸 봐도 단디 봤구마 아부지 아부지가 말 좀 해봐라 어제꺼정은 분맹히 흰 염 소 아이었나 야가 지금 무신 소릴하고 있노 나는 그만 어이가 없어 아버지를 멍청히 쳐다보았다 아부지 아버지가 그럴 수 있느냐는 듯한 나의 넋 빠진 부름소리를 들으며 아버지는 어머니를 향해 피식 웃었다 야가 묵는기 시원찮아 더울 묵었는 갑다 검은 염생일 횐 염생이로 보게 그래 그래 동이야 쭤끔만 기다리거라 내 염생 이 키아 팔아가꼬 니 약도 해주고 작구장도 사주고 헐 텐게 나는 어렸지만 참 어이가 없었다 그냥 멍청히 아버지딴 보 고 있는데 어머니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어머니의 한숨소릴 듣자 나는 더 미칠 지경이었다 분명히 난 횐 염생일 봤노라고 고함을 치고 싶은데 이제는 그 소리까 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나는 어머니의 한숨이 들려오 는 그 순간 분명히 다시 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그 눈빛을 그 섬칫한 눈및을 정말이지 평소 풀려 있던 아버지의 눈빛이 그떻게 무섭게 빛나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한판 승부를 눈요에 둔 병사의 눈빛이 그러했을까 언제나 속이 없이 헤프기만 하고 흐리멍 텅한 눈및을 하고 있던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그런 눈빚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염소를 끌고 동구 밖으로 사라져가는 아버지를 따르면서도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다 도대체 횐 염소들은 어디로 가고 검은 염소를 끌고 어디로 가 는 것인지 나는 내 정신이 아니면서도 그래도 끈질기게 아버 지의 뒤를 따랐다 아버지는 동구를 돌아내리며 그런 나를 돌 아 보았다 동이 집에 못가나 싫다 착한 사람은 말을 잘 들어야 허는 기다 그래도 싫다 아버지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아버지를 마주 쳐다보았다 그러나 눈이 마주치는 순 간 나는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아버지의 눈빛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다시 또 벙어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 는 그만 따라갈 엄두를 못 내고 엉거주춤 그 자리에 선 채 시 선을 땅으로 떨구었다 그리곤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고 멀어 져가는 아버지의 뒷태를 바라보았다 학교에 가서도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다 밤 사이에 횐 염소 가 검은 염소로 둔갑해버린 사실을 어떻게 떠벌리고 그것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그보다 아버지의 그 눈멎 그렇게 사라져버린 아버지는 그날 밤 돌아오지 않았다 아 버지가 돌아온 것은 다음 날이었다 이번엔 그의 손에 더 많은 횐 염소들이 이끌려 왔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버지도 초저녁까지 잠을 못 이루는 것 같았는데 나는 이상하게 자꾸만 아버지의 그 눈빛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새벽녘에 눈을 뜨고 밖으로 나왔을 땐 아버지는 보이지 않 았다 나는 염소들이 있는 거적을 들치고 아버지가 어제 사다 매 어둔 염소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분명히 어제 아버지가 끌어다 놓은 염소들은 횐 염소들이었는 데 그 염소들 또한 어느 틈엔지 먼젓번처럼 검은 염소로 변해 있는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하고 멍청히 쳐다보고 섰는데 아버 지가 고랑에서 세수를 하고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입 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어제 내가 보았던 아버지의 눈빛이 떠 오르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게 아버지가 천천히 다가왔다 아버지는 멍청히 선 나와 검은 염소들을 번갈아 보더니 잠시 먼 산으로 눈을 주었 다가 지금까지의 아버지답지 않게 심각한 눈및으로 나를 그 자리에 끌어 앉혔다 그리고는 윗도리 주머니에서 담배꽁초를 꺼내 불을 붙혀 물고는 멀리 강자락 끝으로 눈길을 주며 쭈그 리고 앉았다 동이야 아버지가 피워 올리는 담배 연기가 어지러이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니는 아직 어리서 잘 모를기다만은 사람이란 말이다 살다 보믄 흰 기 검은 거로 보일 때가 있고 검은 기 희게 보일 때도 있는기라 그기 무슨 말이고 하믄 다른 사람들이 다아 저기 껌닥하믄 횐 기 검은 기로도 되고 검은 기 횐 기로도 되는 기라 다른 사람들이 다아 검다고 하는디 니 혼자 희다고 하믄 니는 우째 되겠노 모난 돌 정 맞는다고 니만 미친 사람되는 실은 니가 본 게 맞는기라저 검은 검생이들은 진짜 횐 염 생이들인기라 그란데 말이다 세상을 살다보이 흰 거는 뭐고 검은 거는 꿔겠노 아이 희믄 으떻고 또 검으믄 으떻겠노 물 론 흰 염생이와 검은 염생이는 근본부터가 다르겄제 그런데 문제는 말이다 며칠 전 밤이었제술을 한 잔 묵고 오는데 말이다뜬금없 이 도깨비를 하나 안 만났겄나 나는 느닷없이 도깨비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가 이상했지만 무슨 말을 하고 나설 때도 아닌 것 같고 해서 그를 뚫어져라 쳐다만 보았다 아버지가 깊숙이 담배를 빨았다 그래 니 도깨비 알제 안 있나 윗담 영택이 아부지 말이다 제삿집에 갔다가 제삿밥 얻어 묵고 술이 곤드레 돼갔고 공동 묘지 밑을 돌아오다가 만났다는 그 도깨비 말이다 씨름을 하 자 해서 씨름을 했는데 아무리 바른쪽 배지기를 쳐도 넘어가 지 않아서 왼배지기를 넣었더니 넘어분져서 크다란 돌땡이로 눌러놨다는 그래 아침에 가보이 몽당빗짜루였다는 그래 그 도깨비를 만났능기라뿔이 시커옇게 하늘로 솟았 고 얼굴은 탈바가지를 덮어 쓴 꼴이 어찌나 겁이 나는지 거다 도깨비 방망이까지 들었으이 그래 속으로 큰일났다 하는데 갑자기 도깨비가 다가오더이 영택이 아부지한테 그란 것처럼 나보고도 씨름을 하작하는기라 그래 우짜겠노 붙었제 참말 로 겁나더마 우째 겁이 안 나겄노 인자 죽었다 싶었지 허지 만 또 우짜겠노 호랭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믄 살 수 있 다는데 그래 큰마음을 묵었지라 털이 부숭부숭난 그놈으 허 리통을 끼아 안 안았겠나 그라고는 그놈이 힘쓰기 전에 왼배 지기를 넣은기라 그랬더이 참 희한하게 그 산마한 놈이 말이 다 아버지는 잠시 말을 끊었다나는 그만 침을 꼴깍 삼켰다 아버지는 그런 내 심중을 알고 있는 것인지 담배 연기를 천 천히 내뿜고는 가래침을 칵 돋구어 풀 위에다 내뱉았다 그리 고 잠시 후에야 나를 넌즈시 돌아보았다 그래 그 산마한 놈이 풀썩 넘어가는데 아따 싶으데 그래 얼른 곁에 있는 큰 돌댕이를 주 들었지라 그란데 막 찍어 누 를락 하이끼네 밑에 깔렸던 그놈으 도깨비가 갑자기 눈을 뒤 집어 뜨고는 고함을 내지르는 기라 보소보소 날 살리주믄 당 신뜰 부자 맨드라 주꾸마요 그러는 기라 그래 이기 무슨 소 릴꼬 싶어 돌멤이를 쳐든 채로 내리다보았더이 또 그라는 기 라 날 살라주는 대가로 당신을 부자 맨들어 줄 테이 내말 믿 고 한 븐만 살리주소 아버지는 여기서 또 말을 꼲었다 나는 어느 새 애가 탈 대 로 타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건 내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길 게 담배만 빨았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야 입을 한 번 쩝 다시 고는 다시 말했다 그래 내가 물었제 우애 나를 부자로 맨들어 준다 말고그 라이끼네 도깨비가 그 돌을 놓고 나를 좀 일으켜 달라카데 그 래 내가 니를 우째 믿을 수 있노 하니까 못 믿을 게 뭐 있노 하 는기라 내가 거짓말을 하믄 또 왼배지기를 뜨면 될 거 아이냐 는기라 그라고보이 그러컷다 싶은데 그래 돌을 놓고 안 일바 싯나 그랬더이 그놈이 숨을 길게 내쉬더이 하는 말이 내가 당 신헌테 부자갸 횔 수 능는 능올을 줄 네이 서냠쏙으보 사는 장 은 어느 장이든 가서 우선 흰 염소를 돈대로 사라 하는기라H 횐 염소로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 새 아버지의 말을 되묻고 있었다 그래 횐 염소를 그래가꼬 그래가꼬 산에다 움막을 짓고 하룻밤 그 움막에 재우믄 흰 염소가 검은 염소가 돼 있을 기라 하는 기라 검은 염생으로 그래 피 거짓말 야가 지금 뭐락 하노 남은 한참 야그 하는데 거짓말이라 이니가 니눈으로 봐놓고도 그라나 나는 그제야 검은 염소로 변해 있는 염소들을 쳐다보며 침 을 꼴깍 삼켰다 그제야 정말 아버지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또 목이 말랐다 그래서 그 후로 어떻게 됐는데 그래서는그래 검은 염생이로 변하거든 그 염생이들을 끌 고 이번에는 달구메장 쪽으로 가락하데 달구장엔 와 그쪽으로 가믄 그 염생이를 비싸게 살 사람이 나온다는 기 라 비싸게 그래 그래서 어제 그 염소들을 끌고 달구장으로 갔더마 하 이기 우째된 일이것노 진짜 가자마자 그놈으 염생이를 꼭 기 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사가 가는 사람이 있는 기라 횐 염생이 산 값보다 더 비싸구로 말이다 씨 거짓말 흰 염생이가 젖도 짜고 더 비싼데 뭐 때문에 검 은 염생이를 비싸게 사갈끼고 그걸 내가 우째 알것노 그놈아가 그라라 해서 나는 했을 뿐인데 그람 그 염생이 사가 간 사람이 도깨비가 둔갑한 것인갑 다 맞다 그런기라 그란데 그때 도깨비가 내게 말했던 기라 이 사실을 누구한테도 말하믄 안 된다고 그래 내가 물었제 우리집에 동이라는 아들 하나가 있는데 가도 알믄 안 되것느 냐고 그랬더이 자연적으로 가는 알게 돼 있을 거니까 가만 알 게 하지 니 여편네나 니 할매나 동리 사람이나 그 누구도 알게 하믄 안 된다는 기라 그람 그 도깨비가 내 말도 진짜 하더라 말이가 그래 그라이기네 니도 이런 걸 절대 남한테 말하믄 안 되 는 기라 어제 내가 니한데 이 말을 할락하다가 니를 믿고 안 했지만서도 핵교가서도입을 꽉 다물고 있어야지 입만 벙긋했 다 하믄 큰 일이 나는기라 행여나 무신 소린 안 했것제 안 했다 그래 잘 했다 만약 했다 하믄 그 길로 도깨비가 내하고 한 약속도 어그러지고 그 뿐만 아니라 도깨비도 죽고 만다이 정 말로 큰 일 아이가 입올 열면 그 도깨비도 죽는다고 그래 그렇닥 하이 진짜 죽는닥 하이 나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겁에 질린 모습을 하 고 막연히 검게 변해버린 염소들을 쳐다보았다 참 희한도 하지 세상에 이런 이상한 일도 다 있을까 나는 눈이 부신 듯 검게 변해버린 염소들을 쳐다보고 또 쳐 다보았다 언젠가 학교에서 선생님이 해주던 동화 속의 나라 에서나 일어나던 일들이 바로 여기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 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신기하기 만 했고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사실 같기만 해서 막 동리를 돌 아다니며 우리 아버지가 요술쟁이가 되었다고 자랑이라도 하 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랬다간 모처럼 아버지 에게 온 행운도 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그 불쌍하고 맘씨 좋 은 도깨비도 죽어버린다니 어린 소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는 그날도 시침을 뚝 떼고 학교에 가긴 했지만 정작은 저번보다 더 미칠 지경이 었다 그렇지만 내가 입을 열고 싶어 아무리 미칠 지경이었어 도 그럴 수는 없었다 입만 열면 아버지는 옛날의 힘 없고 실 없는 아버지로 돌아갈 것이고 도깨비는 죽을 판이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가보니 동리 사람 몇이 염소가 든 움막 앞에서 아버지와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그들 은 아버지가 횐 염소를 검은 염소로 만들어 파는 요술쟁이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입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그 후로도 아버지의 말은 맞았다 아버지는 계속 달구메장 쪽으로 가 검은 염소가 되어버린 횐 염소들을 비싼 갉에 팔아 오는 눈치였고 거기에서 남은 이문으로 더 많은 흰 염소들을 서남장 쪽으로 가 사서 끌어오고 있었다 어느 새 잠을 자고 일어나면 횐 염소들은 신기하게 검은 덤 소들로 변해 있었고 아버지는 어김없이 그것들을 끌고 달구메 장으로 나갔다 나는 그런 아버지와 염소들을 보며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의구심을 혼자서 삭이느라 환장할 지경이었다 언제나 그 검 은 염소 생각만 하면 속이 울렁거리고 입이 근질거려 누가 듣 는 사람이 없는 깊은 산에라도 들어가 마구 고함이라도 질러 대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결국 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생각해낸 것이 아버지 의 말이 사실이라면 횐 염소가 검게 변해가는 모습을 아버지 몰래 흠쳐봐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도깨비 방망이를 든 도깨비를 볼 수 있을 것이고 아버지가 어떻게 흰 염소를 검은 염소로 둔갑시키는지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어느 날 움막 안에저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아버지 가 시장에서 흰 염소들을 끌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날 따라 아버지는 꼭 내 마음을 알고 있기나 한 듯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다 지쳐 밖으로 나왔다 밖엔 어느새 달이 산봉 우리를 넘어와 있었다 달멎 속에 젖은 잡목을 타고 올라가 꽃 봉오리를 연 나팔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움막 옆에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먼 데 쪽으로 눈을 주었다 검게 변해버린 염소와 그것을 끌고 사라지던 아버지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나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잠시 후 아버지가 말하던 방망이를 든 도깨비가 보였다 아버 지의 말대로 도깨비는 칠 척이나 되었고 떠리엔 뿔이 났으며 큰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서 쿵하고 땅으로 떨어 져 내리더니 나를 심술스런 눈으로 노려보았다 툭 불거진 이 마 밑으로 보이는 퉁방울 같은 눈및이 그떻게 무서울 수가 없 었다 그는 잠시 그렇게 나를 노려보더니 가까이 다가왔다다가 오는 그가 무서워 후다닥 도망가려고 몸을 돌리려는데 그가 느닷없이 방망이를 놓고 허리를 구부려서는 두 손으로 내 뒷 덜미를 덥석 잡아 쥐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뒤 이어 아버지가 말한 대로 도깨비는 만나면 씨름부터 먼저 해보고 제가 이기 면 사람을 해치고 제가 지면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한다던 말을 언뜻 뇌리에 떠올렸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갑자기 한 가닥 힘이 솟구쳤다 나는 겁도 없이 그 어마어마하게 큰 도깨비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두 손바닥에다 침을 탁탁 내뱉고는 해보자는 듯이 마주 껴안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순간 그러니까 도깨비를 마주 딱 껴안는 순간 도깨비와 씨름 을 할 때 오른쪽으로 메어쳐야 하는지 왼쪽으로 메어쳐야 하 는지 그것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조그만 놈이 소등판의 가분지처럼 붙어서는 눈만 멀뚱거렸 다 이 일을 어떡하나 배지기를 만약에 잘못 들어가면 내가 넘어질 텐데 어떻게 단숨에 이놈을 거꾸러 뜨리나 참으로 환 장할 일이었다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어 준 숙제 속의 문제나 시험칠 때 이것일까 저것일까 생각이 안 나 안달할 때처럼 나는 안타까워 미칠 지경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숨만 시큰거리고 있는데 도깨비 가 냄새나는 입을 열어서는 한 순간 천둥 같은 소리를 내질렀 다 어서 날 싱러뜨려 봐 이놈아 네놈이 불쌍해서 먼저 기회를 는 것이니께 나는 그만 눈을 꽉 감아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만큼 머 리가 둔한 나자신이 미워진 적이 없었다 그러자 불현듯 학교 에서 성적이 좋지 않은 나를 두고 어머니가 머리를 쥐어박거 나 눈을 흘기며 언제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어이구 저게 누굴 닮아 저리 대갈빡이 둔하다냐그래도 지 애비는 신셀 조지긴 했어두 한때는 신동 소릴 들었다는데 자 식도 애비 운이 가면 같이 가는 것인지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힘 없고 실없기만 한 아버지를 떠올 리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나는 내가 필시 어머니보다는 아버지 를 닮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 지경을 당하고 보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나면서 그렇게 볼품없고 실없기만 한 아버지가 개선장군처럼 늠름하 고 자랑스러워지는 것이었다 왜냐면 아버지는 분명히 나와는 다르게 이놈의 도깨비를 왼쪽으로 메어쳐야 할지 오른쪽으로 메어쳐야 할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해냈기에 요술쟁이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그토록 내가 믿던 어머니를 의심해본 적은 그때기 처음이었다 언제나 어머니는 내게 전부였고 신과 같은 존재 였다 나를 낳아주었고 허릿골이 빠지도록 남의 집 놉을 돌아 먹여 살렸기 때문이었다 감자가 먹고 싶다면 어머니의 손에 선 감자가 일어났고 떡이 먹고 싶다면 어머니의 손에서는 개 비지떡이나마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어머니가 날더 러 내 영리하지 못한 머리가 아버지 때문이라고 해도 응당 그 러려니 했는데 그런데 그 순간만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생각 이 뇌리를 스쳐갔다 지금 이 순간에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그것조차 기억해내지 못하는 내 모자란 머리는 바로 아버지를 닮았던 게 아니라 어 쩌면 어머니를 닮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의 그 근본적인 회 의는 나의 하찮음에서 오는 아버지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되살아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때만큼 내 자신 이 비소하고 하찮아져 본 적도 없었다 어쨌든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그리 고 그 순간에 나는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그렇게 쉬임 없이 결 정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 런 예감에 사로잡히자 뒤 이어 어린 소견에서나마 근본적으로 돌아가 왼쪽과 오른쪽이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하기 시 작했다 나는 우선 왼손잡이가 아니라 오른손잡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내었고 그떻다면 응당 오른쪽으로 그를 떼어쳐야 한다 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운동시간에 옆자리 소민이를 오른쪽으 로 메어친 적이 있었고 우리 반에서 제일 힘이 세다는 서팔떼 기도 오른손 팔씨름으로 코를 납작하게 해준 기억이 났다 생각이 거기까지 마치자 나는 서슴없이 이를 악물고 오른쪽 배지기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오른쪽 발 이 그의 사타구니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그 큰 거구가 기우뚱 할 줄 알았는데 기울기는커녕 꿈쩍도 않고 바로 내 머리 위에 서 정녕 가소롭다는 듯이 쿡쿡 옷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얼른 오른발을 빼냈다 그러나 이미 때 는 늦어 있었다 그의 커다란 몸뚱이가 한 번 비틀리는가 했더 니 어느 새 나는 그의 발 밑으로 종잇장처럼 나풀거리며 떨어 져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왔다 허지만 나는 얼른 눈을 떴다 그 러자 내동댕이쳐진 육신의 통증보다도 더 아프게 찔러오는 붉 디붉은 눈길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놈아 니가 졌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겁먹은 얼굴로 눈만 껌벅거리며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가 나를 잠시 내려다 보는 것 같더니 나를 한 손으로 팔랑개비처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 뜨고 이떻게 또 소릴 쳤다 이놈네놈 이름이 안동이렷다 나는 겁이 나 입도 열 수가 없었다 겨우 눈만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는 그런 나를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입술을 비틀 어꾹 한 번 씹고는 눈을 한 번 꿈쩍 감았다 떴다 역시 동이라는 놈이 맞구만그래 씨름에 졌으면 네놈이 어 떤 벌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알고 있으렷다 나는 겁이 나 눈만 멀뚱거렸다 그런 내가 우스운지 도깨비 는 입꼬리를 비틀어 한 번 웃었다 그래도 네놈이 알긴 아는 모양이로구만 졌으면 마땅히 벌 을 받아야제암 받아야 허구 말구 안동이 이놈 네놈에게 어떤 벌을 줄까나네놈 아버지에게 한 번 져서는 내가 받은 벌을 니놈에게 대신 줄꺼나 아 아니지 그렇게 되 면 내가 니가 되는 것이거든 그렇지 내가 니가 되고 니가 내 가 될 수는 없는 것이지 그럼 어떡헌다 하야 그떻구나니놈의 입을 막아야 되겠구 먼 니놈와 입을 막아야 내가 살 수 있으니께 안동이 이놈 네에 나는 그가 부르는 소리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 답했다 내가 니놈의 혼을 빼 죽이고 싶으나 니 애비가 알면 날 잡 아 죽이려 할 것이므로 너를 죽이지는 않겠다 그 대신 나와 한 가지만 약조를 하자 다름이 아니라 니 아버지를 요술쟁이로 만들어준 것이 나 라는 걸 남에게 가르쳐 주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니라 만약에 니 애비가 횐 염소를 검은 염소로 만들어 버린다거나 그것이 내가 한 짓이라고 네놈이 힌 마디라도 입을 벌린다면 네 애비 는 마찬가지고 나 역시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을 테니 말 이다그러니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찌 그 순간에 아무리 꿈 속이라 고 하지만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목숨이 살 고 아버지 목숨이 살고 아버지를 요술쟁이로 만들어준 고마운 도깨비가 산다는데 몸을 뒤척이다가 눈을 떴을 땐 달은 이미 메두봉 봉우리 위 로 완전히 올라와 있었다 나는 방금 전에 꾼 이상스런 꿈자리 를 더듬어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꿈자리를 더듬다 보니 또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아버지는 언제 돌아왔는지 어 느 새 검은 염소를 끌고 움막을 나서고 있었다 학교에 간 나 는 여전히 미칠 지경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요술쟁이다 요술 쟁이다 하는 말이 입에 도는데 도캐비의 부릅뜬 얼굴이 생각 나고 아버지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욱더 나를 미치게 하는 게 있었다 그것은 어린 소견에서도 왜 도깨 비가 왼쪽으로는 넘어가는데 어째서 오른쪽으로 넘어가지는 않느냐는 것이었다 왼쪽은 무엇이고 오른쪽은 무엇인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러니까 그 꿈을 꾼 뒤 아버지가 도 깨비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 흰 염소를 검은 염소로 변하게 하 는지 그걸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아마도 그 꿈이 너무나도 엄청난 공포였던 모양이다 하루는 문득 학 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또 그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래 도깨비는 남에게 그 말을 하지 말라고만 했지 아버지 가 요술부리는 걸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잖아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그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처럼 그러니까 그 도깨비 꿈을 꿀 때처럼 겁 없이 아버 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기다리면서 나는 오늘만은 절대로 그날처럼 졸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역시 아버지는 내 마음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날도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눈썹처럼 남아버린 초 승달을 쳐다보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이상한 아 이였다 잠을 자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맹세했으면서도 그만 풀밭에 응크리고 잠이 들어버렸던 것이다 밤기운이 차긴 했지만 그날처럼 분명히 꿈은 없었다 그렇 게 얼마나 잤는지 몰랐다 눈을 떴을 땐 보름달이 아니라 초승 달이 움막 밖으로 걸렸고 나는 어느 새 움막 안에 뉘어져 있었 시도 다 나는 이게 어찌된 일일까 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였다 거적 저쪽에서 한 줄기 멎이 비쳐나는 걸 보았다 뒤 이 어 갑자기 염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퍼뜩 겁이 나면서 도 내가 자는 동안에 아버지가 염소들을 몰고 돌아왔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먹으로 눈을 쓸며 일어나 불멎이 새어나는 곳을 향 해 무릎 걸음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불빛은 확실 하게 비쳐나오고 있었다 나는 문 대신 달아놓은 거적 요으로 다가가 아부지 하고 부르며 거적을 들치려다 말고 멈칫했다 떠릿속으로 번개처럼 달려나오는 한가닥 기운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기운은 분명히 내가 졸지 말자고 다짐하며 아버지를 기다렸던 그 이 유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래 아부지는 어쩌면 지금 염소들을 검은 염소로 만들고 있을른지도 몰라 그래 그걸 볼 수 있을른지도 몰라 나는 이윽고 거적을 약간 들치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염소 가 보였다 그 염소들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분명히 아버지였 다 아버지는 마침 물통처럼 생긴 양푼을 들고 있었는데 뒤로 돌아서서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들고 있던 물통을 발 아래로 내려놓고 그 곁의 다른 물통을 들어올려 그 속에 든 것을 발 밑의 물통에다 옮겨 담았다 가만히 보니 그것은 검은 물이었다 얼른 보아 검은 물감 같았지만 잘 구별되지는 않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물통으로 옮겨지는 그 검은 액체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저게 무엇일까저 검은 물은 아버지가 물통을 내려 놓더니 내 쪽으로 돌아섰다 나는 무 심코 아버지의 얼굴로 시선을 주었다 그때 마침 아버지도 눈 길을 들고 있었는데 내 눈이 아버지의 눈에 딱 멈추는 순간 나 는 그만 숨을 훅 들어마시며 거적 밖으로 후딱 눈을 거두어 버 리고 말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언젠가 검은 염소를 몰고 가다 가 나를 쳐다보던 그 얼굴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아버지의 얼 굴은 분명 그때의 그 얼굴이었다 언제나 흐리멍텅한 아버지 의 눈가에는 시퍼런 정기가 솟아나고 있었고 입술은 한 일자 로 꽉 다물어졌는데 이맛살은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홀렀는지 몰랐다 불빛이 흘러나오는 틈새로 눈을 줄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관에서 날카로운 염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계속해서 날카로운 염소 울음소리가 거적 밖으 로 흘러나왔다 나는 흘린 듯이 불빛이 새어나오는 거적 틈새 로 눈을 가져갔다 아버지는 마침 이쪽으로부터 비스듬히 서 있었다 손에는 괜일인지 커다란 붓이 하나 들려 있었다 아버 지는 그 붓을 바닥에 놓여 있는 물통 속으로 쑥 집어넣었다가 는 염소의 등어리 쪽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이게 괜일인가 그 붓이 닿는 염소의 꼴을 보았더니 횐 염소는 이미 그 머리 반쪽 이 횐 염소가 아니었다 분명히 좀전에 눈을 줄 때는 머리 반 쪽이 시커먼 염소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행여나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손에 든 붓이 염소의 귀 밑 을 스치는 순간 나는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어떻게 횐 염소를 검은 염소로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물론 거기에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요술방망이를 든 도깨비는 없었다 아버지 는 흔자였고 그는 분명히 혼자서 넓적하게 큰 붓을 들고 검은 염소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만들어간다는 것보다 물들여 간다고 해야 옳을 것이었다 아버지는 염소가 버둥거리며 빠 져나가려 하자 양 다리 사이에 염소를 걸터 앉듯이 끼우고 봇 을 놀렸는데 나는 그만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그 자리에 무너 지고 말았다 어린 나의 가슴에서 빠져나가서는 안 되는 그 무 엇이 실실히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어쩔 수가 없었던 것 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날 밤 꿈을 꾸었다아버지의 행동을 거 적 틈새로 반복해서 흄쳐 보다가 그만 잠이 들었던 것이다 눈 을 감자마자 꿈이 시작되었는데 바로 거적 너떠의 세계가 보 이고 아버지는 여전히 염소의 몸뚱이 위로 붓길을 놀려가고 있었다 그가 말하던 도깨비란 따로 있었던 게 아니었다 도깨 비는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분명한 도깨비였다 커다란 방망이를 든 도깨비가 아니라 커다란 붓을 든 도깨비였다 아 버지의 손에 든 붓 끝이 가는 곳마다 횐 터럭은 한 올 한 올 검 은 빛깔로 되살아나고 염소는 가끔씩 머리를 흔들거나 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붓을 입에 물고 한 손으로 다둑거리며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는데 아마 그것은 염소를 향해 달래는 말 같았다 어쩌면 도깨비가 그에게 가르쳐 준 주 문일지도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자 역시 염소는 모두가 검은 염소가 되어 있 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참으로 모를 건 어른들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버지를 모를 것 같았 고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뒤로 하고 새벽 일찍 염소를 끌고 동구 밖으로 사라져갔다 계속해서 아버지의 그런 짓은 이어졌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은 맞는 것이었다 쌔가 입을 열지 않았는데도 도깨비가 화가 났던지 아버지의 요술은 하루 아침에 그 힘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인가 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접은 텅 빈 채였고 동리는 술렁거리고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인가 하고 옆집으로 달려가자 이미 아버지에 대한 소문은 짜아하게 퍼져 있었다 야 봐라지 애비가 지서에 잡척간 줄도 모르는 갑네 와요울 아부지가 와 지서엘 잡히가요 나는 움막 안에서 횐 염소를 검은 염소로 만들어가던 아버 지를 떠올리며 그떻게 물었다 그러자 영칠이란 사람이 필필 옷었다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 카더이 참 기가 맥히서 약간 히딱 해부린 줄 알았더이 사기까지 칠 줄 누가 알았겠노 와요아저씨 뭔데 그라요 이놈아아 니 애비가 사기를 겼다 안 카나 뭐라요울아버지가 사기를 쳐요 허 자슥그 애비에 그 아들이락 카드마 저것도 지 애비 편 드는 갑네 나중에야 안 것이었지만 아버지가 사기를 쳤던 것만은 사실 이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그때 투전에서 날려버린 집문서를 찾기 위해 그런 짓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남을 속인 것 은 사실이었다 그 당시 아버지에 관한 신문기사만 보더라도 아버지가 어떤 식의 사기를 쳤다는 건 극명하게 밝혀지고 있으니 말이다 25일 이수 경찰서는 이수군 이수면 이수리 I 78에 사는 안 영섭 씨를 특수사기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안씨는 지난 달 2일부터 검은 염소가 횐 염소보다 약용으로 갑절이나 비싸게 팔린다는 데 착안 모두 스무 차 례에 걸쳐 백오십 마리의 횐 염소를 사다가 검은 염소로 변 조 시중에 팔아 와 흑자를 냈다는 것이다 경찰은 안씨의 움막에서 횐 염소를 검은 염소로 변조하기 위해 사용해온 페인트통을 잿무덤 속에서 찾아내는 한편 그 증거로 이미 검은 염소로 물들여 놓은 염소 열 마리를 증거물로 확보했 다 이는 검은 염소라고 사간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흰 털이 돋아나는 바람에 놀라 신고함으로써 사건화됐는데 횐 염소가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검은 염소로 둔갑할 수 있 었는지 피해자들을 감탄 분노케하고 있다 내가 훌쩍거리며 지서로 달려갔을 때 그건 사실이었다 웅 성거리는 사람들 속에 이미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 저곳에 증거물로 확보되어 있는 검은 염소들 물론 그것 은 아버지의 사기극에 걸린 사람들이 증거물로 제시한 것이었 지만 그 염소들의 몸뚱이에서는 검은 털을 헤치고 흰 털이 돋 아나고 있었다 나는 북대 끝에 서서 멍하니 산 아래를 내려다 보 았다 언젠가 내가 맞았던 침묵은 이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어느 사이엔가 조각조각 부서져서 분열되 어 버린 것처럼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어쩐 일일까 아니 그보다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분열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가 무엇 하나 분열되어 보이지 않은 게 없으니 저 산 저 봉우리 저 잎새 저 나무 그림자 저 횐 구름 저 백설 저 능선 그럴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의 모든 것은 내 분열된 주관이 보아내는 상정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었다 그떻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까지 막연히 그럴 것이 다 하고 생각해왔던 게 아니라 실제로 모든 것은 그럴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뇌처럼 쌓여온 식識 경계를 대하여 인식하는 마음의 작용 에 의하여 나는 저것이 붉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파랗다고 생 각하고 있었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의 모습은 식에 의하 여 셰워지는 임시 있음의 영역을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것 나무다 백설이다 공기다 바람이다 풀잎이다 잎새다 붉다 푸르다 검다 그렇게 보아내는 모든 것은 결국 내 의식의 파 편이요 주관적이었던 것 저것이 없다면 저것에 의하여 세워 지는 가설의 근거도 없을 것이 아닌가 하기사 영원히 존재하 는 것이 어디 있을 것이며 내 마음 바깥에 세워지는 영원한 것 이 어디 있을 것인가 세상은 실재하고 있었지만 모든 것은 식 의 장난이며 그 식 위에 세워진 실재라고 집착하고 있음이 아 니고 무엇이던가 존재는 존재하지 않고 형상만 존재한다는 이치가 여기에 있 고 아직도 나는 여러 조건에 의하여 생겨나는 식인 의타기성 依他起性에 젖어 있기에 나란 나까지도 나를 집착하는 것이 라면 진여를 보지 못한 이상 의타기성의 세계는 먼 세계의 그 림자일 뿐 나도 있고 법도 있다는 애착이 존재하는 이상 세계 는 모두 허상이라는 후득지後得智인 것이다그렇기에 나 밖 의 모든 것은 나와 분리된 세계였고 그랬기에 의도적으로 분 리된 세상의 바깥과 나의 안쪽은 대상화된 안이요 바깥이었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최종적으로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저 모 든 현상이 허상이라면 이제 더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세계 가 모두 헛것인데 그 헛된 것 속에서 내가 존재하면 무엇할 것 인가 나 역시 헛된 것을 그러나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 참 구해 왔던 것이다 저러한 대상을 쪼개어보지 않고는 그 대상 을 모를 수밖에 없기에 헛것이라면 헛것을 쪼개어 봐야 헛것 의 세계를 알 수 있겠기에 그래야 안과 밖의 집착을 떠나 세 계는 나의 생명이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에 그렇 기에 오로지 그때 진실한 전체로서의 생명이 생겨나는 것이라 고 믿고 있었기에 그것은 바로 오늘날까지 내가 얻어내려던 해답이 아니볐던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 해답을 얻어낼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 지 해온 질문이었고 구해온 것이지만 어떻게 그 결론에 도달 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대상과의 일체성 속으로 나를 녹여 들어가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나를 따로 두고서야 결코 나라 는 생각으로부터의 해방은 맞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언젠가 문득 경험한 그 침묵만이 그러한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알 고 있다대컵이 없는 침묵 적정寂靜의 침묵 하나가 둘 이 되고 둘이 하나가 되는 세계 무념무상의 세계 그런데 왜 그 침묵은 이렇게 조각나가고 있는가 왜 무엇 때문에 결국 언젠가 내가 보았던 그때의 나의 침묵 그것조차 도 헛것이었단 말인가 한 순간 칼을 높이 들고 명증의 팔을 내려치던 방장의 얼굴 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터진 입술 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기야 나는 아직도 범부이고 범부인 이상 차별과 대럽 속 에 서 있을지니 판단의 척도 또한 중생심 속에 서 있을지니 그러나 본질이 유영할 적정의 침묵 그 끝은 어디인가 아버지가 감옥살이 생활을 하다 돌아온 것은 그로 부터 꼭 일 년 뒤였다 그때쯤엔 그가 물들였던 검은 염소들은 다시 본래의 흰 염소로 제모습을 찾았는데 그는 돌아오자마자 말없이 그놈들만 쳐다보았다 생활이야 언제나 어머니에 의해 꾸려지고 있었지만 그는 무 슨 생각에서인지 밤이나 낮이나 이제는 집으로 이끌려와 내 차지가 되어버린 염소들을 눈이 부시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 다 아버지는 감옥소로 가기 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렇게도 말이 많던 그는 영 말이 없어졌고 낮이 되면 염소를 끌고 산으 로 오르거나 밤이 되면 말없이 방으로 돌아와 눈을 붙일 뿐이 었다 집안 식구들은 아버지의 변해버린 모습에 눈치나 살피는 쉿 이 고작이었지만 그 누구도 아버지의 심정을 눈꼽만치라도 헤 아릴 순 없었다 그는 그렇게 몇 년을 무위도식하며 염소들하고만 살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지 꼭 삼 년째 되던 날 그 염소들을 끌 고 홀연히 집을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엔 아버지가 그저 이웃 마을에라도 간 거라고 생각했었 다 그러나 그 동안에 염소를 끌고 산에 오른 것 밖에는 출타 가 없었고 또 그가 갈 만한 곳도 없었다 전쟁땐 천하없는 빨 갱이요 전쟁이 끝난 뒤에는 천하없는 사기꾼이 되어버린 아 버지를 누구 하나 친절하게 대해줄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이틀이 지나고 사홀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록 아버지가 나 타나지 않자 할머니와 어머니는 안절부절이었다 들녘이며 산 이며 그가 염소를 끌고 사라질 만한 곳은 아무리 찾아다녀도 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지 찾을 길이 없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아버지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고 어머니 는 발을 구르며 가랑잎만 굴러도 사럽 밖을 기웃거렸다 아버 지의 소지품을 뒤져보다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이상한 종잇 장이라도 나오면 할머니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는 어머니 를 돌아보았다 야 봐라이기 뭐꼬 곁에 있던 어머니가 종이 쪽지로 눈길을 돌리다가 이상하다 는 듯 눈을 크게 떴고 이내 할머니는 그런 어머니를 향해 고함 을 내질렀다 이거 혹시 애비가 쓴 유서 아이가 유서 설마 하면서도 어머니는 화들짝 놀랐다 모를 일이제하도 세상이 뒤숭숭해서 마 모진 마음 묵어부 릿슬지도 그라믄 어머니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안 되겠다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안 되겠다 건너 마을 유선상에게라도 갔다와야것다 이기 유서가 J이락 해도 필시 무신 곡절인지 알지도 모르이 건너 마을 유선생이라면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가까이 지내던 아주 학식이 높은 분이었다 그러나 그를 찾아가 확인해보면 모두가 쓰잘데 없는 것들이 었다 내가 형의 노트를 발견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처음엔 형이 보던 책나부랭이들과 섞여 있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더랬 는데 어머니가 아버지의 소지품을 뒤지느라 이곳 저곳 들쑤시 는 바람에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걸 내가 무심코 주워든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갈피를 넘기기가 무섭게 그가 내뱉은 피가 엉겨 있었고 그 것이 나는 섬뜩했지만 그냥 던져버릴 수 없는 묘한 이끌림에 그가 쓴 것들을 띄엄띄엄 읽어 보았다 읽어보긴 하였지만 그 때 내가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 만 어린 마음에서나마 뭔기 버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고 또 그렇기에 나중 어머니가 죽고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난 뒤 절로 오르면서도 그것은 내 수중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내용은 새삼스럽다 먼저 고향을 생각하면 동굴이 떠오른다 동굴 거대한 동 괼 그렇기에 언제나 나는 그 거대한 동굴 앞에서 서성거린 다 도대체 이 어두운 동굴 속에는 무엇이 있는 것이냐 내 어린 날 옆집 순돌이가 말하던 부엉이의 황금 깃털과 그가 물어다 놓았을 금은보화가 있는 것이냐 아니면 박쥐만이 날고 음습한 적수가 흐르며 낙수가 떨어지는 깊이도 알 수 없는 함정처럼 깊은 못이 있는 것이냐 용이 되지 못한 시퍼 런 이무기가 살고 있는 오로지 용이 되기 위하여 비상하기 위하여 천 년 세월을 침묵하는 열려 있음과 닫혀 있음의 차이 과거로부터의 구속과 미 래의 자유 그래 정녕 미래의 자유가 내게 있을 수 있는 것 일까 오늘도 가시철망은 내 영혼의 끝자락까지 찢어놓는데 안과 밖 밖과 안의 차이는 이제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벽 은 자꾸만 높아간다 벽을 허물다 보면 그 무엇도 나를 기다 리진 않는데 나는 역시 벽 이쪽에 있을 뿐인데 아아 내가 그들에게 선택되었던 것처럼 그 어떤 불가사의한 힘에 의하여 다시 선택되어질 수 없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과거를 되돌아 본다 과거는 언제나 고단하 고 슬프지만 그러나 그것만이 나를 일깨울 수 있을 것 같기 에 그러나 이 삭막한 현실 속에서 과거는 너무나 멀다 내 마음 속의 첫 음절이 입 밖의 세계를 잊어버린 것처럼 과거 도 그렇게 멀게 잊척져 있다 나는 도대체 어디서 왔으며 어 디로 가는 것일까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내게 있어서의 진실은 영혼 이상의 것이다 진실은 눈앞인데 나는 어린 영혼을 팔 수가 없었다 진실을 가르칠 수도 없었고 거짓의 줄을 놓을 수도 없었다 진실과 거짓은 동전의 양면성과 같은 것 나의 시점 은 어디인가 거짓인가 진실인가 그것을 내 속에서 하나로 뭉뚱그릴 수 있는 화해인가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침묵이 가리키는 최고의 경지라면 결국 내가 닿아야 할 세계는 거 기란 말인가 아아 이 진실의 허망함이여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아니 오늘의 나 를 계속해서 쓸 수 있는 시간만이라도 허용된다면 이제 가 슴은 썩어날 대로 썩어났고 한 줄의 글도 계속할 만한 힘이 내게는 없다 아아 왜 이리도 목은 뜨겁고 내뱉는 피는 붉 은 것이냐 꼭 아침이슬 머금은 백일흥 꽃잎 같구나 사실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소설을 쓸 수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짓거리였을 뿐 왜 냐면 내게는 우선 안과 밖의 세계 그 세계의 실상이 문제였 다 그 실상을 어떤 시점에서 접근할 수 있느냐 어떻게 이 세계를 자기 나름대로 정립하느냐 하는 자기식의 대답이 내 게는 문제라면 문제였던 것이다 내게 있어서의 진실과 거 짓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었다 그것은 하나로 뭉뚱그려져 나로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결코 거짓을 보여줄 수도 없었 고 그렇다고 진실을 보여줄 수도 없었다 진실을 가리킬 수 도 없었고 거짓을 손가락질할 수도 없었다 이 진퇴양난의 딜레마 속에서 내가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침묵뿐이 었다 해답은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오로지 그 해답을 풀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었을 뿐이었다 이것은 곧 수좌 가 화두를 얻어 죽는 순간까지 그 해답을 얻지 못해 침묵하 는 것과 같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리고 그 해답을 알 았을 땐 그 침묵이 곧 해답이었음을 아는 이치와 같다는 것 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문자를 세우지 않고 있 었던 것이다 문자를 세울 때 이미 진리는 도망가 버린다는 것을 침묵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사들은 법을 묻는 자에게 선문답을 제시하고 있 었다 법이 무엇입니까 변소간의 똥작대기 말하자면 진리 를 감추고 그 뒤의 거짓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안 과 밖이 철저하게 쇠통으로 채워져 있었기에 그 침묵에 다 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 가 비로소 이 지긋지긋한 침묵을 사랑할 수가 있을지니 그 리고 이제야 비로소 쓸 수 있을 것 같으니 이야기가 아닌 나의 진실을 진실한 나의 내면 풍경을 용서하여라 나에 의해 재단된 내 속의 인생들이여 어차 인생은 소설 같은 것 언젠가는 그대들도 이해할 날이 있 을 것을 진실과 거짓 그것의 양면성 내게는 언제나 그것이 문제였을 뿐이었던 것을 그것이 내가 보아내야 하는 이 세 계의 관점이었던 것을 그럴 때 거짓과 진실은 내 속에서 진 실로 화해로워져 전지자적인 시점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을 그리고 그것이 내 속에서 전지자적인 속성을 낳는 선사 들의 선문답의 본질과 다름 아니었던 것을 형이 남긴 노트의 글은 여기서 끝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었다 그떻지만 아버지는 형이 남 긴 그 노트를 어쩌면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무튼 염소 사건에 연루되었다 돌아와 집을 나간 아버지는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한숨은 깊어만 가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 다 평소 할머니가 다니던 절의 스님이 어디를 갔다 오는 길에 집엘 들렀는데 그가 아버지의 소식을 가져왔다 그것을 소식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소식은 소식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리로부터 육칠십 리 떨어진 골 깊은 영지골에는 영천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스님 말로는 그곳에서 아버지를 봤다는 것이었다 아니 정말 내 아들이 거기 있드란 말이요 예이 소승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이다 아이구 살아 있었구나 할머니가 그 스님을 잡고 털퍼덕 주저앉았고 이번엔 어머니 가 스님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정녕 그 양반을 거그서 봤능교 예그렇다니까요 아니 그 오살한 양반이 와 거 있단 말이요 그야 전들 알겠습니까보아하니 머리 깎은 것 같진 않고 횐 염소 두어 마릴 손에 끌고 있었는데 염소 예 염소요저 양반이 집을 나갔다더니 웬 염솔 끌고 여기 에 있나 하면서 다가갔더니 그 양반이 처음엔 날 알아보질 못 해요 내가 누구라고 밝히고 나서야 날 알아보고는 웃었는데 어쩐 일이냐고 했더니 뭐 끌고 있는 염소를 팔랴 왔다나요 염소를 팔아 네 소승도 그래 이상해서 아니 염소를 팔려면 장엘 갈 일 이지 여긴 웬 일이냐고 했더니 다시 씩 웃기만 하더구먼요 아이고 이내 할머니의 곡성이 터져나왔다 그것이그것이 또 미친 병이 도져부린 모양이구나 이번엔 어머니가 털퍼덕 봉당에 퍼지고 앉아버렸다 그리곤 원망 비슷하게 실성한 사람처곱 스님을 향해 말을 건냈다 그래 그 양반을 그냥 놔두고 왔단 말이요 스님은 잠시 대답하기가 거북한 듯 쭈뻣거리다가 아 예 원체 제 일이 바빠놔서요 보아하니 내가 가잔다고 따라나설 사람 같지도 않고 아마 그 염소들을 끌고 이 절 저 말로는 그곳에서 아버지를 봤다는 것이었다 아니 정말 내 아들이 거기 있드란 말이요 예이 소승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이다 아이구 살아 있었구나 할머니가 그 스님을 잡고 털퍼덕 주저앉았고 이번엔 어머니 가 스님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정녕 그 양반을 거그서 봤능교 예그렇다니까요 아니 그 오살한 양반이 와 거 있단 말이요 그야 전들 알겠습니까보아하니 머리 깎은 것 같진 않고 횐 염소 두어 마릴 손에 끌고 있었는데 염소 예 염소요저 양반이 집을 나갔다더니 웬 염솔 끌고 여기 에 있나 하면서 다가갔더니 그 양반이 처음엔 날 알아보질 못 해요 내가 누구라고 밝히고 나서야 날 알아보고는 웃었는데 어쩐 일이냐고 했더니 뭐 끌고 있는 염소를 팔러 왔다나요 염소를 팔아 네소승도 그래 이상해서 아니 염소를 팔려면 장엘 갈 일 이지 여긴 웬 일이냐고 했더니 다시 씩 웃기만 하더구먼요 아이고 이내 할머니의 곡성이 터져나왔다 그것이그것이 또 미친 병이 도져부린 모양이구나 이번엔 어머니가 털퍼덕 봉당에 퍼지고 앉아버렸다 그리곤 원망 비슷하게 실성한 사람처럼 스님을 향해 말을 건냈다 그래 그 양반을 그냥 놔두고 왔단 말이요 스님은 잠시 대답하기가 거북한 듯 쭈뻣거리다가 아 예 원체 제 일이 바빠놔서요 보아하니 내가 가잔다고 따라나설 사람 같지도 않고 아마 그 염소들을 끌고 이 절 저 절 많이 돌아다녔던 모양입디다 아니 왜 그 양반이 하필이면 염생이를 팔러 절로 다닌단 말이요 글쎄요 스님은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미치지 않았으면 그러겠 냐는 듯 그럼 하고 합장을 하며 돌아섰다 그 길로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있다는 곳 으로 내달았다 할머니는 처음엔 따라나서는 어머니를 향해 아이다 니는 집에 있그라동이를 데리고 갔다 올테이 했었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고 셋은 스님이 일러준 대로 집 을 나섰다 종종걸음을 치는 할머니의 걸음걸이는 어린 내가 보아도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종일을 걷다시피 하여 세 사람이 스님이 일러준 절의 일주 문을 들어섰을 땐 침계루의 대종이 울고 있었다 일주문을 지 나 경내로 쭈뻣거리며 들어서자 요사채로 지어진 한 낡은 목 채에서 책을 읽던 스님 한 분이 우리를 맞았다 어인 일이십니까 할머니가 합장을 하는지 마는지 하고는 아버지부터 찾았다 이 앞전에 말이요혹시 염생일 팔러 들린 사람 하날 보지 못했소누군가 여기서 봤닥컷는디 스님은 잠시 무슨 말이냐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중늙은이 하나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뒤 를 돌아보았다 그는 우리들을 돌아보며 무슨 생각인가에 잠 겼다가 저 보살님 하고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가 구세주나 만난 듯 그 스님을 향해 돌아섰다 지금 염소를 끌고 다닌다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습니까 야 그러요 그 사람 찾소그 사람을 봤소 그럼 그푼의 모친 되시는 모양이시구만요 그라요 내가 그 어미요 야는 내 며느리고 그래 어딧 소 어딧는 기요 지금 그분은 여기 안 계실 갭니다 없다니 무신 소리요 아무튼 이리 오시지요 큰스님을 만나게 해드릴 테니 큰시님 하면서 할머니가 그의 말을 되뇌었다 어머니는 이 미 앞장을 서고 있었다 백합이 하얗게 피어난 햇살 앉은 뜰을 지나 몇 개의 모퉁이를 지나고 앞서가던 스님이 어느 방 앞에 서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끼 낀 계단이 보이고 그 위에 그리 크지 않은 방이 하나 보였는데 그 속에는 늙은 스님 세 분이 문을 열어놓고 았아 있었다 그들은 차를 들며 환담을 하고 있었던 듯 싶었다 우리를 인 도해간 스님이 걸음을 멈추고 합장을 하자 그 중 한 스님이 무 슨 일이냐는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큰스님 일전에 염소를 팔러 들렀던 처사의 가족 되시는 분 이 그분을 찾으러 이까지 왔습니다 그래 중앙에 앉았던 늙은 스님 한 분이 고개를 좀 빼고 이쪽을 내 려다 보았다 그는 잠시 우리를 내려다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 며 일어났다 그 바람에 두 스님이 따라 일어섰고 그 늙은 스 님은 이끼 킨 계단까지 걸어나오더니 우리들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했다 오신다고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우선 이리로 좀 드시지 요 너무도 친절하고 정중한 늙은 스님의 태도에 할머니는 우리 를 인도해준 스님을 잠시 쳐다보더니 이끼 킨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방 안에는 차 냄새와 향 냄새가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늙은 두 스님이나 우리를 이끌어 온 스님은 돌아간 듯 했고 노사는 우리들 앞에 단정히 앉아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염소를 팔러 오셨던 분을 이까지 찾아오셨다구요 예 시님 할머니가 스님의 눈치를 보며 얼른 대답하자 그는 다시 부 드럽게 미소 지었다 조금만 일찍 오셨을 것을 네에 그분은 이미 며칠 전에 떠났습니다 떠나요 할머니가 눈을 빛내며 되묻자 노승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다 떠났습니다 벌써 사흘이나 되었지요 횐 염소들을 끌고 와 서 하도 사달란다기에 염소를 팔려면 장엘 갈 일이지 절에 오 면 될 일이냐고 나무랐더니 그럼 그떻게 하겠다며 떠나갔습니 다 할머니가 난감한 듯이 고개를 떨구며 옷고름 끝으로 눈 밑 을 찍었다 어이구불쌍헌 것 노승이 그런 할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 다 시주님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갭니다 아마 염소를 팔 면 돌아가겠지요 아니 벌써 돌아가 있을지 모르지요 그럴 리 없다는 듯이 할머니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가가 돌아을 거면 진즉이 돌아왔지 그러고 다니것소 아마도 그 염소를 황금 염솔 만들려는 거겠지요 황금 염소 할머니가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되뇌었다 노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어째서 안에 있는 걸 밖에서 찾는 것인지 나지막이 혼잣말처럼 내뱉고는 눈을 감았다 할머니나 어머 니는 여전히 영문 모를 소리라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할머니나 어머니나 나나 그 영문 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 말의 느낌 속에서 어쩌 면 그는 아버지가 있는 곳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느낌일 뿐이었다 또 노사는 그 한 마디를 남긴 채 눈을 뜨지 않았다 뭔가 이상스럽고 심상찮은 기미를 감지하면서도 멈칫거리 며 방을 나와 집으로 돌아을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면서도 할 머니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야 그기 무신 말이고 황금 염소라이 그라고 안에 있는 걸 밖에서 찾는다이 그람 동이 아배가 그 절에 있다는 말 아이 가 글쎄요무신 말인지 거 혹시 알고 있으믄서도 그러는 기 아인지 모르것다 그러기 말입니더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유난스레 친철한 것도 그떻고 아 애비에 대해서 뭘 숨기는 것 같기도 허고 그러게 말이다 할머니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 는 역시 돌아와 있지 않았다 할머니나 어머니는 더욱더 절망 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이 화상이 도대체 어딜 돌아치기에 바람만 불어도 아들 소식인가 잠들지 못하던 할머니는 시름 시름 닳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런 할머니를 돌보면서도 틈 만 나면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눈치였다 일전에 갔던 절에도 두어 번 더 다녀오는 것 같았고 그런 날이면 망할 놈의 중놈이 이번에는 아예 만나주지도 않더라며 욕을 해대었다 언제는 만나주더니 이제는 만나주지도 않혀 요것들이 아 무래도 이상허단 말시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어쩔 수 없었던지 다시 다른 절을 뒤 지고 다니는 눈치였는데 그나마 나중엔 지쳐버렸는지 그 짓도 그만두더니 남의 집 놉을 돌기 시작했다 이왕 집을 나간 사림 은 나간 사람이고 먹고는 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서 였다 남의 집일이 없는 날이면 어머니는 산나물도 뜯고 나무짐도 해 날랐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버린 후로 자연히 학업을 그만 둬버린 나는 어머니가 산에 갈 때면 그녀를 따라 산으로 올라 그녀를 도왔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정녕 신의 장난이 아니었다면 또 하나의 시련이 우리들을 덮쳐을 줄은 정녕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그떻다 전생에 지은 어떤 죄업이 우리 가족에게 씌워진 것 이 아니라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지 꼭 두 해째 되는 날 나는 보고 말았던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을 그날은 아침부터 몹시 안개가 끼던 날이었다남의 집일이 었었던지 어머니는 시장에 내다 팔 나무를 하기 위해 사럽을 나서고 있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그녀 뒤를 따랐고 우리는 평 상시처럼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떼두봉 깊은 고개를 넘다 보면 명덕사란 절이 있었다 우리는 그 절이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나무를 했다 어느 만큼 나뭇단이 모이자 나는 개울로 내려갔고 어머니는 나를 향해 멀리 가지 말라고 일렀다 개울로 내려와 보니 뒤지는 돌마다 가재가 제법 많았다 나 는 그것을 잡을 욕심에 신발을 벗어 들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잡다보니 어머니가 어느 새 나뭇짐을 지고 내려와 물가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게 보였다 희멀겋게 드러난 다리를 물 속 에 넣고 저고리를 벗어부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때 어머니는 이 깊은 산 중에 누가 보는 사람이 있으랴 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가재잡기에 미쳐 자꾸만 개울 아래로 내려갔다 돌을 뒤질 때면 가끔씩 엄지만한 가재가 뒷걸음치다 내 날렵한 손 끝에 걸려 시커먼 고무신 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가재를 잡다 눈을 들었을 땐 어느 새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 물줄기가 쏟아져내리는 폭포 끝이고 해서 나는 다시 개울을 타고 올라왔다 어디서 장끼가 울며 날아 올랐다 이름 모를 산새가 목이 터지게 울어대었다 갑자기 가슴이 쿵 하고 울었는데 개울을 따라 올라왔을 땐 어머니는 이미 산 사 람이 아니었다 그렇다 내가 본 것은 어머니를 쓰러뜨리고 반석나절을 돌 아 너풀거리며 사라지던 승복자락과 맨머리뿐이었다 그러나 웬일이었을까 나중 사람들이 몰려왔을 땐 정작 그 너풀거리던 승복자락과 맨머리가 기억나지 않는 것은 어머니는 분명히 그 맨머리에 의해 옷이 찢겨진 것이었고 가슴과 아랫도리가 헤쳐진 것이었고 그리고는 바위에 뒷머리 를 부딪히고 피를 쏟았던 게 분명했는데 물가에 나자빠진 어 머니를 흔들다 말고 미친 듯이 뛰고 있었어도 동리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할머니가 미친 듯이 죽은 어머니를 흔들고 있었 어도 어머니를 해치고 돌아나가던 그 승복자락과 맨머리가 기 억나질 않는 것이었다 그 길로 어머니는 집으로 옮겨졌다 모닥불이 피워지고 사 흘을 넘기지 못하고 어머니는 가마니에 쌓여 뒷산 양지바른 곳에 묻혔다 나는 그때까지도 이상하게 그 너풀거리던 승복자락과 맨머 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어머니가 목욕하다 미끄러져 죽은 것인 줄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였다 어머니를 묻고 난 뒤 할머니는 다시 곧바로 자리에 누웠다 어머니로 인한 층격이 가중되어서인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 던 그녀는 어느 날 밤 울려울컥 피까지 토해내면서 어린 손자 를 향해 짓무른 눈가에 눈물꼬리를 매달았다 동이야 이놈아 이 불쌍한 것아 나 죽으믄 어떡허냐 어떡 해 아이구 할매 시상천지 니 하나 냉겨놓고 아이고 이 일을 어떡허누 나는 어느 새 울먹울먹 울음을 물었다 할머니는 근근히 손 을 뻗쳐 그 까슬한 손으로 내 눈 밑을 흠쳐주고 나서 이것아 이 불쌍한 것아그려 나 죽고 나믄 니 애빌 찾아봐 그 절 말이여 전에 우리가 한 번 찾아가본 그 스님말이여 그 스님에게 찾아가 봐 행여나 그 스님은 알고 있을지 모르니께 그려 그 양반은 알고 있을 끼여 할머니는 그 말을 끝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다급하게 할머니를 흔들었다 할매 할매 이내 할머니가 꺽 소리를 내며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번쩍 들더니 나를 잠시 치켜보다가 눈을 허옇게 까 뒤집으며 그대 로 베개 밑으로 얼굴을 처박았다 한 쪽으로 밀리는 검은 베갯 잇과 할머니의 흰 머리카락 나는 너무도 무서워 눈을 꽉 감았 다 떴다 할머니의 숨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여전 히 얼굴을 모로 처박은 채 눈을 뜨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보며 뒤늦게야 꼭꾹거리며 울음을 물었다 할머니마저 죽고 난 그 어둠의 나날들 나는 혼자였다 내가 불쌍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송장 냄새 나는 어머니나 할머니를 치운 사람들은 밥 한 덩이에도 인색했다 동리 사람들의 눈총과 구박이 심해질수록 나는 아 버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버지를 찾자 할머니의 말대로 그 스님은 알고 있을 지 모른다 열 세 살이었던 나는 그 길로 그 스님을 향해 발을 옮겨놓았 다 어린 내가 쭈뻣거리며 찾아들어가자 절간의 스님들은 큰 스님을 찾는 내가 이상하다는 눈빛이었지만 어머니가 나타나 면 만나주지 않던 큰스님은 어쩐 일인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를 만난 순간 나는 그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동안에 그렇게도 기억나지 않던 그 모습 바위 곁을 돌아나가던 잿빛 승복자락과 맨머리 그의 모습에 서 왜 그 모습을 보고 말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눈이 부신 채 그만 현기증을 느꼈고 그 사이에 노사의 음성은 들려오고 있 었다 어쩐 일인고또 네 애비를 찾으러 왔느냐 예 스님 할머니가 가보라고 해서 여기엔 네 애빈 없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할머니가 자꾸 가보라고 해서 허허 그놈그럼 니가 직접 한번 찾아 보려무나 그것이 시작이었다 분명히 나는 그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죽이고 달아나던 불신의 씨앗을 보고 있었지만 그러나 아버지 를 찾기 위해서는 저 불신의 씨앗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나 를 데워가고 있었다 그렇다 어쩌면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인지 몰랐다 나 는 아버지가 있는 곳을 숨기고 있는 그와 싸우기 시작했고 그 는 쉽사리 내게 아버지가 있는 곳을 가르쳐주지 않은 채 진실 을 숨기고만 있었다 진실을 숨기고 있는 것만큼이나 절 생활은 물론 수월한 것 이 아니었다 저잣거리에서 철없이 자라던 어린 나로서는 상 상할 수도 없었던 엄청난 세계가 거기 있었고 그런 만큼 무엇 하나 따뜻하고 수월한 게 없었던 것이다 그는 너무도 빈틈 없는 사람이었다 너무도 엄하고 추상같 았다 일말의 틈서리도 그에게는 있을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 나보면 언제나 그는 척추를 꼿꼿하게 세우고 선정에 들어 있 었다 불을 밝히고 그의 개정開定을 돕고 청소를 하고 그러면서 나는 절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잣거리 에서 철없이 자라던 내가 이제는 머리를 깎은 꼬마승이 되어 절간의 문턱을 닦는 시봉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도 나의 모습이 얼쩡없었다 나와 함께 학교 다니던 애들이 내 모습을 보면 뭐라 할까 아마도 한 순간 쟤가 왜 저리 됐느냐 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얼레꼴레 놀려댈 모습을 생각하면 괜시 리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생활을 버릴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있던 속가의 살림과 승가의 살림은 분명 히 달랐지만 아버지를 찾으려면 무조건 이겨내는 수밖에 없었 다 언제나 오욕칠정五欲七情이 용납되지 않았고 삼부족三不 足의 생활이 내 목을 짓누르고 있었다 해제날은 더욱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늘도 화두를 끌어 안았지만 잡다한 생각으로 공부는 뒷전 이었다 오늘날까지 믿어 의심치 않던 세계가 불쑥 회의의 그 늘 속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결행의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정녕 진리란 문득 깨쳐 버리는 것이 아니라 문득 깨쳐 계속해서 닦아나가야 하는 것 인지 무엇을 경작하려고 모를 일이다내게 들어온 정보를 통해 지해知解의 사다리 를 라았고 그리하여 문득 깨쳐 진리의 중심으로 나는 나아갈 수 있는가 검은 염소의 몸뚱이에서 일어나던 그 신외무물들 身外無物 진리란 그것이 그냥 바라보이는 것이었다면 바라본 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칼을 보고 있었으나 칼의 본 꼬습을 보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내 의식의 눈 멀었 음을 뜻하는 것이고 노사는 현실로 거기 있다 영원히 무너질 수 없는 암벽처럼 그와 나 사이에 엄청나게 벌어져 있는 공 간 그러나 그 공간 속을 나는 헤덤쳐 나아가야 한다 저 현실 적인 벽을 막연한 추상을 가지고 극복하려는 나의 의지가 한 없이 불안하고 두렵지만 그러나 나는 헤엄쳐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역시 나는 두렵다 오늘날까지 내가 배워온 알음알 이에 의하억 조종되는 내 자신이 두렵다 이러이러 해야 한다 는 그 생각에 의하억 조종되는 내가 두렵다 분명히 법의 모습 을 보인 방장 역시 그 생각에 의하여 조정되었다고 단언하면 서 그렇기에 이제는 내가 그를 쳐부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두렵다 나의 지각을 통하여 나의 감각을 통하여 나의 욕망을 통하여 나와의 접촉을 통하여 들어온 나의 인식은 현 재에 있고 내 지식의 동굴은 과거에 있다 물론 나의 칼질이 법을 보려는 단일한 움직임이 아닌 이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 동굴을 통해 일어난 행위는 관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 로지 1것은 기억의 반응일 뿐일 것이고 내가 저장해온 정보 화된 체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나의 이 결심이 그 폭발의 순간 단일한 움직임 직관 이 지배하는 판단이라 할지라도 그것 또한 생각의 움직임이며 생각은 곧바로 새로움과는 거리가 먼 과거의 움직임 그대로일 것이다 생각의 간섭 없이 생각의 움직이지 않음을 볼 수 있고 증명할 수 없는 이상 지금의 내게 있어 예정된 세계는 어쩌면 폭력에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폭력 뒤에 오는 쾌락 을 나는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폭력이 가져다주는 한 순간의 쾌락 그리고 그 쾌락을 반추하고자 하는 갈등의 고 통 그러나 희망은 있다그 허구를 칼질함으로써 그 허구 뒤에 숨어있는 진실의 모습을 어쩌면 나는 볼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모든 논쟁은 사라질 것이다 그 한순간 내가 완전한 주의력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칼 을 들 수만 있다면 거기에 시시비비나 분별은 있을 수 없을 것 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법의 세계를 알기 위해 노력해온 내 가 믿고 들어갈 수 있는 세계일 것이고 그때 비로소 나는 적멸 을 내것으로 할 수 있을 것이기에 오로지 거기에는 보현행원 의 원력만이 있을 것이었다 절로 온 지 두어 달째 대중이 목욕하고 머리를 깎 는 날을 택해 간단한 수계 의식이 있었다 승이 되기 위해 속 가에서 올라와 행자 생활을 거쳐 날을 택해 행하는 수계 의식 처럼 번잡스럽지는 않았다 팔뚝에 심지가 묻어지고 나는 대 답했다 능지 능지 지키겠습니다 지키겠습니다 지키겠습니다 살생하지 말라도적질 하지 말라음행하지 말라 그 자리에서 노사는 내게 목양牧羊 이란 법명을 주었고 이런 말 을 하였다 두어 달 동안 자기 곁에 두면서 근기를 살피고 재 어보던 그다운 말이었다 이제 절 생활이 몸에 좀 배었을 게다 그렇다 한시도 공부 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네놈이 찾아야 할 것은 네 아비가 아니라 바로 그 흰 염소이니라 아마도 그것은 이제 그 본성품 이 단단히 익어 황금 염소가 되었을 게다 세간에서 검게 물든 것들을 떨어내고 부지런히 근기를 닦고 열심히 본성을 보려고 할 때 황금 염소는 네 앞에 나타날 것이니라 쏟아졌다 애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나는 홴지 울음이 왈콰 과 호박꽃을 들고 달리던 강 언덕이 눈앞을 가렸고 염소를 끌 고 장으로 나서던 아버지가 눈앞을 가렸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눈앞을 가렸다 그런 아픔 속에서 세월은 흘러갔다 내 나이 열 일곱 살 절밥을 먹은 지도 벌써 수년이 흘러가 고 있었다 열여덟이 되던 해 나는 노사를 따라 해동제일의 명 산인 가야산 해인사로 옮겨 갔다 해인사는 지리적으로 경상남도와 경상북도가 서로 잇대어 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북으로는 성주와 고령 남으로 는 거창과 합천의 네 군 사이에 우뚝 솟아 경상도를 남북으로 가르며 충청 경상 전라의 삼도가 경계를 이루는 대덕산은 그 서쪽이었다 예로부터 해동의 십승지勝地로 꼽히던 그곳은 그 경치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승가의 수행정신이 오롯이 살 아 숨쉬는 천년가람이었다 의연히 솟아오른 가야산을 보고 있노라면 눈 푸른 납자들의 기상이 살아 숨쉬는 것 같았고 아름드리 잣나무는 그대로 변 함 없는 승가의 마음이었다 향화香火를 밝힌 지 일천 이백 년 동안 화엄의 근본도량으로서 팔만대장경이 모셔져 있고 일 주문으로부터 봉황문 해탈문 우화당 사운당 명월당 구굉 루 서전 수월문 삼소굴 궁현당 관음전 경학원 대적광전 선열당 명부전 영산전 삼성각 장경각 퇴설당 조사전 극락 전 그리고 선원이 주된 건물이었으며 그에 딸린 암자만 해도 12개나 되었다 이곳으로 와서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 권의 노트로 남아 III 버린 형과 하나가 되어 내 가슴 속에서 이상스런 형태로 자리 나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인지 확실하진 않았으나 그런 느낌이 들 때면 나는 일주문을 나서서 산으로 올랐다 해동제일의 명산이라 이르는 산에 오르면 철 따라 멎깔을 달리하는 나무들이 나를 맞았다 적송나무며 잣나무며 늘 푸 른 나무며 그들 사이를 헤치고 있노라면 금방 아버지가 웃음 을 입가에 물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의 장관 절 앞자락을 굽이쳐 도는 홍류동 계곡 거기엔 소슬바람 이 있었고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있었고 안갯발 속으로 희 미하게 사라지는 아버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흰 빛 정적으로 뒤덮힌 겨울산에서 내려와 소박한 건축양식 이 돋보이는 일주문을 들어서다 보면 조선시대의 시인 임석천 林E미 의 시가 우선 나를 맞았고 나는 그 시를 읽으며 돌아서 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일주문 앞에서 잠깐 쉬려니태양이 서발쯤 돋아 멎나네 배꽃은 산비가 내린 뒤에야횐 꽃잎 날려 땅에 가득하구나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리는 무상법보無上法寶가 모셔진 장 경각藏經閣엔 언제나 서늘한 서기가 감돌았다 장경각은 전 부 네 동으로 되어 있었으나 경전은 법보전과 수다라전을 잇 는 작은 두 동의 건물 사이에 대장경이 모셔져 있었다 판전을 세운 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대장경 간행은 두 차례에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고 려대장경과 구판대장경이 그것인데 사실은 대각국사의 개인적 인 발원에서 나온 속장경 간행까지 합치면 모두 세 차례의 간 행을 거쳐 억기에 모셔진 것이었다 병화와 왜구의 침략에 의해 두 차례에 걸친 불사를 거치면 서 오늘에 이른 것은 불교적 차원의 영역에만 머무르는 의미 가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한 사람의 승으로서 자리를 잡을 즈음 나는 어느 날 무상법보가 모셔진 장경각 그늘 아래서 그곳으로 간 지 처음으로 큰스님의 말씀 을 들었다 목양아 불교란 공부하는 종교이니라 오늘까지는 네게 그 렇게 공부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만 이 장경각 속에는 팔만대 장경이라고 하는 부처님의 말씀이 모셔져 있느니라 부처님은 바로 실다운 마음의 모습을 깨쳐 보신 분이기에 그 실다운 마 음의 모습을 중생을 위해 언설로 표현하여 이렇게 남겨 놓으 신 것이니라 항간에는 교외별전 불럽문자敎外別傳 不立文字라 하여 문 자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그대로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 만 공부라고 생각하여 눈만 감고 앉으면 금세 견성을 하는 것 처럼 구는 무리들이 있으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느냐 모 든 것은 그 길이 있고 나아가는 법도가 있는 법 어찌 부처님 말씀을 모르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수행승이 될 수 있겠느냐 비록 어느 한 순간 도를 깨쳤다고 하나 그 도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닦아나가야 한다는 이치가 거기에 있고 아래로 내려오면 도란 저러한 말씀을 알고 공부함으로써 그 닦음을 통해 견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니 먼저 듣고 앎으로 득 실得矢 을 밝게 분별하여 얕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으로 믿어 들어가고 그 뒤에 생각이 없으므로 계합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니 너는 부지런히 이곳으로 와 경을 읽고 공부에 게 으름이 없도록 하여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내가 진리란 문든 깨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음에 의 하여 계속 닦아나감으로써 궁극적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나는 그 날 이후 진정한 종법을 생각하여 처음엔 교전敎訟 을 찾아 진 리에 나아가고 뒤에는 선정禪定 을 닦아 혜해舊解를 내어야 한다는 걸 알아갔던 것이다 차례대로 수행계단을 밟아 점점 깨달아가는 돈오점수의 경 지를 스승은 내게 가르치고 있었고 이것은 소승에서 대승에 이르는 얕고 깊은 차례를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바로 대승의 깊고 묘한 교리를 단번에 깨친다는 돈오돈수의 경지와는 불가 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사실상 반대되는 것이었다 하 나는 사다리를 밟아 올라가는 것이요 하나는 사다리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 사상은 돈오돈수를 주장했던 선종 의 육조六祖 慧能에 의하여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문자를 모르니 청컨대 상인上入 은 그것을 나를 위해 읽어달라이것이 단경壇經에 기록된 육조의 친어親語였다 말하자면 문자나 언어교리 지해知解 같은 것은 불교인에게 전혀 필요 없으며 그것들은 오로지 아무런 증처도 가지지 못 한 알음알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곧 지해로 조작해낸 잘 못된 수행론일 뿐이며 그 지해는 깨침의 길을 가로막는 최악 위 장애물일 뿐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바로 선정을 닦아 한순간 깨치면 구경각究竟覺을 얻는 것이지 처음엔 근기에 따라 교전에 의해 나아가고 선정 을 닦아 혜해를 내어야 한다는 돈오점수설과는 반대되는 세계 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선종의 큰스님들은 모두 지해를 선 문 최대의 금기로 삼았고 돈오점수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지해 종도라 하여 항상 배척하고 비판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애가 점차 어른이 되어가듯 지해를 쌓아 부처를 알고 그 해오解悟 깨달음에 의하여 증오證悟 캐침에 이르 고 그 깨침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계속 닦아야 된다는 것에는 나 역시 이의가 있을 리 없었다 돈오돈수설을 신봉하는 자들 이 오직 화두 하나만을 의지하고 앉아 담박 깨쳐 더 닦을 게 없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닦음 없이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 을 볼 수 있으며 단 한 번 거울을 닦아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하나 다시 내려앉는 먼지와 때를 어찌할 것인가 좌절한 아버지가 염소의 흰 터럭 위에 덧칠한 검은 물감은 분명히 그 거울 위의 먼지와 때요 죄많은 이 세상을 살면서 내 속에 들어온 알음알이로 인해 생겨난 산물임에 분명하기에 이제 그것을 닦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닦음의 걸레가 필요했 던 것이다 그 걸레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깨침의 길을 가 로막는다는 지해라는 것이었고 나는 우선 그 지해로 나를 알 고 나중엔 그 지해마저 버림으로써 해탈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나는 다시 또 하나의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인지 몰랐다 그들이 깨침의 최대 장애물이라는 그 지해를 가지고 해탈을 찾아 나선 것이라면 염소의 몸뚱이에 알음알이의 때를 입히기 위해 나섰던 그날의 아버지와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좌절한 내 아버지는 마지막 으로 염소의 몸뚱이에서 본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더 닦아야 하고 그 닦음으 로 인하여 그 본질마저도 걷어차 버리는 곳에 법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떠나갔던 것이다 아버지가 이곳으로 와 그 세 계를 보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것은 이제 내가 보아야 할 세계임에는 분명한 것이었다 바로 황금 염소였다 다음 날부터 공부는 시작되었다 그날부터 나는 장경각으로 가 여러 스님네와 장경판을 한지로 인출해와선 그것을 읽고 또 읽고 하였다 먹을 갈고 한지를 대고 솔로 붙이고 떼는 작 업을 저쳐 한지에 박혀 나오는 글자를 보고 있노라면 어떤 땐 그 사상의 오묘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키득키득 속으로 웃음이 터겨나을 때도 있었다 어쩌다 한지에 먹물이 잘못 배어 太자가 大자로 그 획수를 잃어버리면 그야말로 엉뚱한 뜻이 되어버리는 속성을 문자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나는 불교가 무엇인가를 어 렴풋이나마 알아갔다 불교는 곧 우주였고 우주는 곧 나였으며 이 세계였다 이 세 계를 알려면 곧 나를 먼저 알아야만 했고 나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분명히 거치고 넘어가야 할 두 개의 길이 있었다 그것은 나를 존재론적인 면에서 철저히 분석하여 논리적으로 부수어 버릴 것인가 아니면 나라는 존재 그 존재의 인식과 집착이 어떻게 오고 가는가를 논리적으로 해명할 것인가였다 물론 거기에는 나란 실체가 없다는 일반적인 대답이 있었다 나란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임시 있음이란 말이었다 상주가 없다면 영원도 없는 것 그렇다면 모든 것은 공인가 한 순간에 생하고 멸하는 것이 식이라면 공은 분열된 주객의 상정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법은 무 나 공이 아니라 무자성無自性이 아닌가그러나 문제는 내가 없다는 그것을 나 자신이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것 을 증명할 수 없는 이상 나는 나 자신을 시계를 분해하듯 해체 해볼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는 나 자신을 철저하게 다시 구축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여전히 절은 공부하는 곳이었고 오로 지 시심마어甚慶가 있을 뿐이었다 이게 무엇인가 오로지 그것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때의 내게 있어 이게 무엇인가란 질문이 얼마만한 도움이 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알 기 위해서는 경을 열심히 읽어야 했고 경을 읽어나가면서 선 리禪理로 나아가야만 했다그리고 그것이 쌓여갈수록 그에 비례하여 나는 내 속에 불교라는 거대한 사상을 쌓아가고 있 었다그 속에서 나는 선禪이란 무엇인가를 알아가기 시작했 고 스승이 쌔게 준 화두가 성성히 살아남도 함께 보았다 나는 부지런히 닦았다경전도 부지런히 읽었고 동안거冬安 는 막연히 공부만 하는 승이 아니라 내가 본래부터 받은 숙제 를 풀기 위해 용맹정진하는 한 사람의 선객禪티 이 되고 있었 다 그러나 내가 받은 그 숙제가 그렇게 쉽게 풀려지던 것은 아 니었다 그 속에는 더 깊은 의혹이 숨쉬고 있었고 나는 그 의 흑을 향해 몸부림을 쳐야만 했다 그래 무가 공을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공이 무를 주장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본래 있는 이 현실 세계를 그저 달리 표현해본 것이 무일 것이요 공일 것이다 그것이 세계의 본질일 것이요 세계의 진실이라면 있다거나 없다는 일반적인 판단은 가짜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것을 만들어내는 언어 그에 대응하는 개개의 실체 그것은 본래 없는 것이며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을 분별하려는 허무주의 또한 어리석은 세계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무엇일까 나란 존재는 내가 곧 중도中道인가 절대부정과 절대긍정이 함께 하는 세계 그 자체가 나란 말인 가 언제나 눈만 감으면 내게 화두를 주신 노사는 소리쳤다 염소는 어찌되었으냐 염소를 찾았다면 어서 이리로 데려 오너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를 찾았다면 나는 집착에 빠졌으므로 상견외도當見外道에 떨어졌고 그렇다고 찾지 않는다면 어기 고 등졌으니 단견외도短見外道에 떨어진다는 것을 한 마디 로 배촉관背觸觀 그 진퇴양난의 딜레마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었다 봉황문鳳凰門에서 벼랑처 럼 서 있는 돌계단을 오르면 거기 해탈문鮮脫門이 있었다모 든 중생이 중생적인 속박을 헌출히 벗어나서 해탈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그 문은 언제나 거기에 서 있었다 나이 스물 다섯이 되던 해 천왕문天王門과 해탈문 사이에 있는 국사단局司壇에서 매해 정월 망일望E 에 있는 국사와 사천왕에 대한 법요를 끝내고 나는 노사를 따라 초암草庵으 로 내려왔다 초암은 큰 절과는 달리 단조로운 맛은 있었지만 시간이 흐 를수록 어쩐지 나는 대중으로 들끓는 큰 절을 그리워했다 설 한풍이 불고 찬기가 숨어드는 그곳에서 손을 불며 울던 때가 생각났고 선방 한 구석에서 산에서 캔 마를 구워 먹던 도반들 이 그리웠다 땅 속에 파묻은 김치독에서 김치를 꺼내와 그것 을 싸먹는 맛이라니 다음 날 아침은 어김없이 배탈이 나 뒷간 을 들락거리고 저 저잣거리로 내려가버리면 그보다 더 큰 재 미도 있으련만 그것은 고사하고라도 그 도량을 갈 수만 있다 면 살 것 같았다 그렇게 노사를 따라 큰 절을 내려와 초암에 들어 시봉하던 세월은 홀러만 가고 그 속에서 나는 때로 아버지를 그리워히 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하며 시종여일始終如한 정진을 계속 하고 있었다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행지견고行持堅固하고 여법如法이 좌선삼매坐禪三味인들 어찌 모든 걸 잊을 수 있 고 한 순간에 터져나가는 사자후를 터뜨릴 수가 있으랴 여전 히 고목은 한암寒岩을 의지할 뿐이고 삼동三冬에 난기暖 氣가 있을 리 없었다 역시 그 세계는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보기가 어려우면 어 려울수록 그에 비례하여 회의는 늘어만 가고 그렇게 다시 여 름이 가고 겨울이 오고 갔다 초암으로 하려온 지 꼭 다섯 해 그 해 정월 망일에 은사와 은사의 동문이었던 혜일선사 간 에 처음으로 불교의 오갠 숙제였던 수행 논쟁이 있었다 물론 그들을 따르는 대중들간의 싸움이었지만 장원사의 방장로 있 는 혜일선사는 은샤와는 한 스승 밑에서 수도한 동문이었다 그들의 스승은 조계의 법통으로서 종조이신 보조국사의 뒤를 잇는 강직한 승이었으나 그의 열반이 있고 얼마 뒤에 장원사 의 방장이 그의 종조 보조국사와 은사를 배척하고 나섬으로 써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다 불교가 생긴 이래 수천 년 동안 문제시되어 왔었으나 끝이 보이지 않던 이들의 싸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몰랐다 그 들에게 있어 이유는 그만큼 타당했고 논쟁거리 또한 충분했 다 한꺼번에 단박 깨쳐 더 이상의 닦음은 필요없다는 돈오돈수 頃悟頃修를 주장하는 장원사의 방장 혜일선사 깨치고 나서도 꾸준히 닦지 않으면 안된다는 돈오점수煩悟 漸修를 그대로 주장하고 나선 스승 수인선사 둘의 주장은 한치의 물러남도 없었다 깊은 선지식을 바탕 으로 돈오돈수를 선의 요체로 삼아 깨치는 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부처가 된다고 혜일선사는 단언하고 있었고 스승 수인선 사는 제 아무리 깨달았다고 하나 깨닫고 나서도 무시無始 이 래의 습기習氣를 다 제거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요그렇기에 그 깨침에 의하여 더욱더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는 나중 혜일선사가 그런 자신을 비웃듯 보조선사의 절요 節쫓 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자 틀림없는 언교뫼敎 에 의지하 여 오수慨I 의 본말 本末을 투절히 깨닫고 이로써 항상 마음 을 비추게 할 요체를 담은 것이 절요인데 그걸 가르치지 못하 게 한다니 무슨 소리냐고 질타했다 결론은 쉽게 오지 않았다 혜일선사는 그런 스승을 지해종 도知解宗徒라 못박으며 비웃었고 그런 사이 그들의 주장을 둥에 업은 그 밑의 대중들까지도 갈라져 서로의 옳음을 주장 하고 있었다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물읍시다 돈오돈수가 무엇이오 지 해知解 를 떠나 단박에 깨침을 얻음으로써 구경열반한다는 사 상 아니오 그떻다면 그 구경열반이라는 게 무엇이오 그것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이오 이렇게 주장하는 쪽은 돈오점수 쪽이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다시 물읍시다 자 여기 한 꾸러 미의 실이 있소 이것을 끈으로 나뭇가지 위에 매단다고 합시 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칼로 그 실꾸러미를 한번에 내리쳐버 린다면 어찌 되겠소 비록 실낱은 가닥가닥 많겠지만 일검에 는 이길 수가 없는 것 아니겠소 그것이 돈오돈수요 실낱 하 나 하나를 차례로 끊어나간다는 돈오점수와는 이것이 다른 것 이지요 이렇게 주장하는 쪽은 돈오돈수 쪽이었다 그러나 단박에 실꾸러미를 끊어낼 만한 근기가 몇이나 되겠 는가 아니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닦음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어린애가 단박에 어른이 될 수 없듯이 어린애가 단 박에 칼을 들어 실꾸러미를 자를 수 없듯이 그 실꾸러미를 자 르려면 그 실꾸러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며 부처를 모 르고 어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이 그때 내가 그들의 싸움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역시 돈오점수 쪽이었지만 그러나 그들도 그런 이 쪽을 향해 가만 있지는 않았다 번뇌와 보리는 본래 하나요 알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틀 린 것이요 어떻게 알음알이로 해탈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반 박이었고 지해의 조작으로 그 경지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 냐는 것이었다 그런 질문과 반박에 이쪽은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교외별전 불럽문자敎外別傳 不立丈字를 잘못 이해하여 교 설이나 문자를 무조건 배척하는 딱함을 이제야 알겠구료 치 선廊禪에 빠진 당신네 같은 선객을 두고 뭐라 그러는지 아시 오 암중선객暗中禪客이라고 그러오 문제는 지智이지 식 識이 아니란 말이오 식에 걸릴 때 분별식심分別識心이 일 어나는 것이오 그것이 바로 돈오를 해치는 것이지 지학智學 을 지향한다면 바로 보리쭙提가 눈앞인 것이오그러니 알고 나 입을 놀리시오 분명히 말하고 있소 돈오점수설이 점진적인 수행법임은 분 명하나 부처님의 말씀인 교전수행은 해오解悟때까지라는 걸 교문敎門을 거쳐야 선관禪關에 이르는 법이요 이치가 서야 입선入禪이 이루어지는 법 돈오돈수는 문자를 무시하므로 선에 방해가 되어 이 경지가 없다고 하지만 왜 없소 중생을 향한 범문은 무엇이고 교리학습은 또 무엇이오 그것이 바로 해오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냔 말이오 그떻소 그런 다음 깨침이나 닦음은 시작되는 것이오 돈오 점수는 그 해오의 경지에 의지해 점차 깨달음을 닦아나가며 돈오돈수는 진정한 경지인 자성청정自性淸淨을 얻음과 동시 에 더 이상의 닦음이 필요 없다고 하지요 그러나 정녕 그럴까 요 그것으로 일상일여 몽교일여 오매일여가 이루어지며 다 생의 습기로 인한 어둠까지 모두 지워지며 제8아뢰야식阿賴 耶識 8식의 하나불교유심론의 하나로 우주의 삼라만상은 아뢰야 식으로 연기한다는 학설의 근본이 되는 식의 미세망념까지 영원 히 끊어지는 것일까요 이보시오 아무리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으려 고 하나 그것은 해오는 가져오지만 증오로 나아갈 때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개념적 이해의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오 그 개념적 이해를 뛰어넘는 것이 바로 선禪이요 그 참구參 句를 통해서만이 견성은 가능한 것이란 말이오 그렇기에 분 명히 해탈은 존재하며 그것은 삼관으로 증명됩니다 반드시 통과해야 될 세 개의 관문이라는 말이지요 그것이 바로 스님 이 든 몽교일억 오매일여 일상일여입니다 일상일여는 자기의 공안참구가 일상시에도 항상 한결같은 경지이고 몽교일여는 깨어 있을 때나 꿈 속에서나 그 역시 한 결같은 경지이고 오매일여는 아무런 꿈도 없는 숙면상태에서 도 한결같은 경지입니다 돈오는 바로 이 세계를 넘어선 경지 를 말함이니 추호라도 아직도 닦을 게 남아 있다면 그것은 돈 오돈수의 경지가 아닌 것이지요 깨치고 나서도 계속해서 닦 아나간다고 하는 돈오점수와는 이것이 다른 것이라는 말입니 다 단박에 그 경지에 들면 바로 여래가 되는 것이며 더 이상 의 수행은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되면 상대는 그만 웃어버리고 있었다 그렇기만 한 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거였다 그 어려운 교리나 지해를 통 한 해오의 경지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들어 대장부 한 생각 단 한 번에 작살을 내어버린다면 그러나 문제는 그들 역시 그 경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싸움은 다음 해에도 그렇게 계속되었다 송광사에서 는 불교사상에 있어서의 깨달음과 닦음이란 논제를 내걸고 국 제불교학술회의가 열렸고 나 역시 스승의 뜻도 있고 해서 그 곳엘 가 보았다 학술회의로는 드물게 엄청난사람들이 참가 하고 있었다 미처 사자루鄕子樓에 들어가지 못한 청중들은 주최측이 마련한 의자에 앉아 옥외 마이크로 흘러나오는 발표 와 논평을 경청했는데 아무튼 뜨거운 관심이었다 그해의 대회가 그토록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킨 요인 중 의 하나를 나는 알고 있었다 주제 자체가 일반적인 관심을 불 러일으킬 만큼 폭넓은 것이기도 하였지만 돈오점수설을 지향 했던 종조인 보조국사를 지해종도라며 지향했던 교계 최고의 어른인 혜일선사에 대한 최초의 공개 비판의 자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기 때문이었다 논쟁은 불꽃을 튀며 계속되었다 내노라 하는 석학들 내노 라 하는 승려들 민성윤 교수 이상은 교수 유태영 교수 목우스님송전스님일정스님 그들은 돈수와 점수쪽으로 갈리어 논쟁을 계속했는데 유달리 내 시선을 끄는 사람이 있 었다 바로 민성윤 교수였다 그는 일찍이 학계에 몸담았다가 뜻한 바 있어 혜일선사 상좌가 되었는데 몇 해 전 그 밑을 뛰 쳐 나와서는 나의 스승인 수인선사를 두어 번 찾아왔던 사람 이었다 그때 그는 혜일선사의 돈오돈수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었 는데 내가 보기에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점수설 때문에 스승 밑을 뛰쳐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두 어번 수인선사를 찾아와 자신의 입장을 확인하듯 돈오점수설 에 관해 의견을 나누더니 그후 머리를 기르고 모 대학의 교수 로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가 그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혜일선사가 종조인 보조국사를 뻥척했듯 은사였던 혜일선사의 돈수관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제자가 은사를 비판하 고 있었기 때문인지 장내는 숙연했다 그렇다면 혜일스님은 돈오돈수하였느냐는 질문이 터져나오 자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쩐지 나는 그런 그에게서 비정함보다는 제자와 은사 사이 에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끈끈한 사랑같은 걸 느끼고 있었는 데 그것은 무엇 때문인지 몰랐다 그의 발표가 끝나자 이번엔 돈수설에 일가견을 가진 유태영 교수가 그런 그를 공박하였고 뒤이어 스님네들이 줄줄이 자신 의 사상을 피력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승가와 세간의 이목을 모으며 불꽃 튀는 논 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옳고 그름은 쉽게 판가름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로 인하여 선승과 교승의 차이점만 두드러지게 드 러나버린 느낌이었다 나로서도 그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선가가 겉으로는 마조 도일馬祖 遣 황벽黃柰의 뒤를 이은 돈오돈수인 것 같으나 안으로 들어가보면 규봉 종밀宗密 보조普照의 뒤를 잇는 돈오점수 풍이 강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뒤죽박죽된 선가의 기풍을 종조나 스승을 부정하더라도 바로 잡으려는 의지를 혜일선사에게서 느낄 수 있었지만 선과 교를 하나로 보려는 스승의 입장을 이해하고 보면 거기엔 너무도 대승적인 보살심이 깃들여 있었기 때문이 었다 깨침이란 것이 제품처럼 완성될 수 없는 이상적인 것인 이상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었고 그렇기에 그 체험 은 얕고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또 그떻기에 그것은 끝없는 완성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러한 깨달음 속에서도 이룬 것은 없었다 그들의 논쟁이 해를 거듭해갈수록 오로지 회의만 깊어졌을 뿐 이 세 계는 도깨비와의 씨름판도 아니었고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메어칠 수 없는 세계였다 앞뒤도 없었고 좌우도 없었고 출구 마저 없는 세계가 바로 이 세계였다 그렇게 회의가 깊어져 갈 수록 나는 어느 땐가부터 결심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필요하다 변화가 필요하다 어느 날 밤 나는 기어이 참지 못하고 큰스님의 방문을 밀고 들어서고 말았다 그리고는 넙죽 절을 올리고는 느닷없이 물 었다 스님 언덕은 저기인데 나는 아직도 여기 있습니다 경전을 읽어 부처를 안다는 것 또한 법에 구속되는 것이니 이 도리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스승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자신이 읽고 있던 경전을 탁덮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녔으면 그 배는 버려 버린다그때그과 정을 통해서 거울을 더럽혔던 모든 것들을 부숴버리는 결정적 인 해답을 가진다 그러나 그것이 무였입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바로 그 것 그렇다 황금 염소는 바로 그것 뒤에 있는 것이니라 그렇다면 황금 염소는 무엇입니까 노사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더니 들고 있던 경전를 확 내밀 었다 바로 이것이니라 나는 눈을 뗑그라니 떴다 이것이라니요 이것은 경전 아닙니까 천박한 놈 그를 쳐다보는 내 눈에서 일순간 불이 일었다 그 누가 모를 까 이것이라는 그 의미쯤은 나는 오히려 그가 그렇게 대답할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옛 조사들의 어록을 읽다보면 그러한 행위는 어디서나 볼 수 있었고 그러한 사언死言들은 비일비 재한 것이었다 노사가 어쩌면 그 경지를 모르고 그것을 흉쌔 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무엇엔가 속은 것 같 은 느낌에 울화가 치밀었다 갑자기 어머니를 죽이고 바위를 돌아 나가던 그 잿빛 승복이 보이고 맨머리가 보이고 고난스 럽던 내 지난 날이 되살아나면서 부드득 이가 갈렸다 뭔가 속 은 것 갤고 사기를 당한 것 같은 울화가 가슴 속에서 터져나왔 다 나는 그만 그 길로 벌떡 일어나 스승이 읽던 책을 확 뺏어들 었다 그리고는 바닥에다 팽개쳐버리고는 멍하니 보고 있는 스승을 뒤로 하고 문을 나와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길로 바랑 을 셌디 스승팥의 생활에서 오는 미련 갇은 게 없을 리 없었 으나 이제 떠나야 되겠다는 생각은 이미 변할 수 없이 굳어져 있었다 그래도 노숭의 눈이 무서워 새벽녘에 바람처럼 나서는데 누 구인가 뜰가를 거닐고 있었다 냉기를 품은 달빛이 시퍼떻게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검은 그림자는 나를 향해 돌아서는가 했더 니 그로부터 말소리가 흘러나온 건 달이 검은 구름장에 가리 울 무령이었다 헤어지면 만나고 만나면 헤어지게 된다는 부처님 말씀이 하나도 그른 데가 없구나 그래 공부란 탁마하면서 얻어야지 떠날 때가 되었다 견성은 참구하고 참구할 때 오는 것이요 문문할 때 오는 것이지 그럴 때 기연은 스스로 오는 것 깨치 고 보면 부처는 아무것도 아닌 허깨비요 미망일 뿐인 것을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내게 하는 말인지 불분명했지만 그는 말을 마치고 내게 가카이 다가오더니 손에 들고있던 서 찰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좀 멍청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토록 틈서리 하나 없던 노사 역시 정에 약한 범인에 지나 지 않았단 말인가 자기자신에게까지 철저하게 비정했던 늙은 선객의 눈에 어느덧 정기가 사라지고 있음을 나는 분명히 보 았다 언제 그가 한낮 천박하기만한 나에게 누설할 만큼 정을 주고 있었던가 어린 날 그의 밑으로 와서 흰 염소를 끌고 사 라진 아버지를 찾으며 힘겹게 살아온 날들이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배워주고 인간을 만들어보기 위한 그의 노력 허기 사 탁마길이 처음이고 보니 이곳 저곳 잘도 돌아다니는 스님 네와는 달디 걱정스러움도 앞섰으리라 그러나 나는 이미 어제의 내가 아니었다 어느덧 나는 철저 한 자기본위의 비정한 영흔의 편력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다시 또 그의 함정에 빠지고 있었다 그는 분명히 내게 오늘날까지 비정 속에서 비정을 가르쳐주고 있었지만 그 비정을 씹으면서도 선객은 그 비정을 낳아서는 안 된다는 걸 그의 서찰로 가르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 었지만 나는 그때 그 서찰의 내용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 느 새 이곳 저곳을 떠돌며 그 서찰의 의미쯤은 잊어버렸고 겨 우 이곳으로 와 방부를 드리고 나서야 바랑을 뒤지다 스승의 서찰을 찾아내었던 것이다 그 서찰은 바로 스승과는 반대되 는 세계에 서 있는 혜일선사에게 보내는 것이었고 그제야 나 는 스승의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아팠 다 학술 회의장에서 은사를 비판하던 민성윤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생각났다 그가 스승을 배척하고 반대되는 세계로 나 아갔듯이 나 또한 이제는 그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무튼 그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엔 이곳으로 오고 나서도 무엇 하나 풀리는 건 없었다 하나의 선객으로서 나는 내 자리나마 얻어들 수 있었고 지대 방을 어슬렁거리다 나중 이 절의 방장인 혜일선사의 장검틋 劍에 손목을 잘리고 만 명증을 만났지만 그를 알기 시작하면 서부터 더욱이 그가 신문에 발표한 글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부터 솔직히 그에 대한 의혹이 또 하나 덧붙어버렸던 것이었 내가 그를 만난 것은 그러니까 그의 손목이 잘린 사건이 터 지기 훨씬 전이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스승 밑을 떠나온 이 듬해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 철 나고 이곳으로 와 지대방으로 갔을 때였다 그때 맨 먼저 부딪힌 것이 바로 명증에 관한 소 문이었다 원래가 뒷방 지대방이란 게 큰 방과는 벽 하나 사이하고 있 는 것이지만 본시 선방에서 나온 스님들이 지친 다리를 풀거 나 잡담을 나누는 곳이어서 터무니없는 말들이 오가기도 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대방부터 어슬렁거리며 돌아보았는데 그것은 대오각성을 위해 백척간두에 서서 용맹 정진하는 선객들의 의지 충만한 모습에서 수구초심首난初心 을 느끼려 했던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오후의 잔광을 등어리에 받으며 지대방으로 들어섰을 땐 마 침 명증에 관한 말들이 지대방 안을 맴돌고 있었다 그들은 낮 선 나의 출현에 잠시 주춤하는 것 같았으나 이내 말을 계속하 였었고 나는 선반 위에 줄줄이 놓여 있는 선객들의 바랑을 둘 러보며 그들의 말을 들었다 선객치고 비정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명증을 되씹는 그들의 어투 속에는 어딘가 모 르게 차가움이 배어 있었다 선객으로서의 어떤 몰인정함에서 오는 비정함 같은 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과 출신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왜 그렇게 제 버 릇 개 못 준다고 재길 좋아하고 따지길 좋아하는지 그런 말 마십시오그 양반만큼 박식한 사람도 없을 잽니다 중놈에게 박식이 무슨 소용이던가 세간의 지식은 세간의 지식일 뿐 제가 저잣거리에서 대학물까지 먹었다지만 그만큼 유식하지 않은 놈이 어디 있누선이란 건 본시 사량분별쌀 分別이나 논리 주리 같은 게 통하지 않는다는 건 상식인 게 야 말로 이치를 잴 수도 없고 글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게 그 세계인데 제놈이 그래 몇 자 배운 중지식 갖고 방장 스님을 찾 아가천박한 놈 사실은 그가 찾아간 게 아니라고 말하던디유 그건 또 무신 말이여 사실은 스님이 보시기에도 그가 위선기가 농후하고 깊이 없이 박식하기만 하고 선방에 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짐짓 도인인 체 하는 게 꼴 사나웠던 모양입디다 그래 하루는 방장 스님이 불렀다드만요 그날도 방장스님은 그놈의 웃음은 잊지 않았다는데 그가 들어서자 벽에 걸려 있어야 할 칼 하나가 그 의 무릎 앞에 떨어져 있더랍니다 그 양반이 절을 하고 무릎을 끓고 앉자 방장스님이 물었답니다 이게 무엇이냐 그 양반이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쳐다보더니 무엇이라니요 칼 아떱니 까 하더랍니다 그래 방장이 그떻다 칼이지 그럼 본 것이더 냐들은 것이더냐하고 물었는데 네 하고 그만 말문이 막혀 입을 못 열더랍니다 그래 방장이 다시 눈을 시퍼렇게 멎내며 일러라 본 것이더냐 들은 것이더냐 하고 다그켰는데 말문이 막힌 그는 끽 소리도 못하고 얼굴을 꺾고 있더랍니다 그래 그래 그러면 그렇지 제까짓게 뭔데 어디 화두라는 게 옛 조사들의 흉내나 행한 것을 그대로 따른다고 해서 되는 것이던가 남의 대덕법을 그대로 두어 순일무잡純一無雜에 빠졌다면 마땅히 그런 치도곤을 맞고도 싸지 나는 그때 그들의 말을 들으며 명증에 관해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명증이 누군지도 모르겠거니와 여기도 그런 스님들이 있는 걸 보니 역시 공부하는 도량이구나 싶었을 뿐 막연히 스승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그때 나는 명증을 모르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 길로 방부를 드렸는데 늘상 하던 대로 장삼을 입고 어간御間법당이나 큰 방의 한복판을 향해 세 번 큰 절을 했다 내가 있던 본사와 사승 그리고 하안거 처소를 밝히고는 법명을 알렸다 먼저 온 스님들은 선객답게 환영의 빛도 거부의 빛도 나타내지 않았다 하기야 그들 역시 법을 찾 아 떠도는 선객스님에 지나지 않을지니 법계에 의해 좌석의 순서가 정해지고 입승 스님에 의해 공 사公흄 가 발의될 즈음 나는 주지를 찾았다 공사의 내용은 겨 울철이 눈앞이었으므로 김장에 관한 것이었고 소임이 정해지 자 그제야 문득 스승의 얼굴이 생각나면서 그 동안 잊고 있었 던 서찰이 생각났던 것이다 서찰이 생각나자 방장부터 먼저 만나봐야 할 것 같은 생각 이 들었다 스승의 그 서찰이 그때의 내게 있어 하등 의미가 없을 것 같았으나 스승의 눈빛이 지워지지 않는 건 무엇 때문 1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혹시나 모르지 스승은 자신이 주지 못하는 것을 이곳 방장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그 럼 그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솔직히 나는 하면서 주지부터 찾았을 것이었다 주지의 방 앞에 섰을 땐 섬돌 앞에 놓여 있는 두 짝의 낡은 고무신이 보였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는데 그때 안에서 쇠소 리처럼 짱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놈아그렇게 일렀거늘 아직도 보지 못하겠단 말이냐보 지 못하겠다면 다시 공부해야 하는 법 어찌 그렇게 의심만 일 으키는가 스님 나가거라 꼴도 보기 싫으니 오늘부터는 일체 작업을 그만 두고 선객으로 돌아가야 하느니라알겠느냐 간절하게 스님 하고 부르던 사람의 대답소리는 들려오지 않 았다 왜 대답이 없는 게냐 왜 대답이 없느냐니까 그제야 한 풀 꺾인 사람의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명심하겠습니다스님 물러가거라 이내 문이 열렸다 그제야 나는 그들의 말을 엿듣다 말고 헛 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문을 밀고 나오던 스님이 잠시 멈 칫 하는 것 같더니 퍼뜩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써늘힌 바람 한줄기가 나의 가슴을 헤집고 지나갔다 얼핏 보긴 한 것이지만 그의 얼굴은 방 안에서 홀러오던 목 소리와는 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헌칠하니 큰 키와 비 쩍 마른 몸매 그리고 파르스름하니 깎은 머리 밑으로 뭉툭하 게 찍혀 있는 검은 두 눈썹 우뚝하면서도 둥근 콧날 갸름한 윤곽 게다가 어찌나 얼굴색은 희고 깨끗한지 약간은 선병 질적인 인상이었다 이제 한 서른 다섯이나 되었을까 그는 찬바람이 뻥하니 불 정도로 섬돌에서 신을 찾아 신고 내 곁을 지나쳐갔다 주지 스님이 좀 못마땅한 얼굴로 방을 나오며 나를 힐끗 돌 아보았는데 그는 내 눈길과 마주치자 무슨 일이냐는 듯 얼굴 을 곧추세웠다 나는 찬 바람을 일으키며 곁을 지나쳐 가는 그를 보고 있었 다 스님은 이쪽의 시선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대로 곁을 지나쳐 갔다 그의 뒷모습을 잠시 돌아보고 섰는데 주지 스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게 볼 일이 있는 모양인데 무슨 일이신가 늄고개를 돌리고 좀 멈칫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 고는 방장을 만나뵈었으면 한다고 간단하게 말했다 주지가 나를 한참이나 살펴보았다 분명히 주지는 방장을 찾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눈치였다 나는 스승이 준 서찰을 내보이며 자 초지종을 얘기했다 내 얘기를 듣고 난 주지가 고개를 끄덕이 며 앞장을 섰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방장이 있는 심검당은 명증이 있는 객실방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육중한 아자창 앞 에서 주지가 스님 좀 뵈러 왔습니다뵙자는 분이 계셔서요 하는 예의 소리가 있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안에서 꼿꼿 한 음성이 홀러나왔다 들어오십시오 주지스님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사방 스무 자가 횔씬 넘는 큰 방에 담요를 배에 감고 결가부좌 한 노승 하나가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일흔이나 되었을까 비 쩍 마른 몸 위로 곱게 늙은 동안童顔이면서도 어쩐지 눈가에 서 뿜어나는 시퍼런 정기가 가슴까지 서늘케 하는 기분이었 다 그러면서도 얼굴엔 이상스럽게도 부드러운 웃음이 묻어나 고 있었는데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스승이 만나보라던 혜일 慧선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나는 방장의 얼굴을 보고 선 채 잠시 꼼짝 못하고 서 있었다 그가 나의 은사와 수도의 양상을 놓고 논쟁을 벌이던 장본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괜 일인지 눈앞이 캄캄해져오고 있었다 그 캄캄한 시야 속으로 어머니를 죽이고 바위 곁을 돌아나가던 그 잿멎 승복자락이 보이고 허연 맨머리가 보였다 가까스로 내가 회상에서 깨어 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뭐하시는가인사 웅리게방장 스님일세 하고 주지가 일깨워서야 나는 의식에서 깨어났다 나는 나를 분별해내려는 눈빛으로 올려다 보고 앉은 그에게 우선 삼배를 올린 다음 하산할 때 스승이 써준 서찰을 꺼내 내밀었다 그리 흑시 해인사에 계신 수인修印큰스님을 아시는지요 고 하고 물었다 수인 되묻는 그의 눈멎이 번쩍 빛났다 네 그럼알다마다 스님께서 이것을 그는 내가 내미는 서찰을 내려다 보다 말고 나를 다시 한 번 쏘아보았다 아니 그럼 수인이 보내서 왔단 말인가 네 어디 보세 어디 그가 서찰을 펼쳐 들었다 한 순간 문 밖의 풍경소리가 들리 는 것 같았는데 나로서도 어쩔수없는 혼란이 한동안 나를 사 로잡았다 이것은 바랑 속의 서찰이 이곳 방장에게 보내진 것 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부터 생겨난 혼란이었지만 반갑게 서찰 식 을 받아보는 그에게서도 역시 내가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었을 마 지도 모르는 적대감 같은 게 느켜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빼 둘은 수도의 양상을 놓고 피흘리게 싸우고 있었지만 인간적 인 유대관계는 그저 인간적일 뿐이라는 느낌을 분명히 내게 슭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범부와 선승의 다른 점일지도 몰 랐지만 어쩌면 나는 이 세계로 찾아을 때부터 이 세계를 알아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들의 피흘리는 모습을 흄쳐보 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눈이 꽉 감 겼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눈을 뜨고 방 안을 할 일 없는 사 람처럼 둘러보았다 방 안엔 장식이라곤 전혀 없었다 이마가 툭 튀어나오고 눈이 불거진 걸승 학나가 누더기를 걸치고 술 병을 치켜든 채 껄껄거리고 있는 그림 한 폭이 달랑 걸려 있었 고 방장의 맞은 편 벽면에 큰 장검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 낡은 장검이 왜 여기에 있을까 하는 생각 만이 들었었다 떠나온 본사에도 심검당이란 곳이 있어 슬기 의 보검을 찾는다는 뜻으로 중생의 무명을 베어내는 상징성을 그 검은 가지고 있었다 그 검이 있는 심검당은 흔히 관음전이 라고도 불려지고 있었는데 본래 학사대 너머의 관음전이 불 타버린 뒤 그 소속 재산을 거기에 옮겼고 목조 관음보살을 봉 안함으로써 연유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절로 들어서면서 느킨 것이지만 내가 있던 본사와 이 절은 유사한 데가 너무나 많았다 각 기등의 앞 뒤 에 첨주添柱을 댄 것이며 닫집 지붕 등이 매우 간소해 보이 면서도 장중하고 그러면서 허허로운 느낌을 들게 하던 흥하 문이나 본사의 봉황문처럼 돌계단 위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대로 이름을 갖다 붙인 해탈문 요사채로 지어진 보경당 본 사의 구광루를 본딴 이 절의 가운데서 가장 중앙에 위치한 대 경루 그리고 대응전 역시 본사를 본딴 것 같은 경학원 명부 전 퇴설당 극락전 선원 우화당 명월당 그리고 이 심검당까 지 그 규모는 작아보였지만 그곳을 그대로 빼다 박은 것 닫았 다 칼을 올려다 보면서 본사 나는 무려 석 자나 됨직한 은빛의 와 이곳을 번갈아 떠올리다가 눈을 내리감았다 그리고는 방 안을 짚어가듯 서찰의 내용을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짚어가기 시작했다 별것은 아닐 것이었다 당신과 나는 수행에 있어 그 의견을 달리하고 있으나 수도란 탁마하면서 얻어지는 것 그 렇기에 당신에게도 배울 것은 있을 것이므로 승이 된 지 처음 으로 탁마를 고집하는 이 못난 놈이 찾아가면 사람을 좀 만들 어 내보내라는 부탁 정도일 것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어느 새 서찰을 읽고 난 방장이 눈을 치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수인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구만 그래 스님은 안녕 하신가 네 다행이구려 그래 그렇지 공부란 탁마하면서 얻어지는 건 지도 모르지 이왕 이렇게 왔으니 부지런히 정진하도록 하게 나누가 아는가인연이 닿을지도 예 나가보게나 예 나는 일어나 일배를 올리고 방을 나왔다 주지가 뒤따라 나 오는 것 같았다 신발을 찾아 신으면서 문득 주지방을 나오던 수좌를 느닷없이 떠올렸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이후 그 수좌의 얼굴은 잊어버렸다 그 후 로 그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낯 선 환경에 대한 적응이 더 시급했던 것이다 내가 그 수좌 그러니까 명증스님을 다시 본 것은 몇 달이 지나서였다아마도 명증 은 그 독참獨參이 있은 후 그 사건에 만 매달려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미 절 내에서는 독참을 얻으 러 간 수좌가 대답 한 마디 못하고 그대로 심검당을 쫓겨나버 렸다는 소문이 쫙 퍼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그 불명예를 씻기 위해 와신상담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 같았 다면 자신의 선경禪境 을 피력하여 선기禪機를 얻으려다 참 패했다 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게 상례요 서툰 마음 먹지 않 는 게 또한 상례인데 그는 원래가 따지길 좋아해서인지 남들 앞에 나서길 좋아해서인지 도사연하던 제 위신이 말이 아니라 그는 앉으나 서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루는 죽좌아침 공양 후에 총참總參이 있었다 대중이 자신의 선경을 피력하여 경계를 시험받기 위해 심검당으로 모 였다 물론 방장은 그때 명증의 위선기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 했다 그는 대중이 자리를 잡자마자 미리 무릎 앞에 던져 놓은 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물었다 일러라이게 무엇인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실내는 숨죽은 듯 조용했다 대중은 알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할 말을 잊 은 채 그대로 침묵이었다 이게 무엇이라고 묻는데 뭐라 답할 것인가칼이라고 한다면 촉驅했으므로 그 본체를 보지 못했 다고 할 것이 뻔했고 대답하지 않으면 배背할지니 나는 그 딜레마에 갇힌 채 허우적거리고만 있었다 계속해서 시퍼런 침묵만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런 어느 한순간이었다 나는 보았다 분명히 그는 내가 소문으로 알고 있던 명증이었다 그는 자신의 불명예를 만회할 절호의 기회를 만난 양 일어서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일어나 대중을 비집고 당당하게 방장의 앞으로 나아갔다 대중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쏠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방장 앞에 놓인 칼을 집어 들어 돌아서서는 본시 칼이 걸 려 있던 자리로 가져가더니 걸어버렸다 그리고는 아무 말없 이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나는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여기 저기서 몰아쉬는 숨 소리가 나를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는데 그때 만약 방장의 음 성이 터져나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원히 불법이란 것이 그런 것이라고 믿어버렸을 것이었다 어느 새 방장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다 그 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았다 칼은 보았으나 그 본체는 보지 못했다 법이 없는데 법이 있을 자리가 어디인가 방 안은 다시 술렁거렸다 또 참패를 당해버린 수좌의 얼굴 은 이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모르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시퍼런 눈을 번뜩이며 칼날을 세우고 있는 그의 속셈을 문제는 바로 그 다음날 아침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날 마침 스승 수인선사의 얘기나 듣자는 방장의 부 름을 받고 그의 방으로 갔었는데 칼은 언제나처럼 그 시퍼런 날은 번쩍이며 방장의 무릎 앞에 던져져 있었다 나는 그와 얘 기를 나누면서도 그 칼이 벽에 걸려 있지 않고 그의 무릎 앞에 놓여져 있는 게 이상했으나 칼을 아끼다보니 그러려니 하는 생각에 그냥 곁눈질로만 내려다 보았었다 석 자나 됨직한 칼은 칼집이 없었는데 넓이가 세 치 정도는 되어 보였다 날은 시퍼렇게 갈아져 날카로웠다 손잡이엔 용 무늬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고 그 음각은 그대로 꿈틀거리며 칼날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는 나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어쩌다 한 번씩 칼을 들어 날 끝을 쓸어보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그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 다 나는 그 웃음을 보며 섬뜩하게 등골을 타내리는 전율을 느 꼈다 어쩐지 그의 입가에 희미하게 떠도는 미소가 신경을 긁 어왔던 것이다 나중엔 그가 상당히 음험한 사람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방을 나을 때 쯤엔 칼날을 쓸면서도 심드렁한 그의 몸짓이 상대를 제압하려는 도량 최고의 권위의 식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어 심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런데 명증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의 앞 에 퍼질러 앉으며 고함을 내질렀던 것이다 그렇다면 스님은 깨쳤단 말입니까 방장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는 분명히 그가 오리란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스님이 깨쳤다면 그건 만용일 뿐입니다 만약 만용이 아니 라면 그럼 어디 그 법을 이 손바닥 위에 놓아보십시오 어쩌면 명증은 그때 방장이 정말 그 칼을 자신의 손바닥 위 에 놓으리라 생각했던 것일까 만약에 그렇게만 되었다면 그 는 그 칼을 들고 방장이 그에게 했던 것처럼 방장이 한 말을 그대로 내뱉았을지도 모르리라 사태는 심각하게 변해갔다 법을 손바닥 위에 놓아보라며 오른손을 펴 그의 앞으로 내 민 수좌를 눈을 번쩍 떠 쏘아보던 방장의 입가에 예의 미소가 번졌다 그는 잠시 후 오른손을 내뻗어 시퍼런 장검을 그대로 주워 들었다 뒤이어 칼이 허공을 긋고 명증의 비명소리가 울린 것은 한 순간이었다 나는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그 칼날에 베어져 방 바닥 위로 피를 뿌리며 떨어지는 명증의 손목을 보았다 그것 은 펄쩍 펄쩍 뛰고 있었다 나는 정신이 없었다 비명을 지르던 명증이 뒤늦게야 눈을 시뻘겋게 까뒤집고 방바닥 위에서 피를 뿌리며 펄쩍거리는 자 신의 팔목을 내려다 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칼을 거두는 방장의 입가에는 예의 그 웃음 이 머물러 있었다 마침 그때 절 아래 암자에서 아들 하나를 데리고 탱화를 그리던 지허스님이 장명등 앞을 거닐다 열려진 문 안으로 그 모습을 보고는 달려왔다 그 사이에 칼은 방바닥 위로 피를 물고 떨어졌고 그 위로 사의 한 마디 말이 추상처럼 쏟아졌다 본시 법이 없는데 법 놓을 곳이 어디인가법 놓을 곳이 없 다 지허스님이 뛰어들고 뒤이어 비명소릴 들은 스님네들이 달 려오고 팔목을 잘린 명증이 심검당에서 끌려 나왔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꼼짝할 수가 없었다 다만 생각나는 게 있다면 그제야 지금껏 내가 무엇을 하고 있 었느냐는 생각만이 떠올랐고 그리고 내가 잘라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만이 떠올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이곳의 방장은 우연한 기회에 당대 의 거승 월전스님을 알게 돼 불법에 인연을 맺은 사람이었다 그때 월전스님 아래는 수인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그와 함께 교종敎宗 의 전통에 따라 경經과 논論 을 깊이 연구하였고 돈오점수 사상에 깊이 젖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땐가부터 한계를 느꼈던 것인지는 모르나 이것 은 모두가 허깨비요 가면이며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일시적 으로 오도로 가는 약방문藥方文 은 될지언정 오히려 나를 옭 노 아매는 교분자嚴盆子 아교풀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불법의 위대한 종지宗막 는 그 위에 있다는 생각으로 그길로 그 어려 운 경전을 내던져버리고 선禪 의 길에 들어 선지식善H識을 찾아 나섰다 그는 이곳 저곳을 떠돌다 마침내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막상 이곳으로 와보니 엉망이었다 정화 바람에 당우는 퇴락 하고 연료 대용으로 절간 이곳 저곳은 허물어져 있었다 정말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그렇다고 사전寺舊한 쫴기라도 있 나 모질게 서원을 세웠다 절 간판을 준비하던 날 어떤 늙은 스님이 녹 슬고 날이 무딘 칼을 하나 들고 꿈 속에 나타났다 그리곤 그걸 툭 내던지며 말했다 이것도 잘 벼리고 갈면 쓸 만할 거라고 이상한 일이 었다 절을 보수하고 개간해나가던 어느 날 대마루 밑을 뒤지 다 칼 한 자루를 찾아내었다 녹이 슬고 날이 형편없이 무딘 것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옛날 왜병이 침입했을 때 그들이 던져놓고 간 것이거나 아니면 그들과 싸우다 간 선승 들이 남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 칼을 갈았다 그 칼이 들어앉을 방도 하나 지었다 이름도 심검당이라고 지어 간판을 내붙였다 그때부터 칼과의 싸움이 시작됐던 것이다 칼과의 싸움이 시작된 지 꼭 일 년째 되던 날 아침 그는 그 칼 날에 햇멎이 비치는 걸 보고 그 자리에서 깨쳤다 그는 그날부터 해제날이면 언제나 심검당에 대중을 상 위에서 주장자 대신 칼을 들었다 불러 법 대중아 일러라 이 도리를 알겠는가 그때마다 대중은 침묵했고 그는 그런 대중을 향해 다시 소 리쳤다 이것을 칼이라 한다면 그대는 촉鬪했을 것이요 하지 않 는다면 배背한 것인즉 대중아일러라이게 무엇이뇨 대중은 역시 침묵하고 있었다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 가 배촉관의 그 궁극적 딜레마를 깨기 위해 그건 통시간의 똥작대기요 한다든지 또 누군가가 부처가 설산에 앉아 참선을 하고 있소 한다면 그의 대답은 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단 여기만 이 그런 대답이 있을까만 지난 해 한 철 나던 절에서도 누군가 그렇게 대답하자 부처가 설산에 앉아 참선이 아니라 참회를 하고 있다산숭 은 목이 터지게 그를 부르고 설산에 꽃잎이 만발이로다 대중 아 이 이치를 알겠느냐 고 외치며 선승은 단상을 내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구 역질이 폭풍처럼 차올랐다 어디서나 들어보는 말 떠돌다 다 시 돌아와보면 이번에도 주장자나 칼은 단상을 치고 있었고 알겠느냐고 했고 일러라 했고 이르다 보면 그는 또 그 장검으 로 단상을 내려치며 뜻모를 소리를 외쳐대고 있었다 부처는 어미의 자궁 속에서 철모르게 웃고 있고 제비새끼 한 마리 허공을 헤집네 돌아 나오다보면 뜻 모를 분노가 일고 그 분노를 삭이고 다 시 찾아들면 여기선 주장자를 들어 단상을 내려치고 이리로 오면 주장자 대신 장검을 내려치고 그 옛날 고숭들이 그때그 때 방편으로 내뱉은 구전된 사어와 사행의 변형이 여전히 날 뛰고 그러니 어찌 침묵하지 않을 수 있고 뜻 있는 도반에겐 회의의 그늘이 늘어가지 않을 수 있으랴 그렇기에 명증 같은 도반이 나왔고 그 시퍼런 장검은 기어이 피를 먹어버린 것이 었다 어쩌면 이것은 화두의 막막함에서 오는 수좌가 가질 수 있 는 원초적인 회의일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내가 너무 스승이 주장하는 그 세계에 젖어 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명증 의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느켜가기 시작했던 것은 바로 이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론 명증의 손목을 자를 만한 법력이 진정 방장에게 있었 을런지도 모르지만 아니 있다고 하자 그러나 정녕 그의 행동 이 깨침에 의하여 관조되어진 경지인가 하는 점이었다 물론 그는 선사로서 대중에게 한 찰나 법의 모습을 보여준 것에 지 나지 않았을런지도 모르지만 명증의 손목을 자르는 순간 정 녕 알음알이로 인해 생겨난 생각이란 놈이 없었을까 하는 점 이었다 거기에 이러 이러 해야 한다는 생각이란 놈이 없이 오로지적멸만이 존재했다면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만약 그렇 지 않다면 진실로 그 법을 보이는 자세가 개념을 초월했고 대 럽을 넘어선 경지일까 하는 점이었다 비록 그가 한꺼번에 이 루어져 깨쳤다고는 하나 무시 이래의 습기가 남았다면 그도 역시 범부임에 분명한데 만약 그렇다면 그는 어린 아이에 불 과한 것이었다 법을 묻다 손목이 잘린 수좌보다 조금 자란 어 린 아이에 불과하다는 말이었다 어린 아이가 어른이나 들 수 있는 칼을 들 수는 없는 것처럼 그리고 단박에 어른이 될 수 도 없는 것처럼 깨침을 얻었다고 하나 점차 훈화薰化하여 공 이 이루어져 성자의 모태가 오래 오래 길러져야만 성인이 되 는 것이요 그렇지 않는 한 그는 아직도 무시의 습기가 남은 범인인 것이었다 범인인 이상 그 속에 응크리고 있는 지성이 라고 하는 분별작용이 언제나 개입되기 마련일 테고 개입되는 이상 그 나름대로 강한 체럼의 결과로서 얻어진 법의 모습을 내보이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지혜의 표현은 그 표현되는 순간에 모든 생명과 만물이 함 께 어울리는 것 그럴 때 그 결과 현실논리와 단절되는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사량분별이나 논리 추리 같은 것으로 그 본체 를 세울 수 없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선의 종지라 할 수 있는 세존염화의 본뜻이 바로 그것이었다 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敎外理傳 不立丈字 直 指人心 見性成佛 그대로의 세계 이치를 잴 수도 없고 글자로 표현할 수도 없는 세계 그렇게 인위적인 일체의 형식을 배제 하는 세계가 이 세계인데 방장은 칼을 들었다 그렇다면 정녕 방장은 깨쳤던 것일까 방장이 만약 깨치지 못했다면 그의 행위는 어디까지나 위선 이다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해 옛 조사들이 행한 그대로의 흉내 나 남의 대덕법을 그대로 둔 사명理命한 행동의 산물이 분명 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대중에게 려을 보이기 위해 허구를 짬과 동시에 다시 그는 허구를 칼질하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만약에 그가 스스로 참구하여 얻은 법의 모습이 그런 모습 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 순간 남의 대덕법을 흉내내고 있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칼질을 서슴지 않는 위선자라는 말이 었다 바꾸어 말한다면 비록 그가 깨쳤다고 하나 그 길에 정 定과 혜慧가 없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요 광狂 증일 뿐이라는 말이었다 그랬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의 가슴 속에 응크리 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거짓과 위선 한꺼번에 깨달았다고 하 여 부처가 된 것처럼 칼질을 서슴지 않는 그 교만한 광증 그 것을 제거하는데 법의 참모습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거짓과 위선이 곧 거울 위에 덮인 때요 그 렇기에 아버지는 한순간 흰 염소의 터럭에서 본질을 보았으나 그 보았음을 훈화하기 위하여 공을 이루어 성자의 모태를 기 르기 위하여 떠나갔던 것이다 바로 명증을 칼질한 방장의 행 위는 내 아버지가 흰 염소의 터럭 위에 색칠하던 그 검은 색이 었던 것이다 본질은 그 아래 있었다그것을 제거함으로써 나는 본질에 다가갈 수 있었다 그것의 제거 작업 그것은 오로지 행위 행 위에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그때까지도 나는 막연히 그런 생각 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은사의 가르침과 방장의 주 장을 하나 하나 반추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괴상하게 생긴 걸승 하나가 절로 찾 아들었다 떠리는 봉두난발이고 옷은 완전히 거지 차림인데 그를 본 주지 스님이 죽었다 깨어난 사람 대하듯 그렇게 반가 워 할 수가 없었다 대중들이 쑥덕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그 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부처 그림이나 그려주는 금어金 魚라고 하였다금어면 금어지 홴 수선일까 했는데 그날 밤이 었다 한식경이나 되었을까밖이 하도 소란스럽기에 나가보았더 니 낮에 본 그 금어라는 자가 법당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한 순간 휘황한 불및이 시퍼런 칼날 위에서 섬광처럼 부서졌다 그것은 사나운 바람처럼 들이닥친 늙은 사내의 눈에서 뿜어나 는 정기와 한데 어울려 곧바로 탱화를 향하여 나아갔다 인자 하게 웃고 앉은 부처의 목이 칼날을 맞고 찢어졌다 이어 칼날 이 부처의 가슴을 몇 차례 헤집었다 휘황한 불빛이 피처럼 엉겨들었다 그 속으로 영문을 모르고 쳐다보고 있던 대중들이 뒤늦게 그를 잡았 다 그때까지도 그는 베어져 나간 부처의 목을 밟고 선 채 껄 껄거리며 웃고 있었다 여전히 그의 손에는 시퍼런 칼이 들려 있었고 불빛은 그 칼날 끝에 끈질기게 매달려 길길거렸다 이내 대중들이 그를 잡아 끌었다 늙은 사내는 대중들에게 끌려 나오면서도 계속해서 웃었다 그는 개끌리듯 끌려 나오 다가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나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그 와중에도 한 순간 멍청하게 눈을 크게 뜨는 것 같더니 이내 알 듯 모를 듯한 조소를 입가에 띄웠다 그 조소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 았다 그를 절에서 쫓아내고는 대중들은 너나 없이 그에 관해 한 마디씩을 했다 들어보니 그는 보통 금어가 아니었던 모양이 었다 언젠가 문창 어느 절에 간 일이 있었다네 그런데 거기서 그놈의 늙은 거지 중을 만나고 말았지 뭔가 가는 날이 장날이 라고 막 문을 들어섰는데 절간은 난리가 난 게야 허기사 그때 쯤 나도 소문은 듣고 알고 있었지 요즘 들어 늙은 거지 중 하 나가 절을 돌며 부처를 칼질하고 있다는 법당은 온통 찢어진 탱화로 어지러졌고 도반들에 의해 그 늙은 중은 피를 흘리며 들려 나오는데 나중에 알아보았더니 한순간이었다는 게야 막 불공을 마치고 대중들이 밖으로 나 왔는데 술병을 든 늙은 거지 하나가 껄껄거리며 들이닥치더니 성큼 신발 신은 채로 법당으로 들어가더라는 게야 사람들이 멍청하게 그를 바라보았는데 술병을 첵 집어던지더니 품에서 시퍼런 칼을 빼어 다짜고짜 부처들을 향해 달려들더라는 거 지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정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 군 그는 다름 아닌 그 소문 속의 괴승이었고 또 당대에 소문 난 금어승이었어 저도 언젠가 그 양반을 보긴 했습니다만 그런데 왜 절을 돌며 그렇게 칼질을 하는 것인지 누군가 이렇게 묻자 늙은 스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야 뻔한 것이지 네 금어가 부처에게 칼질할 때야 뭐 별다른 이유가 있겠나 오 로지 부처가 부처 같잖아 보일 때겠지 아마도 그는 젊었을 때 이 절 저 절 다니며 시줏물을 얻어 먹고 많은 탱화를 그렸던 모양이야 그런데 이제 일가를 이루 고 보니 그 옛날 제가 그린 부처들이 기가 막혔던 게지 그런 말을 듣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그날 밤 도저히 잠을 이 룰 수가 없었다 나를 쳐다보았을 때 보였던 그 이상스러운 조 소 그 조소가 웬일인지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 는 그때 그에게 무엇을 얻고자 아니 확인하고자 해서 그를 찾 아나섰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를 찾아 나섰다 그가 북정산 기슭에 움막을 치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찾아 나섰을 때는 해가 거의 뉘엿뉘엿 질 무 렵이었다 그를 찾아가는 길은 소문만큼이나 그렇게 수월치가 않았다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가 나는 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저 길 좀 물을까요 그러슈 소를 몰고 가던 농부 하나가 걸음을 멈추었다 마흔이 횔씬 넘었을 나이였다 혹시 이 부근에 정선거사라는 탱화 그리는 스님이 한 분 살고 있는 움막이 있다는데 모르시겠는지요 정선거사요 네 농부가 뭔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산기슭으로 돌아섰다 저 산 어디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다는 소린 얼핏 들은 것 같 긴 한데 아참 저기 저 산기슭에 움막 하나 보이지유 사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더니 울묵줄묵한 밭쫴기들 너머로 지지한 잡풀이 난 산기슭 아래 다 허물어져가는 움막 이 하나 보였다 저길 가서 한 번 물어 보슈혹시 알고 있을지 모르니 아 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허청거리며 발걸음을 옮겨 놓 았다 밭쫴기들이 층을 이룬 이쪽 밑은 제법 새파랗게 자라난 벼들이 이른 가을볕에 익어가고 있었다 농부 사내의 말투로 봐선 거기가 정선인가 뭔가 하는 금어 가 살고 있는 곳인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점차 논들이 밀려나면서 밭들이 나타났다 산기슭에 불을 놓아 밭을 일군 곳이어서인지 유달리 흙에서 붉은 색이 돌았고 밭둑을 밟아도 푸석푸석 먼지가 일었다 움막은 밭이 끝날 즈음에 나름대로 터를 닦아 그 위에 잠기 듯 서 있었다 밭둑을 돌아 움막 입구로 다가가다가 나는 움찔 걸음을 멈추었다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찌르는데 움막 한 쪽으 로 쳐진 빨래줄에 길고 횐 물체가 꾸물꾸물 꿈틀거리며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래 찌그러진 세수대야엔 분명히 그 것의 껍질일 것 같은 물체가 아무렇게나 담겨 있었다 누가 설 명하지 않아도 이 집이 뱀을 잡는 땅군 움막이라는 것은 금방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움막 앞에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 은 풍로 위에는 검댕이가 시커옇게 낀 양은솥이 김을 퐁기고 있었다 나는 움막 앞에서 잠시 서성거리다가 목청을 뽑았다 실례합시다 안쎄선 얼른 기척이 없었다 주인 있습니까 나는 다시 목청을 뽑았다 그러자 안에서 무슨 소리인가 들 렸다 뒤이어 움막의 거적문이 열리는 것 같더니 사내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한눈에도 땅꾼 같아 보였다 머리는 봉두난발 이고 때 절고 헐떨어진 옷이며 가시덩굴처럼 아무떻게나 뒤엉 킨 수염이며 그는 나오다 말고 이쪽을 발견하곤 의아하게 쳐 다보았다 누구시오 아 네말을 좀 물을까 해서요 이제 서른이 넘었을 사내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나를 쏘아보 았다 저 흑시 탱화 그리는 정선스님이란 분을 알고 계신가 해서 요 정선 네 요 아래서 물었더니 여길 가보라고 해서 사내가 무엇을 한참 생각하는 것 같더니 모르것소그런 사람은 그래요 요 위에 부처 얼굴 그리는 거러지는 하나 있소만 그 양반 은 중이 아니고 부처 얼굴 그리는 거러지요 그렇소 네 맞습니다 바로 그 스님입니다 서 사내가 의아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청 그 양반은 스님이 아니라니께 아무튼 그분 계신 데를 좀 가르쳐 주십시오 가 사내가 별일도 다 있다는 듯이 나를 아래 위로 훌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잠깐 기다리슈 마침 나가려던 참이니 사내가 움막으로 들어가버리고 나자 나는 이마의 땀을 흠치 싯 며 맞은 편 산등성이를 옳어 보았다 골이 깊어서인지 깊은 정 적이 감돌고 있었다 막 계곡을 훌고 짙푸른 녹색의 산등성이 를 스쳐가는 검은 구름장 때문일까 갖가지의 빛깔과 소리를 감추었을 산둥성이를 바라보다 말고 나는 거적을 들치고 나오 는 사내를 돌아보았다 그는 어느 새 푸대 하나를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고 손에는 집게가 하나 들려 있었다 사쌔는 말없이 움막을 벗어나 산그림자가 드리운 계곡을 향 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얼마 가지 않아 계곡이 나타났다 계곡물이 거칠었다 어디 인가들 선가 폭포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조금만 계곡을 타고 을 하나가 라가면 호를 이룬 폭포가 있을 것 같았다 계곡은 화전밭이 즐 머리는 봉두난발 비한 산기슭을 딱 잘라버리고 물러나듯 물줄기를 흘리면서 산 렇게나 뒤엉 중턱으로 뻗어올라 있었다 바람결에 나부끼는 잡초더미가 잘 파 리아하게 쳐 려나간 암초더미를 따라가면서 제법 어우러져 있었다 그 개울을 건너 뛰어 한참을 기어올라서야 앞서 걷던 사내 가 뒤를 돌아보았다 근데 그 거진 왜 찾으시오 그는 뱀 잡는 집게로 풀잎을 툭툭 치며 물었다 네 뭐 좀 알아 볼 게 있어서요 나와는 꽤 절친한 사이라오자주 같이 뱀을 잡으러 다니니 까 아마 지금 집에 있을 거외다 산등성이를 올라 저쪽 능선 쪽으로 한참을 다시 걸었다 힘 이 들고 숨이 찼지만 바람이 상쾌했다 이마의 땀을 닦으며 계 속 나아갔다 그가 기거하고 있다는 움막은 그 사내를 따라 한 두어 번쯤 쉬어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개울물이 쏟아져 내리는 골 미창을 살짝 비켜 앉은 산등성이 언덕받이에 그의 움막은 있 었던 것이다 주위엔 억새풀이 자우룩했고 지지한 관목숲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새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요란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가 기거하고 있다는 움막은 움막이 아니었다 움막이라기보다는 암자에 가까웠다 산중턱 을 깎아 제대로 기둥을 세우고 토벽을 치고 굴피를 입힌 거기 다 토담도 제대로 쌓아 올린 암자같은 움막이었다 그 늙은 거지스님은 마침 풍로에다 멧비둘기를 굽고 있던 중이었다 시커먼 얼굴이나 봉두난발인 머리나 가시처럼 엉 킨 희끗희끗한 수염이나 그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연기를 내며 익어가는 멧비둘기에 침을 삼키며 앉은 정선거 사를 향해 사내가 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바로 저 양반이 정선인가 하는 사람이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눈부신 듯 바라보았다 사내가 언덕을 올라 움막으로 다가가며 그를 향해 아는 체 를 했다 도사님안녕하셨슈 그제야 그가 고개를 돌렸다 어천 일이디야요즘은 뜸하더니만 뭐 하시는 거여유 응 멧비둘기 하나가 떨어져 있길래 구워 먹을려구지놈이 제몸 공양하것다구 여기까지 와서 떨어졌는데 그냥 보낼 수가 있어야지 도사님두근디 손님이 찾아왔는디 손님 늙은 금어는 그제야 나를 돌아보았다 누구디야 II 나는 두 손을 합장하고 허리를 굽혔다 머리를 조아리는 내 1 얼굴을 향해 그의 눈길이 칼끝처럼 다가왔다 그는 나의 행색 料 을 일별한 다음 왜 그러느냐는 대꾸도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 다 그것뿐이었다 그는 이제 알맞게 구워진 멧비둘기를 들어 올렸고 그것을 후후 불어가며 맛나게 씹기 시작했다 제대로 익었는디자네도 한 쪽 할껴 뱀 잡는 사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샅렉롱 딱라I I 도사님이나 많이 드슈 그려 그럼 나중에 갈 때 용신님이나 몇 마리 꺼내 놓고 가 게 그러지유 뱀잡는 사내가 사라져버리고 나서도 그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비둘기 고기를 맛나게 씹었다그리고는 잠시 후 풍로 를 들고 일어나더니 움막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참 별스 럽긴 별스런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쭈뻣거려지는 게 사 실이어서 무안함이라도 이겨볼 양으로 슬며시 움막 앞으로 다 가들며 입을 열었다 IWLIJ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움막이었다 네 침을 상키며 앉은 정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선거 사람이오 신 듯 바라보았다 다가가며 그흐 향해 아느 채 그러자 안에서 이내 걸걸한 목소리가 청기듯 터져나왔다 이놈아들어오든지 말든지 니 마음대로 해라 그제야 나는 움막 안으로 들어섰다 움막 안은 온통 술냄새와 비린내로 꽉 차 있었다 문짝 틈새 로 흘러든 한 줄기 햇살이 아니었다면 굴 속이나 다름없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에 술을 들고 있는 괴승 정선의 그림자 가 얼핏 흔들렸다 상 위에는 방금 구운 비둘기 고기와 뱀 고 기가 뒤엉켜 올려져 있었다 벌컥거리던 술단지를 내려놓고 비둘기 고기를 입 속쎄 우물거리다가 뼈를 발라내는 입가에서 침이 튀었다 정말 별 미친 놈 다 보겠비 나는 말없이 정선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정선은 계속 술단 지를 입 속으로 처박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 말고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이거 정말 내가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닐까 금어도 중은 중임 에 분명하건만 이게 무슨 꼴인가 술에 비둘기 고기 그것도 모자라 뱀 고기라니 그래 이놈아 말을 해보아 뭔 할 짓이 없어 이 거지행자를 찾아다니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술단지를 내려놓고 이제는 뱀고기를 씹고 있던 정선이 눈길을 돌렸다 부정 탈까 겁이 나 금토 뿌리고 탱화나 그렸을 네놈이 그 래 뭔 부정을 못 타 이 거지를 찾아다니느냔 말이야 내게 배울 건 없어 일찍이 돌아가는 게 나을 게야 배울려 면 이런 것뿐이니까 정선이 말을 끝내고 몸을 돌렸다 그는 이내 벽으로 돌려놓 았던 탱화 한 점을 끌어 당기더니 집어들어선 내 앞으로 팩 내 던졌다 자 보아이것이 그대가 원하는 그림인지 나는 앞에 떨어진 그림을 멀거니 내려다 보앗다 아마도 그 는 내가 소문을 듣고 그림을 배우러 온 얼치기 금어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게 무언가 나는 내 눈을 의심하였다 내 눈에 들어온 그림 그것은 부 처의 모습이 아니라 발가벗은 억인의 퐁만한 나신이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정선을 쳐다보았다 정선이 술을 들이키고는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것뿐인 게야 그런데 배울 게 뭐 있겠누 일찍이 돌 아가는 게 낫지 허허허 나는 눈을 감으며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그 옛날 횐 염소의 몸뚱이에 검은 색칠을 하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모습이 오래 도록 눈가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길로 말없이 돌아온 나는 며칠을 두문불출하다가 가까스 로 평상심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채 한 달이 지났을까 하루는 절 내가 어수선하더니 대응전 한 쪽이 비워지고 거기 에다 열 폭이나 되는 탱화가 들어찼다 그것은 십우도十쑤圖 란 그림이었다본질의 현현顯現을 소에 비유하여 열 단계로 그려놓은 그림이었다 한 사내가 소를 찾아 산으로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찾아 돌아와 저잣거리로 나아가는 과정이 열 폭으 로 그려져 있었는데 보통 솜씨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 기야 본존을 모시는 대웅전 한 쪽을 비웠을 때야 그게 보통 탱 화이겠는가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탱화는 바로 정선거사의 움막에 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었다 정선거사가 어디로인가 떠나면서 그 움막을 불태워버렸는데 사람들이 가보니 이 탱화가 들어앉 은 곳만 불에 타지 않고 그대로 있더라는 것이었다 이내 벽으트 돌려 그날 밤 나는 방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스님 금어가 부처를 일으키기 위하여 지해의 사다리를 타 고 오른다면 이는 돈오돈수입니까 돈오점수입니까 무방無方이다 무방이라면 곧 부처라는 말씀이온데 그떻다면 돈오점수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돈오돈수와 그렇다면 가서 칼을 들어보아라 칼을 들고 그 그림 요에 서보란 말이다 십우도 앞에 말씀입니까 그렇다 네가 그것을 찢을 수 있다면 돈오점수요 찢을 수 없다면 돈오돈수다물러가라 방을 나오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도 닦을 게 남아 있다면 돈오점수요 그 자체 법신이라 면 돈오돈수다 그렇다면 그것은 더 닦을 게 없는 법신 바로 그 자체란 말인가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보면 내가 찢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 것은 어차피 지해의 사다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무 엇인가 이치로 깨달아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는 이도 있을 것 이고 단박 깨쳐 그 자신 법신의 경지에 오르는 이도 있는 것이 라면 앞서의 것은 돈오점수요 뒤의 것은 돈오돈수일 것이다 앞서의 것은 깨달음이요 뒤의 것을 깨침이라고 할 때 분명히 돈오점수는 깨친 후에도 계속해서 닦아나가야 함은 사실이요 돈오돈수는 깨치는 즉시 더 닦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되는데 문제는 단박 깨치기까지 이세상에 지해의 사다리를 타고 이 루어지지 않은 게 어디 있을 것이냐가 아닌가 바로 저 그림 또한 알음알이의 정보를 통해서 생겨난 명상名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돌아오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고 보라지 내 그것을 찢어버리고 말테니 그러나 어인 일인가 그것이 아니었다 삭도칼을 들고 들어 선 나는 그만 장엄하게 펼쳐진 십우도 앞에서 떨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칼을 들고 다가들면 다가들수록 그 그림은 장엄한 모습으로 꿈틀꿈틀 살 아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악물고 아무리 찢어야 한다 하고 부르짖으며 다가들어 보았지만 나는 도저히 그것을 찢을 픽 지해의 싸 수가 없었다 점수입니마 다시 몇날 몇일 곡기를 끊고 두문불출이 시작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장엄하게 살아 일어나던 십우도 명증의 팔을 내려치딪 방장 그떻다면 정녕 진리란 경작하는 것이 아니라 깨쳐버리는 것 1란 말인가 그럴 리가 있나 그렇다면 쌔가 칼을 들었을 때 그때 방장은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그 역시 본질의 모습을 보일 것인 가 그가 깨친 사람이라면 더 닦을 것이 없는 돈오돈수의 경 지라면 당연히 그러한 경지를 내게 보여줄 것이 아닌가 그렇 기에 그가 명증의 팔을 잘랐던 것이라면 그것이 법의 모습이 라면 그것을 내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내 가 십우도 앞에 섰을 때처럼 그를 베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아 닌가 그때 밝혀지지 않겠는가 바로 그때내가 십우도에서 보 았던 그 장엄한 모습처럼 그때 무엇이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대중 처소로 가보니 그때까지 도 명증에 관한 얘기들이 나돌고 있었다 하기야 명증의 사건 은 나뿐만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었다 아무리 무감각하고 비정한 것이 승객이라고 하지만 그런 엄청 난 광경을 목도하고 말았으니 그러고 보면 열반이라는 궁극 바로 저 그림 아니굿 생겨난 명상名相이 적인 세계를 얻어야 하는 수도승에겐 수도의 자세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것이었다 그들의 말을 듣다가 방으로 돌아와 누우면 다가들수록 꿈틀 꿈틀 살아나던 십우도와 피를 물고 바닥으로 떨어지던 명증의 손목 그리고 방장의 칼날과 그들을 사이에 두고 논쟁을 일삼 던 도반들의 고함소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방장의 칼질을 되려 칼질하는 쪽은 바로 또 하나의 나 임에 분명하였고 그에 맞서는 쪽은 방장을 지향하는 쪽임에 분명하였다 이보시오 수좌양반 그래서 약간 깨달았다 하여 교만을 일 삼는다는 거요 수좌양반도 봤을 거요 장검에 떨어져 나가던 팔을 그것이 광증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소 그것은 광증이 아니라 법을 보인 선각자의 자비였을 것이 오 좋소그렇다고 합시다 법을 보인 선각자의 자비가 아니라 바로 법 그 자체라고 합시다 그러나 깨달은 후에도 수행을 위 해 정定과 혜慧의 두 문이 있소 정이란 인연을 멈추는 공 덕 즉 그 공덕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적연하여 변함이 없는 것 을 말함이요 혜라는 것은 관조의 공덕으로 말미암아 분별하 는 시시비비의 앎이 없는 경지를 말함일진데 그러나 당신도 보았다시피 방장은 칼질했소깨친 그 자리 에서 부처가 되었다고 단언하면서 일상일여E常如 몽교일 여뿡覺一如 오매일여舊緯如에 들어 제8 미세망념微細妄 念까지 다 없어졌다고 단언하면서 부처님도 깨치고 난 뒤에 그 전이나 다름없이 한결같이 닦음에 게으르지 않았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오 점진적이 아닌 급진적 수증론 修證論 은 거짓일 뿐이라는 종밀宗密의 신랄한 비판이 눈앞 인데 계속해서 그 마음을 다스리고 바람부는 망념을 다스려야 할 사람이 그리하여 무위에 올라야 그것이 비로소 궁극적 경 지일진대 그는 약간 깨쳤다 하여 교만을 일삼았다 이 말이 오 이보시오 교만이라니요 도대체 스님은 지금 어디 있는데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오 그런 말씀을 하고 있는 스님 자신을 한번 생각해 보시오왜 진리를 체달體達하여 열반의 대경지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 을 살면서 부질없는 지해와 그로 인한 분별망심으로 중생입을 소즌1燒盡하고 저샤먼 학갸 때딛인 챠요 이보시오 흘연히 한꺼번에 이루었다고는 하나 그 얻어진 경계에 집착하지 말라고 당신들이 업신여기며 지해종도라고 몰았던 종조는 경계하고 있소 오랜 윤회로 인하여 다생의 습 기가 깊으므로 한꺼번에 깨쳐 마음에 바람이 멎은 것 같지만 여전히 물결은 일고 있다고 하여 깨친 사람의 교만을 나무라 고 있다 이 말이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그들의 논쟁을 생각하다가 눈을 감 으면 어머니를 죽이고 바위 뒤를 돌아나가던 그 잿빛 승복자 락이 보이고 맨들맨들한 민머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내 허공을 가르던 노사의 시퍼런 칼날로 뒤바뀌었고 뒤이어 잘려나간 손목을 내려다 보는 명증의 처참한 얼굴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누구에겐가 쫓겨 천 길 알 수 없는 낭떠 러지 앞에 나는 서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한 발도 나갈 수 없었다 돌아서야만 했다 그러나 돌아서보면 방장의 시퍼런 칼날이 나를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방장은 그렇게 칼을 겨눈 채 나를 향해 언제나 소리치 고 있었다 일러라 이 도리를 알겠느냐 잠을 깨고 일어나면 나는 심검당 그 수많은 대중 사이를 비 집고 나아가는 것이 명증이 아니라 나인 것을 보곤 하였다 그 리고 나는 그에게 법을 손바닥에 놓으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방장이 잡은 칼을 도로 빼앗아 들고 있었다 나의 손에 서 일어나는 칼날 그리고 방장의 몸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칼 날 나의 온몸은 식은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그리고 옛날에 검은 염소를 만들어가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진리는 경작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문득 깨달아버리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실로 그때까지도 아니었다 방장을 향해 겠다고 결심했던 건 진정 그때까지도 아니었다 내가 일어섰던 것은 바로 그 일이 있은 후 홀연히 절을 떠났 던 명증이 다시 돌아오고 나서부터였다 돌아온 그는 이미 그 옛날의 명증은 아니었다 물론 그는 한 쪽 손목이 잘린 모습이 었으나 이상하게도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랐지만 승복을 입은 채 그는 글을 쓰는 사 람으로 변질되어 있었고 그것도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자연히 글쟁이가 되어 돌아온 그를 향해 말들이 많았다 말 이 많지 않을 리 없었다 어쩌다 시를 쓰는 사람만 보아도 그 가 아무리 초현실적인 입장에서 무위자연을 노래한다 하더라 도 그 짓 자체를 이미 깨달은 자의 표현이 아니고 몽롱한 자의 기술로 보는 절간에서 그의 그런 행위가 먹혀들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뻔뻔하게 대중의 그런 시선 같은 건 아랑곳없 이 글만을 쓰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늙은 주지는 모른 체 하 는 것 같았고 그러자 뒷방에서는 그에 대한 비판이 노골적으 로 가중되었다 명증이라든가 명등이라든가 그 사람 그거 영 못쓰겠더만 난 체하고 설쳐대다가 덜렁 팔 하나를 잃고서는 뭔 억하심인 지 찾아들어서는 이제는 글을 쓴다니 그것도 선시나 시가 아 닌 순 거짓부리인 소설을 쓴다니 이거야 원 우선 중놈이 글을 쓴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야 어떻게 해서 소설이란 소짜도 모르는 자가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그것부터가 이상하거든 또 그런 자가 소설을 쓰면 제 대로나 쓰겠어 참하디참한 정은수좌까지 병들여 놓고 말이 야 그려 그 작자나 그에 물이 든 정은수좌나 글을 쓰려면 하 산을 할 일이지 왜 다시 돌아와 여기서 눈치 봐가며 그 짓거리 를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시 그것도 모르는 말씀이네 팔을 잘리기 전에도 주지와는 무 슨 꿍꿍이 속이 있는 것인지 산을 내려가기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또한 한두 번이던가 사람이 사람 같아야지 저렇게 점잖게 내숭을 떨다가도 정작 나갈 때가 되면 다신 주지조차도 안 볼 것처럼 하고 나가는 것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곁에 앉았던 도반 하나가 불끈 하고 나섰다 안 볼 것처럼 굴면 제깐 자식이 글 쓰는 게 무슨 큰 벼슬이 나 한 줄 아는 겐가 지팟 게 뭔데 어디 이 도량이 제깐놈 글 쓰라고 있는 겐가 주지스님도 그렇지 도량에 허튼 나뭇잎 굴 러다니는 걸 못 보는 양반이 그깐 게 뭔 대수라고 떠받들긴 떠 받드는가 그 양반 화가 나면 무섭다가도 또 빌어들면 그것이 불쌍해 서 그냥 그러려니 하는 모양입디다 그 제자에 그 스승이라더니 주지스님 그렇게 안 봤더니 이 거 형편없는 사이비 아닌가 인전수좌 거 말조심하시오 사이비라니 말이면 다 말인줄 아시오 사이비 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던 스님이 찔끔하는 눈치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쪽 방 구석에 나무젓가락처럼 비쩍 마른 마흔쯤 되어 보이는 스님 하나가 도끼눈을 하고 있었다 그 스 님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곁의 늙은 스님네가 화제 를 돌렸다 그래 그건 그렇고 대관절 그 자가 그러면서 글싱기를 고집 하는 이유가 뭐라든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누군가 물어봤답니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하는 말이 그럼 왜 당신은 공부를 하고 있소 그 러드라나 뭐라나 듣고 있던 스님의 입에서 스님답지 않게 욕설이 터져나왔 다 아니 그 오두방정할 작자가 그러게나 말입니다 참으로 시건방진 자식일세하라는 공부는 않고 글쓰는 걸 불법에다 비유하다니 그러고보니 그 작자가 또 무슨 거짓부 렁을 하려고 미리 초를 치나 본데 초를 치다니요 아 생각해 봐그게 어디 보통 거짓말쟁이야 허기야소설이란 게 본시 거짓말 아닙니까 그래서가 아니라 전번에 누가 그러는데 어째서 소설 나부 랭이냐니까 그러더랍니다 제 에미는 본시 농사꾼이었는데 하 루는 시집간 누이가 소박을 맞고 되돌아왔더라지 윌니까 그래서 완고한 아버지는 돌아온 누이를 보고는 죽어도 시집에서 죽 으라며 그냥 시집으로 누이를 돌려보냈다는데 그 길로 누이는 시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도회지로 나가 술집 작부가 되었더랍 니다 흥참지독하게 통속하구만 아무튼 누이는 술집 작부가 된 지 이태가 못 되어 죽었는 데 아버지와 함께 누이를 찾아갔을 땐 이미 누이는 사창가 골 목 구석방 한 구석에 창병에 걸린 채 약을 먹고 죽어 있더랍니 다 정말 누가 소설 쓰는 사람 아니랠까봐 곁에서 누군가도 또 이죽거렸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일찍 죽은 어머니 대신 자신을 키워준 누이여서인지 그 죽음을 보는 순간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더 랍니다 그 후 아버지가 죽었고 그는 불가에 들어왔다는데 손 목마저 그떻게 되고보니 그 옛날 누이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 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그 이야길 끄적거리다보니 그게 바 로 글을 싱게 되었다는 겁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일세일전에 오대산으로 간 전유수 좌가 하는 말을 빌리면 그렇지 않더라만 그 양반은 뭐랬게 제 애비는 본시가 고길 잡는 어부였다는데 어느 여름날 풍 랑을 만나 죽는 바람에 그 길로 중이 되었다는 거지요 억울하 게 빠져 죽은 아버지의 생전이 너무 눈물 겨워 그걸 생각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노라고 하더라 는 겁니다 에이구 내사 모르겠다 무슨 소리들을 하는 겐지 지레 짐 작으로 살에 살을 붙여 헛소문을 퍼뜨리려는 우리들이나 필시 거짓부렁이나 쓰고 앉았을 그 작자나 모든 연을 끊고 오 직 화두를 공고히 하여 견성해야 할 자들이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명증의 얼굴을 떠올리고만 있었 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조참이 끝나고 방장스님 방으로 갔다가 나는 뜻밖에 도 그 소문의 실체를 만났다 아니 그를 실제로 만난 게 아니 라 방장이 보다가 아무렇게나 밀어놓은 신문 쪽지에서 그를 보았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모습을 실제 로 대한 것이 아니라 나는 생각지도 않게 신문 쪽지에서 그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신문은 철이 지난 것이었다 서울의 모 절에서 발행되는 주 간 신문이었는데 왜 철 지난 신문이 방장스님 머리맡에 있게 되었는지 그 연유는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뒤늦게야 그걸 발 견한 방장이 보다가 한 쪽으로 밀어놓았던 모양이었다 무심코 신문 위로 눈을 주던 순간 나의 눈이 신문의 어느 한 구석에 붙박혔다 반명함판만한 사진이 눈 속에 들어왔는데 어쩐지 눈에 익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신문지를 더 가까이 당 겨 눈앞으로 가져오자 그제야 그 얼굴이 명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것은 틀림없는 명증이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 순간 좀 솔깃한 기분이 되어 신문 위로 시선을 곧추세웠다 우선 문화면 한 쪽으로 터를 낸 곳에 연재소설이란 글자가 띄었고 그 아래 허구학개론虛構學槪論이라는 소설 제목으 로서는 좀 난해하기까지 한 제목이 보였다 명증明證이란 이 름은 그 아래 옆으로 비켜나 있는 모습이었다 연재는 이제 7 회째인 듯 글머리 바로 위에 7회란 글자가 보였고 그의 약력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글을 첫줄부터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떤 알 수 없는 미지에 대한 아련한 서글픔 같은 걸 함께 느끼면서 왜 내가 그때 그런 느낌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 글의 쌔 용은 이러한 것이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언제나 생각나는 일이긴 합니 다만 아마도 빗속에는 자신이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 는 속성이 내재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이 울고 번개가 치 고 전기마저 나가버리면 후두둑거리는 빗소리 속으로 슬며 시 일어나 앉는 것이 있게 마련이지요 할 일 없는 사람들에 게 언제나 슬며시 다가오는 성욕 같은 설레임과는 좀 다른 것일 갭니다 그것이 희망에 가까운 놈이라면 언제나 잘 말 려 다려 옷을 입었을 때처럼 슬며시 즐겁다가도 젖은 속옷 을 걸쳤을 때처럼 그런 느낌의 것이 바로 과거란 놈의 속성 인 것이지요 물론 인간마다 그러한 느낌의 폭은 다를 것입 니다만 더욱이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마른 속옷을 걸쳤을 때의 느낌보다는 오히려 젖은 옷을 걸쳤을 때의 느낌 같은 과거의 기억이 더 생생하게 생각나게 마련이거든요 물론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같은 날은 제 의 식 역시 젖은 옷을 입게 마련이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가 젖은 옷을 입고 나서겠다고 하면 나는 어썰수없이 막무가내 로 따라나서야 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좀전에 말했습니다만 전기도 나갔고 하늘은 울고 빗소리 는 내 영혼의 끝자락까지 젖은 옷을 입히고 그러면 가부좌 나 틀고 화두를 잡고 싶겠으며 그떻게 엄숙한 인간이 한 순 간이나마 또 되고 싶겠습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비가 와 그저 권태스러울 때는 딱딱학 고 엄숙한 것보다는 그저 벌렁 누워서는 지나간 기억이나 들축내며 때로는 푸시시 웃어도 보고 때로는 쓰디쓴 입맛을 다셔라도 보는 게 제일로 상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고보니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별스런 기억은 아닙니 다만 그러나 오늘은 비가 오는 날이니까 마른 옷을 걸쳤을 때처럼 슬며시 웃음이나 나오는 그런 기억은 아니지요 아마도 국민학교 사학년 때였을 것입니다 그때 한 동리 에서 같이 자란 현금이란 내 또래의 계집애가 하나 있었는 데 그 아이는 참으로 이상한 아이였습니다 그때 그니의 집은 우리집과는 좀 떨어진 개울 건너에 살 았는데 가메구 집 정달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정달구는 힘이 장사여서 정쌍짐이라면 인근 부 락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그만큼 짐을 져도 남보다 곱으로 졌고 도리깨질을 해도 쌍도리깨질을 해서 그 래 붙여진 별명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딸애와 나는 한반이었는데 현금이란 애는 참으 로 종잡을 수가 없는 애였습니다 그니와 나와는 자주 같이 어울렸는데 그니는 정신없이 놀다가도 가끔씩 쨍하게 뭐든 지 따지며 토라지길 좋아했고 그리고 학교에서 시험만 치고 나면 눈꼬리에 눈물방울을 그렁그렁 매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애는 나와는 달리 공부도 잘 했고 언제나 반에서 첫째를 남에게 넘겨주지 않는 애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처 음엔 첫째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그렇게 시험만 치고 나 면 눈물방울을 그렁그렁 매다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었습니 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 큰 눈에 눈물꼬릴 주렁주렁 매단 채 교무 실 담임 선생님 책상 앞에서 무언가 따지고 있는 그 애를 보 았습니다 그 애의 손에는 우리들이 나누어 받은 점수가 매 겨진 시험지가 들려 있었는데 그는 시험지 답안 어딘가를 손끝으로 가리키며 선생님께 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상님예 우째 이 답이 틀린다는 깁니꺼 선생님이 또냐는 얼굴로 그니를 치떠보았습니다 그럼 이 선생님이 또 틀렸다는 말이로구나 지는 틀린다고 생각 안 합니더 그니의 대답은 아주 야무졌습니다 허기사 지금 생각해보면 객관식 문제가 아니고 주관식 문 제는 사실 채점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해석이 배면에 숨어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더욱이 그 문제가 주관적인 어떤 답 을 요구하는 것이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커지니까 말입니 다 그렇기에 그 선생님에게는 틀린 답이었다 하더라도 그 애가 쓸 땐 어떤 확신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으므로 당연히 있을 수도 있는 항의이기도 했습니다 미소 지으며 이렇게 선생님은 나중 그애를 향해 빙그레 말했습니다 것이었슘L1 현금아 그러면 말이다 집에 가서 왜 그 문제가 틀렸는 언제나 반사 지 네 스스로 알아보려마 그태서 나츠 처 그니는 그런 선생님을 여전히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았 고 나는 허 거참 하는 선생님의 낭꽤한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니는 다시는 나와는 상대도 안 할 것처럼 썽하게 요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나는 못나게도 그니의 눈치나 흘끔거리 며 그니의 뒤를 말없이 따라 걷고만 있었습니다 그니는 집이 얼추 가까워질 때까지도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버린 후에도 영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 니다 아마도 그때 그니는 무식한 부모들 곁에서 호롱불을 밤새 도록 켜놓고 어떻게 해서 그 답이 틀렸는지 그걸 알아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애는 그렇게 며칠을 닳고 나서야 예전의 그니로 돌아와 나를 향해 눗곤 했는데 그러나 그애의 그런 병이 온전히 나 았길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커다란 오산임에 분 명하였습니다 그애는 나와 어울려 정작은 웃으며 밀깜부기도 따먹고 강 가에라도 나가 강기슭 밭언저리에 핀 갈대꽃도 꺾다가도 강 가 밭언덕에 누워 들려오는 통통배 소리라도 들을라치면 이 상하게 민감한 반응을 쌔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노래도 부를 줄 모르는 내가 들려오는 통통배 소 리를 들으며 하늘에는 두둥실 흰 구름 떠가고 강 위에는 통통배 흘러갑니다 통통통 통통통 끝없이 끝없이 흘러갑니다 그렇게 되지도 않은 노래를 부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애는 그 노랫소리를 듣다 말고 벌떡 일어나 나를 노려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야 머슴아야 니는 우애 저 배가 그런 소릴 낸다고 생리 하노 와 그러나 니는 저 배가 통통통 그렇게 소리를 낸다믄서 그래 빙신 빙신 되뇌는 나의 소리를 들으며 그니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하얗게 눈을 흘기며 입을 비쭉였습니다 그람 니는 저 소리가 우째 들린다 말고 빙신아자세히 들봐라 우째 통통거리는지 나는 못나게도 그니의 말대로 통통선 발동소리에 귀를 기 울였습니다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내 귀에는 여전히 그 소리는 통통 거리는 소리로 들려오고 있었고 그러면 이번엔 내가 그니를 향해 하얗게 눈을 치떴습니다 정말 빙신 꼴값 하네 그럼 니 귀에는 우짜 들린다 말 고 이 빙신아내 귀에는 퉁퉁퉁으로 들린다 우짤래 뭐 퉁퉁퉁 그래 나는 그제야 더는 물러날 수 없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 어쩌고 하는 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일등하면 하는 거지 뭐 반감이 그 순간 터져나와버린 것이었습니다 이 빙시이 가이나가 진짜 웃기네 야 가이나야 우째 저 소리가 퉁퉁퉁으로 들린단 말고 그래 우애 니는 통통통으로 들린다 말고 이 가이나야 생각해봐라 그리이끼네 배 이름도 통퉁선 I이가안 그러믄 와 통통선이고 小판 L 그라지만도 내 귀에는 퉁퉁퉁으로 들린다 1러보며 그낱 그것이 화근이 되어 그 애는 다시 나를 안 볼 것처럼 또 쨍하니 앞서 가버렸습니다 그애는 아마 집으로 가 그 무 식한 아버지에게 통통선이 어떻게 소리를 내냐고 아마도 끈 질기게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하였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게 화근이 되어 우리는 그 후 꼬박 며칠을 말도 다 생Z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물론 나중에 화해가 되어 서로 다시 가까워지긴 했지만 그러나 그애의 그 이상스런 고집은 언제나 날 당혹하게 만 들었습니다 여름날 나뭇가지에서 울고 있는 매미의 울음소 리를 듣다가도 우리는 서로의 느낌이 엇갈려 싸웠고 밤에 우는 부엉이 울음소리에도 곧잘 그떻게 다투고 싸뒀던 것입 니다 나는 매양 매미니까 맴맴 운다는 식이었고 부엉이니 까 그 울음소리가 부엉부엉 들린다는 식이었는데 그니는 그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혼연히 어떤 합일점을 찾 지 못한 채 커갔습니다 나중 나이를 먹고 서로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결 혼이라는 그물로 그 합일점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러나 이상 스럽게도 그녀와 나는 빗나가고만 있었습니다 계속 그의 첫 번째 글은 여기서 끝나 있었다 그 글을 읽고 났을 때의 심정은 매우 미묘한 것이었다 나는 무언가 모르게 그의 가슴 속에 숨어 있는 칼날 하나를 흠쳐보 는 기분이었는데 그 기분은 내가 처음에 느꼈던 서글픔을 한 순간에 앗아가버렸다 그가 무슨 소릴 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 고 있는 것인지 몰랐지만 내가 정작으로 놀랐던 것은 그 글을 읽고 난 어느 날이었다 그렇잖아도 그 글을 읽고 난 뒤로 한 번 만나봤으면 했었던 게 사실이었는데 그날 나는 선실을 나와 할 일 없이 산문 앞으 로 나갔다가 거기서 그를 보고 만 것이었다 그는 산문에 기대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그에 관해 잊고 있던 터라 나는 그가 쓴 글들을 문득 떠올리며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동화같은 글을 읽고 난 선입관 때문일까 아니 손목이 떨어지던 그날의 환영 때문일까 비록 이제와 거짓을 짜고 있 었지만 손목이 찰릴 만큼 인생을 피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 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지대방에서 나도는 그런 소문과는 판이 하게 다른 그 무엇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가까이에서 보는 그의 모습은 그 동안에 내가 생각하 고 있었던 느낌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우선 가까이에서 보 는 그의 얼굴 생김새부터가 너무나 투명해 보여서 살아오면서 그렇게 깨끗한 얼굴은 보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저 번에도 퍼뜩 느끼긴 했던 것이지만 그는 알맞은 키와 훤한 이 마와 검고 뭉툭한 눈썹 좀 몽상적인 듯 하면서도 날카로움을 함께 지닌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곧고 바르게 우뚝 선 콧날 찬 냉기 때문인지 좀 푸르긴 하지만 부드럽게 그어진 입 술그 전체를 싸고 도는 청결한 멎 정녕 어디를 잘라 보 아도 진실해 보이는 얼굴임에 분명했고 남들의 말처럼 거짓부 렁이나 거친 말로 방장스님과 싸움박질이나 하고 팔을 잘린 채 문을 박찰 사람 같지가 않았다 하기야 남의 말이란 게 하나같이 그떻게 터무니없는 게 아 니었던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가 잠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꼭이나 그때를 기다린 사람처럼 무슨 말인가를 해야 될 것만 같아서 시침을 뚝 떼고 해를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해가 참 곱구만요 그는 말이 없었다 잠시 이쪽을 그대로 돌아보다가 해를 향 해 눈을 옮겨갔다 그때 나는 볼 수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엷 게 찢어지고 거기서 홀러나오는 웃음기를 그 옷음기가 그냥 웃음기가 아니고 비웃음이라는 느낌이 들자 나는 한 순간 눈 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뒤로 가져가 운득 아니 숭목이 뒷짐을 지며 능청스런 눈빛으로 해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침묵이 흐르는 동안에도 여전히 그 는 그 웃음을 문 것 같았고 꼭 이떻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작하지 말아 이녀석 내가 네놈의 속을 모를 줄 알아 네 놈의 호기심은 그냥 호기심으로 끝나는 게 좋을 것이야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뒷짐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억지로라도 무슨 말인가를 이제는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 다 참으로 해가 곱다는 것은 어찌 생각해보면 적절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꽃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이상하 게 그 꽃을 비추고 키우는 해가 곱다는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꽃을 피게 하는 햇살이 그떻게 곱지 않고서야 어찌 그렇게 아 름다운 꽃을 피워놓을 수 있을까 하고 나는 어떻게 말을 해놓고서야 아차했다 지금 내가 무슨 소 릴 하고 있는가 그러나 이상했다 그가 여전히 그 웃음기가 밴 눈으로 나를 힐끗 돌아보는 것 같더니 이내 입을 열고 있었 던 것이다 그건 해가 고와서가 아니지 연緣이 고왔을 뿐이지 꽃과 해의 인연이 그렇게 고왔던 게지 꽃과 해의 인연이라 나는 그의 말을 되뇌며 어느덧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그 다운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순간이었지만 피 를 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와 방장과의 피할 수 없는 무서운 인연 그리고 내가 지금껏 맺어온 인연들 그것이 저 해와 꽃 의 인연 같은 것이었다면 오늘날까지 내가 보아왔던 꽃은 거 짓일 수도 있었고 진실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은 바로 악연은 거짓의 꽃잎을 피우고 선연은 그대로 진실의 꽃잎을 피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 말은 또 진실은 거짓에 의하억 외면당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에 의하여 외면당한다는 말이기도 한 것이었다 거짓과 진실의 인연들 그것만큼 악연도 없으면서 그만큼 떨쳐버릴 수 없는 인연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진실이 거짓이 있음으 로 인하여 꽃처럼 고와지고 높은 향기를 낼 수 있는 것이라면 정말 인연 없는 것은 무명 그것일 뿐이었다 저 붉은 햇살 한 뺌도 들지 않는 어둠 어떠한 꽃도 피울 수 없는 어둠뿐인 세 계 그것이 무명의 세계요 그 무명의 세계에서 일을 피우고 있는 것이 거짓이라는 악연일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처음 보는 그에게 처음부터 스스로 말을 건냈 던 것은 명증의 그러한 면을 꿰뚫어 보고자 했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요 편협된 것이었다 할지라도 사실 무명만큼 무서운 건 없을 것이었다 어둠을 어 둠이게 하는 것도 오직 무명이요 이건 그르고 이건 옳다고 하 는 사량분별도 무명에서 나온 무지요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도 그 무지에서 오는 것일 거였다 그래서 승객은 오직 그 미 迷에서 떠나 대오각성하여 일체를 바로 보려 하고 문사文士 는 거짓을 짜고 갈겨 또 하나의 세계를 얻어냄으로써 진실을 진실되게 하는 것일 터였다 해를 곱다고 보는 그것 역시도 무 지에서 온 것이고 보면 어쩌면 인간은 무지의 덩어리요 그리 하여 거짓과 진실 사이를 터무니없이 오르내리는 승객일지도 몰랐다 해와 꽃의 인연처럼 그와 나의 인연은 어떤 것인지 모르지 만 그날 이후 나와 그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는 가까이 할수록 뒷방에서 수군대는 소문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이따금씩 조용히 내 방으로 와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가거나 아니면 내가 그의 방으로 찾아들곤 하였다 그의 방에는 글 쓰는 사람답게 원고지가 이리저리 널렸고 소줏병이 윔굴었으며 심하면 그 소줏병 속에 소변이라도 본 것인지 지 린내가 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내가 그에게 가지고 있던 어떤 의혹을 입으로 내뱉아 본 적은 없었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 랐지만 그는 앞서 내가 읽었던 그런 류의 글을 다시 발표하는 것 같았고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글 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오히려 그에 대한 의흑 을 풀려고 경망스럽게 섣불리 관심이라도 보이다가는 행여 그 가 또 무슨 이유에서건 글을 쓰지 않을지 모른다는 조바심에 쌓여가기 시작했고 나는 그때부터 그의 눈치나 흘끔거리며 그 의 글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의 글을 두 번째 읽었던 것은 처음 글을 읽고 난 지 꼭 한 달 만이었다 그는 역시 그녀의 얘기를 쓰고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읽었던 글과 곧바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후두두 아직도 빗발은 여전합니다 언제 이 비가 그치려는 것일까요 벌써 공양간에서 우기에 묻힌 불냄새가 콧속으로 느켜져 옵니다 또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싶어집니다죽고죽이고웃고 울고 그리고 그리워하고 서러워하고 또 미워하고 증오하 JI 왜 내려쏟아지는 빗발을 보고 있으면 내 지나간 한 세월 들이 골방 속을 터져나와 나를 괴롭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 다 더욱이 그 어떤 기억보다도 항상 시험만 치고 나면 눈물 꼬릴 매달던 그 현금이란 계집아이 통통선이 통통 운다고 하면 저에겐 퉁퉁 운다고 우기던 그 계집아이 나중 커서는 한 사내의 가슴에 시퍼런 상처로 그의 일생을 마감했던 그 계집아이 그렇습니다 안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거 그것만큼 이 세상에서 자랑스러운 게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녀와 나 사이에 가 로놓여 있던 그 인식의 차이 내게는 통통하는 소리로 들리 고 그니에게는 퉁퉁하는 소리로 들린 그 차이를 알기 위하 억 서울로 올라가 미친 듯이 학업에 몰두했습니다 그 해답 은 무엇인가 안다는 것 속에 있었고 그렇기에 나는 닥치는 대로 내 의식의 밑바닥에 새로운 지식을 저장해갔던 것입니 다 지식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지식이 쌓여갈수 록 나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쾌락에 물들어갔고 오직 내 삶 의 문을 열어놓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는 생각까지 굳 게 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 알아야 선 구자가 될 수도 있고 혁명가가 될 수 있고 이 세상의 우뚝 선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안 다는 것은 곧 정보였습니다 그 정보로 인하여 나는 남보다 교활하게 요설 수 있었고 그렇기에 안다는 것은 때로는 나 를 나서게도 하고 관여하게도 하고 참여하게도 하고 세계 를 세우게도 하고 거짓말을 하게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 모든 것은 안다는 그것으로 시작되고 끝나고 있었습니다 알기 때문에 나는 거짓을 짤 수도 있었고 알기 때문에 진실을 찾아 나설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얼굴 위의 가면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안다는 것에 의 하여 나는 조종되고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릿속에 쌓이고 있었지만 그니와 나 사이의 그 인식의 벽을 확연히 좁힐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날도 이떻게 비가 오는 날이었을 것입니 다 내가 서울 모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내려왔을 때 그녀 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읍내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 었습니다 물론 그때 나는 그녀를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 다 때를 기다려 결흔하자던 그녀의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 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동리에는 이상한 소문이 뎔기 시작 하고 있었습니다 소문이란 본시 대부분 터무니없는 것이기 도 하지만 한마디로 그 소문은 그냥 스쳐 지나쳐버리기에는 뭔가 껄끄러운 데가 있는 소문이었습니다 소문의 내용도 매우 구체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같은 학교의 남선생과 어울려 다니는 걸 본 사람 이 있다는 것이었고 때로는 어떤 은밀한 곳에서 둘이 붙어 있는 것까지 보았다는 그런 소문이었습니다 누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참으로 심히 불쾌하고 충격적인 소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녀와 나 사이를 누군가가 시기하거나 아 니면 장난말로 시작된 헛소문이거니 일축해버렸지만 소문 의 벽이 두터워질수록 나는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 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는 얼마 멀지 않은 그녀의 자취 방으로 뛰어가는 추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 신념을 굽히지 않는 그녀의 성미를 잘 알고 있는 터라 그녀의 변질은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 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기다렸습니다그러나 주말이면 내려오던 그 띤가 어쩐 일인지 몇 주를 건너뛰고 있었습니다 나는 끈질 기게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한 너댓 주를 더 건너뛰고 나서야 집으로 내려왔 습니다 나는 이내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었고 그녀는 곧장 내가 약속한 강가 둑방으로 나왔습니다 오랫만에 보는 그녀의 얼굴은 어쩐지 전보다는 둥굴고 눈 매는 이상하게 멀어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녀의 작고 보드라운 귓바퀴에 일던 수줍음도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곁에 앉았을 땐 내 가슴은 여느 때처럼 그녀 가 풍기는 체취에 고동쳐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강바닥을 쓸고 있었고 가까이에서 갈새들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과 했습니다 얼굴이 좀 여윈 것 같군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목줄기가 참으로 희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선입관 때문인지 거기에서 나는 정결한 냄새는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난 좀 다급한 심 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왜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그녀는 조용히 고개만 가로저었습니다 눈은 강바닥에 그 대로 둔 채로였습니다 신 그럼 그녀가 터질 듯 물이 오른 잔디를 북 뜯어 입에 물었습니 다 이제 막 석양이 지고 있어서 강바닥은 그대로 금모래빛 이었습니다 바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목에 가시처럼 막혀있는 씨 말을 입 밖으로 밀어내었습니다 동리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어 물론 나도 헛소문이 란건 알지만 말이야무슨 일이 그 동안 있었던 거야 그녀가 좀 날이 선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그 소문이 어떤 성질의 것이라는 걸 알겠다는 표정으로 황급히 강바닥을 향해 시선을 돌려버렸습니다 나는 얼핏 흔들리는 그녀의 자세에서 그렇구나 무엇인가 찔리는 데가 있긴 있구나 생각하며 눈을 꽉 감았습니다 그런데 눈을 꽉 감기가 무섭게 그 옛날 자신의 주장이 옳 다고 고함칠 때처럼 갑자기 그녀의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있 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오늘 부모님들이 그런 말을 하더구먼요 이 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영수씨도 나를 의심하고 있습니꺼 의심은 무슨 그럼 지금꺼정 저를 믿었던 것처럼 저를 믿으시이소 그래 내 대답을 듣자마자 그녀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둑길을 걸어가버 렸습니다 그 옛날처럼 참으로 완강한 몸짓으로 그러나 누가 알겠습니까 사람의 마음 속을 내가 그 후 그녀의 소식을 안 것은 몇 달이 훨씬 지나서였 습니다 그녀는 이미 그렇게 믿어달라던 그날의 그녀는 아 니었습니다 몇 주일을 기다려도 그녀의 소식이 없길래 나 는 홧김에 도회지로 나아갔고 이 친구 저 친구를 만나 술이 나 마시다가 돌아와 하루는 그녀의 동생을 불러냈더니 동생 은 영 나를 바로 쳐다보지도 않으려 하면서 못 이겨 내뱉는 말은 내가 참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언니가 죽었어예며칠 전에 뭐어 아무튼 그리 아시소 이미 지나간 일입니더 나는 한동안 입을 벌리고 섰다가 가까스로 그녀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무신 소리야 언니가 죽다니 모르겠습니더 지도 언니가 죽었다는 그래 알고 있으믄 될깁니더 가볼랍니더 거만 아이끼네예 동생은 그 길로 날쌔게 몸을 돌려 왔던 길로 사라져버렸 고 나는 그저 멍하니 그녀의 뒤를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녀가 죽다니 한편은 허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눈이 뒤집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훨씬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그녀 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동생의 말 처럼 죽은 게 분명했고 그제야 나는 그녀의 죽음을 바로 알 리지 못한 그녀 동생의 저의를 짐작할 수가 있을 것 같았던 것입니다 그녀의 사건을 담당했다는 담당 경찰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파도가 밀리 는 강가 한 구석에 낯선 남자와 함께 나란히 누워 있었는데 얼마나 지독한 극약을 삼켰던지 입에서부터 가슴까지 새키 맣게 타 정말 눈뜨고는 못볼 참상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더욱이 우스웠던 것은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약속이 나 하듯 손을 깍지 낀 채 끌어안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아니 그들이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런 모습으 로 죽었는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담당 경찰의 말 을 듣기에는 결흔을 하려 했으나 남자집에서 반대를 했다는 것이고 그녀와 결혼을 못할 것 같으면 죽어버리겠다는 소리 를 남자가 했다는 것으로 보아 사랑을 이루지 못한 동반자 살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지만 어쩐지 나는 그런 소릴 들으 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그 웃음이 무엇 때문에 터져나오는 것인지 몰랐지만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오늘날까지 그녀와 짜왔던 틀 이 이제야 끝이 났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녀와 내가 어울 려 그려왔던 그 모든 것 내가 통통거린다고 하면 퉁퉁거린 다고 하던 그 모든 것 내가 검다고 하면 어디까지나 희다고 하던 그 모든 것 내가 이리로 가자고 하면 그녀는 저리로 가자고 하던 그 모든 것 이게 옳다고 하면 저것이 옳다고 하던 그 모든 것 그러나 서로는 서로의 객체라고 생각했기 에 하나가 되기만 하면 잘 풀려나갈 거라고 생각했었던 그 모든 것 내 아내가 되면 그녀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줄 것이 고 그럼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갈 것이라던 그러다보면 서로 가 하나가 되어 주객이 없는 자기동일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던 그 모든 것이 이제야 끝이 났다는 생각이었습니 다 그러나 역시 알 수 없는 건 그녀였습니다 그녀의 갑작스 런 반란이 무엇 때문인지 무엇으로 인한 것인지 내가 그 녀가 아닌 이상 그것을 확연히 알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 이곳으로 온 것이었습니다 그녀를 잃고 불면으로 밤 을 새우던 그 고통의 나날들 술과 번민 그리고 뼈저리게 스 며드는 고독과 고통 아무리 생각해봐도 풀 길 없는 그 녀의 배신과 죽음 그떻게 풀지 못한 화두話頭 를 이고 이곳으로 왔을 때 그 러나 이곳은 그런 의흑이나 풀어주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질었던 행자 생활 그리고 낮설기만 한 절 생활을 이기 고서도 여전히 그 화두를 풀지 못한 채 이제는 이렇게 팔 한 쪽마저 잃어버린 꼴이 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참 이상한 일입니다 이렇게 팔이 잘려서도 저는 깨칠 수가 없 었으니 말입니다 남들은 스승의 말 한 마디에도 하찮은 행 동거지에도 잘도 깨친다는데 나는 방장이 칼을 들어 법을 보인 그 순간에도 깨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나는 최상이 아니라 중근기中根機에도 못 미치는 최하급의 근기 를 가진 승객인가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남은 팔마저 내놓 는 한이 있더라도 용맹스레 한발짝 더 다가들지 못하고 이 떻게 잘린 팔을 덜렁거리며 스스로 위안하듯 글이나 쓰고 있겠습니까 내가 명증의 글을 읽은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가 무엇 때문에 저잣거리에 관한 글들을 그렇게 싱고 있 었는지는 몰랐지만 나는 그때 분명히 모르고 있었다 노사의 허구를 칼질하려는 그의 시퍼런 칼날을 그는 어느 날부터 그 의 글을 읽고 관심을 보이던 정은이란 젊은 수좌를 끌어들억 선 어울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눈치 챈 주지는 그들에 대해 노 골적인 진노를 멈추지 않았다 네 일찍이 매문賣文 을 일삼기 위해 허구虛構 를 짜려는 도반을 둔 적이 없다 모든 개념적 설정을 부정하는 것이 공 호의 사상을 찾는 승의 자세요 학문의 부정 또한 그러하거 늘 네놈은 또 한 번 승이 가질 본분을 망각했으니 어찌 승으 로 남을 수 있으리썩 나가거라 주지의 진노도 무리는 아니었다 선방에는 코빼기도 내비치 지 않고 꼼짝 않고 있었으니 그는 주지의 그러한 진노나 대중 의 따가운 눈총 따위에는 이제 이력이 났다는 표정이었다 분명히 그는 어젯밤에도 정은수좌가 대중의 눈치를 봐가며 썼다는 문제의 원고를 앞에 두고 있었다 정은수좌가 은밀히 써 서울의 모 잡지사에 게제토록 부쳤으나 칼질만 당하고 돌 아온 것에 정작 당사자도 아닌 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 었던 것이다 곁에서 지켜본 그가 그럴진대 당사자인 정은수 좌의 심정은 어쩔까 싶었지만 아무튼 둘 다 대단하다는 생각 이 들었다 정은수좌가 어떻게 해서 그와 어울려 그 지경이 되었는지 나로서는 잘은 모르는 일이었지만 어느 정도 알기로는 그는 이제 스물 여덟을 막 넘보는 나이였고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 도 문학청년이었다는 것 정도였다 글을 쓰면서 학생운동을 하던 그가 기관에 쫓기는 몸이 되자 숨어든 것이 절이었고 불 법을 귀 너머로 들으면서 그만 머리를 깎아버린 것이라고 하 였다 머리를 깎고 꼭 네 해그가 만행하다 돌아온 명증을 처음 만난 것은 그 해 사월이었다 그는 명증을 알기 시작하면서 묘 한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리고는 나처럼 신문에 난 그 의 글들을 읽어가면서 다시 글에 대한 애정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는 것이었다 보려는 법은 보이지 않고 그때부터 그는 명증처곱 남들이 중공부를 하고 있는 사이 소설을 상고 있었고 그런 그들을 보 며 나는 아무튼 어지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 들 같았더라면 이미 부JI러워서도 버티질 못하련만 이제는 누 가 뭐라 하든 버젓이 너는 짖어라 나는 하겠다 식이니 그 배짱 도 보통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글이란 것이 아니 좀더 고상하게 말해서 문 학이란 것이 어느 만큼 가치를 가지는 것인지 모르지만 불법 을 공부하는 사람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대중의 따가운 눈총이 나 주지의 진노까지도 아예 이제는 무시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내게 있어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노사의 진노가 있었던 날 밤 명증이 아니고 정은이 이상하게 나를 대하고 있 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주 방장이 있는 심검당에 들락거리 거나 주지실을 들락거리는 게 그에게 어떤 빌미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글쓰는 짓거리를 일거일동 관찰하여 보고하 는 사람이 바로 자신들과 가까이 지내는 내가 아닌가 하고 정 은수좌는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날 마침 내가 명증의 방으로 갔을 때 정은과 명증은 방금 전에 온 소포를 끌러보고 있었던 참이었고 뒤이어 주지스님이 그들의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누가 가서 정은이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던 일이며 다시 그 것이 되돌아 왔던 일들을 고했는지는 모르지만 둘을 향한 주 지의 노기는 대단한 것이었고 둘은 아마도 내가 일러바쳤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결코 두 사람에 대해서 주지스님 에게나 방장에게 그 사실을 고한 적이 없었다 처음엔 정말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 럴 만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를 조금만이라도 이해 한다면 그런 오해는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화가 났다 그래 끝내는 그를 불렀더니 다가와서는 노 골적인 비양기를 얼굴에 담는 것이었다 그럼 어제 큰스님에게 일러바친 게 스님이 아니란 말인가 요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무슨 소린가일러바치다니 그의 그림자가 얼핏 흔들렸다 않았다 그야 스님이 더 잘 아실 텐데요 알다니 무얼 그가 더 상대할 것 없다는 듯이 차디차게 시선을 돌려버렸 다 됐습니다 가보세요 아니정은수좌 가슴 속에서 말할 수 없는 불쾌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나의 부름에도 더 상대할 것 없다는 듯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를 불러볼까 하다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쳐 다보고만 있었다 그는 여전히 돌아볼 기색도 상대할 기색도 아니었다 나는 그런 그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섰다가 허참 하 는 기분으로 그냥 발길을 돌려 나왔다 발길을 돌려 심검당 곁을 지나다보니 자연히 명증이 생과났 다 명증이야 그런 오해를 할 사람이 아니었지만 행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지나갔던 것이다 그의 방으로 가보니 역시 그 것은 기우였다 내가 그의 방문을 밀었을 땐 그의 곁에는 그의 고뇌를 증명이나 하듯 소줏병 서너 개가 됩굴고 있었고 원고 지 파지가 방 안 가득히 널려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맑게 웃었다 나 역시 웃으며 마음을 털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정은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계속 비는 구질구질하게 내렸고 앞쪽 산등성이엔 비안개가 눈보라처럼 흐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정은이 맡았던 소임은 행자들과 함께 하는 공사供司 즉 등화燈火를 담당하는 명둥明燈이었다 그런 데 어제 주지의 진노가 있고 나서 웬일인지 그는 공양간으로 가 있었다 그것이 싫다거나 불만이 있다면 스스로 바랑을 싸 야 할 판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공양간으로 간 정은수좌가 쌀을 씻으려 소매를 걷고 우산을 받쳐든 채 수각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더욱 측은 해 보였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먼 산자락으로부터 저녁 어스 름이 깔려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나는 공양을 짓 고 있는 정은수좌에게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방문 앞에 놓였던 우산을 펼쳐 쓰고 공양간으로 갔을 땐 그 는 혼자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정은은 막 밥솥 불을 죽이고 그 불길을 국솥 아궁이로 옮기고 있었다 잠시 후 국솥에 불을 넣으며 매운 연기에 눈물을 찔끔거리 던 정은이 소매 끝으로 눈두덩이를 흠치며 나를 힐끗 돌아보 았다 어인 일이십니까 나는 풀썩 웃었다 어디 내가 못 올 데던가 볼 일 보고 얼른 나가십시오 같이 일하는 행자들 눈치가 거슬리는가 보구만 나가라면 나가십시오 뭐어 어떤가예전에 안 하던 짓거리도 아니고 하던 짓거리라도 반가울 거 하나 없습니다 정말 두 번만 눈 마주겼다간 큰일 나겠다 그제야 정은이 새삼스럽다는 듯이 내게로 얼굴을 완전히 돌 렸다 눈엔 연기가 매운지 눈물꼬리가 매달려 있었다 나는 아궁이 앞에서 나를 돌아보고 있는 그를 향해 다가갔 다 그는 다가오는 나를 보고 있다가 못믿겠다는 얼굴로 돌아 앉아 아궁이에 마른 삭정이를 분질러 넣었다 명증스님에게 스님 애길 들었습니다만은 이상하군요 스 도 뭐가 이상하느냐는 낯멎으로 내가 그의 곁에 같이 쪼그리고 앉자 그가 또 나를 못마땅한 듯이 돌아 보았다 정말 안 나가실 작정이십니까 괜찮다니까 그러네 허기사 주지스님의 총애를 알고논 있습니다만 총애라는 말에 나는 묘한 이질감을 느끼면서 어이없이 웃었 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말이 거슬렸다면 용서하십시오 용서까지야사실은 본사에서 나올 때 은사께서 이곳 방장 스님에게 서찰을 하나 써주셨다네 그걸 본 주지스님이 각별 한 애정을 느끼고 있었던지 신경을 써주었고 허지만 나 는 그것이 오히려 더 부담스럽고 어렵기딴 하다네 어디 선객 이 알음알음으로 법을 구한다던가 여기서 법을 못 보면 또 훌 쩍 떠나야 되는 게 선객의 운명인데 그래서 더 선객은 비굴해지는 게 아닐까요 말을 맺는 정은의 입가에 잠시 차디찬 조소가 흘러갔다 사실 나 역시 스승의 서찰을 받았을 땐 그런 생각이었지 그러나 그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에 받아들 수 잇었 던 것이야 스승에게서 구하지 못한 것을 여기서 구할 수 있을 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그마한 오해가 있었다면 이해를 하게사실은 두어 번 방 장을 만나 스승 얘기를 했을 뿐이고 주지 역시 그랬던 것뿐이 라네 그건 사실이었다 말이 나오다보니 어떻게 번잡해지고 있었 지만 방장이나 주지를 만났던 건 두 서너 번 정도였다 그들을 만나보면서 안 것이지만 주지 역시 스승과는 꽤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았고 대중의 살림살이를 맡은 사람으로서 부족함 이 없는 사람 같았다 경전에도 통달한 듯 했고 도력이 깊은 것 같았으며 벌써 흰 눈썹이 나기 시작한 눈에는 대승으로서 의 서원이 짙게 서리어 있었다 그러나 정은은 계속 못마땅한 얼굴로 삭정이를 분질러 넣고 만 있었다 나는 그의 못마땅한 기색이 너무 심한 게 아닐까 하면서도 그가 보다 던져 놓았을 부뚜막 위의 책으로 눈길을 주었다 책은 사륙판 크기의 얇은 시집 같았는데 얼른 제호를 보니 보들레르 시선집이었다 역시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경전을 품에 끼고 있는 사이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 고 공양을 지으면서도 보들레르의 시집이라니 나는 무심히 책을 향해 손을 뻗쳤다 그가 삭정이를 분질러 아궁이로 밀어넣다 말고 홈칫 놀라는 것 같았다 나는 시침을 뚝 떼고 그 책을 집어 들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반응이 너 무 민감했다 싶었던지 이내 아궁이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 다 나는 그의 민감한 반응이 여전히 신경을 긁어왔지만 우선 책의 첫장부터 넘겨보았다 첫장을 넘기자마자 본장이 시작되 는 겉장에 그가 어디서 베껴놓은 것 같은 글귀들이 눈에 들어 왔다 선禪이란 무엇인가 바람이 모습을 보이기 위해 정지한다면 그건 바람이 아니 다 그것이 바로 선이다 선은 결코 자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본질이 있다 그러나 나는 지식이라는 사다리를 이용하여 오도悟道라 는 고기를 잡는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서는 문학은 선의 자 기표현일 뿐이다 자기표현의 끝인 공성이 개입될 수 없는 무위자연의 심리 적 상태 순수한 마음의 자동현상 탐미와 논리를 떠나버린 사고의 구슬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灰住 而生其心의 상태 그 무방의 경지 그것이 곧 선의 끝인 오도의 경지일 것이 다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불 속 거미집엔 고기 가 차를 달이네 그들에게 있어 선이란 무엇인가 연교대사 오늘과 내일 조주선사 뜰 앞의 잣나무 운문선사 햇속에 산을 본다 광인선사 장안은 동쪽 낙양은 서쪽 향촌선사 오래 앉아 있으니 피곤하구나 아아 소리 없는 소리여 별 없는 태양이여 슬픈 즐거움이여 풍요한 사막이여 선공부를 시작할 때는 산은 산이었다 그러나 선을 이해 했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산은 산이 아니었다 그리고 선을 깨닫자 다시 산이었다 그물은 고기를 잡는 데 쓰인다 그떻다면 고기를 잠도록 하고 그 그물은 잊게 하여라 생과 사를 배우기 전에 먼저 죽는 것을 배우는 것이 나에 게는 급선무이다 나는 그렇게 결심하며 지금이 그 순간임 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어렵고 큰 과업인가 쌔 앞 을 가로막은 무한한 벽 내 힘으로 오르기에는 전혀 불가능 한 절벽이 있지 않은가 내 힘으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할 이 거대한 절벽 오늘은 더욱더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내 의무 는 이 절벽을 넘거나 흑은 뚫고서라도 통과하는 것이다 눈 속에서 수미산이 우뚝 솟아 오르고 귓 속에선 큰 바다 물굽이 친다 동자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문 밖에선 우뢰소리 떨고 있구나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불꽃 속 거미집에 고기가 차 달인다 뉘 있어 이집 소식 알기나 할까 횐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다리 위에서 암꽹이의 머리를 가진 이슬이 좌우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앙드레 부루통 불 난 숲 속에서 사자들은 시원했다 로제 비트락 나는 읽던 글을 멈추고 책장을 덮었다 자기의 단상이 몇 군 데 있는 것도 같았지만 대부분은 읽어본 글들이었다 선객이 면서도 글을 쓴다는 사람이 이런 시들을 멀리 할 리 없었을 테 고 그래서 아낄 만한 내용이었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불만 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좋은 책이군 내가 좀 심드렁을 가장하고 부뚜막 위로 책을 놓으며 말하 자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나 는 그것이 같은 도반으로서의 자격지심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 하며 싱겁게 웃고 말았다 오늘은 비가 오니 명증스님 방에 있겠군 자네 그에게로 가 보았나 여전히 그는 말이 없었다 언찮은 기색을 하고 대꾸도 없이 삭정이를 소리나게 분지르고만 있었다 나는 그제야 기껏 묻 는다는 게 그의 심사를 더 긁어놓았다는 걸 알았다 그가 영 입을 열 기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심사가 뒤틀려왔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딴짓이나 하다가 이런 벌 정도 받는 게 뭐 그리 자존심 상하는 것이라고 아니 지 아니지 그는 지금 자신을 이 꼴로 만들어버린 것이 나라 고 오헬하고 있는 것이지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전히 돌아 앉은 채 삭정이만 분지르고 있었다 정은수좌 일어나려다 말고 나는 그만 뒤틀려오는 심사를 울훠 내뱉았 다 정은수좌 아직도 뭔가를 오해하고 있나 그제야 정은의 그림자가 흔들리면서 퉁명스런 말소리가 입 에서 터져나왔다 오해한 거 없습니다 오해한 거 없다면 이거 보게정은수좌 나는 다시 그의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몸을 곧추세우 고 아궁이 쪽으로 더 몸을 돌려 앉았다 오해를 할 것을 하게 어떻게 내가 그런 고자질을 할 수 있 겠나 내 나이가 몇인가 정은수좌의 눈에 내가 그 정도로밖에 안 비쳤다면심히 섭섭하구만 정은수좌도 알겠지만 난 믿고 있다네명증스님까지 날 오 해하고 있지 않다는 걸 정은수좌는 날 몰라서 오해할지 모르 지만 말이야 정은은 말이 없었다 나는 일어났다 그리곤 말없이 돌아섰다 내가 결백하면 그 만이지 이따위 말들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한 가닥 후회기 가슴 사이를 비집고 들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 그럴 만도 하리라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불법 이란 게 무엇인가 이런 모든 연을 끊고 진리의 당체를 보려던 게 사문의 다함이 아니던가 그래서 한 쪽은 적멸寂減을 그 리고 한 쪽은 무방無方을 보려 한다우리는 같은 요람 속에 서 흔들리고 있지만 그러나 그 경지가 그리 쉬운 것이던가 그 러니 이런 오해가 아닌 오해도 생겨나는 것을 갑자기 밀려오는 서글픔을 씹으며 막 문을 나서려는데 뒤에 서 그가 나를 돌아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디 를까 이내 그의 음성이 들려왔다 스님 나는 천천히 그를 향해 돌아섰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좀전의 못 마땅한 기운에서 많이 돌아선 행동거지였다 나는 그냥 희미하게 웃어 주었다 그리고 그대로 발길을 돌 리고 말았다 층분히 그의 심중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길로 방으로 돌아온 나는 자리를 펴고 누웠다 모든 것이 귀찮았다 명증에게 가볼까도 생각했으나 어쩐지 내키지가 않 았다 내가 그에게서 읽었던 글들도 그리고 내 지나온 과거사 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누워 있었다 그냥 누워 있고 싶을 뿐이었다 이 내 완전한 정적이 왔고 나는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땐 어느 새 새벽이었다 나는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낮을 붉히던 정은수좌의 얼굴에 어느 새 환한 웃음이 홀러가고 있었다 둘은 산으로 올랐다 산으로 오르며 나는 원고에 관해 묻고 싶었으나 정은은 아 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마음에 가득한 의혹을 뒤로 한 채 이번엔 명증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정은수좌는 그의 걱정을 나타내었다 큰 일입니다무슨 생각에선지 그냥 멍청히 잡지사에서 돌 아온 내 원고만 내려다 보고 있으니 정은수좌 원고를 예 왜 나도 그 점이 이상했지만 그 원고에 뭐이상한 것이라도 있었나 글쎄요 별다른 게 뭐 있겠습니까 글이 하도 못나놔서 그 런 것이겠지요 설마그건 것 같진 않던데 사실은 원고를 잡지사에서 실으려고 어떤 사람이 그 원고 를 읽으며 교정을 좀 봤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글쎄요그게 말로 하기는 좀 뭐한 것이 돼놔서 말로 하기가 뭐하다니 뭔데 그래 정은은 더 말이 없었다 이상도 하지 나는 산을 내려오면서도 계속해서 정은수좌가 한 말을 생각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주지에게 당할 것을 생각하며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내게 산을 내려오면서 정은수좌는 마무리를 하듯 이런 말을 하였다 목양스님 터무니없이 오해를 했다면 용서하십시오 사실 은 명증스님도 그러더구먼요 스님을 의심하지 말라고 저 역시 그럴 분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지만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뭐 나는 그떻게 말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산을 내려간 다면 그에게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산 에서 돌아와서도 그에게로 가지 못했다 무엇 때문인지 몰렀 다 아무튼 나는 가지 않았다 이끼 낀 석등石燈의 불이 꺼지고 밤새 울음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초저녁 구운 고구마를 몇몇 도반과 모여 앉아 식 욕에 대한 복수를 시원하게 풀어버린 걸 시기했기 때문일까 잠들기가 무섭게 배를 싸안고 일어나야만 했고 뒷간 출입을 하다가 뒤늦게 눈을 떠보니 벌써 아침 예불 시간이 다가와 있 었다 후딱 일어나 문을 열자 도량엔 스님들의 분주한 모습들 이 보였다 나는 승복을 걸치고 새벽 달멎 속으로 나섰다개울로 나가 얼굴을 씻고 돌아와 가사장삼을 걸치고 그이 앞으로 나아갔 다 부처님이시여 오온이 다 공임을 아옵고 일체가 다 고액임을 알았나이다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음을 알았나이 다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와 상과 식도 이와 같음을 알았나이다 照見五 舊皆 포 度一切若厄 色不異포 포不異色 色卽是포 호卽룻 色 受想行識 亦復如룽 나는 예불을 끝내고 선실로 들었다 가부좌를 틀고 단전에 힘을 주고 화두話頭를 끌어당겼다 바람이 부는 것인가 아니다 풍경소리가 이는 것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이다 한 순간만 내 정신이 저 물가의 수면처럼 맑아보았으면 누군가 조는 것인지 도반의 어깨에 떨어지는 죽비소리가 들 려온다 나는 방선放禪 을 알리는 죽비소리가 있을 때까지 잡다한 생각들로 눈을 감고 있다가 선실을 나왔다정녕 견성見性이 란 견성할 여지를 타고난 사람들에게나 합당한 것이었던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어쩌면 오늘이라도 천지가 터져나가 는 사자후理子呪가 터져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 리석었던가를 절감하며 나는 지그사 입술을 씹어 물고 도량으 로 나섰다 이미 날은 밝아 있었고 햇살은 축복처럼 어디에나 쏟아지고 있었다 조참朝參이 끝나고 나는 대응전大雄殿을 돌아내렸다 대웅전을 완전히 돌아내려 객실의 돌계단이 보일 때쯤 해서 야 문득 내가 왜 지금 그에게로 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 다 내가 예불을 끝낼 때까지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선 실을 나설 때까지도 그의 모습은 어디에고 보이지 않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명증明證수좌가 있는 객실로 갔을 때 그는 쌔가 생각했던 대로 어젯밤 주지스님의 계속적인 진노에 대해 몹시 언잖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문설주를 잡고 선 채 빙긋이 웃음을 물었다 어떻게 몸이 좋지 않으신가 보군요 명증이 쓸쓸하게 마주 웃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그의 앞에 앉았다 원고 뭉치는 반 정도 펼쳐진 채 눈앞에 있었다 순연한 과너음보다는 술내음이 진 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술이 취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 다 장식없는 방에 그의 인품을 시위나 하듯 헐떨어진 법복 한 벌이 벽에 달랑 걸려 있었다 법복이 어찌나 헐었는지 누덕누 덕 기운 헝겊조각이 형형색색이었다 차라리 헝겊조각을 이어 옷을 지었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가 서슴없이 자리를 잡고 앉자 그제야 명증은 계면쩍은 듯 떠리맡에 있던 원고를 앉은뱅이 책상 밑으로 슬며시 밀며 고개를 돌려 낙엽이 지고 있는 산중턱으로 눈을 주었다 나는 그의 머리맡에 있는 았은뱅이 책상 밑으로 눈길을 주었다 분 잡다한 블性이 었던가 져나가 명히 그것은 잡지사에서 되돌아온 정은수좌의 원고가 틀림 없 었다 나는 그 원고로 손을 뻗치지 않았다 그 원고는 그의 것 이 아니었지만 언젠가 그의 허락 없이 그가 한 쪽으로 델어 놓 았던 원고로 손길을 뻗치다 혼이 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를 흘끔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몸이 안 좋으시면 주지스님께 여쭈어서 약이라도 그가 계속 얼버무리는 나의 말 끝을 가로채기라도 하듯 눈 길을 돌려 나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나는 순간 가슴이 찌르르하게 내려 앉았다 순간적으로 와 닿는 그의 눈길이 어찌나 찬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는 그 러한 눈길로 나를 잠시 쏘아보다가 다시 산중턱으로 눈길을 돌리며 입술을 들썩였다 왜늙은 중놈이 또 아침예불을 안 나왔다고 아구리질이라 도 해대던가 아구리라는 말에 나는 잠시 질리면서도 그의 말을 받았다 뭐라 하기는요주지스님도 예불엔 나오지 않으신 걸요몸 이 예전 같질 않은가 봐요 명증은 그 말에 대답이 없었다 웃음기를 거두어 가버린 얼 굴은 차가왔고 나는 묘한 위기감을 동시에 절감하면서 그의 반응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산중턱에 시선을 던진 채 눈을 붙 박고만 있었다 나는 망설였다 말없는 그와 말없이 앉았자니 내 속을 오히 려 그에게 내보이는 것 같고 그대로 일어나자니 정은수좌의 원고가 아쉬웠다 어쩔까 하고 망설이고 앉았는데 그런 내 심 중을 들여다 보고 있기라도 하듯 명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목양수좌 목양수좌는 저잣거리서 대학물까지 먹었다고 했었지 무슨 소리냐는 낯멎으로 내가 그를 쳐다보자 그가 다시 산 허리로 눈을 주었다 참참 그렇지 자네는 어릴 때부터 절밥을 축낸 올깎이라고 했었지 말을 마친 그의 입에서 잠시 나로서는 이해 못할 웃음이 흘 러나왔다 허기사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에서 말일세 더욱이 좋은 결과도 얻지 못하고 난도질만 당했으니 무슨 나는 그의 심중을 송곳처럼 날카롭게 꿰뚫어 보고 있었으나 시침을 뚝 떼고 되물었다 그는 분명히 정은수좌의 말을 하고 있었다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다 알면서 웬 시침이냐는 날카 로운 눈빛이 동공 속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가슴 속에서 옳구 나 하고 펄렁 일어나던 기운이 서리를 맞은 듯 풀썩 넘어졌다 그러나 당사자도 아니고 그가 왜하는 생각과 함께 이대로 물 러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가 그 웃음을 눈꼬리로 씹어무는 것 같더니 눈을 지그시 몇 번 꽉 감았다 떴다 허기사 못 배운 건 못 배운 것이지암 아니 얼마나 심했길래 심할 정도가 아니지 나는 그가 그떻게 나오리라 예상하고 있었으면서도 짐짓 그 제야 감을 잡은 것처럼 본색을 드러내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어금니를 씹어 물며 원고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이까지 온 이 상 이제 원고를 당긴다 해도 그도 더 이상은 어쩌지 않으리라 는 배짱이었다 그는 내 생각대로 산중턱에 눈을 붙박은 채로 그대로 있었다 나는 원고를 끌어당겼다 원고지로 한 오백 장 정도는 될까 제법 두톰했는데 시커먼 철끈이 원고지 머리에 매어져 덜렁거 리고 있었고 책장은 흰 마분지로 되어 있었다 그 위에는 반야 般若 의 초상 肯像이라는 제목이 씌어져 있었는데 제목으로 만 보아서는 내용을 한 눈에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선 첫장을 필쳐 보았다 제목과 아래 글줄이 눈에 들 어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벌써 그나 정은이 그럴 만하다는 생 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내용은 둘째 치고라도 성한 곳이 별로 없다는 말이 나을 것 같았다 우선 제목 아래로 우리들의 요구를 포함한 모든 문제에 대 해 진지한 토의와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에 대해라는 구절 을 지우고 그 위에다 에 관해라고 정정해놓고 있었다 이것 이 어떤 전거典據 나 논리에 의해 증명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지운 이가 옳다고 하더라도 한자 부분에 가서는 더욱 더 많은 칼질이 눈에 띄었다 우선 둘째 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모든 것은 지마只獻로부 터 출발한다 란 글귀에서 지마의 한자는 로 고쳐져 있었 다 그 아래 줄들도 누구인가에 의해 그런 형식으로 고쳐져 있 었는데 아마도 그가 보냈던 모 잡지사로부터 그렇게 칼질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떻다면 어느 잘난 체 하는 위인이 이 원고를 받아보고 제 딴에는 교정을 본답시고 그렇게 칼질을 해놓은 것이었다 오 로지라는 뜻의 지마只麻만 하더라도 문장의 문맥상 그렇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칼질을 한 사람은 오로지 지마祖料 로 만 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허기사 그가 只로 본 것을 禍로만 봤다면 그 또한 어쩔 것인가 더욱이나 놀라운 것은 몇 장을 넘기지 않아서 다음과 같은 대목도 눈에 띄었다 그는 문장을 지어나가다가 구선지식의도求善H識度란 좀 난해한 문구를 필요에 의해 쓰고 있었는데 그 옆에다 자신 의 생각을 선지식을 구하여 시험해보고자 한다 하고 해석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교열을 본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던 것인 지 그 해석을 붉은 볼펜으로 지우고 선지식을 구하여 가르침 을 받으려는 의도라고 고쳐놓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건 어이없게도 칼질한 사람이 맞지 않는 것이었다 본구의 의도라는 뜻은 추량推量 헤아린다는 뜻이 라는 뜻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경지를 시험해보고자 하는 의도와 가르침을 받으려는 의도는 그 뜻이 다른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칼질한 그 사람이나 그떻게 알고 있는 나나 어떤 알고 있는 한정된 지식의 굴레에 묶인 결과일 지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계속해서 원고를 뒤적여 나갔다 계속 원고는 처음 볼 때와 마찬가지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나는 어쩌면 명증이 지금까지 이 원고를 앞에 하고 있었던 이 유가 이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며 그를 향해 입을 열었 다 참 어떻게 쓴 글인데 이렇게까지 난도질을 할 수 있다니 정은수좌 절망이 컸겠는데요 거기다 주지스님의 진노까지 있 었으니 명증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아니겠나 글쓰는 게 무슨 큰 죄라고 그들에게 선 이 적정寂定이라면 글 역시도 글삽는 자에겐 무방無方이요 자기표현인 것을 참 어쨌거나 자세히도 읽긴 읽은 모양입니다 자세히 읽으믄 뭐하누어느 놈인지 모르지만 그런 놈이 잡 지샤 책상머리에 앉아 교정을 제마음대로 보고 있다니 맘에 들지 않으면 그냥 반송해주면 되는 것을 뭐 내세울 게 없 어서 자신의 지식을 쁨낸 것인지 그게 제 무능을 내보이는 것 이라는 것은 모르고 명증스님의 말마따나 읽어 나갈수록 원고에 대한 칼질은 더 심해지고 있었다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말고 나는 슬며시 책 장을 덮고 말았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원고의 내용이 별 것 아닐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얼른 뒤져보아도 그는 수도승의 고뇌를 나름대로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았고 문장도 그 런대로 매끄럽고 감칠맛이 나는 것이었다 다만 그 자리에서 읽기엔 너무 많은 분량이었고 그리고 마침 어느 한순간 명증 이 심각하게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지 하고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나는 그가 오랫동안 이 원고를 앞에 두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럼 문제는 무엇일까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내가 이렇게 물었을 때 그는 고개를 끄 덕였다 그래문제는 분명히 그것이 아니야 무슨 소리신지 저 빗물이 고인 그림자를 보게 나는 그의 눈빛이 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기울어진 그의 한 쪽 어깨가 지극히 허약해 보였다 그 어깨 너머로 뜰 가에 고인 빗물에 추녀의 한 쪽 끝이 내비치고 있었다 그의 눈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 저 그림자를 보게 만약에 말일세 만약에 지금 우리가 저 그림자를 지워버리 려면 어떡해야 하는 것일까 예 나는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되물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 의 눈은 여전히 그 그림자에 붙박혀 있었다 나는 그 눈을 보 며 그가 무엇인가를 꿰뚫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문 밖에서 문 안을 향한 자신의 심성을 명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그런 깨 우침 같은 느낌이었다 그야 물론 밤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겠지그렇지 그 글쎄요 그러나 밤이 온다고 해서 저 물그림자가 지워질까 아니지 그 그림자는 언제나 거기 드리워져 있지 저 추녀가 거기 있는 이상 말하자면 비춤을 받는 대상도 비치는 대상도 모두가 일 여一如하다는 말이지 그 그렇겠지요 말하자면 저 회광반조回光返照의 경지가 그것 아니겠나 그렇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겨우 햇빛이 있 을 때 나타나는 물그림자 정도그 명암그 안과 밖그 음 과 양陽 그 현賢과 우愚 그 대립된 모든 것들하지만 웃 기는 소리지윤회輪廻는 거기서 오는 것이니까 반야심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아제 모지사바하 말하자면 가게 될 때에 가게 될 때에 반야 의 저 언덕으로 가게 될 때에 아아 다행하여라 깨달음이여 위대한 깨달음이여 뭐 이런 뜻이지 물론 이 구절의 해석은 내가 멋대로 붙여본 것이지만 왜 석존은 반야심경의 전 장을 사리자헤게 설명하면서도 이 마지막 구절만은 그대로 덮어버 렸을까 물론 그는 기대하고 있었을 터였겠지후세의 모든 사람들 이 나름대로 그 비밀스러움을 풀어주기를 말일세 결국 견성 하지 않은 이상 척도는 중생심 속에 있고 우리는 그 경지를 알 수 없을 테니까 불타는 분명히 모든 것이 그렇게 공호하다고 했네 그러 나 빌 공자를 그대로 인식하려는 사람에겐 불타의 그 세계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아니겠나공포자는 빌 공자 로 부를 때 이미 밝혀져 있는 것이지만 일자함천리一字윌千 理라 그것이 지닌 세계를 모두 알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일 세 아무리 밝혀져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그 모습의 다 는 아니란 말이지 사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우리들이 알고 있는 밝혀진 것에 대한앎은 서로의 약속이면서도 가장 불완 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일세 누군가 만약에 불가의 문자 를 몰라 반야般若 를 반약으로 옮겼다면 그것은 그가 알고 있 는 분명함일 테지만 사실은 앎의 허구성에 걸리고 있다는 말 이지 어차피 우리는 전도舊倒의 중생이라서 그럴지 모르지 만 이 말은 바로 상相 에 걸리고 있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 겠나내가 보리품堤에 걸리면 그는 보제에 걸리고 내가 사바 하몇姿討에 걸리며는 그는 사파사에 걸리고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이 원고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리고 받아드는 순간 나는 문득 내 지나온 일들이 생각 이 났었다네 아직까진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해본 적은 없지만 사실 생 각해보면 그떻게 숨길 것도 없었고 내놓을 만한 것도 없는 세 월이었는데 허나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유년의 세월 에 연연했고 그러다가 되지도 않게 저잣거리에서 글쟁이란 말 을 얻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사실 나도 이와 똑같았다네 언제 나 원고를 보내놓으면 이렇게 칼질이 되어 오기 마련이었고 잘 배운 사람들에 의해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내던져지기가 일 쑤였지 그러나 무엇일까 결국 그짓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었 던 것은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숙였다 가슴 속으로 횡행한 바람 한 줄기가 휩쓸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그것을 운명이니 숙명으로 풀이하지만 천형으 로 풀이하는 사람도 몇 있더군 그렇네 나는 그 기간이 길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느끼고 있는 것은 천형 바로 그것이었네 말을 하다보니 생각이 나네만 어디까지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 지 그때까지도 난 내 세계를 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것은 지금도 그렇네만 거짓말은 진짜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이야 눈꼽만큼 배운 지식으로 잘났음네 하는 것에 불과 할 뿐이었으니까 그러니 잘난 사람들에 의해 그 허구가 칼질 을 당할 수밖에그러나 그것도 또 아니었어 사실은 그들 역시도 기성의 잣대에 의해 나를 칼질하고 있 었더라는 걸 나중에야 난 알았으니까 말하자면 그 모두가 옛 잣대로 나를 칼질하고 있었고 내노라 하는 선지자 역시도 옛 조사들이 그때 그때 방편으로 내뱉고 행동한 것들을 인용하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말일세 자네 들어보겠나 자네도 들어 알 지는 모르겠지만 정은수좌말일세 그 사람이 글을 쓰게 된 동 다 기가 무언지 알고 있나 알고 보니 사실 그의 아버지는 저잣거리에서 유명한 소설 쟁이였더군 그는 어느 해 모 월간지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그 딴에는 힘껏 쓴 소설이 막상 발표가 되고보니 이 게 웬일인가 교정을 누가 본 것인지 작품은 엉망진창이었어 교정원이 교정시간에 바빠 교정을 볼 사이가 없었는지는 몰 라도 한 마디로 뚜쩡을 열고 보니 작품은 엉망진창이었어 한 페이지에 오자가 보통 열 개 정도가 아니었지 그것도 꼭 한자 부분에 가서 그 오자가 계속되고 있었다는 말이지 예를 들자 면 빌 허虛자를 범 호虎자로 잘못 알고 표기해 놓은 그런 것이었지 그의 아버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생각할수 록 편집자들이 괘씸했고 그리고 얼마나 창피했던지 터져나가 는 속을 삭일 수가 없었다는 거지 빌 허자를 범 호자로 써놓 은 이놈의 글을 보면서 독자들은 뭐라 할 것이고 그런 내 앞길 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면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지 그는 그만 더 못참고 살기등등하게 사무실로 밀고 들어갔다 는데 이미 그 교정을 본 아가씨는 사표를 낸 뒤였고 편집장이 란 사람이 그를 끌고 인근 술집으로 데리고 가더라는 거야 그 리곤 선생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그 미친 것이 어디다 신경 을 싱느라고 그 모양으로 교정을 본 것인지 오케이를 놓던 날 모친상을 당해 그것에게 맡겨 놓았더니 그만 하면서 싹 싹 빌더라는데 그러나 일어나는 울화를 수그러뜨릴 수가 있어 야지 편집장은 계속 빌어댔고 그럼 다음 호에라도 오자를 정 정하고 독자에게 참으로 죄송하게 됐다는 공개사과문을 몇 페 이지에 걸쳐서라도 실을 것을 주장했다네 그러나 편집장은 새파땋게 질리고만 있었고 글쎄요오자 정정도 한두 자라야 지요 한두 자라면 내가 이러겠습니까 잡지 위신도 있고 해서 잡지 위신으로 논할 것 같으면 독자들이 더 잘 알고 있 을 것 아닙니까 오히려 잘못된 건 잘못된 것이니 이런 일이 추후에는 없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도 잡지 위신 을 살리는 게 아닐까요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사장님이 워 낙 깐깐해놔서 사장이 아무리 깐깐해도 그렇지요결국 그떻게 옥신각신하다 그 선에서 일어나고 말았는데 역시 깐깐 하다는 사장은 편집장의 느낌대로 물러서질 않고 있더라는 거 야 뭐가 어째 대궁이 피도 안 마른 걸 등단부터 밀어준 게누 군데 이제와 고맙습니다 절은 못하고 오자 몇 자 생긴 것 가 지고 시비를 붙여 그 자식 어딨어 어쩌다 실수 한 번 한 것 가지고 뭐가 어째 공개사과 이 자식 이거 아직 뜨거운 꼴 못 봤구만 편집장도 그 따위로 일 처리하려거든 그만 두어버리 라구 결국 편집장까지도 둘 사이에서 견뎌나지 못하고 그만 두어버리고 말았다네 그가 사표를 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나 어떡하겠나 돌아오는 길은 그 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더라네 그래 안다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굴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 지식의 굴레 사고의 굴레 세계를 매어 놓은 굴레 그 래서 극과 극이 생기고 있었고 편협한 싸움박질이 시작되고 자신이 옳다고 부르짖고 죽고 죽이고 울고 웃고 그렇게 그 굴 레에 갇척 어느 새 하찮은 약속에 얽매여 불쌍한 가슴에 이제 는 내가 못질하고 있었다는 그떻게 가슴이 아프더라네 또 그 제야 비로소 세상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버렸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야 말하자면 자신은 분명히 그것이 굴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 세계 속에 있었고 자신의 유식을 다른 곳에 쁨내고 있었고 자신이 제일인 양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더라는 말일 세 어쨌거나 그는 그때까지도 나는 빌 허자를 범 호자로 잘못 알 만큼 무식하지도 아둔하지도 않다는 자신이 있었다네 그 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지 인간의 지식이란 안개 속 에 선 모래바닥 위의 기둥과 같은 거 아닌가 언제 어느 때 무 너져 내릴지 모르는 기둥 같은 거 어느 날 그는 문학강연회라는 델 초대되어 갔는데 거기서 매우 아는 체를 하다가 참으로 엄청난 실수를 아니 무지를 내 보이고 말았다네 그렇잖아도 그의 실력을 은근히 의심하고 있던 아래 사람들 앞에서 그는 견줄 비J 자를 이 차자로 잘못 알고는 계속 쓰고 있었는데 아래 사람은 그 자를 즉석에 서 수정했지만 그 양반은 잘못된 줄을 알면서도 이상한 오기 로 그냥 밀고 나갔더라네 무능을 내보이지 않으려는 한순간 의 자존심이 나중 그의 운명까지도 바꿔놓을 줄은 그도 그땐 몰랐었겠지 그러나 그는 어느 한순간 보고 말았어 강당 구석자리에서 자신의 강의를 듣고 있는 그 잡지사 편집장의 얼굴을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고 이미 때는 늦어 있었지 그때부터 그는 제정 신이 아니었다네 그런 글자를 혼동하고 쓸 만큼 무지한 자신 이 혐오스러웠던 것이고 그만한 사람이 그것도 모르느냐는 사 람들의 질책의 눈길과 무엇보다도 편집장의 그 써늘했던 눈빛 이 그를 미치게 했더라는 것이지 그러나 더욱이 무서웠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어 그 정도라 면 앎의 한계성에 자신의 무지를 밀어점이고 인간이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나라고 다 알 수는 없는 거 아니야 그렇게 눈 딱 감고 이겨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그건 아니었던 모 양이야 자신을 향한 혐오감은 바로 나란 인간 그러니까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되고 있더라는 말이지 어느 새 자신도 몰래 빠 져버린 지식의 굴레 저 완전한 세계로 가기 위한 하나의 사닥 다리 그러나 그 사닥다리의 리약함과 보잘것없음에 그는 치 를 떨고 있었던 것이지 그 허약함은 바로 거울 앞의 자기 자 신만의 모습이었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 그 자체가 무지 그 이 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었더라는 말이지 내 인생이 그와 다를 게 무엇이던가 내가 평소에 봐오던 낮 익은 언어들 그러나 정작 기억의 골방 속에서 끄집어 내려면 그만 희미해져버리는 그 언어들 그것이 곧 나의 모습이 아니 고 무엇이던가 그러한 자기성찰이 이제는 서서히 그 양반을 죽여가기 시작하고 있었더라네 대문호가 되어 인간을 감동시 켜보겠다던 그 용기 모르는 게 있다면 배워가면서 하지 하던 그 넉살 그 여유는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남은 것은 걸 레같은 혐오감과 지독한 자격지심뿐이더라는 말일세 그렇게 그 양반은 계속해서 미쳐갔고 어느 때부턴가 그는 방에 홀로 앉아 잘 생각은 않고 밤이 새도록 애국가를 처음부 터 끝까지 불러보기도 하고 LE을 끝까지 외워보기도 하 고 알파벳을 소문자 대문자로 처음부터 끝까지 써보기도 하 면서 그렇게 자기 인생의 저 기초적인 것을 뒤지듯이 그렇게 자신을 조명해보고 있었더라네 그러나 역시 무엇 하나 확실 온 한 것은 없었고 정작 오늘날까지 자신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그 기본적인 문자의 나열들이 아니라 그 문자로 조럽된 어떤 안개기둥 같은 것들이 자신의 집을 불안하게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만 명징하게 드러나고 있을 뿐이었으니 그러니 자 또 어 떡할 것인가 세간이 만들어 놓은 그 하찮은 지식을 박식하게 무장하고 유식함네 나는 지식인입네 거들먹거리다가 그 사건 을 계기로 문득 되돌아본 자신의 그 부끄럽기만 한 모습 그 래 이걸 어떡할 것이란 말인가 결국 출가出家였지 그 양반 은 어쩌면 출가가 자신을 구해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 허기사 모든 걸 버리고픈 생각밖에는 없었을 테니까 세속적인 모든 것 앎과 그것에 대한 욕구와 그것으로 인한 갈 등과 원망 증오 쾌락 그리고 격정들 누가 그랬던가 아는 것 으로부터의 자유가 죽음이라고 그는 여기서 잠시 말을 끝내고 입술을 지그시 씹어 물었다 한 줄기 햇살이 그의 얼굴에서 퍼득거리다가 골 깊은 음영을 남기고 이내 사라졌다 밖엔 풍경이 울고 있었다 샛바람이 불 고 있는 것인지 해는 검은 구름 속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모양 이었다 그는 잠시 후 내 얼굴을 물끄러미 한 번 돌아 보고는 다시 건너편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랬다네 그렇게 정은수좌의 아버지는 출가했었다 네 문제는 그러한 출가를 몇이나 이해할지 모르겠네만 정은 이마저 그로 인해 입산을 하고서도 이제사 제 아버지를 이해 해보기 위해 승의 몸으로 글을 쓰겠다고 나섰다면 이 얼마나 역설적인 일인가 운명적인 이끌림이라고만 하기엔 뭔가 너무 가슴 아픈 데가 있는 것이지 나는 천천히 맞은 편 산등성이에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 좀전에 공양간에서 보았던 정은의 얼굴이 눈앞을 가 려왔다 그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그도 이제 아버지의 길을 걸으면서 그 어쩔수없음에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 한 쪽이 소금에 저리 듯 싱려왔다 나는 그의 아픔이 계속 손에 잡힐 듯이 느껴져와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입을 연 것은 그 새소리가 멀어질 즈음이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가슴 아프지 않은 인 생이 어디 있으랴만 그러나 나는 진실로 그를 이해할 수가 있 을 것 같았다네 그가 세속에서 출가한 아버지를 찾아 왔을 때 그때 그의 아버지는 묵언수행 중이었다네 완전히 말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지 그러니 피는 못속인다고 제 아비처럼 문학 청년이었던 그 아들의 실 망이 오죽했겠나 산에서 내려간 그는 아버지 대신 자신이 글 을 싱기 시작했는데 어쩌면 반감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어디 반감만 가지고 글이란 게 되는 것이던가 그는 글이란 걸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천천히 아버지를 이해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한 여인과의 사랑이 깨어지면서 결국 그도 이곳으로 오고 말았다네 남들은 그가 학생운동을 하다가 기관에 쫓기는 몸이 되었고 그래 절로 숨어든 것이 머 리를 깎게 된 동기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의 출가 동기 는 바로 제 아비가 버린 이놈의 글 때문이었어 이곳으로 와 아버지가 세속에서 세워왔던 그리고 그 자신이 세워왔던 그 세속적인 언어를 성스런 언어로 전환하기 위한 몸부림 자네 도 알고 있고 지금까지 뼈저리게 느껴오고 있지 않은가 세간 의 지식 세간의 언어가 이곳에서 무슨 소용이던가 그도 그렇 게 여기서 그 세속적인 언어를 버리고 성스런 언어를 얻어내 려고 몸부림쳤다네 그러나 어떻게 그것들을 버리고 법 그 자체의 성스런 언어 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다수의 세계 속에 나의 개 체를 부정하고 또 부정하여 절대긍정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어떻게 언어를 부정하고 절대부정을 얻어 절대상징의 세계로 나아가 성스런 세계를 얻어낼 것인가 절 생활이 몸에 익으면 서 세속적인 언어가 하나 둘 해체되어감을 느껴가면서도 그러 나 참으로 까마득한 일이었지 그떻기에 한때는 말을 잃어버 리고 묵언 수좌들의 틈에 끼기도 하고 한때는 대오를 얻었다 는 대선사들의 상징적인 행동들에 절망하기도 하고 바람 때문인지 풍경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씹었다 그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기가 막힐 일인가 제 아비가 하던 세속적인 언어를 이제는 그 아들이 다시 끌어 안았다면 그것이 패배인진 모르지만 그러고보면 패배한 것이 어디 그 뿐이겠는가 그래 그래 패배한 게 어디 그뿐이겠는가 언젠가 정은이 그러더군 스님은 왜 글을 쓰십니까 그 행위가 깨달은 허구의 허구마저도 칼질하는 행위입니까 아니면 나처럼 승이 되었어 도 다시 운명적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는 그 무엇 때문인지요 그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은이 또 그러더군 무방을 믿습니까 쓰고 또 쓰고 그리고 또 그리고 그리하여 허위를 고 그 뒤에 오롯이 남을 무방의 경지를 믿습니까 십우도의 모습이 펀뜻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칼을 들고 그 그림 앞에 섰을 때 꿈틀꿈틀 살아 일어나던 그 모든 것 잠시 눈을 감았다 뜨는데 그의 말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렇다면 우린 어디에 서 있는가지해의 사다리를 통해서 무방의 경지로 간다 그렇지 말인즉슨 그런 것이지 그런 면 에서 보면 나란 인생도 한 마디로 웃기는 인생이지 자네는 내 가 신문에 발표한 몇 자 안 되는 글을 읽고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인 줄 알겠지만 그러나 그게 아니라네 이래뵈도 나는 도 회지에서 자랐고 내 할아버지는 장안에서 알아주던 법관이었 거든 하나 있는 아들이 장가를 들기가 무섭게 나 하나를 낳고 는 불의의 사고로 객사해버렸어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며느리 가 재가하면서 맡기고 간 손주를 키우면서 법관 인생을 보냈 으니까 어느 날 그는 사건 하나를 심리하고 있었는데 그만 오판으 로 인해 사형선고를 대렸다네 사형수는 끌려나가면서 재판대 밑에서 눈을 부라리고 할아버지를 향해 고함을 질렀었지 야 이놈아 내가 죄 없다는 건 하늘이 아는데 어째서 네놈은 내게 사형을 선고하느냐 무슨 근거로 네놈이 진짜 판관이라면 판 관답게 진실을 규명해야 할 것 아니냐 밑에서 조작해서 만들 어 올린 문서 하나로 나를 단죄하려들다니 그러나 할아 버지는 판례대로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불행하게도 그 자가 죽고 난 뒤에야 진범이 잡혔으니 그러나 내 할아버지는 지극히 인간적이었다네 자신의 목 소리를 잃어버리고 권위를 휘둘렀던 내 할아버지 비록 진범 이 잡힌 것은 정년을 맞고 난 뒤였지만 당신도 정은수좌의 아 버지처럼 그제야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었다는 말이지 그날부 터 할아버지는 술로 나날을 보내며 인생을 망치고 있었어 그 삐 흠 리고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언제나 나는 목이 메이고 있었 리네 고 그럴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글을 끄적거리고 있었는데 그 러나 그것으로 할아버지가 내게 준 생의 허무를 뛰어 넘을 수 없었어 결국 나는 무슨 인연인지 이곳으로 오고 말았네만 그 러나 더욱더 깊어만 가는 인생의 회의 결국 이렇게 손목 을 잘려버렸고 랄 그가 또 말을 끊으며 천천히 먼 산으로부터 시선을 걷어와 뜰가에 어우러진 화초 위로 눈을 주었다 그래처음 내가 이곳으로 와 겪은 기억들은 너무나 끔찍해 떠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그러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이가 악 물리지 이 세계는 분명히 내가 이 세상에 나서 정보를 통해 려왔다 내 거울을 더럽혔던 모든 것들을 지워버리는 결정적인 해답을 통해서 갖고 있었어 허지만 그것이 무엇이던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바로 그것 일체가 그 속에서 쓰러지고 일체가 그 속에서 일어 나는 그것이 아니던가 절어빠진 합리주의의 세계를 떠나고 논리의 단절이 가져다주는 실제적인 자유의 세계 감성이나 지성이나 미나 덕이나 추나 그런 비실제적인 것으로부터의 탈 출 뒤에 오는 그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역시 그것을 보기는 쉽 지 않았어 그것은 언제나 허구에 가려 있었고 그래서 나는 다 시 세속적인 언어를 끌어안고 그 허구 뒤에 가려진 진실을 보 려 했던 것이지 그가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꽉 씹어 물었다 그리고는 어 한순간 씹어 뱉듯이 내뱉았다 그러나 지금에 와 그것이 무슨 소용이던가그래 모두가 도 적이었던 것이지 도적 아아 언제나 나는 지상의 그림자 거두 고 은은한 방울소리 허공에다 남기며 사라지나빌어먹을 그는 마지막 말을 씹어 뱉듯이 내뱉고는 문득 하늘을 향하 여 눈을 치뜨고 고개를 들었다 정말 은은한 방울소리 남기며 사라져 버릴 듯이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나는 그제야 어금니를 꾹 씹으 며 바람 부는 뜰가에서 천천히 시선을 걷어왔다 이상하게 마 음은 가라앉아 있었고 가슴 속에선 어떤 동요도 일지 않았다 정은수좌가 그리고 그가 살아온 길이 내가 걸어온 길과 뭐 다 른 게 있으랴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 는 자주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었고 그리고 정은수좌나 그를 층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가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시견을 딛고 이 산을 올라보았던 그 모든 것 한 순간 한 순간 무지한 자신을 되돌아 볼 때마다 선명하 게 설명할 수 없는 뜻 모름의 난해함 거기로부터 오는 절벽 잗은 절망감 비합리적이고 모순과 역설로 꽉 차있는 선문답 들 언어로서 언어의 불완전성을 제거하고 자유와 독럽을 얻 기 위한 몸부림 그래서 우리들은 오로지 그 경계가 필요하다 고 생라하지 않았던가 오직 그 경계만이 어떤 형상으로도 진 리를 세울 수 없다는 그 긍지를 뛰어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 고 바로 깨친 자의 표현 즉 무방의 경지가 거기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 속에는 분명 인공성이 개입될 수 없는 무위자연의 심리 적 상태가 있을 것이고 순수한 마음의 자동현상만이 존재할 것이고 탐미와 논리를 떠난 사고의 구슬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灰住 而生其心의 상태가 존재할 뿐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 었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허구 뒤에 있었던 것 결국 그 허구 속에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무엇이던가 알면 알 수록 더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 굴레 그 지식의 굴레 그 앎의 허구성 그 허구성에 걸린 지식의 허수아비 같은 몸부림 그리고는 급기야 거기에서 오는 허망함 그러나 이제 무엇이 남았는가 오로지 그의 말처럼 자신에 대한 조명이 뒤따랐을 뿐이고 그런 자신을 구할 수 없는 자기연민이 이제는 남은 한 쪽 성한 가슴마저 침식해오고 있을 뿐이고 견성을 향한 가치 관과 사고관마저 이제는 희미해져만 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다 내가 그를 돌아 보았을 때 그는 마침 풍경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들고 있었다 정녕 안다는 게 무 엇인지 모르지만 그로 인하여 나 역시 여기 있다는 생각이 들 자 그리고 모든 인간들이 그 허구를 짜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만 허망해져버렸다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났다 진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내 아버지 그 갇힌 세월 속에서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염소의 등 허리에 그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좌절한 혁명가 그의 얼굴이 생각났다 방을 나온 나는 천천히 걸었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오고 있 쪽에서 노랫소리 같은 염불소리가 들려왔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나는 절문을 나서면서야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알았다 나도 모르게 산으로 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지지한 갈잎들이 발길에 채였다 하지만 그것이 허망하다고 오늘을 버릴 수는 없지 삼동에 일어나는 한 송이 꽃의 존제를 부인할 수 없듯이 우리가 한순간 무방의 경지를 보았다 하여 깨달았다고 하나 그렇다고 하여 변할 게 무엇이었던가 세계는 그대로인 것을 오늘도 뒷산의 달래초는 피었다 지고 앞강의 물결은 일렁이고 있는 것을 오로지 그 속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나를 이 루고 있는 당체의 모습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 좀더 용맹정진해야 할 것 같았다 오로지 나만이 고뇌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정은수좌나 명증스님이나 그리고 이 도량에 모인 여러 스님네들과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제 각기 나름대로 고뇌하고 있음을 또 한번 뼈저리게 느낀 이상 이제라도 촌음을 아켜야 할 것이었다 어느 새 가을인가 했더니 다가오는 삼동결제 이번만은 헛 되이 넘기지 않고 용맹정진하리라 또 정진하고 정진하여 조 춘에는 기필코 견성하고 말리라 신선한 저녁 공기가 나를 휘감아왔다 나뭇잎새들이 그 바 람에 전신을 흔들다 나를 휘감았고 나는 천천히 산길을 걸어 올랐다 나는 심검당이 보이는 뜰가를 거닐었다 거기서 명 증의 방은 지척이었지만 막상 다시 그를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방마다 불이 켜져 있기 때문일카 어둠은 점점 더한 밀도로 가슴에 와 이상스런 서글픔으로 쌓이고 있었다 조금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언제나 석등의 불을 바라보다 보 면 가슴 한 쪽이 아련하게 아파온다 모든 것은 제 자리 제 모 습을 지키고 있지만 나 혼자만이 그 희미한 불멎 속에 흘로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그 불멎을 의지하고 계속해서 도량 을 거닐었다 어디선가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심검당을 막 돌아 잠시 나가는데 명증수좌의 방에서 주지스 님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삼동결제에도 참석지 않았으므로 조 만간에 주지스님의 진노가 있을 줄은 알고 있었으나 이 시간 에 직접 그의 방으로 들른 걸 보면 예사륨지가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이내 주지스님의 두런거리던 소리가 어느 새 고함소리로 변해갔다 그래 결국은 그 짓거릴 그만두지 못하겠다는 게냐 2O4 백금님 화두소설 역시 주지스님의 고함소리 속에는 가득히 분노가 서려 있었 다 그가 그만두지 못하겠느냐는 건 분명히 명증이 하고 있는 작업을 두고 한 말일 것이었다 주지스님의 고함소리에 뒤이어 명증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 았다 내 그떻게 알아듣게 일렀건만 에이 이 천박한 놈 스님 듣기싫다 이놈 그래 이놈아 이 방이 어떤 방이냐 네놈 술처먹고 되지도 않은 매문을 짜라고 만들어논 방이더냐 여긴 혼자 입실하여 독참하는 선실이야 그런데 네놈이 턱하니 차지하고선 구린 내를 풍기고 법을 구하지는 못할 망정 술이나 사다 처마시고 매문을 긁적거려 스님 왜 이러십니까 저도 선객입니다 선객이라고 선실에 서 술 못 마시라는 법 있습니까 나가거라 이놈 여긴 네 사가방이 아니야 나가 이놈아 나 가 들고 있던 지꽝이로 명증스님을 내리치는 것인지 철썩철썩 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명증의 고함소리나 신 음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주지의 성질을 일쩍이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법수가 십수 년이나 넘어가는 몸을 매질하다니 허나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자 입실하여 독참을 구하는 몇 개의 선실 중에서 언젠가부터 하나를 골라 제 방으 로 아예 쓰고 있었고 대중의 눈살 같은 건 아랑곳하지도 않았 으니 언제나 그 속에서 술올 마시고 글을 쓰면서도 용맹정진 하는 도반처럼 당당했고 오히려 그런 자들을 향해 시퍼런 조 소카지 물고 있었으니 언젠가 한 번은 터져도 크게 터질 일이 었다 스님 정말 왜 이러십니까뭐 잘한 것이 있다고 잘한 거그래 이놈아내 네놈에게 못한 게 무엇이냐배은 망덕도 분수가 있지 한낱 질그릇 장사나 하며 떠돌던 네놈 애 비의 청을 거절치 못해 이만큼 길러놓았더니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죽치고 앉아 거짓을 짜 내 일찍이 모든 개념적 설 정을 부정하는 것이 공의 사상을 찾는 승의 자세요 학문의 부 정 또한 그러하다 했거늘 스님 이놈아 그래도 할 거짓말이 남았더냐 좋은 꽃놀이도 한두 번이지 그 짓거리가 꿔길래 이 도량을 업수히 여겨 그래 업수 히 여긴 게 어디 한두 번이더냐 들어을 땐 삽살개처럼 꼬리치 며 들어와 구렁이 알 품듯 세상 점잖음 다 떨다가 때만 되면 독오른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선량한 사람들의 심상을 칼질 이나 해대는 걸 내 모를 줄 알아 그래 이놈아 세 치 혀로 거 짓을 꾸며 도대체 무엇을 어쩌자는 것이냐 명증스님의 음성은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새삼스럽게 방금 주지가 하던 말을 한 번 반추해보았다 질그릇 장사나 하며 떠돌던 네놈 애비의 청을 거절치 못해 이게 무슨 소린가 한 순간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혼란이 나를 사로 잡았다 그렇다면 이내 거센 바람 한 줄기가 서늘하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 다 질그릇과 원고지가 한 덩어리가 되어 의식이 이곳 저곳에 서 마구 나윙굴기 시작했다 뒤이어 명증스님의 음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들려왔다 좀 전보다 더 화가 밴 음성이었다 스님 제가 천하 망나니 질그릇 장사치의 아들임엔 분명하 나 그것이 지금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겁니까 이런 유셀 하실 것 같았으면 그냥 질그릇쟁이나 되게 놔둘 것이지 왜 사 문을 만들어 이제는 소승교도처럼 이기적인 독각을 내세우십 니까 이 이놈 주지의 고함소리가 다시 절간 이 구석 저 구석을 쩌렁쩌렁 울렸다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솔직히 말해 스님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으십니다도대체 제게 준 것이 무엇입니까 어릴 때부터 나를 데려와 뼈가 부러 지게 나무나 해 나르게 하고 수발이나 들게 하고 언제 경줄이 나 올바르게 가르치셨습니까 이만큼 내가 글줄을 읽고 쓰게 된 것도 모두 이 짓을 해보겠다는 모진 결심 때문이 아니겠습 니까 네 이놈 방자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터진 입이라고 네 마음대로 하십시오그떻잖아도 이제 이곳을 나갈 작정 입니다 그래 이놈아 나가거라 어디 한두 번 나간 길이더냐 며을 못 봐 나갈 땐 법을 못 봐 나가고 이제는 마구니에 흘려 나가 에에이 천박한 놈 예 아예 옷을 벗을 참입니다 스님에게 있어 불법이 최상 의 길이라면 이 짓이 내게 있어 최상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놈아 언제부터 네놈이 그 짓에 미켰더냐 내 모를 줄 아 느냐 그놈의 손목아지가 잘리기 전까지 불법밖에 모르던 놈 이 아니더냐 그래도 사람이 될 줄 알았더니 에라이 밥 빌어 다 죽 쑤어 먹을 놈 노사가 차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는 것인지 장방의 그림 자가 흔들리면서 허리가 아래로 굽혀지고 있었다 이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명증은 일어난 노기를 누그러뜨릴 기세가 아니었다 이왕 속을 내보인 이상 그냥은 물러설 수 없다는 뻔뻔스러움 이 절절히 배인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역시 평소에 내가 알 고 있었던 명증이라기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목소리였고 이 중성과 변질까지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나는 사람이 달라져도 저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스님중생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결코 열반을 좇지 않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대승보살의 서원이란 차라리 저 피 안으로 자신이 못 가더라도 다른 이를 보내는 데 그 뜻이 있는 것이지요 기침을 하던 주지가 근근히 허리를 세우고 그를 노려보는 모양이었다 이 이놈 아직도 전도의 중생임을 아는 바 중생인 이상 판단의 척도는 중생심 속에 있다는 말이지요 내게 있어 글쓰는 게 화두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영원히 이것 을 잡을 것입니다 이것을 잡고 있는 한 나 역시 부처의 길에 있을 것이며 놓으면 중생의 길에 있을 것입니다 네놈의 서원이 네놈의 정신을 구하려는 자리에 있음을 내 어이 모를까 그러나 대승보살의 서원을 기만하여 자신을 합 리화하려는 네놈을 어이 용서할 수 있으랴 선이란 일체의 형 식을 배제하는 것 그대로 견성성불이요 심행처멸心行處減 의 경지가 있을 뿐인 것을 설령 문자를 세워 무방의 경지를 볼 수 있다 하나 그 역시 허망한 것 오직 진법은 고요히 마음 을 비워버리는 것에 있거늘 2D8 백금남 화두소설 노사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그의 악십는 소 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것도 허구라는 걸 모르십니까실제의 길에 서 있 는 것 같으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이론의 길에 서 있다는 것을 지성이라는 것을 지혜로 그 뜻만 둔갑시켜서는 그 힘을 빌어 사문의 눈과 귀를 속이는 순일무잡純無雜 한 위선을 말입니 다 순일무잡은 순일무잡이어야 하지요 오로지 순수한 마음의 자동현상이 아니라 그 역시 아직도 깨치지 못했다면 분별작용 의 힘을 빌렸을 뿐인 이 시대의 도깨비들일 뿐이란 것을 말입 니다 말이 끝나는가 했더니 방문이 벌려 열렸다 뒤이어 명증이 바랑을 둘러메고 뛰쳐나오는 게 보였다 그 뒤에 화난 주지의 모습이 보였는데 명증을 바라보고 선 모습이 어쩐지 허약해 보였다 명증은 신을 꿰고는 석등 곁에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잠시 걸 음을 멈추었다 나를 쳐다보는 그의 얼굴에 알다가도 모를 한 가닥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도저히 속이 떨려 그냥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몸을 움직이려는데 그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뻔뻔스런 걸음 걸이로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가 내곁을 지나치고 나서야 그의 얼굴에 스쳐가는 변화가 지독한 조소였다는 걸 았았다 한순간 검은 염소의 몸 뚱이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흰 터럭들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알고 있던 그가 정말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뒤이어 실실 웃음이 나왔다 너무 어이없다기보다는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우리 모두가 미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진실했던 그 그 감동 깊었던 글들 폐부를 찌르던 목 소리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모두 그가 짠 거짓이었다니 그것 이 설사 자기자신을 위한 방편이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저렇게 또 다른 하나의 자기를 보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나 자신이 그에게 난도질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니 그보다 자신이 짜놓은 허구에 나가떨어진 나를 향해 그는 지금 기분 좋게 웃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이상하게 화가 나기보다는 계속해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허허허 허허허 허허허 방을 나오던 주지가 그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계속 웃어젖혔다 그런 어느 한순간이었다 웃고 있는 눈가에 조금 전에 내 곁 을 지나친 명증이 그대로 절 밖으로 가고 있지 않고 느닷없이 심검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가슴이 순간 덜 컥 내려앉았다 나는 웃음을 뚝 멈추었다 가슴 속에서 칼바람 이 썽하니 불었다 어쩌려고 이미 심검당의 문은 벌컥 열리고 있었다펀듯 촛불 사이로 결가부좌하고 단아하게 앉은 방장의 모습이 보였다 명증이 바랑을 짊어진 채로 문을 벌컥 밀어붙이고 신발도 벗지 않고 마루 위로 올라섰다 방장이 무례한 그를 향해 눈을 치뜨는 것 같았고 명증의 그림자가 얼핏 흔들렸다 이윽고 명증이 무슨 생각에선지 활활 아랫도리를 벗어부쳤 다 이내 속내의가 나타나고 뼈만 남은 두 다리가 희멀겋게 나 타나는데 그가 그대로 아랫것을 드러내면서 방장을 향해 불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이 도리를 알겠는가 이번엔 방장의 그림자가 펄렁 흔들렸다 모자갈 머리를 덮는 것 접시란 음식을 먹는 그릇 거울이 란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경찰은 질서의 지땅이 방장이 란 사문의 손목을 자르는 사람 나의 심볼은 무엇이냐 나를 일깨우는 똥작대기 명증이 아랫것을 앞으로 들이민 채 고함치다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조사 이 역시 얼마나 솔직한 말이오 이 또한 깨침의 표현 이 될 수 있지 않겠소 그렇소 이젠 가보겠소 잘 있으시오 조 사이제 그대를 볼 일은 없을 것이오하하하 명증이 웃으며 돌아서는 것 같더니 바지를 추스리고 그대로 휘적휘적 흥하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여기저기 대중들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방장과 휘적휘적 걸어나가는 명증을 멍하니 번갈아 보고만 있었다 그의 행동 이 너무 돌발적이다 하는 생각은 들고 있었지만 그러나 미쳤 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신앙에 좌절해버린 도반의 아픔 같은 것이 진하게 느 껴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 면 그의 웃음소리 때문일까 오히려 방장을 향한 웃음이라기 보다는 한순간 모든 것이 지독하게 허망해져버린 것 같던 그 웃음소리 나는 허청허청 걸었다어디를 어떻게 걷고 있는 것인지 몰 랐다 나는 그냥 걷고만 있었다 무작정 걷고 있자니 한순간 그가 일전에 자신의 얘기를 하다 말고 부르짖던 소리가 생각 났다 아아 나는 언제나 허공에 은은한 방울 소리 남기며 사라지 나 그 소리를 기억하고 있자니 그의 허망한 웃음소리가 마음 에 걸려오면서 어쩌면 그는 지금 보화뽑化스님처럼 저 허공 중에 은은한 방울소릴 남기며 사라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 옛날 어머니를 죽이고 바위를 돌아나 가던 승복자락이 보이고 횐 염소를 끌고 사라지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고 그 염소를 찾아오라던 스승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지우려는 듯이 고개를 내저으며 걸었다 그러 나 그 모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다 방장을 칼질하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 칼 을 맞은 것은 명증만이 아니었다는 걸 분명히 안 것은 그때였 다 나 역시 칼을 맞고 비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디까지나 망상으로 인하여 자기 자성인 참 법신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어린 아이였다 어른과 닮았다고 해서 어른이 될 수 는 없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려면 어른 나름대로의 조건이 있 는 법이었고 그 조건에 부합하자면 속이 더 차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떻기에 명증이 칼을 맞은 채 떠나갔고 종 조宗祖인 목우자牧牛子는 돈오점수頃悟漸修를 단장斷障 의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성덕成德으로 나누어 비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장적인 비유는 해가 나타남으로써 안개나 구름이 걷힌다는 것이고 성덕적인 것은 바로 어린애가 성장하 면서 지기가 점차 세워지는 것을 말함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잠이 들기가 무섭게 나는 이상스런 꿈속으 로 빠져들었다 방문을 박차고 나와 방장의 방문을 열어젖히 고 아랫도리를 까뒤집은 채 이 도리를 알겠느냐며 소리치고 있는 것은 분명히 명증이었다 방장은 눈을 치뜬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눈멎 속에 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명증이 아랫것을 흔들며 껄껄거 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방장의 얼굴에 이윽고 예의 그 부 드러운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방장의 철벽같은 엄청난 모습은 점 차점차 그 옛날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같더니 그것은 다시 황금빛으로 멎나는 엄청난 동체의 황금 염소로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뿜어나는 광채가 얼마나 눈부셨 던지 명증이 눈을 가리며 비틀거렸다 나 또한 사나운 바람처 다 머리를 처박고 말았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한동안 꿈의 실마리가 머리속에서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어떡해서 그런 꿈이 꾸어진 것일까 도대체 꿈의 실마리를 풀 길이 없었다 날이 밝으면서 나는 소임을 끝낸 뒤 휴게를 통해 정은수좌 를 만나볼까 했으나 명증이 떠나간 후로 힘 없이 오후의 잔광 속으로 몸을 숨기곤 하던 그를 기억해내고는 곧바로 선실로 들었다 단전에 힘을 주고 척추를 폈으나 꿈속에서 본 방장의 모습과 아버지 그리고 황금 염소가 자꾸만 눈앞을 가로막았 다 어떡해야 한다는 말인가 역시 나는 칼을 들어야 한다는 말 핀가 어쩐지 지해종도라는 말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우리들은 I러니까 나나 명증이나 정은이나 지해의 사다리를 통해 완성 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돈오점수의 절대적인 미美에 빠 져 허우적거리는 교분자 속의 미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 각이 들었다 I런 우리들을 조소하는 방장의 미소 너머로 일어나던 아버 그것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것인지 자꾸만 일어나는 의 혹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다시 눈을 반개하기가 무섭게 이번엔 눈앞에 칼을 든 방장 이 나타났다 나는 안간힘을 쓰듯 어금니를 씹어 물었다 그러나 칼을 든 방장은 물러나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지금 망치고 있는 것일까 아집이 나를 망치고 있다면 아집 없는 승객이 어디 있는가 네 시가 되자 약석藥石이 나왔다잡곡밥이었다언제나 채 소류로 일관된 것이었는데 오늘따라 콩으로 만든 두부와 미역 국이 나왔다 사실은 식욕이 없었으나 아니 있다 하더라도 덜 어내는 게 원칙이었으나 무엇 때문인지 나는 탐식하고 있었 다 결과는 뻔했다 식본능에 무참히 패배당한 채 식곤증을 이 겨내지 못하고 중간에서 퇴장을 하고 말았다 지대방으로 가자 모처럼 나온 두부와 미역국 때문이었는지 결석자가 몇이 둘러 앉아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주림에 대 한 복수는 어쩌면 밖에서보다 안에서 더 가증스러운 것인지 몰랐다 그들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수도승의 고행 문제에 대해 심각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식본능에 참패해 뒷방으 로 물러난 자신들의 몰골들이 부끄럽기도 하련만 그런 와중에 도 논쟁을 좋아하는 스님네들이 몇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멍하니 문간에 기대어 선 채 그들의 말을 들었다 이보시오무슨 말씀을 그떻게 하시오본능 억제만이 능사 는 아니라는 걸 모르시오 그래서 스님은 억기로 나오셨구만요 맞은 편에 앉았던 비쩍 마른 수좌 하나가 입가에 조소를 떠 올리며 돌아 앉았다 본능 억제만이 능사가 아니라던 좀 통통 하게 살이 오른 수좌가 발끈했다 그렇다면 스님은 왜 여기 나와 앉았소 육체를 자학하기 때문이오 상대 수좌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풀썩 웃었다 이 무슨 궤변인가 자학이라니 그떻다면 스님은 선방에 있 어야 할 거 아니오 그러나 나는 여기가 더 좋소 여기가 더 좋다 모르시겠소 거기엔 식곤증에 무참히 패배해버린 내 육신 마저도 자학할 여유조차 없단 말이오 도야지처럼 씩씩거리면 서도 화두를 잡고 앉아 있어야 할 테니 그것이 오히려 자기 육신을 더욱더 학대하는 길이 아니던 가 궁극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소이다 시비는 일단 거기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통 통한 스님은 뭔가 석연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는 잠시 후 이 번엔 정신이 우위냐 육신이 우위냐 하는 문제를 놓고 서서히 논쟁의 불씨를 당겨갔다 육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정신을 학대한다는 수좌 양반그 래 수좌가 말하는 궁극적인 사랑 얘기 좀 들읍시다 다분히 시비조로 나오는 통통한 수좌를 향해 비쩍 마른 수 좌는 이제 완전히 능글능글해지고 있었다 때로는 구속보다 자유가억압보다는 방만이 속적이고 억압적일 수가 있다는 걸 모르시오 오히려 더 구 이보시오 그래도 납자라면 솔직하시오 그런 궤변으로 자 신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미안하지만 나는 정당화되기 위해서거나 나 자신을 정당화 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구경열반을 얻기 위해 여기 있을 뿐 결국 통통한 스님은 비쩍 마른 스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고 있소 육체요 정신이오 무엇을 지금 학대하고 있소 육체도 정신도 학대하고 있지 않소 그렇다면 육체가 정신보다 우위다 이말이오 나는 육체가 정신보다 우위라고 말하지 않았소 스님이 그 렇게 말했을 뿐 그게 그말 아니오그래 어째서 정신이 육체보다 이오 정신을 지탱하는 것이 육신일진데 어째서 예 그렇겠지요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을 것이며 거죽 없이 정신이 어디 존재하겠소 쌔 말은 유한한 것과 영원한 것 의 그 융합과 승화요 견성하려면 그 경지에 있어야겠고 그런 상태를 경험하지 못하기에 이렇게 참패해 여기 있는 것이란 말이오육신이 없다면 정신 또한 없는 건 당연하나 유심唯心 의 종가宗家인 이 도량에서 육신의 우위론은 더 이상 스님도 펴지 않는 게 좋을 게요 나는 다시 참패해버린 벌건 얼굴의 도반을 보다가 돌아나와 천천히 경내를 거닐었다 정녕 깨친다는 건 무엇일까 육신을 괴롭혀서라도 정신의 승화만을 꾀할 때 그때 견성은 스스로 그 본체를 드러내는 것일까 오랜 좌선으로 안짱다리가 되어 시자의 부축을 받으며 도량 을 거닐던 방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에게 있어서 그의 육신은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것일까 병신이 되어버릴 정도로 정진한 뒤 그가 얻어낸 정신의 승화 그 경지 그 풍경 그가 지금 못나게도 뒷방에 앉아 시비를 가리려는 저 도반 들이나 나를 본다면 무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어쩌면 육체란 문자와도 같은 게 아닐까 돈오돈수를 부르짖는 사람 들이 그렇게 버려야 한다고 하는 그 문자 그 언어 그 교리 그 지혜 그 알음알이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는가 육체의 필요성이나 불필요성을 따지기 이 전에 그것은 존재해 있는 것이고 육체가 존재해 있기 때문에 그런 질문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문자 역시 필요 불필요를 따 지기 이전에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부처님도 우리에게 왔고 우리 역시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또 그렇기에 방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자를 통해 오도송을 지었고 자신 의 사상을 아래 도반들에게도 피력할 수 있었던 게 아니던가 그런데 그는 지금도 그 문자를 언어를 교리를 지해를 버리라 고만 한다 그것을 버리는 곳에 해탈이 있다고 외치며 정녕 그것들을 버리고 단박 한순간에 깨쳐 다생의 습기나 오무간五無間 아비지옥의 업을 해탈의 세계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일까 어둠과 밝음번뇌와 망상끊임없는 남과 죽음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그 업을 한순간에 해탈이라는 세계로 전환시켰던 것일까 그에게 정녕 그 세계로 전환시킬 만한 근 본적인 깨침이 있었던가 객진번뇌가 있기에 무구청정이 있는 것 우리는 원래부터 청정한 생명을 부여받았던 것이 아니던가 자성청정이 있기에 객진번뇌가 있고 객진번뇌가 있기에 무구청정이 있는 것이라 면 거울을 한번 닦았다고 해서 내려앉는 먼지를 어떻게 설명 할 것인가 깨치지 못한 자가 깨친 자의 흉내를 낸다는 건 죄악이 아니 던가 그렇다면 그가 해탈의 경지를 얻지 못하고 흉내냈다면 그것은 서울에 가보지도 않고 서울을 말하는 격이 된다 말하 승화 자면 선과 교를 분리하는 그것 하나만 보더라도 그 역시 분별 의 구렁텅이에 시시비비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 가 돈오돈수니 돈오점수니 하며 태산처럼 뒤에 버티고 앉아 대중을 내세워 분별을 일삼던 그들의 분별과 대럽 물론 그때 와 지금은 다를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그 논쟁의 뒷편에 태산처럼 버티고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 원만하게 깨친 여래의 경지를 알 수도 없고 깨달 을 수도 없지만 그러나 아직도 그가 그 개념이 대 립적이고 차 별적인 현상에 잡혀 있다면 그는 범인의 경지에 있는 것이지 여래의 경지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깨침에 의하여 관조되 어진 경지가 아니라 그가 그렇게 범인의 경지에 있었다면 법 을 보인 그의 행위는 한낱 옛조사의 대덕법을 그대로 두어 교 분자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은 역시 증명되는 것이다 그렇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름 없는 형체도 없 는 그리하여 우리를 구해줄 그 무엇을 잡기 위해 우리는 얼마 나 많이 속아오고 있었던가 세속적인 모든 것을 떨치고 신앙 의 기성 이 엄청난 집단 속에서 은밀히 짜여져온 전통적인 낡 은 규범 속에서 금욕과 의식과 모범과 통어와 그리고 우 리가 이제 와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과 환경 속에 서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던가 그랬다 우리는 그 속에서 어미의 젖을 빨듯 비에 젖듯 그렇게 영향받아왔던 것이다 그 영향의 결과로 인하여 끊임없이 관념에 유희당하 고 있었던 것이 바로 우리였던 것이다 이미 새로운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 세계 속에는 낡은 요 람 속에서 흔들리는 주위와 보이지 않고 밀어붙이는 강요가 있을 뿐이었다 독창적으로 발견한 미지의 세계는 너무도 깊 고 어려운 세계여서 이미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한결 같이 남의 대덕법을 흥내내고 있었고 그 경지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그것이 본질의 모습이라고 그들은 가르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참다운 선지자들은 밖으로 찾아 헐떡이는 마음을 쉬 지 못하고 저 옛사람들의 쓸데없는 언어와 행위에 매달려 흉 내내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 었다 현재의 살아있는 진리가 지나간 과거의 언구나 형상 속 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다만 한 가지 내가 지금에 있어 할 수 있는 것은 그 허구를 칼질해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 허구를 해부함으로써 나는 진실의 모습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오도의 체험 없이 하찮은 경안輕安에 빠져 남 의 대덕법을 흉내내는 모방의 칼질이었다면 그것은 역설의 남 용이요 전도된 알음알이일 뿐이며 따라서 그것을 부숴버리는 데에 진실은 꽃필 것이었다 그리하억 진실의 모습에 다가가면 볼 수 있을 그 결과에 대 해서는 내 중생심 속에 맡겨놓아야 할 뿐이었다 아직도 깨치 지 못한 이상 판단의 척도는 중생심 속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 었다 오직 나는 가야 할 뿐이었다 나는 결국 병들고 있었다 마음은 악한 자의 심상 처럼 조각조각 부서져나가고 눈을 감으면 노사의 얼굴에 흘러 가던 그 음험한 조소가 나의 폐부를 찌르고 있었다 펄쩍거리 던 명증의 피 묻은 손목 그 극악한 비명소리 그로 인하여 다 시 허구를 짤 수밖에 없었던 명증의 눈물 그리고 이제 칼을 들어야 하는 나 나는 누구인가 그렇게 물을 때마다 나는 새하얗게 질리며 쓰러지고 있었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결심은 굳어져만 갔다 이 조각나 다 가는 마음으로 무엇을 볼 수 있을지 몰랐지만 나는 끈질기게 해제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노사는 주장자 대신 장검을 들고 단상에 오를 것 이고 대중은 그의 허위 앞에서 침묵할 것이다 대중이여 일어나라 그떻게 부르짖어도 대중은 그 허위 앞에서 침묵할 것이었 다 불조佛祖의 가르침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꿰뚫어서는 전 도된 알음알이로 불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깨친 양 손가락을 세워 법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게송을 지어 허공이 찢어져 라 외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칼을 들어 피를 묻히기도 하고 그리하여 그것을 참구하도록 하기도 하고 그 속에 어떤 의미 가 있는 양 행동하기도 하고 그리고는 크게 깨치게 하는 방편 을 얻은 양 미소를 띄우기도 하는 그 음험스러움 앞에서 그들 은 침묵할 것이었다 그러나 왜 모르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깨달음에 대한 의혹 1 일어나지 않은 선지자의 소치라는 것을 누가 그랬던가 함께 도를 닦는 여러 벗들이여 그대들은 곳곳에서 여러 노 사들의 설법하심을 듣고 이것이야말로 참된 가르침이라고 하 고 이 선지식은 불가사의라 하고 우리는 범부의 마음이니 어 찌 감히 저 훌륭하고 높으신 큰스님을 측량복탁하겠는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눈 먼 이들이여 그대들은 짧은 인생을 이렇게 비굴한 견해에 사로잡혀 살아있는 두 눈을 못쓰게 하고 추워 서 입을 다물고 벌벌 떨면서 얼음장 위를 기어가는 당나귀나 망아지 같이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또한 나는 감히 선지식을 비방하지 못한다느니 구업 짓는 것 이 두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함께 도를 닦는 벗들이여 그대가 진심으로 깨닫고 싶다면 과감히 그를 쳐 없애라 조사를 만나 면 조사를 쳐 없애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쳐 없애라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쳐 없애고 그래야만 그대는 대자유를 얻을 것 이니라 그렇다 진실로 참다운 견해를 얻으려면 오직 한 가지세상 의 속임수에 걸리는 미혹함을 입지 않아야 할 것이었다 안으 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이면 모두 쳐 없애야 할 것이며 이러 한 사싱적인 몬험을 감행할 때 진리는 그 본체를 드러낼 것이 었다 이것이 곧 참다운 보은이며 전통의 권위를 철저히 분쇄 할 수 있는 입처立處없이는 그 본체를 보기란 불가능한 것일 것이었다 대중들이여 일어나라 붓다와 마魔를 판단하지 못한다면 그대들은 염정이경染淨二境에 떨어질 것이다 진정한 견해를 잃으면 마도 불佛이라 보게 될지니 이를 어이할 것인가 한순간 결가부좌하고 앉았다가 잠깐 졸았던 모양이었다 나 는 심검당의 문을 다시 밀고 있었다 방장은 그냥 그대로 척추 를 편 채 꼿꼿하게 명상에 들었고 나는 예를 갖춘 뒤 악마처럼 렷바닥을 널름거리며 악쓰듯 물었다 스님 취모吹毛의 칼날은 순식간에 싱고 급히 갈아 두었 습니까 방장의 눈가에 써늘한 그늘이 지나가고 있었다 임제는 죽었느니라 어떻게 칼날을 빼지 않고 그 칼날을 쓸 수 있습니까 검거구의劍훈久矣 스님은 그 칼을 쓰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천박한 놈임제가 장검을 타고 하늘을 나는구나 나는 임제가 당唐의 함통咸通칠 년 병술丙戌사월 십일 에 열반에 들면서 행한 전법傳法의 게傷 중에서 마지막 구 절을 조금 변형시켜 그에게 그렇게 물었는데 그는 여우처럼 교활하게 그것을 알고 그런 대답을 하고 있었다 검거구의란 이미 칼은 없어진 지 오래다라는 말이었고 그렇다면 그는 여 전히 점수점오漸修料悟 의 불가不可함을 말하고 있었던 것 이다 죽비가 어깨에 떨어지는 바람에 눈을 뜨고 급히 자세를 고 쳤으나 꿈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의 써늘한 눈빛을 생각 할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은 불안 에 몸이 떨리었다 나의 계획을 아는 도반도 없었고 눈치를 보 인 일도 없었지만 마치 그가 꼭 내 마음 속을 꿰뚫어 보고 있 는 것 같았고 곁의 도반들이 도끼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보시오 수좌 같이 법을 참구하는 도반으로서 충고 한 마디 하겠소 I법화경法華經I에도 법은 사량분별로는 캐달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고 I원각경圓覺經I 에도 알음알이로는 원 만하게 깨달은 여래의 경지를 헤아려보려는 것이 마치 반딧불 로 수미산을 태우려는 것과 같아서 결코 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는데 일개 수좌가 법을 보인 선승을 칼질하려고 하다니 그렇다면 법을 보인 선승은 모조리 쳐 죽여야 한다는 말이 그렇습니다 진정한 법을 보기 위해서는 안으로나 밖으로 나 만나는 것마다 쳐 없뱁니다 바로 봉착편살逢著便殺입니 다 불교의 시작이란 거기서부터입니다 터무니없는 믿음 터 무니없는 집착 그러한 것을 쳐 없애는 것그것이 불법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계境界에서도 투탈자재 速脫自在하기 위해서 인혹 人惑과 물혹物惑을 꿰뚫어 나갑 니다 부처 조사 조불 그리고 그들이 본 법까지도 쳐 없앴을 때 해탈하는 것입니다 이보시오 수좌 양반 그러나 그것은 지금의 당신에게 망념 은 될지언정 언필칭 다가서진 못할 것이오 진리에 대한 산승 의 통찰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는 걸 모르시오 문수보살이 나 보현보살이 그 앞에 칼을 들고 각기 다른 몸으로 변화해 나 타났다 해도 그 순간 벌써 판단을 요달해버린다는 걸 말이오 그렇겠지요 진정으로 깨쳤다면 자신의 견해가 밖으로 범 부나 성인의 차별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안으로 마음의 근원적 인 법칙에도 머물지 아니하기에 투철히 보아서 다시는 의호히 여 그르침이 없기 배문이겠지요 그러나 그때 나의 칼을 거두 어 들여도 늦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법은 실재하고 있고 이 세 상 역시 실재하기 때문입니다 속으로는 그떻게 싸우고 있었으나 정작은 진저리를 치고 있 었다 방장은 음험하게 나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고 그를 향해 진정 내가 칼을 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겹쳐 언제나 내 가슴은 떨렸다 그러나 내 결심에는 조금도 변화가 있을 수 없었다 어떻게 다시 하루를 보냈는지 몰랐다 어스름이 지면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 눈발 속으로 낯선 사내 하나가 들어섰다 앞산이 검게 물들어올 무렵이었 다 안거 기간에는 일체 잡인을 경내에 근접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으나 어쩐 일인지 주지는 절 문을 들어선 한 늙고 초라한 사내를 내몰지 않고 방장의 방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누구일까 싶었다 그러나 선방에 들 시간이었으므로 생각을 접어 버렸다 그런데 잠자리에 들 때쯤 누군가가 뜬금없이 이 런 말을 하였다 참 염치도 몰옇치지 몰염치 무슨 소리요이선수좌 이선이라는 수좌 곁에 있던 수좌 하나가 눈을 멎내며 물었 다 아 낮에 보니 민성윤인가 뭔가 하는 그 작자가 들어서고 있더라구 민성윤이라니 거 왜 있잖은가 큰스님 밑에서 상좌노릇 하다 뛰쳐나가서 는 오히려 큰스님을 욕질허고 돌아다니는 놈 아하 거 어딘가에서 교수질하며 말장난을 일삼는다는 그 작자 그려 그 작자가 저녁에 보니께 절문을 들어서서 방장스님 에게 가고 있더라구 아니 그놈 참 염치도 좋네욕지거리하며 돌아다닐 땐 언제 고 그래 큰스님이 그 작자를 그냥 놔 두었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좀전에 보니 그 작자 아직도 큰스 님 방에 죽치고 있는 모양이던데 그러고 보면 큰스님도 이상 한게 한두 가지가 아니여 이해를 하다가도 이해가 안 된다 말 시 나 같으면 당장에 요절을 내어 버려련만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민성윤이란 이름을 나직이 입속드 로 되뇌어 보았다 민성윤 민성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방장 상좌질을 하다 뛰쳐나가서는 방장 욕을 하고 돌아다닌다는 말을 듣자 잠시 누군가의 얼굴 이 떠올랐지만 꼭 그라고 단정할 수 없고 보면 그냥 눈을 감았 다 한동안 이상스런 꿈이 계속되었다 눈을 뜨자 어느 새 새벽이 와 있었다 얼른 일어나 개울로 나갔다 찬물에 머리를 감고 나니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러나 정신은 명경처럼 맑았다 선방에 들었다가 휴게 시간을 이용해 경내나 한바퀴 돌까 하고 선방을 나섰다 뽀득뽀득 횐눈 밟는 소리가 살가왔다 눈 위베 남긴 발자국 을 되돌아보며 어쩌면 저것은 내 살아 있음의 증표일지도 모 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모처럼 흥소가 입가에 번졌다 대응전을 막 돌아나가려는데 누군가 마주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눈을 들어보니 어제 방장의 방으로 들던 그 사람이었 다 이제 쉰을 좀 넘겼을까 옷은 깔끔하게 입은 것 같았으나 바람에 날리는 반백의 머리 밑으로 드러난 얼굴이 그렇게 밝 지가 않았다 그가 곁을 지나쳐서야 나는 아하 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민성윤 교수 그렇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이곳의 큰스 님 그러니까 방장의 밑에서 상좌노릇을 하다가 뛰쳐나가서는 스승인 수인선사를 찾아다니던 사람 약관 이십대에 종교학으 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뜻한 바 있어 이 절의 방장 상좌로 들 어왔다가 산을 내려가서는 저명한 대학의 교수로 있다던 그 사람 바로 민성윤 교수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는 걸어가고 있는 그를 불렀다 저 선생님 그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돌아섰다 절 부르셨습니까 나는 그의 가까이 다가갔다 선생님저어 민성윤 교수님이시죠 그렇습니다만 상대를 알아보려는 그의 눈멎이 흔들렸다 절 모르시K습니까 수인스님 시봉으로 있던 그제야 가늘게 떴던 민 교수의 눈이 커졌다 아목양스님 네 절 알아보시는군요 아이구 이거 반갑소이다여기서 만나다니 어제 저녁에 잠깐 뵙긴 하였습니다만 알아보질 못했습니 다 아 그렇구만요그래 큰스님은 안녕하시지요 그럼요 근데 아 네 잠시 머뭇거리는 나를 보며 그가 뒤늦게야 물었다 하기사 이곳이 어딘가 스승 수인선사와는 반대되는 세계가 아닌가 그런데 수인선사의 시봉이 여기에 와 있다니 그는 분명히 그떻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가시는 길이십니까 잠시 후에야 내가 가까스로 할말잎 막힌 사람웍럼 물엇다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외다주지스님을 만나뵈려 가는 길이외다 나는 그를 향해 합장을 하였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선방에 들어야 할 시간이어서 아 그렇구먼요그럽시다다음에 또 뵙시다 나는 다시 합장을 하고 돌아섰다 합장을 하고 돌아서긴 했지만 어쩐지 뒷맛이 개운치 않은 기분이었다 은사 욕이나 하며 돌아다니던 그가 여긴 어인 일 일까 하는 생각보다는 그가 오히려 내게 이곳에 어쩐 일이냐 고 계속해서 묻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돌아와 화두를 잡았지만 여전히 잡생각만 일었다 돌아설 때 보았던 노교수의 그 초췌한 모습이 영 잊혀질 것 같지 않았 다 그가 배척했던 이 산문에 괜일일까 하는 생각이 떠리 속에 서 떠나질 않았다 내가그를 처음 보았던 건 이 절 방장이 종정으로 추대를 받 커잤니 고 종조인 보조국사의 돈오점수 사상을 지해종도라 매도하면 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 논쟁이 불붙기 시작하던 어느 날이었 다 나는 그때 돈오돈수를 주장하는 이 절 방장의 입장을 몇가 지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 하나가 견성은 진여자성의 철 견이므로 아뢰아식의 미세망념까지도 끊어진 상태 즉 선문정 전의 견성이다 그러므로 돈오는 돈오 그 자체이다 견성에의 지름길은 오로지 공안참구뿐이며 깨친 후에는 점수하여 완성 에 이른다는 돈오점수와는 상반된 세계가 돈오돈수다 그것은 선과는 상반되는 교가의 수행방법이며 이단사설이며 그렇기에 그것을 따르는 자는 모두가 지해종도다 오로지 돈오돈수의 경지는 무애자재한 대해탈의 경지가 있을 뿐이다 그는 그때 돈오점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아니 종조인 보조 국사를 향해 독 있는 나무가 뜰 안에 돋아 났으니 베어버려야 한다는 말로 종조를 배척하고 나섰는데 자연히 종조를 잃어버 린 점수론자들은 그를 그대로 두고 볼 리 없었다 너희가 옳으 니 우리가 옳으니 싸움이 한창이었을 때 갑자기 이 절 방장 밑 에 있던 민 교수가 그에게 반기를 들고 뛰쳐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점수 쪽의 수인선사를 몇번 찾았는데 내가 만 난 건 그때였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점수 쪽이었으므로 그 의 첫인상은 참으로 강렬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은사가 종조를 배척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은 사를 배척했다는 그런 악연의 순환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옳다 면 옳다는 그의 기개가 예사롭지가 않아 보였던 것이다 국제 불교 학술 회의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 불교계 뿐만 아 니라 일반인들까지도 높은 관심을 가지고 모여든 사람들 앞에 서 보여주었던 그의 엄청난 모습 그는 그때 은사의 사상을 공격해야만 하는 인간적인 번민을 먼저 토로했다 그리고는 뒤이어 보조사상이 완전무결하다고 는 생각하지는 않으나 큰스님으로 인해 한국불교계가 위기에 처해짐은 묵과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리고는 간략하게 돈 오돈수 사상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며 그 내용은 내가 이해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돈오돈수의 내용을 요 약한 다음 은사는 왜 돈오점수설을 비판했는가에 대하여 나름 대로의 주장을 늘어놓았고 보조를 보는 시각과 지해의 문제 반지해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였다 그리고 그는 은사와 보조스님을 비교 분석하였고 은사에게 다음과 같아 묻고 있었 다 스님 물론 저도 돈오점수설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 겠습니다 그러나 그 설은 오늘날까지 한국 불교계를 그피고 우리들을 키워온 소중한 불씨였음을 스님 또한 부정하시지 못 할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은 종조를 위시한 우리들을 지해종 도라 매도했습니다 그렇다면 감히 묻겠습니다 돈오돈수를 주 장하시는 스님은 그럼 돈오돈수하셨습니까그리고 스님의 제 자들 가운데 몇 명이나 그런 깨우침을 얻었습니까 장내엔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나 역시 겉으로는 그 를 바라보고만 있었으나 어떤 통쾌함보다는 아슬아슬한 위기 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민 교수는 계속해서 응변을 하듯 우렁찬 음성을 토 해내었다 분명히 스님은 돈오돈수하셨다고 했는데 그떻다면 스님은 언제 어디서 진여자성의 철견을 하셨습니까 언제 아뢰아식의 미세망념까지도 끊으셨습니까 언제 오매일여 몽각일여의 구 경묘각을 얻으셨습니까자고로 믿고 들어가지 못하는 박복함 을 알고는 있사오나 아무런 증거도 설명도 없으니 어떻게 믿 고 들어가란 말입니까 누구인가 딱딱딱 하고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 박수소리는 어느새 숙연하게 변해버린 장내의 기운에 밀려 사라져버렸다 냔 다시 장내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이 흘렀다 뒤이어 J 민 교수의 쩌렁쩌렁한 음성이 제 때를 만난 양 울러퍼졌다 오늘도 근기없는 중생들이 저기 신음하고 있습니다 다생 겨아 을 윤회하며 근기를 닦아 견성한 당신께서는 화두공안만이 견 성의 첩경이라고 하셨는데 화두공안이란 알음알이는 어디서 나온 것청니까 화두공안이 무엇인지 알아야만이 그것을 내 것으로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화두공안조차 모르 는 저 우매한 중생들은 어떻게 제도하시겠습니까 어떻게 지 해의 사다리를 밟지 않고 어떻게 그들을 제도하신다는 말입니 까 이번에는 아예 박수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대신 사람들은 잠시 술렁거렸다 아무리 자신의 주장이 옳다 하더라도 은사 를 저렇게까지 몰아붙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가 마무리를 짓듯 다음 말 을 끝냈을 때 사람들의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기 때문 이었다 무조건 칭찬해서 그 존재를 멎나게 하던 시대는 지 났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나를 통해서 더욱더 빛나리라는 것 을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그가 박수를 받으며 발표를 끝내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이 돈오돈수설에 일가견을 가진 유태영 교수가 나섰다 그런데 그 민성윤 교수가 다시 이 산문에 나타난 것이었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묘한 우연성 같은 걸 느꼈다 아니 필 연적으로 그는 여기 오게 되어 있었는지는 모르나 번뇌와 망 상에 젖어 방황하는 오늘 나와의 만남은 이상스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한때는 그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곳O1 나타난 것일까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그가 나타나자 그를 맞이하는 방 장은 그냥 부드러운 미소만 지었다고 하였다 물론 이 말은 주지를 통해 나온 것이었지만 방장은 그답게 오늘날까지 자신을 시봉해온 상좌를 대하듯 그렇게 웃고 말을 붙이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지는 가슴이 훈훈해지더라고 하였다 어쩌면 방장은 종조인 보조국사를 진실로 사랑했기에 그를 배 척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주지는 들더라는 것이었다 하기 야 방장은 언젠가 자신이 돈오돈수를 주장하는 것은 한국불교 의 기풍을 바로 잡자는 것이지 종조를 부정하기 위해 돈오돈 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박은 적이 있기는 했다 스승이 자신을 배척했던 제자를 한 마디 꾸짖음도 없이 받 아들였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왜 그는 이 곳을 다시 찾은 것일까 머리 속은 그런 의문으로 꽉 차 있었다 그렇게 의문은 머리 속에서 날개를 치는데 눈을 감으면 민 교수의 얼굴과 방장의 얼굴이 뒤엉키며 떠올랐다 누구인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떴을 땐 어느새 새벽 이었다잠시 눈을 감아 붙였던 과 늦잠이었다후다닥 일어나 개울가로 나갔다 어떻게 선방을 들락거렸는지 몰랐다 오후가 되면서 다시 눈발이 희끗거리기 시작했다 휴게 시 간을 이용해 나는 홍하문에 몸을 기댄 채 멀리 산 아래를 바라 보았다 눈내리는 풍경이 지극히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어쩐 지 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산정 저 골짜기 저 눈발 그 무엇 하나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그 어떤 곳으로 나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 다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는지 몰랐다인기척이 나길래 되돌 아 보았더니 뜻밖에도 민성윤 교수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꼭 찾아다니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 있었구만요 하고 아는 체를 하였다 나는 합장을 하였다 그리고는 조금 웃었다 민 교수가 마주 합장을 하더니 가까이 다가와 곁에 서며 산 아래를 바라보았 다 그는 잠시 산 아래를 바라보고 섰다가 어딘가에 눈을 붙박 은 채 음성만 나를 돌아보았다 정말 아름다운데요 네정말 아름답습니다 민 교수는 더 말이 없었다 나 역시 말없이 그의 곁에 서 있 었다 한참을 서 있노라니 민 교수가 나를 돌아보았다 한 몇 년 됐지요우리가 만났던 게 네제가 큰스님 모실 때였으니까요 그떻잖아도 이곳으로 오기 전에 스님을 찾아뵈었더랬습니 다 큰스님을요 아하어제 내가 스님에게 큰스님의 건강을 물었던가요 네 스님도 많이 늙으셨드만요 몇년 사이에 장이 안 좋다고 밑에 계신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합디다 베에 그래 언제 이리로 오셨습니까 한참 됐습니다 그래요 민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그가 어쩌면 지금 나의 모습에서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잠시 침묵이 홀렀다 산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에 대 한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이 사람이 이 산문을 다시 찾은 이 유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민 교수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놓 았다 그는 헤어짐의 인사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 이 흥하문을 나서고 있었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 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의 뒷태가 외로워보인 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 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돌아와 잠이 들었는데 이상스런 꿈이 계속되었 다 홍하문을 빠져나가던 민 교수가 무엇인가를 잊은 것 같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를 물끄러미 쳐 다보며 이런 말을 하였다 목양스님목양스님은 알고 있습니까 왜 내가 여기로 다시 왔는지 글쎄요 그렇다면 왜 목양스님은 스승 곁을 떠나 여기 와 있는 것 입니까 스승의 사상을 알았으니 그 반대되는 사상도 알아야겠다 그 말은 내 사상이 옳다면 그 반대되는 사상도 옳다는 것 을 인정하기 위함이겠지요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요 내가 입을 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한때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요그래서 이곳을 떠나 갔고 그러나 내가 여기로 다시 온 건 사랑 때문이었어요 갑작스럽게 사랑이라는 말이 터져나오자 꿈속이었지만 어 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려 고 이러나 하면서 그를 쳐다보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요사랑 그 사랑법 말입니다내 것을 사랑한다면 남 의 것도 사랑쟈야 한다는 그 사랑법 말입니다 난 오늘날까지 그런 기본적인 사랑법도 모르고 살아왔어요 내가 옳다 하면 그것은 그대로 내 세계였지요 오로지 지해의 사다리를 통해 서 얻어진 정보를 통해 오도의 세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저는 병을 얻었습니다 여기로 오기 전 사졍선고를 받은 거지요 인간이 한번 났다 죽는 거야 당연지사겠지만 웬 일일까요죽는 날을 받아놓고 나니 내가 그동안 알아왔던 그 알음알이들이 그만 허망해져 버리는 것입니다 무얼 했나 그 귀중한 시간들을 무얼 했나 오로지 화두공안 하나를 움켜쥐 고 앉았더라면 반해탈이라도 얻었을 것을 하근기라고만 생각 하고 지해종도가 되어 알음알이에만 세월을 허송해 버리고 말 았으니 이 일을 어떡하나 누군가 그러더군요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돈오는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깨친 후 닦을 것이냐 아니면 그것으로 그만이냐 그것뿐이라고 그렇다면 알음알이 자체를 떠난 선綠 오로지 공안참구하여 캐침 그 상태까지의 선 그 선까지 나는 지해로써 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젠데 나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이 말이지요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공안선을 표방하는 돈오돈수 쪽에 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모두가 공안선을 표방하지만 다 깨 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돈오점수가 교敎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익혀 알고서 선정에 들자는 것이요 돈오돈 수는 그것마저 차버리자는 것이니 그것이 문제가 아닌가요 허지만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 를 죽억야만이 견성을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기에 지덕 법사志德法師가 물었지요신회화상神會和尙이시여 화상께 서는 중생들에게 가르치기를 오직 오도하도록만 강조하셨습니 다 왜 화상께서는 소승의 가르침에서 대승의 가르침으로 나 식 아가는 점수를 가르치시지 않으시는 겁니까화상께서 9층의 건물에 오르려면 하나씩 건물의 계단을 밟아 올라야 한다는 첸 걸 모르시지는 않으실 텐데 말입니다 그래 화상이 대답했습 니다 9층의 건물은 바로 돈오이다 그 건물을 오르려고 함으로 세 돈頃 가운데 점N을 세우는 것이다 오로지 돈오는 근원적 인 도리와 지혜이다 마음이 본래 공적호寂한 것이 돈오요 러 마음에 얻은 바가 없는 것이 돈오인 것이다 마음이 바로 도 道이며 일체법一切法이 일체법이란 것을 요지了知하는 것 비 이 돈오인 것이다공포에도 집착하지 않고 또한 불공不空 에도 걸리지 않는 것이 돈오요 생사를 오롯이 하고 열반에 드 는 것이 돈오인 것이다 부처님도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佛 見에 들게 하도록 하셨다고 했으니 만약 돈오를 인정치 않 는다면 부처님은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뽑舊의 출세간 승出쌓間乘에다 인 천人天의 세간승世間乘을 보텐 오승 五乘을 설하셨을 것이니 부처님이 오승을 설하지 않으신 것 은 오로지 중생이 불지견에 들게 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단지 무념無念을 보는 일념상응一念相應만이 있을 뿐이요 무념 을 본다는 것은 곧 자성을 깨닫는다는 뜻이요 깨닫는 것은 아 무 것도 얻는 바가 없다는 뜻이니 바로 여래선如來禪 이 아니 고 무엇인가 그러므로 단계적인 돈문쎄 결코 의거하지 말아 야 한다 여래는 과거로부터 온 것도 아니요 현재에 머무는 것도 아니며 미래를 향해 가는 것도 아니다오로지 무주無住 요 그떻기 때문에 여래선인 것이다 꿈속이었지만 민 교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할말을 잃고 있 었다 은사를 배척할 정도로 철저한 점수 사상가였던 그가 어 느새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다니 죽음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걸 보면 말 못할 지병이라도 정말 얻은 것인지 모르겠다며 그렇 게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몸을 뒤채다가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일어나 앉았어도 꿈은 계속 떠릿속에 그려졌다 나중에는 내가 너무 그런 생각에만 젖어 있으니 그런 꿈도 꾸게 되는 것 이라 생각하며 잊어버리려 했다 그것은 역시 꿈이었을 뿐이고 또 그런 그가 어느 새 돈오돈 수의 신봉자가 되어 여길 왔으리라고도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꿈속에서의 그의 말은 그 나름대로 타당성은 있었지 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건 아니었다 흔들리다니 나의 신심은 오히려 더 굳어져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경지 까지 와 있었다 그러나 다시 잠이 들면서 나는 청천벽력같은 사실을 직면하 고 있었다 사람이 죽었다 내가 들었던 건 분명히 그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따라 달려갔을 때 눈에 들어온 사람 이게 누군가 나는 순간적으로 내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그는 다름 아닌 바로 민성윤 교수였던 것이다 그는 평평한 산언덕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는데 어제 내가 흥하문에서 보았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꿈속이었지만 그가 왜 죽었는지 누구도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나 또한 알리가 없고 보면 갑작스런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꿈속에서도 화두같은 의문이 계속되었다 의문은 계속되었 지만 그 의문을 풀 만한 결정적 증거는 여전히 포착되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의 죽음 소식을 들은 방장의 모습을 보았는데 무슨 장난을 그렇게 하는가 하고 방장은 눈 밑을 붉히고 있었다 나는 방장이 눈 밑을 붉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마도 내 가 잘못 본 것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장승처럼 앉은 채 잠시 눈 밑을 붉히고 있는 그를 보 자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민 교수와 방장과의 끈끈한 인연이 어쩌면 지독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제 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꿈속이었지만 또 그런 상상으로 칼을 들여야만 하는 나를 죽이고 싶지도 않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꿈을 깨고 어찧게 이들을 보냈 는지 몰랐다 왜 그런 꿈이 계속해서 꾸어지는 것인지조차 나 로서도 종잡을 수 없는 일이고 보면 민 교수가 정말 말 못할 병이라도 얻어 돈오돈수의 신봉자가 되어 은사 앞에 다시 나 타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가 왜 다시 이곳에 나타났는지 왜 그렇게 쓸쓸히 떠나갔는지 그것 은 그만이 아는 영원한 수수께끼였다 오로지 나는 그저 깊어 만 가는 회의 속에 나를 묻을 뿐이었다 밤새 풍경소리가 그치질 않더니 아침에 일어나자 눈발이 희끗거렸다 갑작스레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민 교수 때문인지 오늘도 나는 돈오돈수의 문제점과 그 본질을 새삼스 럽게 내 나름대로 생각해보고 있었다 꿈속에서 들었던 민 교 수의 말 때문일까 그게 돈오돈수의 핵심이라면 돈오돈수는 훌륭한 수증법修證法임에 틀림없었다단박에 깨쳐 일체번뇌 切煩惱를 끊고 일체공덕切功德이 모두 성취되어 성불할 수 있을 것이니 그러나 그것은 오늘의 저쪽 즉 과거의 점수 로 인해 돈오돈수 되는 것이지 하찮은 근기로는 불가능한 것 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만인萬入의 법이 될 수 없었다 더욱이 깨닫고 난 뒤 오후悟後의 보임保任 마저 없다면 문 제는 자명해지는 게 아닌가 자연히 생각은 오랜 윤회로 인한 다생의 습기나 오무간의 업을 한순간에 해탈이라는 쎄계로 전 환시킬 만한 근본적인 깨달음이 방장에게 정녕 있겠느냐 하는 문제로 이어졌다 그에게 만약 그러한 경지가 없었다면 법을 보인 그의 행위는 바로 오묘한 말씀으로 꽉 메워진 마음의 알 칼의 어록 239 음알이緣廬 임에 분명하고 명상名相을 통해서 파악되는 경 계일 뿐이며 설령 그에재 법을 보일 만한 경계가 있었다 하더 라도 어떠한 방편도 어떠한 마음도 내지 않는 것이 도인의 경 지요 어떤 것이라도 세웠다 하면 진眞에 어긋나는 것이 도 의 참모습이라면 그의 행위는 인위조작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어리석게도 다시 들었기 때문이었다 깨켰다 하여 움직이면 그게 곧 생사의 본원이요모든 걸 쳐 없애면 단견호無이 아 니던가 그 두 가지를 다 받아들여도 그는 얼굴만 훤칠한 알맹 이 없는 부처일 뿐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나로서도 어쩔수없는 이 우매함과 어리석음을 모든 것이 공하다는 걸 이러한 짓거리기 부질없 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나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되는 나 의 이 병통을 하지만 그 병통이 나를 죽인다 하더라도 이제는 어썰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나 역시 알음알이에 의해 병들어가고 있다는 건 분명하지만 방장이 그 알음알이마저 끊어 단멸斷減 을 이 루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바로 단견외도호無外道에 지나지 않 을 뿐이라는 생각은 이제 관념이 아니었다그7 그 경지에 떨 어져 있다면 바깥 인연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동정動靜은 바 로 식심識心의 결과요맑고 티 없는 경지 정도로 확철대오하 는 방편을 얻었다고 한다면 그는 자고병에 미치광이이지 성스 런 성자는 아닌 것이었다 그가 미치광이에 지나지 않는 이상 그것은 법을 구하는 납 자들에게 깊은 재앙의 원인이 되고 심신을 퇴보시키는 요인이 되면 되었지 깨침의 방편이 되지는 않을 짓이었다 사람들은 칼을 든 그의 행위를 일러 법의 모습을 보인 것이라 운운 하겠 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화두는 지꾸만 멀어져 가고 있 었다 나를 조이고 있던 긴박함緊이나 바름E이나 면밀함이 나 융활함마저도 어느덧 사라져가고 그 해이함 속에서 나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누구인가의 환영을 보고 있었다 그렇다 내 어린 날 내게 침묵의 수수께끼를 가르쳐주었던 형 바로 그 형이 느닷없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잊고 있었던 것 같으면서도 나와 함께 같이 자라오고 있었던 형 그를 어이 잊을 수 있으랴 얼굴도 모르는 형의 침묵이 살아 오면 그것은 아버지와 한 덩어리가 되어 눈앞에서 꿈틀거렸 다 진실을 알고 있었으나 거짓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내 아버지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상스런 모습으로 내 마음 속에 서 자라오고 있었던 형의 침묵 진실을 말할 수 없기에 벙어리 가 되어버렸다던 형 그 침묵의 의미 이것이 정녕 오늘날까지 내 가슴 속에서 자라나고 있던 형의 변형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규정지어져 있는 약속된 진실의 실제는 어디에나 있었 다 내 아버지가 거짓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기에도 진실을 말할 수 없었기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던 그 어린 형 의 가슴에도 그리고 이름도 없는 이 세계에도 필경 그것은 존 재할 것이었다 그떻기비 내 아버지는 인류를 위해 이데올로 기라는 세계를 통해 약속된 세계로 나아갔던 것이고 결국은 좌절과 절망과 피멍울 속에서 진실의 모습 검은 염소의 몸에 서 솟아나는 희디흰 본질을 보고 그 본질을 기르기 위해 염소 를 끌고 선지식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검은 터럭을 헤치고 솟아난 염소의 횐 터럭에서 아버지가 보았던 것 그것은 분명 해오의 경지임에 분명한 것이었다 적 어도 세상을 알고 세상을 읽고 세상을 배운 뒤에 오는 그것은 곧 그의 깨달음이었을 테니까 그떻기에 그것마저 깨어버림으 로써 깨침을 얻으러 그는 떠나갔던 것이다 저 세상의 단편적 이고 가치희석적인 경험을 통해서 총괄적이고 유기적인 세계 진정한 의미의 실천 차원으로 그는 그렇게 나아갔던 것이다 그것이 그의 모든 것을 갈라놓는 분수령이었다면 나는 어떠한 가 오늘날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는 이 엄청난 시심마是甚麻 고양이의 목을 칼로 쳐버린 도반의 행동이 곧바로 상을 쳐 없 애는 보현행원의 원력 그 자체였다 할지라도 나는 남전의 목 을 쳐 없애야 하는 조주처럼 칼을 들어 이제는 방장의 목을 쳐 없애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규정된 사실인 것이다 이 제는 어떤 장애가 와도 실행할 것이었다 노사가 칼을 든 것이 그 경지였다 할지라도 그 역시 집착의 산물인 이상 그것을 철 저하게 칼질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오직 이 혼란으로부 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행위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떻지 않는 한 나는 법의 중심에 이르러보지도 못하고 더욱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질 것이었다 생각에 의해 조종되는 행 동 그것은 물론 무위에 의한 완전한 행동은 아니다 집착의 결과로 생겨난 정열일 수도 있다 그떻기에 그것의 결과는 오 히려 더 큰 혼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최소한도 그 혼 란으로부터 나를 정돈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 저 번뇌의 불을 끈 세존의 적정을 보았겠는가 그 적정 을 맞기 위해 세존에게도 이만한 회의 이만한 어리석음 이만 한 발심 그리고 이만한 번뇌는 있었으리라 밖엔 다시 눈이 내리려는 것인지 샛바람이 불고 있었다 휴 게시간을 이용해 경내를 거닐다 말고 뒷방을 돌아오다 보니 도반 몇이 모여 앉아 무슨 애기인가 나누고 있었다 가만히 보 아하니 저번에 육체가 우위냐 정신이 우위냐며 뒷방에서 떠 들어대던 그 무리들이었다 수행 문제는 나만이 하고 있는 회 의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명증의 사건이 있고 난 후부 터 부쩍 심해진 것 같았는데 어젯밤에도 보니 뒷방에 끼리끼 리 모여 앉아 또다시 값 비싼 회의들을 털어놓고 있었다 요즘 들어 수행이 고달파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방 어디에서나 수도를 하는 숭려라면 누구 나 자신이 하고 있는 수행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 는 이가 없었고 그들 역시 쉽사리 해결 나지 않을 논쟁을 계속 하고 있었던 것이다 번뇌는 두텁고 익혀온 습기는 무거우므 로 그 번뇌습기煩惱習氣 를 닦음 없이는 깨칠 수 없다는 한 수 좌의 말을 들으며 나는 씁쓸하게 웃음을 물고 말았다 그는 분 명 또 하나의 나임에 분명했지만 닦음을 더 심화시킬 수 있는 본모습이라도 단 한 번 보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보시오 아무리 수행이 고달프더라도 현실은 직시합시 다 우리의 현실이 사실 마조 황벽 임제 대혜로 공안선公案 禪은 이어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그들이 지해종도라고 외면 하는 신회 종밀 보조로 이어지고 있질 않소 그러니까 이 절의 방장은 단호히 지해종도들을 쳐내고 선 가의 기풍을 바로 잡자는 거 아니오 선가의 기풍을 바로잡는다 그렇소 그럴 듯한 말이오 허 지만 그보다는 선가의 법맥을 바로 잡는다는 말이 어떻겠소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하루 아침에 단박 깨친다면 바로 여 래가 되어버린다는 이 땅의 추종자들은 분명히 겉으로 보기엔 돈오돈수 쪽인데 안으로 들어가보면 돈오점수이니 그 또한 어 쩌겠소 그러니까 실천은 돈오돈수식이지만 이론은 돈오점수다 그렇소 그러니까 이 절의 방장은 종조인 보조국사를 철저히 배척 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나 처지를 확고히 해보자는 것이 아니 오 이번엔 저번에 나섰던 통통한 수좌는 빠진 것 같았다 그 비 쩍 마른 수좌가 키가 작달막한 그 또래의 수좌와 언쟁을 벌이 고 있었는데 전번이나 어젯밤과는 달리 비쩍 마른 수좌는 이 런 논쟁을 무척 즐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역시 언제나 상대 수좌를 대수롭지 않게 물리쳐버릴 만큼 박학다식 한 데가 있었지만 키 작은 수좌는 내가 잊어왔던 규봉 종밀의 도서都序I 에 관한 부분까지 언급하고 있어 나의 놀라움은 큰 것이었다 그 도서는 보조국사의 절요節쫑I와 함께 돈오 점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꼭 같은 것이었고 그것이 바로 내 게 또 다른 문제점으로 부각되어왔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위치나 처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종조인 보조국사 를 배척했다 그거 정말 그럴 듯한 말이군 그러나 이보시오 스님 그렇기에 선가에서는 상용어로 회자되는 돈오점수는 언 어에 의하여 요해了解되는 지식 조직이라고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요해는 무엇으로 탈바꿈됩니까 전일적 으로 지해知解라는 것으로 탈바꿈된다고 스님은 대답하시겠 지요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끝에는 다시 무엇이 기다리 고 있습니까곧 증해證解라는 경지가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닙 니까 허지만 그것조차도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것이오 그떻다 면 구경각이 어디 그 부분적인 것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던 가돈오견성이란 완전무흠完全無欠한 것이기에 오로지 돈지 嘆知하여야만이 실재를 이해할 수 있고 진체眞體의 이법이 직파되었을 때 미세망념까지도 단번에 깨어지는 것이오 그것 이 오매일여 몽교일여 일상일여의 경지인 것을 바로 번뇌나 보리의 당체當體인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는 말이 이말 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시퍼떻게 눈을 빛내는 수좌를 향해 이번의 키 작은 수좌는 그떻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입가엔 어느새 조소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종조인 보조는 한탄했던 것이오 슬프다 근고近 古 이래로 불법 쇠퇴의 극심함이여 흑은 선을 존숭하여 교를 배척하고 혹은 교를 숭상하여 선을 비방한다 그러나 선은 불 심佛心이며 교는 불어佛語라 교는 선망禪綱이 되고 선은 교망敎網 이 됨을 알지 못하여 드디어 선교 양가가 길이 원수 의 견해를 짓고 법의法義 이학二學이 도리어 모순의 종이 되어서 마침내 무쟁문無時門에 들지 못하고 일실一賓의 도 를 밟지 못한다 똑똑한 사람들이 그리 힘 안 들이고 약간 깨 켰다고 하여 문득 용이한 마음이 생겨 다시 수치修治 하지 않 으면 일구월심에 전과 같이 유랑하여 윤회를 면치 못하나니 어찌 한때의 깨친 바로써 대번에 수치를 저버릴 수 있을 것인 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종조가 화두선을 최초로 우리에게 소 개한 선승임에는 분명하나 그는 거간꾼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모르시오 어떻게 선승이면 선승이지 어찌 지해종도인 교승의 앞잡이가 될 수 있단 말이오 이보시오 그래서 그 양반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 요 고려불교가 선과 교의 심한 갈등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선과 교가 다르지 않다는 전거를 찾아나선 사람이 누 구요 그 역시 그분 아니었소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 라자등명에서 선종禪宗의 흐름을 본 이도 그였고법등명에 서 교종의 흐름을 본 이도 그였고 부처님이 입으로 말한 것을 교라 본 것도 그였고 마음으로 전한 것이 선이라 본 것도 그 가 아니었소 그런데 그가 왜 이제 와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오 왜 갑자기 종조로 서 떠받들던 양반을 하루 아침에 지해종도로 몰아 칼을 들이 대느냐 이 말이오 그야 당연한 게 아니겠소깨치지 못한 중생이었을 때는 뭣 모르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다가 어느 날 아침 홀연히 깨치고 보니 그것은 모두 거짓이었으니 거짓 거짓이라니 그렇다면 좀더 문제를 접근시켜 봅시다 그 돈오돈수설을 주장하고 있는 그리하여 종조를 지해종도로 몰아붙이고 있는 이 절의 방장은 진정 깨친 것일까요진정 그 는 다생의 윤회를 벗어났으며 그 삼관을 통과해 미세망념까지 벗어버린 것일까요 그가 돈오점수를 문자나 교리나 언어나 지해의 알음알이로 이루어진 지해종도라 매도한다 하더라도 그래 그는 어디 서 있소 그 깨달음이라는 알음알이의 경지에 서 있잖소 그것이 필요 없다면 자신이 깨켰다는 건 어찌 알며 도반들에게 종조의 절요를 왜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오 키 작은 수좌의 공격에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마른 수좌가 멈칫했다 그것은 그릇된 사상을 바로 잡으려는 보살심에서일지언정 분별심에서는 아닐 게요 그렇겠지요 그러나 부처는 가상의 세계를 부수는 데부터 불교를 출발시켰소 우리는 부처를 믿고 조사를 믿고 그 세계 를 향해 가고는 있소만 문제는 바로 그것이지요 스님 한 마 디 더 할까요 요즘 참선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오직 불성만 을 투철히 보아버리면 보살행원이 다 원만하게 성취된 줄 알 고 있으나 그것을 경계하고 그 깨달음에 의하여 성품을 완전 히 익힌다는 보조의 I절요나 규봉 종밀의 I도서I를 모르지 는 않겠지요 그런데 왜 이곳 방장은 자신의 종조를 부정하고 그의 저서인 절요I를 거부하면서 왜 규봉 종밀의 도서1는 배우도록 가만 놔두는 것일까요 I절요I를 거부한다면그 해 가 깊다면 마땅히 그것도 거부해야 할 텐데 말이오 그 높은 대덕이 규봉 종밀을 모를 리도 없을 테고 오히려 돈오점수 사 상이 그들에 의하여 보조에 이르렀다면 말이오 이것은 종조 를 부장함으로써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자신의 위치를 확 고하게 하려는 분서갱유는 아닐까요 약간 밀려 있던 수좌가 눈을 번쩍였다 이보시오 말을 삼가하시오 어쨌거나 스님은 이 도량에 와 있지 않소 그는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요즘의 선문을 바로 잡 기 위한 자비심으로 인해 정법인 돈오돈수 사상을 내세웠을 뿐 다른 뜻은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게요 그렇겠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여기 와 있는 것이겠지요그 러나 참으로 중대한 문제가 또 하나 있소 생각해보시오 당신 네들이 목을 매는 그 돈오라는 뜻 말이오 그 돈오라는 뜻이 뭐K소 단박 깨쳤다 별안간 깨쳤다 그런 듯이 아니겠소 그 렇다면 깨침과 깨달음은 달리 해석해야 하는데 깨침은 돈오돈 수요 깨달음은 돈오점수일까요 돈오돈수에는 알음알이가 방 해가 된다 하여 지해나 해오의 경지가 없소 오로지 화두공안 을 참구하여 단박에 깨침이 있을 뿐이오 그러나 점수는 지해 의 과정을 거치고 해오에 닿아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에 의 하여 깨침의 경지인 증오를 획득하오 그렇다면 깨치고 난 뒤 의 닦음이 문제인데 돈수는 다 깨어졌는데 더 닦을 게 없다는 것이고 점수는 그 깨침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닦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니 그래 내 물읍시다 지해나 해오의 경지 도 거치지 않고 단박에 깨쳐 더 닦을 게 없다면 그런 법기를 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 몇명이나 되겠소 종조는 그것을 알고 계셨기에 점수 사상을 펴셨고 깨달음과 깨침조차도 헤아리지 못하는 당신들은 그것을 그런 뜻으로 풀이해 종조를 이제 와 이단사설 지해종도라 배척했던 것이오 이보다 배은망덕한 일 이 어디 있겠소 그만둡시다 그것은 그 양반의 입장에서 그런 것이지 실상 은 논쟁할 가치조차도 없는 시비거리일 뿐일 게요 그렇소문제는 역시 식識이 아니라 지智일 테니까 논쟁은 여기서 기가 꺾이고 있었지만 발걸음을 돌려 나오는 나로서는 감회가 착잡하지 않을 리 없었다 방장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란 생각은 이미 새삼스러운 것이 아 니었다 처음부터 화두 공안 하나를 들고 들어가 한순간 깨어 지는 것도 깨침이요 지해를 거쳐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에 의해 비로소 깨어지는 것도 깨침일지니 그 뒤 닦을 것이냐 아 니냐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물론 깨침과 깨달음의 차이 를 밝히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으랴 깨침과 깨달음의 화실한 의미를 우리는 모르고 있었기에 그동안 막연히 깨달음 이나 깨침을 하나로 이해해 왔고 그러니 싸움박질이 있을 수 라에 모든 것은 점수였다 그들의 돈오돈수인 깨침도 삼세를 윤회하며 닦은 결과이므로 엄밀히 그것은 점수라는 등근 원속 에 깃들여 있는 한 부분이요 그러므로 깨치고서도 더 닦을 게 남아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깨침이 아니라는 돈오돈수의 주장 은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었다 계속해서 닦아 나감으로써 그 깨침을 더 공고히 하고 그것은 중생제도라는 실천적 차원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돈오돈수론자들은 점수론자들을 가리켜 결코 해오 에 의지해서는 깨침 즉 증오의 세계로 갈 수 없다고 하고 점 수론자들은 해오가 없으면 구경각 즉 증오인 깨침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하니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었다 해오 로써 깨닫고 선으로써 지견의 병퉁을 털어 증오에 이를 수 있 다고 믿었는데 해오로서는 증오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고 하니 그렇다면 나같이 의심 많은 자는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다 그렇다면 그대는 정녕 깨쳤습니까 문제는 팠붙꽈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것은 그가 말 했던 것처럼 이곳 방장이 거부해버린 I절요I와 같은 맥락의 도서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만은 거부치 않고 오로지 종조를 지해종도라 매도하며 그가 쓴 I절요I를 거부한 채 돈오돈수의 세계를 새삼스럽게 주장하고 있었다 그가 깨쳐 본 종조의 세 계는 잘못된 것이었으며 잘못된 것을 안 이상 그 설을 부수고 자신이 본 세계 즉 돈오돈수설을 새로이 세워 종법을 흔들림 없이 굳건히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로 처음 왔을 땐 그 것이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까지 오고 보니 다시 방장의 속 마음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것 같아 그대로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동짓달의 밤은 길다 밖엔 폭설이 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결행의 날은 가까워오고 있었다 I도서I로 인하여 나의 의 흑은 더욱더 가중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더 병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이제는 그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경멸과 혐오감까지 가슴 속에서 싹터가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방장이 보여준 행위가 법의 모습이라면 그 경지를 칼질해봄으로써 그 경지를 자기화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나는 하고 있었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나의 행위에 대한 자기변명의 한 수단일지 모르지만 그리고 자기합리화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것대로 이유야 타당하지 않은가 어차피 그것은 내 의식의 깨어 있음의 증명이고 본질을 향한 나의 욕구를 위해 나를 까부수는 계기가 되고 있으니 이러한 도전 없이는 결코 법은 볼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이 이제 동기가 될 수 있다면 그 것 자체의 반응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생겨날 그 어떤 미지 그것이 법의 모습이든 아니든 그 경지를 넘을 수 있다는 사실 이 지금의 내게는 중요한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그데로 멈춘 다면 나는 다시 엄청난 혼란 속에 빠져 전통적인 과거의 눈금 에 저울질되어 이 집단에 의해 조직에 의해 속박당한 채 사 육될 것이며 순응할 것이며 지배되며 그만큼의 범위 내에서 반응하며 살아갈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내가 보려는 법도 아니고 자유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 마음에 끈질기게 매달려 오는 변형된 과거 그 연속일 뿐이었다 나는 분명히 그 경지를 보러 여기 와 있는 것이며 내가 그를 쳐 없애는 과정이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상응관계를 통해서 점진적인 과정의 성취 라고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만 하다면 그 구조를 통해 내가 그 과정의 노예가 되어도 좋은 것이었다 엄청난 에 너지와 정열이 나를 파멸로 이끈다 해도 나는 방장의 팔을 잘 라버리는 순간 내가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럴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 아름다움을 충분 히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내 마음 속에 은밀히 진행 되고 있는 이 음험스러움까지도 오늘로서 명증이 바람처럼 떠나버린 지도 벌써 몇 달이 지 나가고 있었다 그가 없는 공간을 서성이면서 나는 역시 병들 어가고만 있었다 눈만 감으면 꿈틀꿈틀 살아 일어나던 십우 도가 떠올랐고 칼이 떠올랐고 염소가 떠올랐고 아버지가 떠 올랐고 바위 곁을 돌아나가는 승복자락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임자는 이내 방장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래 벗기고 말리라 벗기고 말리라 그가 장검을 들고 단상에 오를 해제날까지는 꼬박 한 달 반 이 남아 있었다 결제가 시월 십오 일에 있었으니까 해제일인 일월 십오 일까지는 꼭 한 달 반이었다 이제 그 한 달 반 동안 내 마음에 변화가 없는 이상 이 의심 많은 자의 결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잠깐 휴게 시간을 이용하여 나는 십우도가 모셔진 전각을 올랐다 역시 십우도는 범접하지 못할 기운을 내뿜으며 나를 맞았다 나는 그것을 눈이 부신 듯 쳐다보고 섰다가 선방으로 돌아 왔다 돌아오면서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십우도는 말하고 있 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요즘의 너의 공부 막연히 깨침을 기다리는 너의 공부 깨침이 기다린다고 해서 오는 것이더냐 찾아 나선다고 해서 오는 것이더냐 본래 본법신이라 부처는 내 안에 있을지니 믿음이 부족하니 깨어서 보지 못할 뿐 어 떻게 뱉 것인가 어떻게 깨어 깨침을 얻을 것인가 깨어버려라 깨어버려라 그때 참다운 실상을 볼지니 십우도 십우도의 경 지 방장은 보여줄 수 있을까 그 깨달음의 경지 그 경지를 십 우도를 보듯 그렇게 내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은산철벽이 되어 앉았을 방장의 모습이 생각났다 나는 머 야러츠 리를 내저었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칼을 들고 들어선다면 어 을충 떤 경지를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빗겨가지 않 히 진행 았다 그가 깨쳤다면 어느 한순간 나를 제도할 수 있으리라는 생 각이었다 행은 이미 밖엔 여전히 폭설이 쏟아지고 있다 그 눈바람 속으로 침계루의 대종이 운다 몇 시나 된 것일까 해제날이 가까워지면서 낙오자가 늘어가고 있었다 반면에 동안거의 반살림이 지나가자 수면을 거부하고 장좌불와릇坐 不臥하는 용맹정진이 늘어났다나 역시 거의 필사적이었지만 결행을 향한 결심만 굳어져 아무런 발전도 없었다 머리는 시 원하게 하고 발은 언제나 차게 하며 뱃속은 언제나 칠분이었 다 그러나 가부좌만 틀고 앉으면 습판성 수마가 밀려오고 경 책 스님의 장군죽비가 어깨에 쏟아졌다 낭떠러지도 다하고 물도 다하고 산도 다하고 초승달 그림자가 물소뿔에 그려지는 경지가 되면 늙은 쥐가 쇠뿔 속에 덜컥 걸려 들어가듯 어쩔수 없이 정定에 들게 되는 게 선이라지만 눈을 번쩍 뜨면 설한 풍 소리가 을씨년스럽고 문득 보이는 방장의 날선 눈멎과 그 가 든 시퍼런 칼날 그리고 횐 염소를 몰고 흘러가는 아버지 십우도십우도 아무리 의정을 일으켜 귀결처만을 찾아도 잡독雜毒 은 심 장 속에서 울고 밖으로 나가 찬 물을 뒤집어 쓰지만 다시 일어 나는 번뇌들 그리고 멀어져만 가는 화두 자썽이 되면서 차담이 나왔다 휴식시간을 이용해 다리를 며 나는 되풀이하고 있었다 노사를 칼질하겠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이 짓은 헛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누가 아는가 내가 노사를 향해 칼 을 들지 않고도 그 허구의 가슴을 꿰뚫어 볼 그 순간이 어느 한순간 문득 보일지 다시 눈을 감고 화두를 당겼지만 눈거풀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번뇌는 여전하고 수마가 용맹정진 두 사람이 견디지 못하고 또 탈락했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물러나서는 안 된다 마지막 고비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다 리는 뼈마디가 주리를 튼 것처럼 아파오고 입 속은 소금을 씹 은 듯 짜다 수마가 달려드는 것인가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인 가 화두는 말처럼 잘도 도망가는데누워버리자 이곳을 뛰쳐나 가 벌렁 누워버리면 모든 고통은 사라진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지 고통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화두는 멀리 달아나고 결 행을 향한 결심만 굳어지는가 비워버리자 깨침을 이루겠다는 그 마음 자체까지도 깨뜨려 버리자 알음알이의 주체도 그 인식의 대상도 알아버리자 현 상계의 모든 것을 부정하거나 무시하기보다는 그 참다운 모습 을 그러나 수마는 계속해서 몰려온다 입 속은 여전히 짜고 내 목을 적셔줄 청량한 물줄기의 원천은 어디 있는가 휴게시간 속에 나를 놓으면서 나는 황벽黃髮의 시 한 수를 씹었다 진노舊勞를 벗어남은 보통 일이 아니다 고삐 끝을 꼭 잡고 한마당을 이루어라 한바탕의 추위가 뻣속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떻게 매화 향기 코를 찌르랴 어느덧 신년 정초가 눈앞이었다 잠을 깨고 일어나면 악몽으로 인하여 으슬으슬 한기를 느끼 는 시간이 홀러가고 있었다 열로 인하여 의식은 붕붕 허공을 떠다니는데 나는 부처를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나선 문수보살 인가 아니면 살인마 앙굴마라인가 정녕 나는 방장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일까 새삼스럽게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데 그런데 왜 옹졸하게 용서하지 못하는 것인지 결행의 시간은 가오는데 용서라고 용서라니 무슨 소리인가 나만 그를 를 용서하고 누구를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자꾸만 다 내가 누구 언제나 눈을 감으면 깊이를 알 수 없는 벼랑은 앞에 있었고 칼을 든 노사는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낭떠 러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돌아서야만 한다 돌아서서 그와 맞서는 길만이 남아 있었다 이제 그를 쳐 없애야 한다는 건 관념이 아니었다 지적개념도 아니었다 오고 있었다 득실 을 밝게 분별하여 알음알이로 인해 생겨나는 이 생각이란 놈 을 부수고 법의 참모습으로 계합해 들어갈 그 순간이생각의 통어상태 무념무상의 세계 그것이 법의 참모습이라면 그 적 멸의 시간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나의 모든 알음알이 그 지해H解 심지어 팔만대장경의 부처님 말씀까지도 모두 가 필요 없어지는 그 순간이 다가오고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를 얽어매고 있는 매개체요 차별 없는 세계를 표현하는 설 명 그 이외의 것이 아니라는 건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그것 으로 인하여 언구와 형상에 내 도안道眼이 가려지고 있었다 는 걸 알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오로지 그 세계 를 위하여 나는 그 세계를 알아왔던 것이고 그렇기에 이제 내 게는 행동만이 필요한 것이었다 행동과 관념 사이에서 떨고 있는 나의 갈등이여 향이 타는 냄새에 잠시 내 의식을 맡기고 눈을 감 아 붙였다 요즘 들어 마음의 갈등으로 인하여 명상은 잊어버 렸다 이 조각난 마음으로 무엇을 볼 수 있을지 모르나 오히려 어두운 밤보다 짱짱한 오후의 햇살이나 지는 낙조 속에 나를 맡기고 있으면 더 외로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떠들썩한 소음과 이끼 킨 돌계단 본존의 부드러운 미소 음험한 건물 그림자 평화로운 풍경 소리 한 개의 촛불이 때로는 두 개일 수도 세 개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때로는 놀라기도 하고 때로 는 전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무감각한 혼란스러움에 진저 리가 쳐진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시를 아무렇지도 않게 읽고 그것이 본질의 모습일 것이라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나 자 신이 무섭다 그러나 거기에도 타당성은 있다 몽롱한 자의 기 술일 뿐이라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그 속에도 단절된 표현의 결과가 있다 비실제적인 것으로부터 탈출시켜 우리들을 실제적인 자유 의 세계로 안내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저 깨침의 행 위처럼 인공성이 개입될 수 없는 무위자연의 심리적 상태에서 기술된 것일까 하는 데에는 아직도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지 성의 힘을 빌린 게 아니라 분별작용의 힘을 빌어서 경험적 방 법론을 채택하여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모방이었다 선이 현실논리와 단절된 체험의 결과로서 빚어진 상상력의 응집이라면 이것은 정신의 물화상 태 그 아름다움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방장이나 이 시를 쓴 사람이나 모두가 다 그 경지에 가 있다는 것일까 여전히 본질 의 뿌리는 깊고 사유思惟의 그늘은 어둡기만 하다 오늘은 정초라 쉬는 날이었으므로 제 고장 특유의 설빔과 다례에 관한 얘기를 들으며 나는 오랫만에 정은수좌를 만났 다 명증이 떠난 후로 선방에서 그를 볼 수는 있었지만 일부러 시선을 피해왔었는데 마주하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의 시 선을 피했던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우리들 시선의 엉킴 속에 는 명증이 어느 새 자리하고 있기도 했지만 그를 의식함으로 써 자꾸만 내 과거 속으로 침잠하는 나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 그는 알고 있을 것이었다결코 진리가 저 과거 속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쯤은 그러나 왜 그의 시선과 엉키기만 하면 그 리고 고통스런 그의 얼굴을 대하기만 하면 나는 저 기억의 골 방 속을 기웃거리며 달려나가는가 그리고는 거기에서 내 아 버지를 만나고 어머니를 만나고 흰 염소와 검은 염소를 만나 는가 문제는 그것은 죽은 것인데 아직도 내게는 살아 있다는 사 실이다 그들은 살아 움직이고 있고 검은 터럭을 헤치고 흰 터 럭은 끈질기게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순 수한 명상을 방해하고 있든 어떻든 아무튼 가카이서 보는 정 은수좌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 보였다 몸이 좋지 않은 모양이군 그는 서글프게 웃었다 지쳤나봐요좀 무리를 했더니 그래서야 싱나법을 보려면 우선 몸부터 건강해야지 저도 병들었는가 봅니다이게 아닌데 말 끝을 못맺는 그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그림자가 흘러갔 다 그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여전히 힘 없는 음성이었다 고행이란 한낱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에고이즘이라 는 생각이 한시도 떠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말하자면 덧없다 는 생각이지요 그러나 덧없다 하더라도 불자가 볼 게 무엇이던가 허지만 이 법을 통해서나 저 법을 통해서나 모두가 마찬가 지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나는 명증스님이 떠나가고 이번 삼 동결재를 맞으면서 모든 것을 버리려 했습니다 나를 안다는 것 알고자 했다는 것 무엇을 알고자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그 모든 것까지도 안다는 것이 아무리 유기적 으로 잘 조직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전부일 수도 없 고 그렇기에 우리의 전체성 속에서 볼 때 그것은 한낱 개념 자 체에 불과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데 그러나 이 법 역시도 진실로 안다는 것이나 우리들이 이 죄 많은 세상을 살면서 목을 매는 전쟁이나 혁명이나 정책이 나 그러한 것들의 본성을 되바꿀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 는 그대로일 뿐이고 말하자면 이러한 것들보다는 바로 이 순 간 나 너가 없는 꾸밈없는 현재를 사는 삶이 더욱 소중하고 위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정신의 완성은 영원히 추 舊 미 시 결국 이 쇄계에서도 속고 있었다는 말이로군 진정 정신의 완성은 있을 수 있는 것일까요 성인을 좇아 구한다고 하지만 성인이라는 것은 단지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구도자가 오대산에 문수보살 을 친견해 법을 보려고 한다면 이는 벌써 자신을 그르친 꼴이 되고 만다는 선삿의 말이 있습니다 오대산에 문수는 없닺는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들은 그를 만나러 여기 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역시 문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증스님은 떠나갔고 나 또한 이 속에 이렇게 서 있는 것이지요 어차피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고 그렇게 살아 간다네법이 란 내가 서 있는 이 마음의 바탕心地 이 그대로 려일 테고 내 가 법을 I로 보려 했다단 잇밋 1것은 냅 심짓엣 흔칵된 헌극 무대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분명한 것은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대로 연극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일세 오로지 견성을 위해서 그떻다면 그것 또한 견성의 대가 치고는 너무 허망하군 요 글쎄 진정한 자유는 거기에 순응함으로써 자유로워지고 그것이 곧 법의 모습이라면 너무 상투적이고 입에 발린 소리 일까 그러나 최소한 내가 알기로는 거울은 본래 때 묻은 것이 아니어 본래부터 거기 있었고 깨끗한 것이더라는 말일세 그 렇기에 법은 때 묻은 것이 아니라 처음에 있을 것이라는 말이 듣고 있던 정은이 그제야 먼 데서 시선을 돌려와 나를 돌아 보았다 그는 나를 잠시 이상스런 눈멎으로 돌아보다가 고개 를 가로저었다 여전히 회의에 빠진 표정이었고 나는 그 표정 을 보면서 내가 너무 단정적으로 아는 체를 했나 하고 머쓱해 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쌔가 그를 향해 시선을 들었을 때 그 는 웬일인지 좀 전보다는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면서 문득 그 옛날 검은 터럭을 헤치고 나오던 염소 의 흰 털을 떠올렸다 거울은 거기 그렇게 본래부터 때 묻었던 게 아니라 본래부터 그렇게 깨끗한 속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이다 바로 본질 그 자체였다 음력 섣달 팔일 부처님 성도일이다 해제일은 바짝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아침 공양은 찰밥이었다 몸을 풀기 위해 방장을 위시하여 전 대중이 산행길에 나섰다 중대에 오르는 길은 가파랐다 구 름에 가린 해가 나타나자 백설 일색인 산하가 완전히 은빛으 로 빛났다 나는 시자의 부축을 받으며 앞서 걷고 있는 방장을 지켜보며 묵묵히 걸었다 북대를 돌아 대중들은 선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결가부좌하고 눈을 감았다 해제일은 눈앞인데 그동안 무엇을 했던 것일까 싶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았어도 번뇌와 망상에 젖어 있었던 시간 들 언제나 그렇지만 역시 얻은 건 없는 것 같았다 여전히 깨침은 멀리 있고 방장은 그런 나를 비웃듯 철벽이 되어 앉아 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피할 수 없는 시간은 눈앞인데 흔 들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어쩔수없이 무너지는 나를 보 며 입술을 씹었다 드디어 해제解制날이다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시간의 움직임 속에서 낯익은 나의 일 상들 움직이는 그 모든 것 그 표면적 상태 그 전적인 공간 생각과 감정과 동기 그리고 의도된 활동들 그 아래에서 꿈꾸 고 있는 모든 잠재의식들 그것들을 똑바로 알기 위해서 나의 결심은 더욱 굳어져 뒤바뀔 수 없는 상황까지 와 있었다 역시 진리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경작한다는 결론에 나는 완전히 이르러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안다는 것은 중요했다 그리고 하고 있는 바를 안다는 것은 더욱 중요한 것 이었다 인생을 알기 위해 진리를 갈구한다는 것슬픔을 알기 위해 기쁨을 배운다는 것사랑을 알기 위해 고독해진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법의 중심에 이르기 위한 경작의 과정이라면 모든 과정은 경작 그 이외의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그것은 경 다 작에 의해서 그 모습을 보이는 것이며 접근의 방법 방편의 문 었넌 시간 제는 나름대로일 것이었다 길은 하나였다길은 여러 갈래이나 도달할 그 세계는 하나 였다 그젓이 방장이 걸어왔던 길이든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 이든 법의 중심쎄 이를 수 있다는 건 경작의 힘이었다 그러나 두렵다 방장의 미소만 생각하면 끔찍하다 단상처럼 단단하게 받쳐진 권위 속에서 언제나 비교하고 한정하고 사고 J 하고 있을 그가 무섭다 그는 기다리고 있으리라 태산 같은 정적 속에서 허위에 가슴을 빼앗긴 채 허구의 칼날을 갈며 은 산철벽銀山鐵璧처럼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리라 아직도 시간은 있다 그를 용서해버릴 시간 그가 짠 허구들 J 을 자비로 보아버릴 시간 아아 어째서 이떻게 마음은 옹졸하 고 너그럽지 못한 것이냐 문제는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 이 허구이든 정법이든 쪼개어지는 그때 모든 것은 분명해진다 는 것이다 그렇다법 이외의 것은 모두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이다 내가 잘라야 할 것은 그것이다 그때 허구의 모습은 나타나리 1 라 그리고 모든 것은 규명되리라 고양이의 목은 이미 잘렸지 만 저만큼 조주의 칼날에 떨어져 나갈 남전의 목은 기디리고 I 있다 법의 근원마저 쳐 없애버렸을 때 오오 일어날 법의 참 모습이여 밌 침계루의 대종이 울고 있다 은은하면서도 청아한 소리가 시 가슴 속으로 몰아쳐 들어온다 아침공양이 끝나자 대중들은 모두 방장의 해제 법문을 듣기 위해 심검당으로 가고 있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를 만나면 나를 죽이기 위해 나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정은수좌의 모습은 그 일이 있 은 후 계속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들을 따라 천천히 구광루를 돌아 퇴설당을 끼고 심검당으로 향했다 가슴이 쿵쿵 울고 있 었으나 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검당의 이끼 킨 계단을 어떻게 올랐는지 몰랐다 횐 고무 신 끝에 부서지는 햇빛이 따가웠을 뿐이었다 심검당에 들자 이미 사부대중이 모여들어 있었다 방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칼이 걸렸던 자리는 방장이 오를 법상 으로 인해 가리어져 있었고 그 법상은 비어 있었다 써늘하게 얼어붙은 가슴 속으로 칼바람이 지나갔다 한순간 허공으로 흐르던 시퍼런 장검의 끝이 눈앞을 어른거리다가 사라졌다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떴다 드디어 방장이 장검을 손에 쥐고 시자의 부축을 받으며 심 검당으로 들어섰다 방장은 여전히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고 나는 그 웃음을 보며 이빨을 사려 물었다 사부대중이 모두 모 J 이고 난 뒤의 그의 등장 역시 그답다는 생각이었고 그의 미소 마저도 이제는 권위를 세우려는 위선기가 넘쳐보이기 시작했 다 방장이 이윽고 법상에 앉았다무너질 수 없는 태산처럼그 따 는 오르자마자 눈을 감았다 그의 침묵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의 침묵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부처님의 저 유명한 염화 미소花微笑를 떠올렸다 기 세존께서 어느 날 법을 전하기 위해 사자좌漸子座에 올라 시 흘렸다는 웃음범천왕이 가져다 준 한 송이 꽃을 가섭웅葉이 이해하고 흘로 마주 미소지었을 때 내게 정법안장이 있노라 이는 열반의 경지에서 얻은 미묘 � 한 법이므로 이 미묘한 체험의 세계를 문자文字 로써 열어줄 수가 없다이 세계는 바로 무형無形의 모습이며 문자가 아닌 경전 밖의 다른 방법으로 전해질 것이니 나는 이제 법을 마하 다 가섭에게 위촉하노라 하고 세존은 설법을 끝냈다 그뿐이었다 대중은 영문을 몰 라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었고 세존은 그대로 법상을 내려왔 다 세존의 염화미소를 생각하는 가슴 속이 써늘하게 얼어붙었 다 방장의 침묵은 그대로 계속되었고 나는 어쩌면 방장은 저 칼을 휘두르지 않고 세존처럼 그대로 법상을 내려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계속 침묵이 흘렀다 대중은 으레 그랬던 것처럼 그의 여전히 방장의 침묵은 계속되었다 침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어느 한순간이었다 잠시 방장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 같더니 그가 눈을 번쩍 떴다 그와 동시에 가슴이 철렁 무너졌다 이윽고 방장이 들고 있던 장검을 쳐들고 입을 열었다 대중아 일러라 이 도리를 알겠느냐 실내가 잠깐 술렁거리는 것 같더니 이내 물을 끼얹은 듯 정 적이 감돌았다 그런 대중을 향해 방장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 던 것처럼 다시 고함을 내질렀다 일러라 이것을 봤다면 촉했을 것이요 보지 못했다면 배했 을 것이다 일러라 이 도리를 알겠느냐 대중은 약속이나 한 듯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었다 그 허위 의 존재를 처치하지 않는 한 그들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 면서도 그들은 침묵하고만 있었다 오로지 사방이 막힌 벽 속 에 갇힌 채 그들은 식은 땀을 흘리며 이제는 명증으로 인해 더 욱 견고해진 그의 지위 앞에 위세 앞에 무릎을 끓고만 있었 다 나는 침을 끌꺽 삼키며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부르르 진 저리가 쳐졌다 그 진저리를 뿌리치듯 어느 한순간 눈을 부릅 뜨고 방장을 올려다 보았다 장검을 짚고 앉은 방장의 근엄한 얼굴이 범치 못할 위엄을 가지고 다가왔다 더 이상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벌떡 일 어났다 이미 때는 와 있었고 예정된 이상 헤엄쳐 나아가야 한 다는 생각이었다 방장의 허위를 칼질하고 그것을 내것으로 해야 할 것이었다 내가 일어나자 침묵했던 대증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쏠렸 다 이제는 물러나려 해도 물러날 수가 없다는 생각이 한순간 나를 사로잡았다 벼랑은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었다 나는 걸었다 방장의 그림자가 얼핏 흔들리는 것 같았고 대 중은 침묵한 채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방장을 향해 계속 나아 갔다 모든 것은 그대로 정적이었다 침묵과 침묵 그 침묵 사이를 나는 고기처럼 유영해가고 있었다 예상 외로 얼마 걷지 않아 방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다 가들었다 어디선가 선득한 바람이 불어왔다 방장이 다가오는 나를 내려다 보았다 시퍼런 장검이 날을 번쩍이며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자루를 움켜잡은 노사의 손이 너무 메말랐다 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에선 계속해서 지금이라도 물러날 수 있다는 생각이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물러날 수 없는 일 이었다 허공을 헤집던 칼날이 한순간 시야를 가로막았다 명 증의 극악스런 비명과 이슬처럼 뿌려지던 피 펄쩍거리던 팔 그래 그것이 남의 것일 수는 없지 나는 칼을 향해 완전히 다가들었다 방장이 가까이 다가온 나를 약간은 흔들리는 눈길로 내려다 보았다 그 눈멎을 보자 가슴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러나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저 칼날 위에 옮겨 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오직 존재의 꽃이 피리니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모두 거기서 매듭이 풀릴 것이니 나는 방장이 움켜 쥔 칼자루를 향해 손을 뻗쳤다 오로지 행 동을 통해 무한하게 뻗어나갈 의식의 팽창을 움켜 잡듯이 일 단 칼을 향해 손을 내뻗자 나의 전일全한 힘이 그 손 끝으 로 뻗치면서 이상스런 환희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기막힌 그 환희에 떠밀리듯 다음 순간 그 칼을 뺏어 들었다 용광로가 불을 뿜어 내듯 뜨거운 열기가 손 끝쎄 남았다 나의 모든 세 포 하나 하나 실핏줄 한가닥 한가닥이 환호하며 일어나 그 손 끝으로 모였다 나는 그 열기를 확인이나 하듯 칼을 힘껏 들어 올렸다 나를 깔보듯 어느 새 음험한 미소를 입가에 담고 먹이 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나를 살피던 방장의 눈빛이 한순간 매 섭게 멎났다 나는 꽃뱀처럼 혀를 널름거리며 그를 노려보았 다 그리고는 그를 칭칭 감아 안는 기분으로 칼을 잡은 손에다 힘을 주었다 아아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나오는 이것은 무엇인 가 오히려 한없는 자비심 그 열락으로부터 전해져오는 이 엄 청난 환희그것의 환화 다음 순간 그 향기에 취한 듯 나는 방장의 팔을 향해 힘껏 칼날을 내리쳤다 피가 튀었다 방장의 극악한 비명 소리 나는 단상 아래로 툭 떨어지는 방장의 팔을 보았다 그 순간 무엇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건 사실이었다 오직 어 둠뿐 이게 무엇인가 어둠이라니 그렇다면 저 환하게 쏟아지는 햇살같은 빛이 천지를 감싸기 라도 할 줄 알았던가 정녕 천지가 개벽이라도 하고 자신의 희 망대로 하늘을 나는 제비가 물 속에서 알을 품고 고기가 헤어 나와 차를 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가 바다가 변하여 산이 산이 변하여 바다가 될 줄 알았던가 되고 깊은 절망이 한순간 나를 사로잡았다 그 사이 정신을 차린 대중들이 방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때였다 주지의 다급한 음성 너머로 나는 분명히 들었다 어느 새 정신을 차린 방장이 자신을 향해 달려든 대중들의 부 축을 받으며 내지르는 고함소리를 아니다 나를 일으키기 전에 대중아 저놈을 이 법상에 앉 혀라 누구인가 그를 크게 불렀고 방장은 고통을 물고 다시 소리 를 내질렀다 그대로 끝내지 말라부처의 설법이 남았다 대중이 나를 돌아다 보았다 나는 잠시 겁에 질려 정신이 없 었으나 뒤이어 방장의 말을 이해하고는 못믿겠다는 듯이 멍청 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실실 웃음이 터져나온 것은 그 다음 이었으리라 저자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가나를 칼질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그를 칼질하고 있는 것인가 이상스런 흔란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내 웃음 때문이 었을까 고통을 참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던 방장이 법상에서 � 앞으로 엎어지듯 무릎을 끓었고 그를 지켜보던 그 곁의 대중 들이 당황해하면서 그를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방장은 대중의 손길을 뿌리치며 장하듯 들어올렸다 선재 선재라부처를 죽이기 위해 문수가 칼을 들고 올 줄 은 알고 있었으나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중생을 번뇌케 한 부처를 용서하소서 그는 그렇게 읖조린 뒤 대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엇들 하는가무릎을 끓지 않고 이내 대중들이 넋이 나간 듯 둘을 번갈아 보다가 하나 둘 넙 죽넙죽 나를 향해 무릎을 끓기 시작했다 이게 무언가 갑자기 터져나오던 웃음이 멈추는가 했는데 나는 싸늘한 시 선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정말 이게 무엇인가 가슴 속에서 그들을 향한 혐오가 불길처럼 치받아 올라왔 다 나는 그만 그들을 향하여 악을 써대기 시작했다 이 어리석은 자들아 이것이 그대들이 보려하던 법인가 고함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진실로 감동했다는 듯이 방장 이 감격어린 눈으로 나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오호선재 선재라 방장이 감격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어리석은 대 중들은 제 나름대로 내 고함을 이해하기에 급급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들에게는 아마도 나의 그 고함소리가 깨친 뒤에 오는 오도송悟道頌처럼 들리고 있을지 도 모를 일이었다 미쳤군 미쳤어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깨친 자만이 깨침을 알아보 는 것 그들이 나의 허구에 속고 있다면 그들 또한 우매한 중 생들이요 거짓이었다 나는 계속 웃다 말고 불길처럼 뜨거워진 마음 속으로 되뇌 었다 이게 아니다 이게 아니야 그리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이게 법은 아닐 것이다 이게 법은 아닐 것이야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대중을 비집고 걸어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걷어차듯 허망한 가슴을 안고 걸어나왔다 허망함만이 배어나는 가슴 속으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릉지는 안막 속으로 천천히 아버 지가 보이고 검은 펐럭을 헤치고 솟아오르던 흰 염소들이 보 였다 그래 무엇을 보려 했던가 아아 법이란 거기 그냥 그렇게 있을 뿐이었던 것을 저 갈 등의 손등 그 허구의 손등 법의 근원을 잘라 보려했던 나의 이 어리석음 그래 이제 무엇이 남았는가 그것이 잘리는 순간 내 가슴 속으로 쳐들어온 또 하나의 이미지 그래 분명 그 이 미지만이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제 는 이것조차 어떡할 것인가 저 칼날 끝에 묻어난 그 이미지를 어떡할 것인가 칼켯에 드러나버린 나의 밞 내 용서받을 수 없는 무분별한 행동들 이제 그 결과를 어떡할 것이란 말인가 그걸 쳐 없애려 했지만 이 생각이란 놈 결국 나를 병들게 해 버린 이 생각이란 놈 끝없이 교활하기도 하고 끝없이 차갑기 도 하고 끝없이 뜨겁기도 하고 때로는 전쟁을 때로는 쾌돠을 게도 하고 태산을 움직이기도 하는 이 생각이란 놈이 그들 속 에 그리고 아리도 내 속에 존재하는 이상 나는 결코 떠받들어 져야 할 이유도 없었고 영원히 나는 법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을 법의 세계는 생각이란 놈이 개입될 수 없는 무념무 상의 세계 적멸의 세계라는 걸 나는 진작 이론상으로 알고 있 었으면서도 함정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진 것이었다 결국 나는 져버리고만 것이었다 지금 내 앞엔 사량분별로는 이 법이 깨칠 수 없다는 증거만이 명백하 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 명백함을 이제 무엇으로 쳐 없앨 것인 가 내가 아무리 현명하고 아무리 영특하고 그리하여 높은 대 덕이라 할지라도 이제 그 무엇으로 이 명백함을 쳐 없애버릴 것인가 역시 그 알량한 생각에 의해서 이러이러 해야한다는 생각에 의해서 그러나 그 역시 아닌 것이다 그것은 어제의 지식과 정보 경험에 의한 지식의 번역이고 설명의 산물일 뿐 그떻게 조각조각 짜맞추어진 정보로 인하여 생겨난 물질 그 렇다 그것은 물질이었을 뿐 결코 그것으로 저 명백함을 증명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이지만 그러나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참패해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고 한정되어 있었기 에 나는 엄청난 법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법의 참모습을 보기 위해 지해H解 의 세계로 들 어가고 그것으로 법을 알고 그 알음알이로 인하여 생겨나는 이 생각이란 놈마저도 부수기 위해 법의 참모습 속으로 밀고 들어가려던 나의 계합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버렸다는 말인가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 속에서 나는 어느덧 다리가 솜처럼 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어느 새 대응 전 앞까지 와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성큼 대응전 안으로 들어갔다 일렁이는 촛불 너머로 본존의 자비로운 얼굴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앞에 오체투지하고 눈을 감았다 갑자기 한 없는 눈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그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나를 해명할 길은 없 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개념도 어떠한 판단도 개 입될 수 없는 무위와의 감격 속에 숨어있는 그 음흉스런 모순 성을 이제는 해명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칼질했지만 여기서는 나를 향한 혐오만이 있었다 그 들이 나의 무엇을 저 단상 위에 떠받들어야 하는가 자승자박 이었다 결국 나는 교분자 속에 빠진 한 마리의 미물이었던 것 이다 내면적인 욕구로 인해 무언가 외부로 향하려고 시도한 나의 행위는 역시 개념적이며 사변적인 그 이상의 것이 아니 었다 안다고 하더라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틀린 것이었다 부처가 있다 조사가 있다고 하는 것 자체까지도 가 르침을 위한 가르침의 자취에서의 개념적인 이해였으며 구체 적인 현재의 사실이었다 경전이나 문자언구의 가치가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인간이 경전이나 문자언구의 가 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정작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 고 있었으니 오묘한 말씀이 마음을 꽉 메워도 그것은 도리어 알음알이의 소굴이 되어버렸고 법은 눈앞에 있는데 명상名 相을 통해서 파악될 경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함정은 거기 있었다 깨치기만 하고 닦지 않는다는 데 방장의 함정은 있었고 선 리W를 표방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알음알이 그 개념의 세계 에 걸려 그것이 가르치는 생생한 세계를 놓쳐버린 것이 나의 함정이었다 그렇기에 진실로 이제는 망념으로 인하여 지혜의 작용이 어떻게 멈춘다는 것도 알았고 생각의 파도가 일면 참 된 자아가 어떻게 구속된다는 것도 알았고 한 생각을 일으키 는 마음이 바로 마이며 본래 없는 줄 깨치면 한 티끌도 받지 않고 한 터럭도 물들지 않는 것이 청정인 정淨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결국 무지는 없애야 할 망념이었지만 그리고 열반 또한 궁극적으로 내가 얻어야 할 당체였지만 그러나 무명이나 열반 역시 대럽된 개념이었고 대럽된 이상 교敎는 선망禪網 이 되어야 하고 선禪 은 불망佛網 이 되어야 할 것이었다 돈오문에서 눈을 밝히고 점수문에서 다리를 튼튼히 하억 실 천을 쌓을 때 바로 무쟁문無時門은 눈앞에 있을 것이었다 돈 오돈수와 돈오점수가 하나가 될 때 두 개의 깨침이 있다는 망 령됨이 깨어지고 그것은 그대로 높낮음 없는 하나의 부처로 일어설 것이었다 아아 결국 나는 노사를 치려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속에 숨어있는 그 무명무지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가진 그 환幻의 실체 그것은 오로지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것은 우리들의 심상에 떠올 랐다 사라지는 삼계유심三界唯心의 그림자일 뿐이었던 것이 다깨침은 말의 허구로 꾸며지지만 그 허구 역시 공성도性에 의해 본래대로 멸한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말 의 대상이 지멸止減할 때 말의 대상 역시 지식1 하는 것 그것이 우리들 삶이나 사물의 본래 상이었던 것이다인人과 법法이 둘 다 공이었으며 무아였으며 제법무아諸法無我요 일체법공一切法포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모든 법은 중도中遣속에 있었다 공포과 가IR 가 있기에 우리는 집착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염정染淨의 마 음이 생겨나며 그 공과 가의 도리를 바르게 관하는 것이 바로 중도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대껍된 두 극의 정수를 수렴하여 밖에서 구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 밖에서 밀려오는 것이 있으면 내 스 스로의 성품인 지혜로써 반조返照해야 할 것이었다그리고 그 철저한 불이不二 그 불이 사상의 토대 위에 망령됨과 깨 달음은 하나로 이루어져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거 울이 모든 물체를 비추지만 자기 빛을 잃지 않듯이 눈을 밝히 고 다리를 튼튼히 하여 중도의 참 뜻을 이룰 때 황금 염소는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깨달아져 오는 의식 속쎄서 눈물을 쏟으며 스승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불법이 무엇입니 까 하고 물었을 때 그때 스승이 하시던 말씀을 지난 밤 황금 염소 한 마리가 용광로 불 속으로 들어간 뒤 지금까지 그 자취가 보이지 않는다 이 도리를 알겠느냐 해 설 불교 소설의 새 지평을 연 禪小說 우리 문화의 정신사적 맥락이 불교를 비롯한 도가와 선가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작금의 출 판계는 다투어 우리의 정신사를 더듬어 분석하며 입증해 보이 는 작업에 주목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불교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불교를 알리고 그것을 통해 삶의 지혜에 이르게 하는 글들이 양산되고 있다 그리고 당분간은 이러한 문화적 향수 욕낙에 따라 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 상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그동안 몇몇의 불교 소설은 특정한 선승에 대한 관심과 그 관심의 확대화로 인해 주목을 반아 왔다 그러나 이 들 작품에 대한 관심은 특정한 인물에 대한 관심과 불교 철학 혹은 교리에 대한 교양적 욕구에 의한 관심이며 주목이지 불 교 소설의 미학에 대한 관심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불 교를 하나의 교양 정도로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욕구 층족으 로 불교 소설을 읽어 왔다고 보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백금남 소설 I돈오돈수 돈오점수는 기존의 불교 소 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어 주목된다 이 작가는 이미 탄트라라는 소설로 불교 션설의 미학을 불진적인 시각으로 실험했던 작가이다그러나 I돈오돈수 돈오점수I에서는 그 시 각을 현교顯敎 적인 것으로 바꾸어 우리 불교의 제 문제를 통 찰한다 한국 불교에 대한 표피적 이해만으로 씌어졌던 불교 소설로부터 벗어나 한국 불교 또는 절집에 대한 심층적 이해 를 바탕으로 하여 씌어지고 있어 불교나 승가를 이해하는데 적절한 소설이다 특히 선禪을 이해하는데 독보적인 소설이 다 기존의 불교 소설의 서사 구조는 속가의 갈등 입산 산사에서의 갈등 하산 그리고 갈등이라는 틀 속에서 독지 들의 홍미를 반감시키는 진부한 소설로 전락되었던 것으로 보 인다 속인의 시각으로 승가를 바라보는 속된 서사 구조로 많 은 소설들이 짜여졌다 이에 반해 이 소설은 서사 구조부터 기존의 속된 혹은 속화 俗化된 소설 미학으로부터 벗어나 선가禪家 혹은 선승禪 僧의 생활과 그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준다 주인공이며 작중 나레이터인 나가 속인俗入안동이일 때즉 입산 전의 서사 구조에서는 아버지의 삶을 통해서 깨달음의 세계가 무엇인가 를 보여 주고 출가 후에는 목양牧羊이라는 법명으로 선원의 방장인 혜일선사와 명증스님을 통해 깨달음의 세계가 무엇인 지를 보여준다 기존의 불교 소설이 앞서 조야하게 개진한 바 있지만 그 서 사 구조의 원형을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 이야기 구 조를 차용하여 하산 후의 이야기 그 깨달음의 과정을 주된 서 사 구조로 하고 있는데 반해 이 소설은 삶이 무엇이며 인간의 깨달음이 무엇인가를 속가 아버지의 횐 염소와 검은 염소를 통해 묻고 이에 대한 해명을 출가 후의 화두로써 그 연결 고 리를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이는 우리 불교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서사 구조로 불교에 대한 적확한 이해 없 이는 가능하지 않은 소설 미학이다 네놈이 찾아야 할 것은 네 아비가 아니라 바로 그 횐 염소 니라 아마도 그것은 이제 그 본성이 단단히 익어 황금 염소가 되었을 게다 세간에서 검게 물든 것을 떨어내고 근기를 닦고 열심히 본성을 보려 할 때 황금 염소는 네 앞에 나타날 것이 라 지난 밤 황금 염소 한마리가 용광로 불 속으로 들어간 뒤 지금까지 그 자취가 보이지 않는다 이 도리를 알겠느냐찍는 화두로 속가와 승가의 이야기를 연결시키고 있는 서사 구조의 특성이 그것이다 속가의 속된 삶과 승가의 성스러운 삶이 둘 일 수는 없다 그것이 같은 인간의 삶임에는 부정하지 못한다 다만 다른 것은 삶의 방편일 뿐이다 그리고 본질 흑은 본성을 꿰뚫어 보는 시각의 지속성과 집중력에 의해 깨달음에 이르는 세계가 다를 뿐이다 이 점에 대해 작가는 이 소설에서 겉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확신에 차 이 소설을 쓴 것으로 이해된 다 뿐만 아니라작가는 위의 화두를 언어도단의 선禪을 통해 서 깨달음을 얻기보다는 언어 그것도 소설이라고 하는 승가 에서 경시하는 방편을 통해 얻으려 부단히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황금 염소로 표상되는 화두의 필연적인 서 사 구조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이며 목양 스님으로서의 길찾기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선사들의 이야기에 대한 집 요함으로 보아 이러한 우리의 생각은 확신을 갖게 해준다 지 횐 염소인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표피적인 현상에 따 라 판단햐기보다는 내면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의 시평이며 미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도 언어를 도구로 하여 성럽되지만 그것을 뛰어 넘어 언어 이건의 것에 가 닿아야 한다 그래서 깨달음에 이르러야 한다 문학이 궁극 적으로 가 닿아야 할 곳은 깨달음의 세계이다 인간과 삶에 대 한 부단한 언어적인 천착을 통해서 이르르게 되는 세계는 깨 달음의 세계이다 이 깨달음의 세계는 선禪을 통해 이르르게 되는 그곳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 작가도 이를 믿는 것으로 이해한다 부처님은 바로 실다운 모습을 깨쳐보신 분이기에 이 실다 운 마음의 모습을 중생을 위해 언설로 표현하여 이렇게 남겨 놓으신 것이니라항간에는 교외별전 불럽문자敎카別傳 不立 文字라 하여 문자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그대로 이심전 심으로 통하는 것만 공부라고 생각하여 눈만 감고 았으면 금 새 견성이나 한 것처럼 구는 무리들이 있으니 어찌 통탄할 일 이 아니겠느냐 모든 것은 그 길이 있고 나아가는 법도가 있는 1 이 인용문에서처럼 모든 것은 그 길이 있고 나아가는 법도 가 있는 법 그 법도에 따라 용맹정진할 때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 그것이다 깨달음은 언어 밖에도 있고 언어 속에도 있다 우리의 주위 에 있다 이를 환기할 때 돈오돈수頃悟頌修와 돈오점수頃悟 漸修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물론 이 소설에서 양자의 선방편 에 대한 논쟁에 작가는 어느 편에도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禪 이라고 하는 초월주의적인 세계에 대한 불가의 논 쟁을 환기함으로써 깨달음으로 가는 길과는 다른 현실의 혼돈 성과 무의미성 그리고 본성과 본체를 잃어버린 채 길에서 비 틀거리는 우리들을 각성케 하기 위한 서사 구조로 보인다 그 리고 또 한편으로는 승가의 부질없는 논쟁을 비판하기 위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 소설의 미학적 특성을 이루는 또다른 하나의 서사 구조 는 팔목 자르기라는 충격적인 삽화이다 이 소설의 서사증에 서 이 에피소드는 선禪적 충격과 함께 성랠과 속俗 을 가 르는 분별력에 대한 교시적 충격을 준다여기에서의 분별력은 서구적 인식 논리에서의 분별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혜일선사 가 제자 명증의 팔목을 자르는 삽화와 해제날 혜일선사의 양 구호久 침묵에 대응한 목料牧羊의 혜일선사 팔목 자르기 의 서사 구조가 유기적 구조를 이루며 만들어 내는 미학은 충 격적이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대중을 비집고 걸어나왔다 나 는 그것을 걷어차듯 허망한 가슴을 안고 걸어나왔다 허망함 만이 배어나는 가슴 속으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릉지 는 안막 속으로 천천히 아버지가 보이고 검은 터럭을 헤치고 솟아오르던 흰 염소들이 보였다 아마 법이란 거기 그냥 그떻게 있을 뿐이었던 것을 저 갈둥의 손등 그 허구의 손등 법의 근원을 잘라 보려 했던 나의 이 어리석음 그래 무엇이 남았는가 그것이 잘리는 순간 내 가슴 속으로 쳐들어온 또 하 나의 이미지 법의 참모습을 보기 위해 지해H解의 세계 로 들어가고 법을 알고 그 알음알이로 인하여 생겨나는 이 생 각이란 놈마저도 부숨기 위해 법의 참모습 속으로 믿고 들어 가려던 나의 계합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파 버렸다는 말 인가 이와 같은 나레이터 나목양스님의 토로는 작가 백금남 의 토로로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어둠과 절망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허망함을 토로한다 그 럼으로써 중도中道에 이르게 된다 그떻다면 이제는 대립된 두 극의 정수를 수렴하여 밖에서 구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그 밖에서 밀려 오는 것이 있으면 내 스스로의 성품인 지혜로써 반조返照해야 할 것이었다그리 고 그 철저한 불이不二 그 불이사상의 토대 위에 망령됨괴 깨달음은 하나로 이루어져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거울이 모든 물체를 비추지만 자기 및을 잃지 않듯이 눈을 밝 히고 다리를 튼튼히 하여 중도의 참 뜻을 이룰 때 황금 염소는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었다 이 소설의 대단원 부분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작가의 황금 염소는 중도의 표상인 셈이 다 중도의 길은 삶의 큰 지혜이다 이를 환기함으로써 작가는 인간의 삶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자리잡는다 작가 백금남의 불교 소설의 매력은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 인다 인간과 삶을 파악하는 작가의 시각이 부정적일 때 그 소 설의 미학은 그 몫을 잃게 된다 뿐만 아니라 독자들을 불유쾌 하게 만든다 이 소설이 반리얼리즘의 계열에 서 있으면서도 즉 신비주의적이며 초월주의적인 계열에 속하는 소설로서 사 변적이고 관념적인 문장으로 씌어졌지만 독자에게 설득력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메시지 전달을 서 사 구조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나 이미지를 진지하게 설명한다 기존의 소설 기법에 걸림없이 자신의 방법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이 점 또한 우리가 간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 하나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작가 백금남에 대한 불 교 소설의 가능성이다 대되고 그 지평도 밝게 불교 소설이 가능 국면이 그로 인해 확 전망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당신들이 부처다 당신들이야말로진짜 부처다 당신들이 부처다 딩신들이야말로 진짜 부처다 금박단청이 눈부신 법당 안에서 흘로 미소짓고 있는 부처는 이미 부처가 아니다 부처가 무어며 부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고 있는 당신들이 바로 부처다 하권이 집필증입니다